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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1/10 아틀란티스와 무대륙







무대륙의 발견

1864년 프랑스 신부 샤를 브라쇠르는 마드리드 왕립역사학회 도서관에서 에스파냐의 중앙아메리카 정복시대의 신부 디에고 데 린다의 <정복전후의 유카탄>을 발견하고, 그 가운데 마야 알파벳을 기반으로 고대 마야의 <트로아노 고사본>을 해독했다. 그리고 거기에 기록된 화산폭발과 재앙에 의해 함몰한 나라의 이름에 해당하는 두개의 마야 그림문자를 보고 MU라 읽었다.



제임스 처치워드

1926년 가을, 전세계 고고학계가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일어났다. 영국 육군의 예비역 대령인 제임스 처치워드가 『잃어버린 무 대륙(The Lost Continent of Mu)』이라는 책에서 고고학자들도 들어 보지 못한 무 대륙의 실재를 주장한 것이다.

이 대담한 주장을 한 영국인은, 1868년부터 인도에 머무르면서 원주민들 사이에 전설로 내려오는 무 대륙에 대해 듣고 필사적으로 그 확인 작업에 매달렸다.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드디어 인도의 옛날 사원에서 무 대륙에 관한 사실이 적힌 옛 점토판을 발견하여 그것을 해독했다. 그 결과, 원주민들 사이에 전승된 무 대륙이 상상의 땅이 아니라 실제로 태평양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문명이 발달했던 대륙이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는 이러한 확신이 서자, 무 대륙의 존재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찾기 위해 50년 동안이나 세계 각지를 떠돌았다. 그는 이 기간 동안 방대한 자료와 사진들은 수집하였다. 그리고 미국 뉴욕에 칩거하면서 무 대륙에 관한 지금까지의 연구를 글로 쓰기 시작했다. 그때 그의 나이는 이미 70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잃어버린 무 대륙』이란 책을 완성하여 고고학계에 깜짝 놀라게 한 것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신비한 아틀란티스 대륙에 관해 언급한 것을 놓고도 지금까지 명확한 결론을 못 내리고 있는 고고학계에, 제임스 처치워드의 무 대륙에 관한 주장은 또 다른 짐이었다.



잃어버린 무 대륙(The Lost Continent of Mu)

아득한 옛날, 지금의 태평양이 있는 위치에 '무(Mu)'라는 광대한 대륙이 있었다. 그 동쪽 끝은 현재의 이스터 섬, 북쪽 끝은 하와이 제도, 서쪽 끝은 마리아나 제도, 그리고 남쪽 끝은 지금의 쿡 제도에 해당한다. 동서의 길이는 8천 킬로미터, 남북은 5천 킬로미터로 지금의 태평양 면적의 절반 크기다.

이 무 대륙에 인류가 나타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5만 년 전의 일이다. 이곳에 살았던 인간은 매우 우수한 민족으로 고도의 문명을 이룩하고 있었다. 무 대륙의 인구는 약 6천4백만 명이었고, 열 개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머리색, 피부색, 눈의 색은 제각기 달랐지만 각 민족 간에 차별은 없었고, 한 명의 왕 밑에 하나의 정부가 통치하고 있었다. 무 제국 국민은 우수한 학문과 문화를 가졌고, 특히 건축술과 항해술이 고도로 발달해 이었다. 그들은 진취적인 기질이 풍부하여 배를 타고 세계 각처를 떠돌았다. 서쪽으로는 아시아, 유럽, 이집트와 교류했고, 동쪽으로는 북아메리카 중부에서 남아메리카 북부까지 진출하여 그곳에 자신들의 식민지를 건설했다.

무 대륙에는 낮은 동산 이외에는 산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었는데, 땅 전체는 세 개의 좁은 해협에 의해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문화의 중심지였던 일곱 개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도로가 격자 모양을 이루며 도시와 마을을 연결하였고, 그 표면은 대리석으로 잘 포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석조 궁전과 신전과 호화로운 대저택들이 관청을 에워싸고 있었다. 항구마다 세계 각지로 떠나는 배로 분주 했으며, 세계 각지에서 진귀한 물건을 가득 싣고 온 수십 척의 배기 항구로 들어왔다. 태양을 숭배하교 세계를 지배했던 무 제국은 날로 번영했다. 왕권은 튼튼했으며, 모든 국민은 행복한 생활을 누렸다. 그러나 거대한 대륙은 발밑으로 다가오는 불행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느 날, 갑자기 땅 밑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왔다. 소리는 점점 커졌으며, 대지가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혼비백산하여 신전에 몰려들어 태양신에게 기도하고 있을 때, 대지가 갈라지며 지옥의 불길 같은 거대한 불기둥들이 하늘로 치솟았다. 이 첫 번째 대지진으로 무 대륙 남쪽을 대부분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산보다 더 큰 해일이 대륙 남쪽을 강타하고, 용암이 들끓었다.

무 대륙의 국민들이 일차 대지진의 공포를 잊고 폐허 위에 신전을 재건할 무렵, 다시 땅이 요동을 치고 바다가 울부짖기 시작했다. 건물이 무너지고 대지는 바가 위에서 나뭇잎처럼 흔들렸다. 대륙의 중앙에 굉음이 대륙 전체를 휩쓸었다. 무 대륙은 조각조각 갈라지며 바다 밑으로 잠기기 시작했다. 태평양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던 거대한 무 대륙이 바다 속으로 잠기자, 전무후무한 해일이 지구 곳곳을 덮쳤다. 지금으로부터 1만 5천 년 전, 지구가 생긴 이래 최초이자 최대의 문명을 건설했던 무 대륙은 이렇게 사라졌다.



나칼 비문

얼핏 들으면 신화 같은 무 대륙에 관한 처치워드의 이러한 주장은 그가 머릿속으로 상상하여 꾸며 낸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그가 이런 대담한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인도의 낡은 힌두교 사원에서 입수한 두 개의 점토판 덕택이었다.

두 개의 점토판에는 난생 처음 보는 이상한 도형과 기호 같은 것이 빽빽이 새겨져 있었다. 늙은 고승은 점토판이 신비한 모국(母國)인 무에서 보내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가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노승은 처치워드를 토굴 속으로 안내했다. 거기에는 1만여 년이라는 세월에 부식된 점토판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는 그 점토판들을 보자기에 소중히 싸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점토판에 새겨진 고대 상형 문자를 해독하는 데 전념했다. 해독은 군대에서의 암호 풀기와 같았다. 그는 고승의 도움을 박아 2년 동안 점토판 해석에 매달렸고, 마침내 상형 문자를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그 점토판은 무 대륙의 성정인 '거룩한 영감의 책'이었는데, 무 대륙의 건국에 관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점토판에 새겨진 무 대륙의 건국 설화는 구약의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 설화와 비슷했다. 그는 이렇게 추측했다. 무 대륙은 왕성한 해상 활동을 했으며 인도와 이집트, 그리고 시나이 반도에까지 그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모세는 우연히 이것을 입수해 석판에 다시 새겼을 것이다.

