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하 - 미안한 얘기지만,  
            노래는 썩 하지만 (뭐랄까)
            내가 좋아했던 원조 부활다운 느낌은 전혀없는. 
            그냥 느낌없이 노래만 잘하는 그런... 

            시원하게 부르는것 같지만 재미가 없어 심심한 느낌
            그래서 보컬이 정동하로 바뀐 다음부터 이상하게 안듣게 되었다는,

            또, 그래서
            TV나 라디오에서 정동하가 부르는 부활 노래가 나올때마다
            아 듣기싫어 소리를 연발했다는 (정동하에겐 좀 미안합니다만)

           
           김태원이 똑똑한 사람이라 정동하같은 보컬을 일부러 썼을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음
           이를테면, 패션모델이 본인보다 옷만 돋보이게 해야 하는 것처럼
          '이승철처럼 스스로 반짝이는 보컬은 절대 안된다' 정도??
           
        

           이승철이 부르는 것이 좋았고
           김태원 본인이 부르는 그로테스크한 목소리도 나는 썩 좋았다
           그것도 아니라면 차라리 저 비운의 보컬 이성욱정도였어도 너무 괜찮을텐데
           하는 생각을 항상 해왔던 터라



박완규씨와의 프로젝트 아- 반갑네요,   보컬 바뀌면 콘서트서 뵙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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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2009년 최고의 영화..랄까

그냥 문득 갑자기
한번 더 보고싶어져서...





그나저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왜 드라마로 제작 안하나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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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민수씨 사건은 YTN의 [미공개동영상]을 보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 YTN 유씨노인 인터뷰 [미공개 동영상]
http://news.naver.com/vod/vod.nhn?office_id=052&article_id=0000197063


▶ 목격자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했고, 유씨도 얼마나 많은 말실수를 했고,
▶ 언론사의 뉴스 기자들이 얼마나 많은 잘못된 기사내용들을 내보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최민수씨 사건분석]


 


2008.4.21. 오후 1시경 유씨 노인 분(73세, 이태원에서 갈비집과 호텔 운영)이 자기 갈비집의 지정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동산주차장 사무실에 앉아 계시는데, “주차장 직원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여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BMW 승용차 운전자가 바로 옆에 주차장이 있는데도 주차장에다 차를 대지 않고 편도1차로인 도로에 차를 세워둔 채 “차키를 가지고 가버렸다”고 하여, 유씨가 키를 가지러갔다왔는지 “잠깐 어디 갔다 왔었는데”, 렉카차가 와서 불법주차 중인 BMW를 견인해가려고 하는 것을, 주차장 직원들이 왕복 2차로 편도 1차로의 좁은 도로를 봉쇄하고 실력행사로 이를 저지하고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동아일보에는 “유 씨의 큰 딸에 따르면 21일 오후 1시께 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동산주차장 측이 견인 문제로 도로를 봉쇄, 차가 정체.......”라는 기사가 있다.

그 때 최민수씨가 운전하는 뚜껑 없는 오픈카 짚차가 약간 경사진 도로를 타고 3번째로 내려왔고, (최민수씨의 레이디경향 8월호와의 인터뷰에 의하면) 최민수씨가 차에서 한참을 기다리면서 유씨 측과 견인차가 실랑이를 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다가 차에서 내려서 나서준 덕분에, 결국 견인차가 BMW를 견인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유씨 측과 최민수씨 사이에 주차장 도로가에서 시비가 발생했는데, 이때 최민수씨의 옷이 찢어졌다고 하고, 어찌된 영문인지 시비는 주차장 도로가에서 발생했는데, 큰 몸싸움은 밀폐된 주차장 사무실 안에서 붙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유씨는 YTN의 미공개동영상에서 “여기(주차장 사물실 안) 들어오더니 밀어제친 거야, 그래 나는 넘어질 수밖에. 지구대에다 신고를 했다구. 여기 좀 빨리 와달라고. 그래서 한참 들어 누웠다가 다시 나는 (양팔을 벌려서 붙잡는 시늉을 하면서) 최민수 붙들고 일어났잖아?”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큰 몸싸움은 주차장 사무실 안에서 붙었다는 것을 유씨 스스로 확인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 경찰조사에 따르면 “두 사람이 멱살을 잡고 서로를 밀치던 중 유씨가 넘어진 상황을 본 목격자는 있었지만 직접적인 폭력행사는 없었고”라는 기사와 "목격자는 두 사람이 멱살을 잡고 대립하다 유씨가 넘어져 두 사람을 뜯어말린 것으로 증언했다"는 기사 내용으로 보아 그 당시 주차장 사무실 안에는 유씨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언론에서는 처음에 최민수씨가 차에서 내려 노인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고 나왔는데 사실이 아니고, 유씨의 YTN의 미공개동영상를 보면 유씨가 “한참 들어 누웠다가 다시 나는 (양팔을 벌려서 붙잡는 시늉을 하면서) 최민수 붙들고 일어났잖아?”하는 것으로 보아 최민수씨가 유씨를 소파 정도에 밀어 앉힌 것으로 보이고, 노인이 양팔을 벌리고 ‘방금 전까지 싸움 중이었던’ 최민수씨를 붙들고 일어났다는 것은 그때 벌써 최민수씨가 호의를 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지구대에다 신고를 했다구. 여기 좀 빨리 와달라고.”한 것은 주차장 사무실 안에서 사람들이 최민수씨한테 제압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유씨는 “일어나서 이제, 차는 벌써 렉카가 끌어냈구, 그래서 민수가 가더라구, 그 당시에는 민순가 몰랐어 내가.”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최민수씨가 사무실을 나올 때 유씨는 물론 그 옆에 있던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였던 젊은 주차장 직원들도 최민수씨를 잡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최민수씨가 ‘유씨를 주먹으로 수차례 때리고,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발로 짓밟았다’는 것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유씨의 입으로 직접 확인되는 것이다.
 

최민수씨는 옷이 찢어진 채로 사무실을 나와서 15미터 정도 떨어진 자기 짚차로 돌아와 시동을 걸어서 출발했는데, 다시 15미터쯤 나아갔을 때 사거리 직진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어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이 횡단보도는 일간스포츠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주차장 사무실 바로 옆에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연합뉴스(2008-04-24 19:34)에는 “이 와중에 견인 작업이 끝나자 최씨는 차를 타고 현장을 떠나려 했지만 신호에 걸려 잠시 멈춘 순간.......”이라는 기사가 있다. 최민수씨가 신호를 받고 차를 세웠다는 것은 정상적이었고 침착했다는 것이다.


그 다음 동작에 대해서 유씨는 “앞에 내가 가로막았지, 못 가게. 응, 신고했으니까 경찰 올 때까지 가지 말라구 했더니 차를 움직이더라구.”하는 것으로 보아, 유씨를 제외한 주차장 사람들은 최민수씨를 상대로 나서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음 동작에서부터 최민수씨가 73세의 유씨를 짚차의 본네트에 매달고 시속 40km의 속도로 500미터를 질주했다고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뉴스들이 대서특필했는데 사실이 아니고, 경찰 조사 결과 CC-TV 기록과 6명의 목격자의 증언에 의해서 최민수씨의 ‘차량이 브레이크를 뗀 정도의 속도로 진행하고 내용자체가 크게 과장 와전되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부분에 대해서 유씨는 최민수씨 기자회견 다음날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어떻게 나이 드신 분이 진행 중인 차량의 조수석으로 올라탈 수 있었냐?’는 취지의 물음에 ‘경찰에 신고해 놓은 상태라 가지 말라고 했는데, 최민수가 차를 움직여서, 도망 못 가게 하려고 진행하는 보닛(본네트)에 올라탔지. 여기가 도로가 약간 경사가 졌잖아. 이쪽은 내리막이고, 길 건너편은 오르막이고. 오르막길을 오르려고 기어를 바꾸려고 속도를 줄일 때 앞유리를 잡고 조수석으로 넘어와서, 못 도망가게 하려고 기어를 뺏었지’라는 취지로 답변한 적이 있다.

이 부분, 최민수씨의 짚차가 (일간스포츠의 사진에 나온 것처럼 승용차의 위치에서 신호를 받고 있다가) 신호가 바뀌어서 뒤에서 빵빵거리는 차량들 때문에 차를 움직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 노인이 최민수씨의 오른쪽 옆에서 앞 유리를 잡고 올라타려고 해서, 최민수씨가 브레이크를 떼고 엑셀도 넣지 않고 진행하다가 노인 분이 기어이 차에 오르려고 해서, 최민수씨가 3미터(정지선 포함 4m) 정도의 건널목을 이동하여 반대편 오르막 경사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엑셀을 밟지 않고 그냥 멈추었고, 그때 노인이 조수석으로 뛰어들어서 기어를 빼앗은 것이다.

이 상황은 브레이크를 뗀 정도의 속도로 최민수씨의 차량이 이동한 거리는 4~5 미터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최민수씨가 노인을 매달고 질주한 것이 아니라, 유씨의 의지로 진행하는 차에 오르려고 해서, 최민수씨가 위험을 느끼고 바로 차를 세운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노인 분이 최민수씨 옆에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차량의 본네트에 매달려 있었던 적은 아예 없는 것이다.


다음 순간, 칼 부분에 대해서는 경찰 조사에 따르면 ‘최민수씨는 칼에 손을 뎄지만 칼날은 뽑지 않았다’ 는 결과가 나왔고, ‘CCTV에도 최민수와 유씨가 함께 차 안에 있는 모습만 찍혔을 뿐 흉기를 사용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왔고, 유씨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을 번복하였다.

당시에 기어 바로 몇 센치미터 앞에 산악용 칼이 꼽혀 있었는데, 진행하는 남의 차에까지 올라온 흥분한 유씨가 조수석에 뛰어넘어 들어와 기어를 빼앗으려고 칼 쪽으로 손이 가자 최민수씨가 기어를 놓고 칼 손잡이를 막거나 덮었다는 뜻이다. 이 상황을 유씨 측의 젊은 사람이 다가와서 봤는데, 칼 손잡이를 막고 있는 것만 봤을 것이고, 칼날을 뽑는 것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노인이 다시 경찰 불러놨으니까 도망가지 말라고 해서, 최민수씨는 이 노인이 칼로 사고칠 분이 아니라 여기고 막고 있던 칼에서 손을 떼서 기어를 잡았고, 노인은 내리라고 해도 안 내리고, 뒤에서는 그동안 막혀있던 차량들이 빵빵 거려서, 최민수씨는 유씨를 조수석에 태운 채로 사거리를 건너 도로가에 차를 세우려고 했는데, 자리를 잡기 전에 또 유씨가 최민수씨의 기어를 빼앗아버렸다. 경찰 오니까 도망가지 말라고.

그래서 최민수씨가 안 도망갈 테니까 기어 넘겨주라고 해서, 유씨로부터 기어를 넘겨받아 길가에 차를 세울 때, 그 찰나 경찰차 2대가 왔다. 최민수씨가 왕복2차로 편도 1차로의 사거리를 건너는 동안 경찰이 온 것이다.


 

경찰차를 따라서 최민수씨가 유씨를 조수석에 태운 채로 40km 정도의 속도로 500m 정도 떨어진 경찰 지구대로 갔다. 본네트에 매달고 시속 40km의 속도로 500m를 질주한 것이 아니다.
경찰지구대 사무실에 들어가서 서로를 알아보고 경찰에서 제공하는 차를 마시면서 유씨와 최민수씨가 화해하고, 경찰도 다친 사람이 없어 화해를 받아들여서, 사건이 끝났다. 최민수씨 사건은 사실상 여기까지가 끝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목격자가.......