처치워드는 인도의 고사원에서 입수한 점토판을 '나칼 비문'이라 명명하고, 자심의 추측을 뒷받침할 수 있는 또 다른 고대 점토판을 찾아 나섰다. 그러다 멕시코의 광물학자 윌리엄 니벤이 고대의 석판을 수천장 수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멕시코 석판이 나칼 비문보다 1만 년 후에 아메리카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처치워드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무 대륙은 인류의 어머니 나라가 된다. 처치워드의 책이 세상에 나오자 고고학자나 지질학자들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한마디로 몰아부쳤다. 그는 과학자들의 냉소에 일일이 반박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다음의 몇 가지를 들고 잇다.

우선 인도의 힌두교 사원에서 발견한 나칼 점토판의 해석이다

'라마야나'에 '동방의 미지의 땅에서 미얀마로 온 것'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동방은 바로 태평양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한, 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트로아노 고사본'은 유카탄 반도와 고대 마야족에 대한 기록인데, 여기에도 무 대륙이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인도나 미얀마, 이집트에서 발굴된 상형 문자는 모두 나칼 점토판에 새겨져 잇는 무 제국의 기호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이와 같은 직접적인 기록 말고도 무 대륙이 실재했다는 증거는 세계각지에 흩어져 있다고 처치워든 주장한다.
이스터, 망가이, 마리아나 제도 등 남태평양의 섬들에 남아 있는 온갖 유적에서 무 대륙의 자취가 발견되고 있고, 유카탄 반도의 우슈말 사원 비문에 새겨진'서방의 나라, 우리는 그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는 표현도 그 증거의 하나다. 멕시코시티 남쪽에 있는 피라미드의 비문에는 '어머니 나라의 붕괴를 기념해 세웠다'라는 구절이 있다.



무 대륙의 함몰

이 거대한 무 대륙은 왜 태평양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는가? 처치워드는, 그 비극적 함몰은 태양신의 노여움이 아니라 태평양을 관통하고 있는 특수한 지질층에 기인하다고 주장했다.
지금의 환태평양 화산대는 태평양 지저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가스실(체임버)로 연결되어 있다. 가스 체임버는 지저의 화산 활동에 의해 땅 속에서 발생하는데, 이 가스는 매우 폭발하기 쉬운 성질을 지니고 있어서 지각을 형성하고 있는 화강암에 벌집과 같은 구멍을 뚫는다. 어떤 계기로 이 가스가 지상으로 빠져 나오면, 다음은 아주 불안정한 공동(空洞)이 되어 간신히 지각을 지탱한다. 만약 이 지탱하는 힘이 약해져 천장이 무너지면 연쇄 반응을 일으켜 땅 속의 공동은 다음에서 다음으로 무너져 내리며 대함몰이 시작되는 것이다.……무 대륙 아래에 있던 이 가스층은 매우 얕아서, 지표면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가스 체임버가 깊은 지층에 있을 경우, 지표는 가스의 팽창력에 들려지면서도 갈라지지 않고 견딜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산맥의 형성이다. 그런데 '트로아노 고사본', '코르테시아누스 고사본', '라사 고사본' 등의 옛기록을 보면 무 대륙 최후의 날에 대규모적인 융기가 일어났다는 내용은 없다. 다만 '두 차례 흔들리며 올려졌다.' '대지는 두 차례 튀어올랐다.'라고 기술되어 있는데, 우선 조그만 가스 체임버가 팽창하면서 주위의 다른 가스 체임버에 충격을 주고,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마침내 하나의 커다란 가스체임버가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폭발을 일으켜 지표를 갈갈이 찢어 버림으로써 무 대륙은 함몰된 것이다.

그는 무 대륙의 지저에 가스 체임버가 있었다는 증거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고 잇다.
현재 태평양의 곳곳에 산재해 잇는 섬들 사이의 바다 깊이는 천차만별이다. 이것은 수많은 가스 체임버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바다 밑이 그렇게 심하게 들쭉날쭉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남아 있는 섬들은 함몰된 대륙의 잔재다. 거대한 가스 체임버의 함몰로 인한 것이라면, 그와 같은 섬이 가라앉지 않고 남아 있기란 불가능하다. 그러한 섬들은 가스 체임버와 가스 체임버 사이에 위치해 함몰을 면했을 가능성도 있다. 가스 체임버가 서로 통해 있었다는 사실은 그러한 섬들의 화산 활동을 보면 분명해진다. 당연히 그러한 섬들에는 깎아지른 듯한 단애와 절벽이 많다. 현재도 남태평양 폴리네시아의 많은 섬들은 대규모 화산 활동을 하고 잇다. 이러한 현상은 폴리네시아를 빼고 다른 속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다. 그들 거
대한 분화구는 무 대륙의 함몰이 어떠했을까를 설명해 준다.

이상으로 처치워드가 현재의 태평양이 위치한 자리에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무 대륙에 대해 살펴보았다. 지금의 과학 지식으로 무 대륙의 실재를 증명할 방법은 없다. 인간의 기술이 수천 미터의 바다 속을 샅샅이 뒤져 세월이 쌓아 놓은 진흙을 걷어 내고 무 대륙의 유물을 건져 올린다면 몰라도!



[라사 기록]

티벳의 라사에 있는 고사원에서 발견된 것으로 1400년전의 점성술의 고사본이다.

페루의 별이 떨어졌을 때 오로지 하늘과 바다만이 남았다. 7개의 도시는 황금의 문, 투명한 신전과 함께 폭풍속의 나뭇잎처럼 떨어져 내렸다. 궁정에서는 불과 연기가 솟구쳤다. 비명과 절규가 온세상을 덮었다. 궁중은 갈곳을 잃고, 사원과 탑으로 모여들었다. 최고의 신관 라무는 군중을 향해 말했다. "나는 이런 사태가 오리란 것을 이미 예언하지 않았던가?" 번쩍이는 보석의상을 입은 남녀들은 흐느끼며 외쳤다. "무여, 우리를 구해주소서" "너희들은 하인과 재물과 함께 죽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재 속에서 새로운 민족이 탄생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 또한 얻는 것보다 베푸는 것이 아름답다는 진실을 잊는 순간, 또 다른 재앙이 그들 머리 위에 퍼부어질 것이다!" 불꽃과 연기가 무의 말을 지워갔다. 국토의 주민들은 갈가리 찢겨 나락으로 떨어져 내렸다.