그 다음날(4.22) 유씨 측에서 두 사람이 목격자가 되어 ‘유씨와 유씨의 딸과 상의 없이’ 일간스포츠에 허위제보를 하여 최초로 기사화시키고, 최민수씨가 유씨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발로 밟았다는 것에 대한 증거로 유씨가 허리 부분에 전치2주 진단서를 받게 하여, 그것을 증거로 용산경찰서에 신고하여 다시 사건화(입건)를 시켜서 최민수씨가 경찰에 나와 조사를 받게 하고 (4.23),

그 날 자정(저녁 12시)을 기해서 영화포털사이트인 [맥스무비]에서 최초로 500m 질주를 만들어내고,

다음날 (4.24. 오후 5시 40분) 국민일보의 인터넷신문인 쿠키뉴스가 [단독]으로 소설 같은 허위 기사를 올린 다음에,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언론들이 달라 들어서 허위뉴스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내용들을 종합하면, 영화배우 최민수씨가 -
 
2008.4.21. 오후 1시경 뚜껑이 없는 오픈 짚차를 타고 이태원을 지나가다가 앞 차량의 견인 때문에 길이 막히자 그것을 참지 못하고 주변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 것을, 지나가던 동네 주민 73살의 노인이 훈계를 한마디 하자, 최민수씨가 노인을 수차례 주먹으로 때리고,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넘어진 상태의 노인을 발로 짓밟고, 도망가다가,
그 노인이 차 앞을 가로막자 10미터 정도 밀고나가다가, 칼을 빼내 죽여-버리겠다고 난동을 부려도 안 떨어지자, 그 노인을 짚차 앞에 본네트에 매달고 500m 또는 200~300미터나 되는 거리를 시속 40km의 속도로 질주하면서 농락하다가, 경찰이 저지하고서야 차를 멈추었고, 경찰 조사 후에 유씨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칼만은 빼달라고 사정했다. 는 내용들이다.

  

이 기사들은 제보자들의 제보가 있어서 작성될 수 있었을 것인데, 국민일보 쿠키뉴스의 모규엽이라는 기자와 김아진이라는 기자에 의해서 전체적인 내용의 틀이 작성되고 다듬어졌다. 허위제보를 한 목격자들이 최민수에게 대단히 악의적인 감정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2008.4.24. 오후 5시 40분에 소설 같은 쿠키뉴스가 인터넷에 올라온 직후로.......

불과 몇 시간 사이에 MBC, KBS, SBS, YTN 같은 공중파 방송들까지 나서서 사실 확인도 안 하고 ‘배우 이전에 최민수라는 한 개인이 평생을 두고 쌓아온 인격과 명예와 모든 가치들’을 순식간에 모조리 짓밟아버렸다.
최민수씨 사건은 인터넷 뉴스에서 시작하여 인터넷 뉴스들이 호기심을 유발시켜놓은 상태에서, 사람들이 설마하고 믿지 않고 있던 것들을 결정적으로는 MBC, KBS, SBS, YTN 같은 공중파 방송들이 ‘대한민국 국민이 사실로 받아들이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아래 나열해놓은 뉴스들은 그 당시에 - 특히 방송들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 KBS 뉴스는

- 쿠키뉴스(2008.04.24 (목) 오후 5시 40분)가 나가고, 2시간 후인 40분 후에 최민수씨 사건을 최초로 보도하기 시작했는데, “영화배우 46살 최민수씨가 동네 주민 73살 유모씨와 말다툼을 벌이다 욕설과 함께 유씨를 폭행했습니다. 당시 최씨가...”라고 사실로 단정해서 잘못된 기사를 내보냈다가....... 이기사는 사과도 없이 삭제해버린 상태이다.
 



▶ 그 직후로도 KBS에서는


- “승용차에 노인을 매단채 운전까지 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

- “최씨는 지난 21일 자신의 차를 몰고 서울 이태원앞을 지나다 견인차에 막히자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이를 지켜본 동네 주민 73살 유모씨가 젊은 사람이 왠 욕이냐며 훈계를 하자 유씨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 <인터뷰>유 모 씨 (피해자): "저기가서 밀어 제친거야 그러니까 난 자빠지지 나이가 있는데 그리고 날 밟더라고..."

- 차를 타고 현장을 떠나려는 최씨를 유씨가 막으려 하자 차를 그대로 몰아 아슬아슬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라고 허위 보도를 해서, 사람들이 그대로 믿게 했다.




 

▶ YTN 뉴스에서는
 

- 지난 21일 이 곳을 지나던 최민수 씨는 견인작업으로 길이 막히자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 이를 지켜보던 주민 73살 유 모 씨는 왜 욕을 하냐며 나무라자 최 씨가 자신의 멱살을 잡고 땅으로 내동댕이쳤다고 주장했습니다.
 
라고 시간마다 허위 뉴스를 내보내서, 얼굴도 이쁜 김지선 기자가 유씨하고 주차장 사무실에서 차분하게 앉아서 인터뷰를 하고, 저 위에 내막을 알 수 있는 그 [미공개동영상]이 있으면서도 최민수씨를 정신-병자 수준으로 믿게 만들어버렸다.


 

▶ SBS 뉴스에서는
 

- 최 씨가 차를 빼라며 욕을 하는 걸 보고 근처 음식점 주인 73살 유모 씨가 젊은 사람이 왜 그렇게 욕을 하냐며 나무라자 최 씨가 주먹으로 때렸다고 유 씨는 주장했습니다.
 

- 폭행 후 현장을 떠나려는 걸 막으려고 유 씨가 차에 올라타자 최 씨는 유 씨를 차에 매단 채 그대로 내달렸다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최 씨는 차에 있던 등산용 칼로 위협하기도 했다고 유 씨는 주장했습니다.
 

- 최 씨는 지난 21일 오후 1시쯤 서울 이태원동에서 차를 몰고 거리를 지나다 견인차에 막히자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근처 식당 주인 73살 유모 씨는 젊은 사람이 왜 욕을 하냐며 나무라자 최 씨가 자신을 주먹으로 때렸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차를 타고 떠나려는 최 씨를 막아서자 그대로 차에 매단 채 내달렸다고도 했습니다.
 