[트로아노 고사본]

드레스덴 고사본, 페레시아누스 고사본, 코르테시아노 고사본과 함께 남은 고대마야의 고사본.점성술책

칸6년, 11물크, 삭의 달에 무서운 지진이 시작되어, 13투엔까지 계속되었다. 흙언덕의 나라, 무의 국토는 가라앉을 운명에 처했다. 대지는 두번 솟아올랐고, 또 가라앉았다. 땅이 갈라지고 열개의 나라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렇게 6400만의 주민은 사라졌다. 이 책을 편찬하는 지금으로부터 8060년전의 일이다











아틀란티스의 증거




만일 열린 마음을 가지고 이 주제에 접근한다면, 과거 대서양에 거대한 대륙이 존재했다는 것에 대해 반증보다는 더 많은 긍정적 증거를 찾게 될 것이다. 거의 2400년 전에 플라톤이 아틀란티스의 위치가 <헤라클레스 기둥이 있는 해협의 서쪽>이라고 묘사했다. 헤라클레스의 기둥은 현재의 지브롤터 해협이다. 그가 말하기를,

“아틀란티스는 리비아와 아시아를 합한 것보다 더 크며, 그것은 다른 섬들에 맞닿아 있었고, 그 섬들로부터 진짜 대양으로 둘러싸여 있는 반대쪽 대륙(아틀란티스)으로 갈 수 있다. 말하자면 헤라클레스의 기둥 안에 있는 이 바다(지중해)는 단지 좁은 입구를 지닌 항구에 불과하지만, 서쪽에 있는 바다는 진짜 대양이며, 그것으로 둘러싸인 땅은 가장 진실한 의미에서 대륙이라고 부를 수 있다.”

플라톤은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그것은 아틀란티스라고 불렸으며 거대하고 경이로운 제국의 심장이었다. 아틀란티스의 지배는 그 대륙뿐만 아니라 모든 섬과 다른 곳들에도 미쳤다.”

솔론에게서 들은 아틀란티스인들의 생활 양식을 묘사한 다음에 플라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진에 의해 가라앉은 다음부터 아틀란티스는 이 곳에서 대양으로 항해하려는 항해자에게 건널 수 없는 진흙의 장벽이 되었다.”

역사가들은 고대인들이 수 천년 동안 대서양을 얕고, 진흙 투성이며, 어두운 바다로 알고 있었다고 기록한다.

에드가 케이시는 명상을 통해 아틀란티스가 세 번의 광범위한 대이변에 의해 부분적으로 무너지다가 결국은 사라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마지막 이변은 대략 기원 전 1만년에 발생했다고 했는데, 이 시기는 플라톤이 마지막 파괴의 시기로 분명히 언급했던 때와 거의 일치하고 있었다.

대륙이 바다 아래로 사라져서 만 이천 년 동안이나 완전히 잊혀진다는 것이 너무 비현실적인 것 같은가? 지질학자들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대륙이나 섬도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솟아오르고 가라앉는 끊임없는 변화를 겪어왔다고 말한다.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의 해안들은 최근 몇 천년 사이에 수백 피트나 솟아올랐다. 시실리가 지금은 해발 고도 3천 피트에 위치해 있지만 한 때는 대양의 바닥이었다. 펜실베니아의 석탄 퇴적물은 그 지역이 적어도 23번 수면 아래위로 융기와 침몰을 반복했음을 시사해준다.

현대에 들어와 가장 심각한 피해를 주었던 지진이 2백년 전 포르투칼의 리스본에서 발생했다 (포르투칼은 아틀란티스 대륙의 동쪽 해안과 가깝다). 그 지진으로 6분 이내에 6만 명의 사람이 죽었다.

많은 사람들이 안전을 위해 대리석으로 된 선창으로 모여들었는데 그 선창이 갑자기 해수면 아래로 6백 피트 지점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사람들과 함께 부근에 정박 중이던 많은 배들도 가라앉았는데 단 하나의 파편도 떠오르지 않았다. 동시에 모로코 마을의 땅이 갈라져 그곳 주민 만 명을 삼켜 버렸다.

격렬한 화산 폭발이 아조레스 제도와 서인도 제도에서 일어났는데, 아조레스 제도는 과거 아틀란티스 대륙의 산 정상이었던 곳이라고 추측되며 서인도 제도는 아틀란티스 대륙의 서쪽 끝이었다.

현재 살아있는 많은 사람들이 1902년에 일어난 마르티니크섬(카리브해에 위치해 있음)의 펠레산의 화산 폭발을 기억하고 있다. 그 화산 폭발로 인해 수도(생피에르)에 살던 3만 명 전원이 채 1분도 되지 않는 순간에 몰살했다. 지난 해(1976년)에 과테말라에서 일어난 지진도 아주 참혹한 것이었다.

거의 40년 전 에드가 케이시는 1968년이나 1969년에 아틀란티스의 일부가 비미니해역에서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지난 수년동안 탐험가와 지질학자들이 그 해역 바다 밑에서 벽이나 건물처럼 보이는 구조물을 발견했다.

1898년 아조레스 제도의 북쪽에서 끊어진 해저 케이블을 수선 중이던 프랑스 배가 해저 약 3천 미터 깊이에서 유리질의 화산암 조각을 발견했다. 화산암은 오직 대기 중에서만 형성될 수 있는 것인데 용암이 물 속에서 굳게 되면 수정 구조를 갖게 된다. 그 화산암 조각(파리 박물관 소장)을 조사한 과학자들은 화산암이 분해되는데 15.000년이 걸리므로 그 지역이 15.000년 이전의 시기에 해면 위에 있었음에 틀림없다고 결론지었다.

대서양에 존재했던 사라진 대륙에 대한 더 많은 증거가 콜롬비아 대학의 모리스 어윙 교수가 1949년에 발간한 보고서에 들어있다. 어윙 교수는 탁월한 지질학자로서 대서양 탐사 특히 대서양 한 가운데에 있는 해저 산등성이 일대를 탐사했다.

그가 한 많은 발견 중에 하나는 5.600m 깊이의 해저에서 끌어올린 선사시대의 해변의 모래였다. 그리고 그 지역은 육지로부터 거의 2.000㎞ 떨어진 곳이었다. 모래는 오직 지표면에서만 형성되기 때문에 어윙 교수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당시는 지상에 있던 그 땅이 3~4천m 깊이의 해저에 가라앉았거나 아니면 한 때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3~4천m 낮았음이 틀림없다.”

그 곳은 예전에는 바다 밑이 아니었으며, 대륙이동설도 대양 한 가운데에 있는 해변의 모래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해저 산맥, 해저 분지, 화산재의 여러 겹의 퇴적층이 대양 아래에서 발견되었다. 어윙 교수는 다음과 같이 썼다.

“1,000m 해저에서 대서양의 과거 역사를 말해주는 흥미로운 암석을 발견했다. 대륙의 일부였던 것이 틀림없는 그런 종류의 화강암과 퇴적암이었다. 우리가 이 곳에서 끌어올린 모든 암석들은 둥그스름했고 깊게 긁힌 자국이 있거나 줄무늬가 있었다. 우리는 또한 덜 굳은 이암을 발견했는데 그것들이 어떻게 이 곳에서 발견될 수 있는지 더 연구해서 풀어야 할 수수께끼이다.”

허드슨강이 뉴욕항의 입구에서 대륙붕 쪽으로 190㎞에 이르는 협곡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더욱이 그 협곡은 깊은 바다 속으로 수백 킬로미터나 더 연장되어 있었다. 어윙 교수는 다음과 같이 썼다.

“만일 이 협곡들이 건조한 땅에서 강물의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것이라면 북아메리카의 동쪽 해안지방의 높이가 한 때는 현재보다 3.000m 이상 더 높았다가 그 이후에 가라앉았거나, 아니면 해수면이 지금보다 3.000m 아래 쪽에 위치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확실히 이것은 선사시대의 대이변으로 인해 광대한 육지가 바다에 잠겼고 그에 비례하여 일부 지역이 융기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지질학자들은 물 속에 잠긴 동굴을 증거로 버뮤다의 해수면이 한 때는 지금보다 18~30m 낮았었다고 말한다.

미 대륙의 식물과 동물의 분포도 대서양에 한 때 거대한 대륙이 존재했었다고 무언의 증언을 하고 있다. 아마 가장 인상적인 증거는 씨가 없고, 꺾꽂이로도 번식시킬 수 없는 바나나일 것이다. 바나나가 씨 없는 품종으로 개량되기 위해서는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주의 깊게 재배되어야 했으며, 주로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의 열대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온대지방에서는 바나나의 뿌리가 살지 못한다. 그래서 바나나의 경작이 아틀란티스에서 시작되었고, 거기서부터 동서로 인접한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의 열대지역으로 전파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최근 화석을 통한 과학적 발견은 미대륙에서 말(馬)이 유래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스페인 정복자들이 16세기에 미대륙으로 말을 들여올 때까지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말을 알지 못했다. 야생말들이 고대에는 이어져있던 육지를 통해서, 아틀란티스에서 유럽과 북아프리카로 건너가지 않았을까?

선사시대의 북미대륙은 현재와는 전혀 다른 모양이었다. 왜냐하면 고래의 뼈가 해수면보다 150~180m 높은 지역인 미시간, 뉴햄프셔, 몬트리얼 등지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린란드 북쪽에서 발견된 야자나무의 흔적은 이 지역이 한 때는 열대지방이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알라스카에 묻혀있는 고대의 산호도 이 지역이 한 때는 열대지방이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다른 많은 예들이 이그나티우스 도넬리가 1882년에 첫 출판하고 1949년에 이거턴 사이크스에 의해 개정된 아틀란티스 대홍수 이전의 세계란 책에 열거되어 있다.

도넬리의 책은 감탄할 만한 것이었다. 그는 고대 이집트의 문화와 코르테즈와 다른 스페인 정복자들이 관찰한 중남미 인디언 문화 사이의 현저한 유사성을 들어 이것을 아틀란티스의 증거로 삼았다.

이 두 지역은 많은 도시의 이름들이 거의 유사했으며 높은 피라미드가 건설되었고, 대홍수에 대한 전설이 있었으며, 1년이 365일로 된 역법이 발달했고, 종교적 건축물에 십자가가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이것들은 모두 아틀란티스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들로서 아틀란티스로부터 동서로 퍼져나갔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집트와 멕시코의 많은 피라미드를 답사한 나는 그것들의 유사성에 깜짝 놀랐다. 또한 스페인 정복자들이 그 곳에 기독교를 전파하기 훨씬 전에 멕시코의 사원들에서 십자가를 사용했다는 점도 놀라웠다. 나는 지도령들에게 설명을 요청했다.

“먼 옛날부터 신을 향한 인간의 갈구를 표현하기 위해 피라미드가 뮤와 아틀란티스에 건설되었다. 그 당시는 산이 없었기 때문에 사제들이 창조주를 경배하고 창조주의 대리인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한 가장 높은 장소가 바로 피라미드였다.

인간은 항상 신은 하늘에 존재하고 반대로 땅은 아래에 있다고 생각한다. 십자가는 팔을 양쪽으로 뻗고있는 지구에 있는 영적 인간을 의미한다. 그는 지구 행성과 창조주의 거처(하늘) 사이의 중간에 있는 것이다.”










아틀란티스란?

아직까지도 그 진위 여부가 밝혀지지 않은 신비한 대륙으로, 포세이돈의 장남인 아틀라스(아틀란트)가 이 땅을 최초로 다스리게 되어 '아틀란티스'라 명명되었다.

아틀란티스는 어떻게 보면 신화상에서만 존재하는 대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유는 아틀란티스의 존재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틀란티스에 대한 관심은 플라톤이 아틀란티스를 최초로 언급한 이후, 200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이 신비한 대륙에 대한 연구는 멈추지 않고 오히려 더욱 증대되고 있다.

이러한 원인은 유럽인들의 문명의 뿌리 찾기 운동과 관련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세계의 패권을 잡은 이후 유럽인들의 관심은 그들의 뿌리인 자신들의 문명을 과시하는데 집중되게 되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역으로 그들의 뿌리 찾기를 연구하게 되고, 그들의 신화도 이러한 뿌리 찾기에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신화상의 이야기로만 믿었던 트로이와 미케네 등의 존재가 유적의 발굴을 통해 역사적인 사실로 바뀌면서 이러한 관심은 더더욱 고조 되었고, 아틀란티스도 이와 같은 영향으로 관심이 점점 증대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유럽인들은 아틀란티스를 모든 문명의 근원이라 생각했기에 더더욱 아틀란티스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플라톤의 [대화편] - 아틀란티스를 최초로 언급한 문헌

아틀란티스의 존재와 멸망에 관해서 최초로 언급을 한 사람은 아마도 플라톤 일것이다. 일부 학자 들은 플라톤이 한 아틀란티스 존재설은 교육적 목적을 위해 만들어 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의 저 서 "티마이어스","크리키어스" 에 보면 교육적 목적으로까지 그렇게 자세하게 지어 낼 필요가 있겠냐? 는 의문이 들 정도로 그는 아틀란티스에 대해 자세하게 논하고 있다. (존재 가능성이 높다.)