- 최민수 씨는 검은색 지프형 승용차를타고 서울 이태원동 소방서 사거리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마침 구청의 불법 주차 차량 견인작업으로 주변 교통이 막히기 시작했는데요. 화가난 최 씨는 주변을 향해 욕을 퍼부었다고 합니다. 이를 지켜보던 근처 음식점 주인 73살 유 모씨가 '젊은 사람이 왜 욕을 하냐'며 훈계하자 최 씨가 막말과 함께 대들면서 시비가 시작됐습니다.
 

- 이 과정에서 유 씨는 바닥에 넘어지기도 했다는데요. 최 씨가 차를 타고 현장을 떠나려하자 땅바닥에 쓰러져 있던 유 씨는 최 씨 차앞을 막아 섰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최씨는 차를 출발시켰고 유 씨는 승용차 보닛에 올라탔습니다.


- 최 씨는 그런대도 그대로 1백미터 가량 차를 운전한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유 씨는 최 씨가 차안에 있던 흉기를 들이대며 위협까지 했다고 말했습니다. 최민수 씨는 경찰에서 유 씨에게 사과하고 합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갔는데요. 하지만 근처에 있던 목격자가 언론에 제보하면서 알려졌습니다.
 

라고, 사실과 다른 확인되지 않은 개인의 명예와 관련된 내용들을 내보내서 사람들이 ‘최민수를 나쁜-놈’으로 믿게 만들어버렸다.


 

▶ MBC 뉴스에서는

2008.04.24 20:17 MBC뉴스에서 -
 

- 경찰에 따르면 최 씨는 지난 21일 서울 이태원동 근처 도로에서 73살 유 모 씨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흉기로 위협한 뒤 자신의 차량에 유 씨를 매단 채 500미터 가량을 질주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최 씨는 피해자 유 씨와 합의를 했지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라고 허위 기사를 내보내서, 최민수씨가 정말로 사람 같지 않은 잘못을 해놓고 사과를 구하는 것처럼 해서 사람들이 진짜로 ‘최민수를 나쁜-놈’으로 믿게 만들어버렸고,



 


▶ 다음날 저녁(2008.04.25 22:55)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 앵커: 영화배우 최민수 씨가 백주대로에서 활극처럼 70 대 노인을 때리고 차에 매단 건으로 입건됐습니다. 사건이 커지자 최 씨는 사죄회견을 열었지만 거짓말 시비에 휩싸이면서 죄민수가 될 수도 있게 됐습니다. 김세진 기자가 전말을 전하겠습니다.
 

- 기자: 최민수 씨는 지난 21일 오후 서울 이태원동에서 차를 몰고 가다 견인차가 막고 있자 빨리 빼라며 폭언을 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73살 이 모씨가 왜 욕을 하냐고 따지자 최 씨는 차에서 내려 유 씨를 밀어뜨렸습니다. 최민수 씨는 이곳에서 제지하는 유 씨를 차량 앞부분에 매단 채 2,300m를 운전해 나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 씨는 흉기로 위협까지 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 인터뷰(유씨노인): 그 찰나에 그 옆에게 칼을 꺼낸 거야. 안 내리면 죽인다고.
 

- 기자: 다른 목격자들도 최 씨가 칼을 들고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 인터뷰(목격자): (하얀 종이 위에 볼펜으로 “구멍, 손잡이, 날”이라고 써가면서, 당시 최민수씨가 협박했다는 칼을 직접 그리면서) 계속 반말로 욕을 하면서 칼을 운전석 옆자리에서 딱 꺼내가지고.
 

- 인터뷰(피해자 가족): 할아버지한테 무릎 꿇고 칼만은 빼달라고 말했다 그 부분만 빼달라고 자기가 치명적이 되잖아요.
 

라는 허위 뉴스를 동영상과 같이 내보내서, 사람들이 ‘정신-병자 수준의 파렴치-한 최민수가 명예도 모르고 그동안 폼만 잡았던 비열한-놈’이라고 믿게 만들어버렸다.


 
MBC [뉴스데스크] 2008.04.25 22:55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7778821




 

그런데 여기서 기가 막히는 것은 -

- 최민수씨는 MBC의 이 뉴스 방송이 나가기 바로 하루 전날 기자회견에서 “그 칼이 산악용 칼인데, 앞부분이 뾰족한 것이 아니라 네모난 모양이어요”라고 분명히 밝혔고, 그 당시에는 벌써 그 칼이 용산경찰서에 압수되어 있는 상태였는데, MBC 뉴스데스크에서 최민수씨가 ‘진짜로 칼을 빼서 협박했다’고 저 목격자라는 거짓말쟁이의 말을 그 뉴스를 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믿게 만들어버렸고,
 
- 유씨와 유씨의 따님 분은 그 전에 벌써 최민수씨가 무릎 꿇고 정중하게 사과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여러 차례 불만을 표시해서 그것들이 여러 언론의 뉴스로 기사화됐는데, “할아버지한테 무릎 꿇고 칼만은 빼달라고 말했다 그 부분만 빼달라고 자기가 치명적이 되잖아요.”라고 거짓말을 하는 저 피해자가족이란 사람의 거짓말 인터뷰를 그대로 내보내서 그것을 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또 최민수씨를 파렴치하면서도 명예도 모르는 비열한-인간으로 믿게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언론이 저 두 사람의 허위 제보에 놀아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언론이 그 짓거리들을 해놓고도.......

경찰과 검찰의 조사 결과 최민수씨의 무혐의가 밝혀졌는데도....... 최민수씨는 가족들까지도 볼 수 없어서 산속으로 들어갔고, 언론에 세뇌당한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최민수씨를 나쁜-놈으로 보고 있는데도....... 아직까지도 자기들 잘못을 공식으로 시인하고 사과하고 반성하는 어떤 언론사나 기자 한 명 없다는 것이다.
 