일찍이 헤라클레스의 기둥(지브랄타 해협) 서쪽에 하나의 섬이 있었는데 이 섬은 리비아(북아프리카)와 아시아(소아시아)를 합친 것보다 더 컸다. 그 섬에서는 다른 섬으로 건너 갈 수가 있었고 그 섬들을 통해 대서양을 에워싸는 반대쪽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

"이 섬은 아틀란티스라고 불리웠는데 이 섬은 주변의 섬들과 리비아, 이집트, 유럽의 티레니아 근처까지 복속시킨 강대한 제국의 중심이었다. 이 국가는 헤라클레스 기둥의 안쪽 여러 국가 전부를 복종시키려 하였다. "

"아테네 군대는 그리스 연합군의 선두에 서서 용감하게 싸워 침략군을 격퇴시켰다... 그후 격력한 지진과 홍수가 일어나 하루 낮, 하루 밤 사이에 아테네 사람들은 땅속으로 가라 앉았고 마찬가지로 아틀란티스 섬은 바다 밑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 방면의 바다쪽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은 대량의 뻘이 차서 장애가 되었기 때문이며 이는 그 섬의 침하 때문이었다. "

" 이 나라 시조 포세이돈의 장자 아틀라스가 초대의 왕이 된 데서부터 섬 전체와 주변의 바다에도 아틀란티스란 이름이 붙었다. 전성기의 수도는 바다와 이어지는 최대폭 533 미터의 3중의 환상 운하로 둘러쳐져 있었다. 아틀란티스에는 백, 흑, 적의 돌이 있었으며 이 세 가지 돌을 사용한 얼룩색을 띤 건조물이 있었다. 왕궁은 중앙 섬의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있었다. 여기에는 포세이돈과 애인 크레이트를 모신 신전이 황금의 벽으로 감싸여져 있었다. 이와 같은 건조물은 금, 은, 구리, 동, 상아 등 불꽃처럼 빛나는 이상한 금속 등으로 호화스럽게 장식되어 있었다. 육지로 이어지는 운하의 환상로에는 공원, 학교, 병사, 경마장 등이 있으며 이곳엔 또한 탑과 문이 달린 다리가 이어져 있었다. 큰 부두는 각지에서 모이는 상인들로 밤낮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플라톤이 아틀란티스에 관한 실재적이고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과연 그는 이러한 것들을 단지 교육적 용도로 지어냈을까?



플라톤은 아틀란티스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9천년 전에 아주 강력한 고대국가가 있었다. 이 나라는 모든 면에서 완전한 이상국가였다. 큰 규모의 지진과 해일이 일어나, 하룻밤 사이에 아틀란티스는 바다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아직 사라진 섬과 유적들이 수면 바로 아래에 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배가 향해하기가 불가능하다."

그 후로 플라톤이 언급한 아틀란티스설에 대한 진위 여부를 놓고 다양한 주장들이 있어왔다.

학문적 과도기에는 어느 대륙이 아틀란티스냐를 놓고 논쟁이 끊이질 않았다. 대서양이나 지중해설이 유력했으나 자신들의 나라가 아틀란티스라는 말도 안되는 주장도 많았고 실예로 영국은 자신들의 나라가 아틀란티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가장 합당한 주장한 사람이 있었다. 도넬리라는 학자는 아틀란티스 대륙이 지금의 대서양 한 가운데라고 주장하였고 근거로 이집트 문명과 마야에 이르는 동서로 이어진 문화전파루트로서 아틀란티스의 존재를 증명하였다. 동서의 문명이 다르게 발전을 하였지만 두 문명은 아틀란티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좀더 정확히 말해서 대홍수로 가라 앉은 문명이 대륙으로 전파되어 동서문화가 제각기 발전했다는 것이다.

아틀란티스 역사

존재 연대 : 기원전 2만 5천 5백년 ∼ 기원전 1만 1천 6백년

플라톤의 [대화편]을 통해 추정을 한 문헌상의 연대이다.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플라톤은 현인 솔론이 한 이야기라며, 솔론이 기원전 6백년 경에 이집트를 방문했을 때 9 천년 전에 아틀란티스 대륙이 가라앉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기원 후를 2천년이라 하여 계산을 하면 아래와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6백년(솔론의 이집트 방문)

+ 9천년(이집트에서 말한 아틀란티스 침몰)

+ 2천년(기원후)

= 1만 1천 6백년(아틀란티스 멸망 연대)

그리고 아틀란티스는 가라앉기 전 1만 3천 9백년 동안 왕가에 의해 통치되었다고 한다. 이를 종합적으로 연결을 하면 아틀란티스의 존재 연대가 기원전 2만 5천 5 백년에서 기원전 1만 1천 6백년 경임을 추정할 수 있다.

모든 역사의 시작이 신화를 바탕으로 하듯이 아틀란티스의 역사도 신화에서 시작을 한다. 옛적에 신들은 모든 토지를 구분하여 자기들끼리 분배를 하게 되었다. 이때에 바다와 지진을 관장하는 포세이돈은 아틀란티스를 다스리도록 하사를 받게 되었다. 포세이돈은 그곳에서 클레이토라는 인간의 아내를 얻고 이 사이에서 다섯 쌍의 남자 쌍둥이를 낳았다. 이 중에서 장남인 아틀라스가 왕이 되어 이 땅을 다스리게 되었고, 그의 이름을 본따서 이 땅을 '아틀란티스'라 명명하였다.

아틀란티스는 풍족한 자원과 뛰어난 문명을 바탕으로 매우 번성한 강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포세이돈을 숭상하며 평화롭고 풍요롭게 살던 아틀란티스도 결국은 부패의 길을 걷게 된다. 백성들은 부와 게으름 그리고 사치의 신인 거짓 신들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 시기에 아틀란티스인 들은 세계 정복을 위한 전쟁에 나서 다른 섬들에 거대한 함대들을 보내 지중해 연안 정착지들의 주민을 노예로 삼았다.

그러나 이 정복 전쟁이 '아테네 원정 실패'란 결과를 가져와, 이를 계기로 아틀란티스는 급격한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그 후에 결국 거대한 화산 폭발로 인하여, 많은 부귀와 영화, 그리고 찬란한 문명을 자랑하던 아틀란티스 대륙은 바다 깊숙이 가라앉아 그 종말을 맞게 되었다.

아틀란티스의 문명

1. 자연 환경

리비아와 소아시아를 합친 것보다 더 큰 거대한 화산섬이다. 이 섬은 매우 살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장대한 산맥이 존재하고, 온갖 동물들이 번성하는 푸른 벌판, 곳곳에 위치한 천연 온천, 그리고 1년에 2회의 수확을 약속하는 비옥한 토지가 존재했다. 또한 온갖 광물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었다. 특히 고대인들이 매우 귀중하게 여긴 전설적인 보석 무지개 빛 '오리하르콘'이 많았다.

2. 인문 환경

1). 정치
열 명의 왕들이 각기 자신이 소유한 도시에 이웃한 영지에서 주민과 법률의 대부분을 지배했다. 아틀란티스의 법률 제도는 포세이돈이 물려준 것으로, 이 법률제도 밑에서 주민들은 평화롭게 살았고, 또한 이 법률은 매우 공정하여 만민의 칭송을 받았다. 그리고 아틀란티스의 왕들의 상호관계 및 지배자로서의 교제는 포세이돈의 신명에 위해서 결정되었다.

2). 경제
아틀란티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운하와 항구, 풍부한 자연 환경을 바탕으로 한 해상 무역이 번성하였다. 특히 '오리하르콘'의 수출로 인하여 많은 부를 쌓게 되었다. 또한 연 2회의 수확을 보장하는 비옥한 토지와 생산의 대상이 되는 모든 것을 갖춘 자급 자족적인 경제 상태였기에 수입에 비해 수출이 훨씬 많게 되어 많은 부를 축적하여 더욱 번성할 수 있었다.

3). 군사
아틀란티스는 전차 1만대, 이두 마차 3만대, 기병, 중무장병, 사궁병, 투창 ,병등의 대군단과 더불어 1천 2백척의 군선을 바탕으로 세계 최강을 자부하는 해군력을 지니고 있었다. 한 마리로 세계 최강의 군대를 지니고 있었다. 아틀란티스가 지중해의 국가들을 단 시간에 쉽게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러한 세계 최강의 대군단이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4). 신앙
아틀란티스 인들의 신앙의 주체는 그들의 문명의 시조인 바다의 신이며 지진의 신인 포세이돈이었다. 아틀란티스 인들은 도시의 중심에 거대하고 화려한 신전을 건축하여 그들의 신앙의 주체인 포세이돈을 숭배했다.

5). 건축술
아틀란티스인 들은 특히 건축에서 뛰어난 면모를 보였다. 특히 도시의 설계를 들 수가 있다. 섬 한가운데에 건설된 아틀란티스의 수도는 그 규모와 함께 흑색, 백색, 적색의 돌들을 섞어 건축학적으로 조화 있게 설계한 장엄한 공공 건물들이 돋보였다. 또한 이 도시는 완전한 동심원을 이룬 5개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도시에 있는 여러 항만들은 거대한 환상 운하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들은 거대한 규모와 함께 조형미를 살리는 뛰어난 건축술을 지니고 있었다.

멸망원원에 대하여

아틀란티스를 소멸시킨 지구최대의 재앙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헤르비거의 <얼음의 우주>

지구의 달처럼 우주의 행성은 그 보다 작은 행성이 돌면서 그 곁을 통과할 때 포획한다. 세월이 흘러 그것이 본체와 하나가 되고, 수천 킬로미터까지 접근하면 인력으로 부수어버린다. 지구에 위성이 접근하면인력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 인력작용으로 적도 지방의 해수가 위로 끌려올라가서 적도 지방은 수몰되고,양극 지방의 물은 말라버린다. 위성의 파편이 지구 위에 떨어지면 그 여파로 바닷물이 극지방으로 밀려가 극은 수몰된다. 기원전 1만년경, 달이 지구에 접근함에 따라 지구표면에 위와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이것이오늘날의 대재앙의 신화나 전설로 내려오고 있으며, 아틀란티스도 그 중 하나이다.



카넬 브라인의 <아틀란티스의 그림자>

이 사람도 헤르비거의 달의 이론을 따른다. 그리스 신화엔 달이 없던 시대가 등장하고 있으며,남아프리카 부시맨의 전승에는 하늘에 두개의 달이 뜰때 재앙이 일어난다고 했다.중국의 전설에도 천체를 활로 쏘아 떨어뜨리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는 유성의 낙하를 암시하는것 같으며 이와 유사한 전설이 세계각지에 있다.



[벨리코프스키]의 <충돌하는 우주>

기원전 15세기경, 목성에서 태어난 혜성이 지구를 스쳐갔고, 이때의 대이변이 <출애급기>의 홍해가 갈라지는 이야기이다. 그로부터 52년후 같은 혜성이 접근, <욥기>의 태양이 공중에서 정지한 이야기, 바다가 솟아오른 이야기 등이다. 그후 기원전 8세기경 이 혜성의 영향으로 궤도가 변해버린 화성이 갑자기 지구에 접근했으며, 혜성은 지구와 수성사이에 궤도를 정해 금성이 되었다. 혜성이 지구를 지나가면서 불타는 운석이 지표면에 떨어지고, 자전 속도의 변화로 지각이 갈라져 육지가 융기, 함몰한다. 인력작용으로 해수는 몇 킬로미터 높이로 솟았다가 대륙을 덮친다. 영국의 챌린저 1세호가 1872~1876년에 걸쳐 대서양 바닥에 큰 산맥이 있음을 밝혀냈고, 그후에 이 대양의 중앙부 해저에 높은 봉우리, 계곡, 절벽 등이 있음을 밝혀냈고, 용암으로 보이는 암석파편을 발견. 이는 타킬라이트라고 하는데 공기 중의 가벼운 압력에서만 형성가능해 통상기압으로 냉각고체화된 후 해저로가라앉은 것이다.

아틀란티스의 위치

플라톤이 아틀란티스에 대한 언급을 한 이후, 아틀란티스가 존재했었던 위치는 아직까지도 많은 학자들에게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어느 것도 확실한 위치를 설명해 주고 있지 못하다. 한 마디로 얘기하면 심증은 가는데 물증인 아틀란티스의 유구가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이제껏 주장되어진 많은 학설 중에서 가장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학설에 대한 고찰을 하겠다.

1. 대서양설

19세기 말 정치가이면서 학자인 이그나티스 도넬리는 50줄의 나이에 <노아 홍수 이전의 아틀란티스 대륙>(1882)과 <신들의 황혼, 불과 돌의 시대>(1883)를 출간했는데 이 책들은 1963년까지 50회 이상 재판(再版)됐다.