[끝]

영국 BBC(British Broadcasting Corp.)가 선정한 죽기 전에 꼭 가 보아야 할 50곳입니다.
(50위~1위)



50위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보라보라섬



▶면적 약 30㎢, 인구 약 7,000명 정도이다. 타히티섬에서 북서쪽으로 약 240km 떨어진 곳에 있다. 길이 10㎞, 너비 4㎞의 산호섬이며 32㎞에 이르는 섬 일주도로가 나 있다. 수온이 따뜻하고 수심이 얕아 휴양지로 개발되어 각종 해양스포츠가 활발하며 관광업이 발달하였다. 태평양의 진주라는 별칭으로도 불리고, 영화 《허리케인》을 촬영했던 곳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이 쓰던 대포가 남아 있다.
전형적인 환초 섬으로서 섬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투명한 라군과 모투들이 매우 인상적이고 공항은 본섬의 북쪽에 있는 모투 무테에 있고, 공항에서 주요 마을인 바이타페까지 에어 타히티의 고속 셔틀 보트가 운행되고 있다. 섬의 해안을 끼고 도는 도로의 길이는 약 29㎞이며 자동차로는 약 1시간 30분이면 일주할 수 있다. 도로는 투이바호라 곶을 넘는 부분 (자전거, 스쿠터는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을 제외하면 평탄한 편이다. 이 밖에도 보라보라 섬에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남겨 놓고 간 7인치 포의 잔해 8 문이 남아 있다. 섬을 일주하다 보면 쉽게 눈에 띤다.
섬에서 가장 이름난 해안가이며 주요 숙박 시설이 몰려 있는 마티라 곶 부근은 청록색의 투명한 라군과 백사장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이 라군의 아름다움을 [태평양의 진주]라고 일컬을 정도다. 또한 보라보라 섬은 영화「허리케인」의 무대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보라보라는 뾰족한 바위 봉우리로 이루어진 화산섬이다. 화산섬을 둘러싼 바다는 연둣빛. 해저 산호가 가락지 모양의 띠를 이루고 있다. 띠 안에 섬이 솟아난 형국이다. 하늘에서 보라보라를 내려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가 쏟아져 나온다.보라보라의 바다는 한눈에 담을 수 없다. 호텔 앞 바다는 연푸른 빛을 띤 산호지대. 조금만 배를 타고 나가면 수많은 푸른 색으로 칠해진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모래사장이 훤히 보일 정도로 투명하거나 원시림 같은 녹색 바다가 이어지고, 다시 연두색으로 변하기도 한다. 색의 조화가 놀랍다. 이처럼 바다 빛깔이 다양한 것은 맑은 물 속의 산호 때문이다. 보라보라의 바깥쪽 바다는 해저 산맥처럼 이어진 산호띠인 리프(Reef)로 이뤄져 있다. 리프가 파도를 막아주는 까닭에 큰 파도가 없이 바다는 늘 잔잔하다. 그 안에 야자수만 가득한 새끼섬 모투(Motu)가 흩어져 있다. 산호가루가 부서져 섬이 된 모투의 앞바다는 연하디 연한 푸른 빛. 햇살이 해저 산호가루에 반사돼 물빛도 눈부시다. 산호에 닿은 햇살은 마치 물고기처럼 퍼덕댄다. 모투와 모투는 멀리서 보면 끊어질 듯 이어지며 다시 반지처럼 이어진 아톨(Atol)을 형성하고 있다. 모투와 아톨로 둘러싸인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한 라군(Lagoon·석호)을 이루고 있다. 모두 산호가 수백만년동안 만들어낸 신비다. 형형색색 다른 빛깔로 빛나는 바다 모습을 보려면 화산 봉우리인 오테마누(722m)의 옆쪽이나 전망대에 올라서야 한다.
보라보라는 프렌치 폴리네시아에서도 역사가 가장 오랜 섬이다. 타히티의 섬들은 해저폭발로 이뤄졌다. 3백만년 전 보라보라가 생겼고 그 뒤 다른 섬들이 생겨났다. 보라보라는 원래 바우아바우에서 나온 말. 원주민 말로 ‘어둠 속에서 솟아났다’는 뜻이다. 또 ‘마이 테 포라’라고도 하는데 신께서 만들었다는 의미다. 보라보라가 서방세계에 알려진 것은 1767년 영국왕립함대 왈리스 함장에 의해서였다. 보라보라에 처음 상륙한 사람은 1768년 쿡 선장이다. 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미국인들이 들어오면서 보라보라는 유명해졌다. 하와이 진주만 공습을 당한 미국은 남태평양의 보라보라에 급유를 위한 기지와 활주로를 만들었다. 1942년부터 1946년까지 미군이 주둔했지만 전쟁은 없었다. 당시 미국 해군장교로 보라보라에 왔던 제임스 미케너는 ‘남태평양 이야기’란 책을 통해 상공에서 바라본 보라보라의 모습을 ‘남태평양의 진주’라고 표현했다. 보라보라의 모습이 마치 조개가 입을 열고 진주를 품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라보라의 흑진주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 책은 뮤지컬로 브로드웨이에서 히트했고 영화로도 제작됐다.
프렌치 폴리네시아를 여행하기 가장 좋은 때는 요즘이다. 4월부터 10월은 건기, 12월부터 3월까지가 우기다. 건기에는 적도상의 다른 섬과 달리 후텁지근하지 않다. 태평양을 건너오는 무역풍 때문이다. 시차는 한국보다 19시간 빠르다. 평균기온은 25.9도. 프랑스령인 까닭에 프랑스어가 주로 쓰이지만 호텔에서는 영어가 통용된다.
▶교통편
국내에서 직항편은 없다. 일본의 오사카나 도쿄에서 에어 타히티누이(서울지점 02-775-4697)로 갈아타야 한다. 오사카는 인천공항에서 1시간30분, 도쿄는 2시간 거리. 일본에서 타히티섬 파페테공항까지는 약 12시간 걸린다. 파페테에서 보라보라까지는 항공기로 45분. 파페테 페리터미널에서 모레아섬까지는 배로 30분.


49위 인도네시아 발리


▶천혜의 자연환경을 간직한 동양 최대의 휴양지로 '지구상의 마지막 낙원', '세계의 아침' 등으로 불리며 이미 유럽과 구미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휴양지로 손꼽히고 있는 지상 최후의 낙원 발리. 제주도의 2.7배 크기로 인구 3백만명이 모여 있으며, 남태평양 만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로 인도네시아 군도를 구성하는 수천개의 섬 가운데 하나이다. 산스크리트어로 WARI, 즉 제물을 의미하는 발리 섬은 그 자체가 신들의 선물이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이 섬에 관한 수식어는 끝이 없다. 계단식 벼농사 지대와 구름 위로 높게 솟아오른 불을 품은 3,000m급 화산들, 울창한 열대 숲들, 인도양의 따뜻한 바닷물이 일렁이는 해변들… 발리의 매력은 그것만이 아니다. 성스러운 아군 산 기슭에 펼처진 전원 풍경, 독특한 문화와 훌륭한 예술,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신을 사랑하는 발리인들의 따뜻한 마음이다. 쇼핑에서 서핑, 환상적인 경치에서 이국적인 요리에까지 발리는 전세계의 방문객들을 유혹하는 이국적인 관광지로 정평이 나 있다.
인도네시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섬나라이다. 그 섬들의 한가운데 위치한 발리는 섬에 사는 사람 수보다 그들이 모시는 신이 더 많다는 곳. 인도네시아에서 유일하게 이슬람교가 아닌 힌두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섬 발리는 약 300만명의 인구를 갖고 있으며, 매년 50만명 이상의 외국 관광객들이 찾는다. 소위 '열대의낙원'이라할 만한 발리에서는 인도네시아-힌두 문화의 세련된 예술을 만날 수 있다. '신들의 섬'이라고 불리우는 발리는 와리(Wari)라는 말이 변형되어 발리가 됐다고 한다. 발리의 크기는 제주도의 약 2.7배 정도이고,연평균 기온은 23℃~30℃로 계절은 우기(10월~3월)와 건기(4월~9월)로 나뉜다. 우기때는 하루에 한두차례 소나기가 내린 후 하늘이 청명하게 개여 더위를 식혀주며, 건기때는 새벽과 밤이 우리나라의 가을날씨와 비슷하다. 발리는 인도네시아 다도해의 중간에 놓여 있는 아름다운 열대섬이다.적도에서 바로 8도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언덕의 사면을 따라 늘어서 있는 계단식 논들, 화산, 빽빽한 열대정글, 넓은 모래 해변, 따뜻한 해수, 최고의 파도와 자신들의 전통과 문화를 지키며 살아가는 친절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발리는 1년 내내 평균 온도 26~30도 정도의 열대성 기후가 계속되며 계절은 크게 4월에서 9월까지의 건기와 10월에서 3월까지의 우기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5월에서 8월까지가 더 시원하고 비도 덜 내리기 때문에 발리를 방문하기에 더 좋은 시기이다.
발리인들은 대부분 힌두교를 믿는다. 한때 힌두교는 인도네시아의 지배적 종교였지만 이슬람 세력의 성장과 함께 많이 사라졌고 발리만이 힌두교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15세기 자바의 마자빠핫 왕조가 몰락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발리로 피난처를 찾아 탈출하였고 이때 온 힌두교는 발리인들이 원래 갖고 있던 물, 산, 나무에 존재하는 영혼들 같은 자연신들에 대한 고대의 믿음들과 함께 결합하여 오늘과 같은 강하고 활력넘치는 문화를 만들어 내었다.
▶환율 & 환전
인도네시아의 공식화폐는 루피아이다. 루피아로의 환전은 어려워 달러로 환전을 한 후 발리에 도착해서 달러를 다시 루피아로 환전한다. 달러로 환전할때는 1997년 이후에 발행된 달러인지 확인한다. 1996년 이전에 발행된 달러는 환전을 해주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고 환전이 된다 해도 낮은 환율로 환전이 된다. 그리고 달러에 낙서나 구김이 있으면 이 역시 낮은 환율을 적용받는다. 달러는 고액 단위일 수록 높은 환율을 적용받는다. 10달러 보다는 100달러를 교환할 때 환율이 더 좋다.
▶주의할 점
- 상대방의 머리를 만지지 않는다.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머리를 매우 신성시하여 자신이 머리를 단장할 때도 꼭 오른 손 만을 사용한다. 지나가는 어린이가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는 것은 우리에게 당연한 일이지만 인도네시아에선 용납되지 않는다.
- 오른 손 만 사용한다.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왼손과 오른손을 정확히 구분하여 사용한다.지저분한 것을 만질 때에는 왼손을 쓰고 깨끗하고 신성한 것에는 반드시 오른손을 쓴다. 즉 식사할 때, 머리를 다듬을 때,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건넬 때에는 반드시 오른손을 쓰고 용변 후, 세척할 때와 쓰레기 등을 만질 때는 왼손을 사용하는 것이다.
- 종교적인 특성으로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이 많으므로 권하지 않는다.
- 대화 중에 허리에 손을 올리지 않는다. 화가 난 것으로 오해한다.
▶교통
택시를 쉽게 이용할 수 있지만, 길이 좁고 일방통행이 많아 초행자의 경우 거리계산을 할 수 없으므로 미터기가 있는지 확인하는게 좋다. 잔돈을 거슬러 주지 않는 경우도 있으므로 요금에 가까운 화폐를 지불하는게 유리하다.
▶쇼핑
관광객의 발길 닿는 모든 곳에서 쇼핑을 할 수 있을만큼 상점이 즐비하다. 대부분의 가게에서는 흥정을 통해 가격을 낮출 수 있으며, 노점에서는 가격을 높게 부르는 경우가 많으므로 적정 가격이 될 때까지 흥정을 해보는게 이득이다. 쇼핑 아이템으로는 색색의 조각품과 목공예품, 핸드메이드 직물, 그림, 살롱, 석상등으로 다양하며 특히 세공품은 정교함이 세계적인 수준이다.