그는 아틀란티스가 '심한 지진과 홍수로 인해 하룻밤 사이에 없어졌다'라는 플라톤의 이야기를 뒷받침하기 위해 전세계에 퍼져있는 홍수전설에 관한 자료를 수집, 정리하였다. 그는 아틀란티스 대륙이 기원전 9800년(플라톤이 말한 연대)보다 이전에 대서양 한가운데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매우 진보된 금속 문명, 문자의 발명, 나침반의 발견, 항해술의 발전, 화약, 종이 등 모든 분야가 거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각 대륙에 퍼져있는 피라미드, 미라의 보존기술, 태양력, 그리고 대홍수의 전설 등을 예시 했다. 즉 아트란티스 대륙이 대홍수로 가라앉은 후 두 문화권이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어 제각기 발전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넬리의 가설은 해저의 팽창이나 대륙이동설, 혹은 다른 분야의 과학의 진보에 의해서 대부분 부정되었다. 대표적인 예로는 두 대륙이 하나(아틀란티스)에서 출발했다면 고대 문명에서 사용되었던 바퀴와 가축들이 왜 신대륙에는 사용되지 않았냐는 것이다.

2. 지중해 연안설

문헌상 연대 추정의 문제점

1. 고고 인류학적으로 볼 때 기원전 2만년 전부터 1만년 전 사이에는 막 초기 인류가 등장한 때이다. 근데 이 시기에 아틀란티스처럼 고도의 도시 문명이 존재했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2. 인류의 최초의 도시 문명인 여리고, 터키, 소아시아 등이 등장하는 시기가 아틀란티스의 존재 연대보다 거의 2배 이상 늦은 기원전 6천년 경이다.

3. 대화편의 내용 중에 전차의 존재가 언급된다. 이는 철기와 청동기를 사용했다는 것인데 유럽의 철기 사용 시기와 비교해서 볼 때 시기가 너무 이르다.

: [대화편]에 나오는 대화는 많은 문제점을 시사하고 있다. 섬의 크기라든지 운하의 크기는 당시의 기술적인 문제에 비추여서 생각하면 커다란 어려움 이 있다. 아틀란티스의 존재 연대 또한 이러한 수치상의 문제가 발생하고있다.플라톤이 그의 이상주의적인 국가관에 의해 수치를 부풀린 듯한 인상을 갖게도 한다.

이러한 수치상의문제를 해결하려면 모든 수치를 10으로 나누어야 할 것이다. 아틀란티스의 문헌상의 연대를 10으로 나눈다면, 아틀란티스는 기원전 2천 8백 9십년 경에서 1천 5백년 경에 존재했었다고 설명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시기에 아틀란티스가 존재했었다면, 그 동안에 드러난 아틀란티스의 연대 추정상의 수치적인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 아틀란티스의 존재가 우리에게 한 걸음 더 다가올 수 있게 된다. 또한 앞으로 언급될 아틀란티스의 존재 위치를 기원전 1천 5백년 경의 테라섬의 화산 폭발 시기와 일치시켜 설명할 수도 있게 된다.

'에게해의 폼페이'리고 알려진 화산재에 묻힌 갈리스테 섬의 고대 도시의 유적을 발굴하기 시작한 것은 1967년의 일이었다. 지금은 '산토리니' 또는 '테라'라고 불리고 있는 이유적지는 키클라데스 제도의 남쪽 끝에 자리잡고 있는데, 전에 화산이 서있던 중심부에는 팔레아카메니("옛 불탄 섬")와 네아카메니("새 불탄 섬")라 하는 두 개의 용암 덩어리가 있다. 이 용암들은 대폭발이 있고 한참 후에 생긴 것인데도 이따금씩 몇 가닥의 연기가 솟아오르곤 하여 이 지역에서 일어나는 화산의 마지막 흔적을 엿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구덩이가 파지고, 그을리고, 들쑥날쑥하고, 험악한 이곳 풍경은 마치 달 표면을 연상케 한다. 산토리니와 테라시아 및 아프로니시섬 등은 한때 비옥했던 아틀란티스의 땅이었을지도 모른다.

당시 플라톤이 아틀란티스를 언급할 시의 세계관은 지중해를 중심으로한 지중해 중심적인 사고관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의 세계는 지중해와 지중해 일대가 전부였다 . 이를 바탕으로 추론을 해 보았을 때, 당시의 세계관으로는 대서양이나 아메리카를 언급하기에는 너무 시기가 이른 감이 있다. 플라톤은 아틀란티스의 크기에 대해서 거론을 할 때 리비아와 소아시아를 합친 것보다 크다고 설명을 하고 있다. 이러한 설명을 당시의 세계관에 비추어 지중해를 중심으로 추론해 보면 아틀란티스가 리비아와 소아시아 사이에 존재했었을 가능성이 엿보인다.

이제 아틀란티스의 비밀이 밝혀진 듯 하였으나 1977년 필힐러와 시링크라는 두 독일 과학자는 화산의 분출물을 세심하게 조사하여 산토리 섬의 폭발은 크레타에 거의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크레타의 미노아 문명은 화산이 폭발한 후 거의 100년이 지난 기원전 1380년까지도 멸망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거로 내세웠다.

아틀란티스 대륙의 존재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플라톤의 <대화편>에 기록된 9,000년 전이라는 것이다. 먼저 플라톤은 자기가 태어나기 전 9000년 전이라고 했는데, 산토리니 화산 폭발은 1600 ~ 1500년에 있었다는 점이다.
또 플라톤은 아틀란티스가 대서양에 있었다고 했는데, 그렇게 되면 위치가 너무 틀린 것이 아닐까?


아그네티어스 도넬리의 학설

도넬리는 정치가이자 미국하원의원이었고 독서광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학식이 풍부하며 저서로는 `아틀란티스; 대홍수 이전의 세계' 가 있다.

+++이그네이셔스 도널리의 <아틀란티스, 대홍수 이전의 세계>가 제시한 13가지 명제+++

1. 오랜 옛날, 지중해 저편 대서양에 큰 섬이 하나 있었으며, 고대인들은 그를 아틀란티스라 하였다.

2. 플라톤이 묘사한 이 섬은 오랫동안 한편의 우화로 취급되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3. 미개 상태의 인류가 최초로 문명을 일으킨 곳은 아틀란티스다.

4. 아틀란티스가 많은 인구를 거느린 강국이 되고 그 인구가 퍼져 멕시코만, 미시시피강, 아마존강, 남미태평양, 지중해, 유럽, 아프리카의 서안, 발트해, 흑해, 카스피 해 등의 주변의 문명국가가 건설되었다.