48위 이집트 아부심벨


▶람세스 2세가 세운 웅대한 신전 ‘장관’/69년 아스완댐 건설로 3,200년전 신전 이전/나일강변 돌산 깎아 4년여 대역사 끝 복원
1965년 5월 전세계 50여개국의 기술자들로 구성된 유네스코 작업반이 일강 서안의 작은 바위 절벽 아부 심벨에 도착했다.이들은 바위산을 깎아 만든 대신전을 원래 자리에서 90m위쪽으로 이전하는 작업을 착수했던 것이다.고대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왕이며 ‘태양의 아들’로 자처했던 파라오 람세스 2세가 자신의 위대함을 기리기 위해 세운 신전이었다. 모든 역사에는 명암이라는 양면성이 깔려있는 모양이다.파라오 중의 파라오 람세스 2세가 자신의 영광과 이집트의 번영을 기원하며 세운 이 대신전은 수몰위기를 맞았다.람세스 2세의 기원에도 불구하고 대대로 빈곤에 시달려온 이집트는 신전을 무시하고 아스완 하이댐 건설을 서둘렀다.1960년 1월에 착공됐다.아스완 하이댐 건설은 관개와 수력발전을 통해 이집트의 경제를 한단계 끌어올리는 대역사였다.
▶유네스코서 이전 작업
그러나 이 댐은 길이 500여㎞에 달하는거대한 인공호수 낫세르호를 만들었다.그리고 이로 인해 주변에 있던 수십기의 고대 무덤과 신전,기념물들이 수몰의 위기에 내몰렸던 것이다.유네스코가 무엇보다 긴장했던 것은 가장 위대했던 파라오가 자신의 필생의 업적으로 만든 아부 심벨 신전이 존폐의 위기에 빠졌다는 사실이었다.마침내 이들은 신전을 통째로 바위산 위쪽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바위 절벽을 깍아 만든 신전에 모두 1만7천개의 구멍을 뚫고 그안에 33t에 달하는 송진덩이를 밀어넣어 먼저 신전의 바윗돌들을 단단하게 굳혔다.그리고는 거대한 쇠줄톱을 동원해 신전을 모두 1천36개의 돌블럭으로 잘랐다.돌블록 하나의 무게가 30t에 달했다. 신전을 옮길 절벽 위쪽의 바위에는 그안에 거대한 콘크리트 돔 2개를 만들어 덮어 단단한 인공 산을 만들었다.그 다음 신전의 재조립 작업이 시작됐다.1969년 2월,마침내 3천200년전에 탄생된 신전이 다시 완벽한 제모습을 갖고 안전지대로 옮겨졌다.4천2백만 달러의 공사비가 들었고 4년이 넘게 걸린 작업이었다. 이집트인들은 이를 신전의 수호신인 태양신 아몬의 기적이라고 말했다.지금 우리가 아부 심벨을 다시 보게 된 것도 바로 유네스코의 이 이전작업이 성공한 덕분이다.신전을 장식한 신상과 조각들은 완전한 형태로 재생됐고 다만 원래는 없었던 돌 블록들을 이어붙인 이음선들이 선명하게 나타나있다.
▶카이로서 비행기로 2시간
남부 이집트 누비아 사막 한가운데 자리한 아부 심벨까지는 카이로 공항에서 국내선 항공편으로 2시간 남짓 걸린다.아부 심벨 공항에서 신전까지의 20여분 거리는 왕복 버스가 운행하는데 이를 타고 2­3시간 신전을 돌아보고 나면 다시 이 버스가 공항으로 데려다준다. 버스에 내려 10분여를 걸어가면 오른편으로 미풍에 수면이 흔들리는 푸른 나일강을 끼고 사막 한가운데 거대한 돌산이 나타난다.강쪽으로 난 이 돌산 한쪽 면을 깍아 신전 전면을 다시 세웠고 큰 동굴처럼 돌산을 안쪽으로 깍아 신전 내부를 만들었다.신전 전면에는 높이 20m에 달하는 람세스 2세의 좌상 4개가 버티고 있다.얼굴의 좌우 길이가 1m는 족히 됨직하다.역학면에서는 거대한 람세스의 상 4개가 높이 30m가 넘는 신전전면을 지탱하는 기둥 역할을 하도록 설계돼있다.왼쪽에서 두번째 상은 몸통과 머리부분이 모두 사라졌지만 나머지 3개는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돼 있다. 신전 출입문 위에는 매의 머리를 한 여신 라 하크트의 상을 조각했다.출입문을 들어가면 길이 65m에 달하는 긴 인공 동굴이 나타났다.좌우로 8개의 오시리스 신상을 모신 복도를 지나면 신전의 가장 내밀한 방인 지성소에 도달한다.고대 이집트인들에게 가장 위대한 신은 태양신 라와 나일강의 신 오시리스였다.파라오는 지상에서 태양신 라를 대신하는 존재였다.지성소에는 왼편부터 차례로 람세스 2세,아몬 라,그리고 하르마키스신,그리고 어둠의 신인 프타의 신상이 나란히 앉아있다.
▶공사비 4천2백만불 소요
이 지성소에서 태양의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이 안내인의 설명이다.매년 2차례씩,3월 21일과 9월 21일 상오 5시 58분이 되면 정확하게 태양빛이 신전 입구에서 지성소에 이르는 65m의 길을 밝혔다.그리고 나서 햐지나 아몬 라 신과 람세스 2세의 상에 햇빛이 닿았다.햇빛은 또 수분뒤 하르마키스신으로 옮겨가기까지 20여분을 지성소안에 머물었다.그런데 어둠의 신인 프타에는 햇빛이 비치는 법이 절대 없다는 것이다.수몰 위기를 피해 이 인공바위산으로 이전한 뒤에도 이 태양의 기적은 여전히 계속됐다. 신전벽은 람세스 2세가 전장에서 거둔 혁혁한 승리의 장면들을 그린 상형문자와 그림들이 빽빽히 들어있다.가장 인상적인 것은 람세스 2세 재위 5년에 그가 북부 시리아족의 일파인 히타이트군과의 힘겨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장면이다.‘카데슈 전투’인데 그의 활약상이 잘 묘사됐다.이 승전기는 테베의 카르낙 신전과 룩소르 신전에도 새겼다.카데슈는 지금의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북서쪽에 위치한 요새였다.적의 매복 함정에 빠져 2천500대의 전차대에 포위됐다.그러나 태양신 아몬 라의 도움을 받아 단신으로 이들을 물리쳐 승리를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람세스 2세 신전의 옆에는 이보다 규모는 작지만 아담하고 아름다운 신전 하나가 더 있다.평화의 신을 모신 하토르 신전이다.이 신전은 람세스 2세가 왕비인 네페르타리를 위해 지었다.람세스 2세가 고대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었다면 네페르타리는 가장 아름답고 지혜로운 왕비였다고 한다.고대 이집트인들은 상형문자를 통해 람세스 2세의 위대한 힘은 왕비 네페르타리와의 사랑에서 비롯됐다고 상형문자를 통해 예찬했다. 하토르 신전 전면 벽에는 람세스 2세의 상 4개와 왕비 네페르타리의 상 2개가 나란히 새겼다.이집트 역사상 왕비에게 신전을 지어 바치고 그 신전 전면을 왕비의 상으로 장식한 파라오는 람세스 2세뿐이다.태양이 되고자 했던 사나이 람세스 2세와 그가 ‘가장 아름다운 여인 보다도 더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노래했던 네페르타리 왕비와의 사랑.그 힘은 바로 아부 심벨의 신전을 탄생시켰고 또한 이 신전을 3천년 이상 지탱해온 원천이었던 것이다.<아부 심벨(이집트)=이기동 특파원>