5. 이것이 바로 대홍수 이전의 세계로 에덴동산, 엘리시온의 들판, 알키누스의 나라, 메솜팔로스, 올림푸스, 아스가르드.....이런 전설상의 낙원은 인류가 오랫동안 살아왔던 아틀란티스에 대한 기억이다.

6. 고대 그리스인, 페니키아인, 인도인 등이 숭배하던 신들은 아틀란티스의 왕이나 영웅들의 이름이었다.

7. 이집트나 마야의 태양숭배 신화는 아틀란티스에서 기원하는 것이다.

8. 아틀란티스인에 의해 건설된 가장 오래된 식민지는 이집트일 것이다.

9. 유럽의 청동기 시대 기물은 아틀란티스에서 유래한 것이다. 아틀란티스는 최초의 철기 제조자이다.

10. 유럽알파벳의 기원인 페니키아 문자는 아틀란티스에서 유래한다. 마야문자까지도.

11. 아리아계, 즉 인도유럽어족, 셈어족, 투란계의 발상지 또한 아틀란티스다.

12. 아틀란티스는 자연의 변동에 의해 파멸되었다.

13. 극히 일부만이 배나 뗏목으로 피해, 이 재앙을 알렸다. 이것이 대홍수, 대범람의 전설로 남은 것이다.


그의 주장에는 아틀란티스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 증거는 없다. 고고학, 해양학, 언어, 지리, 역사, 신화, 인종, 생물학에 이르는 연관성 없는 학문들을 종합해 아틀란티스의 존재를 증명함으로써 주목을 받았다. 철저하게 플라톤의 학설을 기반으로 그의 학설을 확장시켰다.

"선사시대 대서양에 고도의 문명을 가진 강대국이 존재했다. 제국의 중심부는 지브롤터 해협의 서쪽에 위치한 거대한 섬으로 으로 이루어져있고 그보다 작은 섬들과 무인도가 마치 징검 다리 돌처럼 배열되있어 지리적으로 구대륙과 신대륙이 연결되있다. 서쪽으로 페루, 동쪽으로는 이집트, 지중해, 북쪽으로는 아일랜드로 이어지고 인도 중국과도 경제접촉이 있었다.

3개의 인종이 살았다. 적갈색 피부를 가진 (오늘날 중앙아메리카 인디안, 베르베드족, 이집트인이 여기에 속한다 )인종이 최상위 계층을 이루었고 황색인종이 중간 계층, 백색인종 (그리스계)이 하위계층을 이루었다.

무엇보다 그의 주장중 가장 눈에 띄는 학설이 있다. 바로 `확산이론'이다. 확산이론이란 지리적으로 현격한 곳에 있으면서도 서로 비슷한 문화가 생성되었다면 별개로 발전했다고 보기 어렵고 상호접촉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근거로 멕시코의 유탄강이나 이집트, 중동지역의 사원과 피라밋의 유사성을 예로 들었다.

성서에서의 에덴동산, 호머의 극락정토, 고대 북유럽 신화에 아스카르드( 신들의 세계) 가 아틀란티스라고 주장했다. 멸망의 원인으론 지진, 화산폭발, 홍수등의 재난의 복합성을 들었다.

도넬리의 학설에 대한 현대적 평가

최초의 저명한 아틀란티스학자는 미국의 정치가이며 국회의원인 도넬리였다. 1882년에 도넬리가 출판하여 베스트셀러가 된 아틀란티스 대홍수 이전의 세계는 아틀란티스학의 바이블이 되어었다.

도넬리의 논제는 그가 관찰한, 콜롬부스 이전의 아메리카 문명과 고대 이집트문화 사이의 몇 가지 유사성 에 입각하고 있다. 그중에서 그는 피라미드의 건설, 미이라 본존 기술,1년이 365일로 된 역법의 발달, 그리고 대홍수의 전설등을 예시했다. 그는 이 두 문명이 공통의 기원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즉 두문명이 모두 대홍수 이전에 신세계와 구세계의 중간에 즉 두 문명이 모두 대홍수 이전이 신세계와 구세계의 중간에 있던 한 대륙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그 대륙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후 두 문화군이 동쪽과 서쪽에서 제각기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도넬리의 지지자들은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여러 가지 이론을 갖추고 있었다. 아틀란티스학은 여러가지 신비로운 수수께끼를 풀어줄 해답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예컨대, 유럽에서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길고 험난한 여행을 한 끝에 사르가소해세 산란하는 뱀장어들의 번식습관은 아틀란티스 대륙의 강들에서 지낸 과거의 경험 때문이라고 설명되었다.

아틀란티스는 다른 유럽인들과 인종적으로나 언어학적으로 전연 다른 바스크족의 원 고향이라고 설 명되었고, 또한 베네수엘라 등지에서 종종 발견되는 백인 인디언의 원 고향도 아틀란티스였다고 설명되었다. 그렇다면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전멸된 카나리아제도의 동굴거주 원주민 구안치족이야말로 아틀란티스인들의 후손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은 피부가 하얗고 턱수염을 기른 신으로서 마야족이 쿠쿨란이라 부르는 고통테크 족은 케트살코아틀, 그리고 잉카족은 바라코차라고 불렀던 신이야말로 아틀란티스말고 어디서 왔겠는가?

현대과학, 특히 지난 30년 동안 장족의 발전을 이룩한 해양지질학에 비추어 보면 도넬리의 이론이 어떠한가? 도넬리가 제시한 여러가지 유추에는 문제점이 많아서 그 당시에 맹렬한 반론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의 학설이 오류투성이임이 분명히 밝혀졌다. 그는 이 세상의 거의 모든 수수께끼와 신비를 어떤 형태로든 아틀란티스와 결부시켜려고 시도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도넬리가 모든 이론의 바탕으로 삼은 기본 가정- 즉 아틀란티스가 대서양에 존재했다는 가정- 은 이제 완전히 오류임이 증명되었다. 대륙형성 및 해저에 관한 해양학의 연구 결과가 면적이 9200만 킬로미터나 되는 대서양 어느 곳에도 아틀란티스 규모의 지각변동이 발생했다거나 또는 그러한 대륙이 존재했었다는 증거가 전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조레스 제도에서 시작하여 북쪽에서 남쪽으로 약 2만 킬로미터를 뻗어내려간 거대한 해저산맥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산맥이 아틀란티스 대륙이라면 침강중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산맥은 비록 화산산맥이기는 하지만 바다 표면을 향해 "융기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