47위 베네주엘라 엔젤폭포


▶세상에서 가장 높은 호수인 ‘띠띠까까호수’도 남미에 있고, 80m 높이에 서로 다른 275개의 폭포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는 ‘이과수폭포’도 남미에 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높은 폭포, 높이가 약 1km인 엔젤폭포도 남미에 있다. 엔젤폭포. 기아나 고지에서 발원하는 오리노코강(江)의 지류 카로니강이 기아나 고지로부터 1,490m의 높이를 도중에서 막힘없이 낙하하여 형성된 폭포이다. 낙차 979m로 세계 최고이며 부수된 폭포를 포함하면 높이 1,000∼1,600m에 이른다. 하부 일대가 떨어지는 포말에 의하여 안개가 낌으로써 폭포의 흐름이 장엄하다 하여 ‘천사의 폭포’라고 명명하였다.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아래에서 보면 꼭대기가 보이기는 할까? 건물 한 층의 높이를 대략 3m로 잡는다면 333 층의 고층빌딩 꼭대기에서 물을 뿜어낸다는 이야기다.


46위 스위스 마터호른봉


▶높이 4,478m. 프랑스어로는 몽세르뱅(Mont Cervin), 이탈리아어로는 몬테체르비노(Monte Cervino)라 한다.
몬테로사 산맥의 주봉으로, 스위스 쪽의 등산기지 체르마트의 남서쪽 10km 지점에 위치한다. 피라미드형의 특이한 산용을 가진 빙식첨봉(氷蝕尖峰)으로, 평균경사 45° 안팎의 급한 암벽이 1,500m 이상의 높이로 솟아 있다. 특히 스위스 쪽의 조망이 수려하다.
천하의 독수리봉인 마터호른 봉은 알프스 관광의 절정이다. 환경에 대한 배려로 휘발유 차량의 출입금지 리조트라서 조용하며 공기가 맑고 상쾌한 청정지역이다. 자동차는 중간역 테쉬의 대형 주차장에 세워두고, 그곳 부터는 등산산악열차로 들어간다. 마을 내의 교통은 전기 자동차 또는 마차가 이용되고 있어 이 또한 흥미로운 스위스 마을이다. 등산철도로 리페르알프와 고르너그라트, 공중 케이블을 타고 클라인 마터호른(3,820M)을 오르면 눈 앞에 펼쳐지는 산들과 빙하를 감상할 수 있다.


45위 중국 진시황 병마용갱


▶1974년 이래 발굴이 시작되어 현재 총면적 25,380㎢에 달하는 4개의 갱이 발굴되었으나 그 중 4호 갱은 완성되기 전에 폐기된 빈 갱도였다. 아직 완전히 발굴되지 않은 1호갱은 길이 210m, 너비60m, 깊이 4.5~6.5m의 총면적 12,000㎢로서, 본래 이 갱 위에는 길이 210m, 넓이 9칸의 회랑식 건축이 있었으나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매장된 전체 도용은 약 6,000개로 추정되며, 도용의 크기는 1.75~1.86m, 도마용은 높이 1.5m, 길이 2m의 실물대이며, 갑옷을 입고 무장한 무사의 엄격한 표정이 모두 상이하다. 1호 갱의 동북에 위치한 약 6,000㎢의 2호갱 역시 부분적으로 발굴되어 다량의 목제 전차와 이를 끄는 마용 356건, 기병용 116건, 안마 116건, 보병용 562건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완전 발굴된 520㎢의 3호갱은 지휘부로 추정되는데, 장군의 것으로 보이는 채색된 전차 1량과 갑옷 입은 보병용 64건, 마용 4건이 출토되었다. 이 밖에도 진시황릉 서북측에서 동마용과 동용이 딸린 대형 동전차가 1대 발견되었다. 세계의 8대 경이 중의 하나로 꼽히기도 하는 이 병마용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훌륭한 예술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이 병마용들은 진시황 친위군단의 강력한 위용을 과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진나라의 군사편제 ·갑옷 ·무기 등의 연구에도 구체적인 자료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와 아울러 일부 도용에서 확인되는 북방 민족의 두발형식은 친위군단의 민족적 구성을 짐작하게 한다.
서안에서 37km 떨어진 임동현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박물관으로 가는 길 낮은 야산 처럼 보이는 것이 진시황릉이다. 아직까지 전혀 발굴이 진행되지 않은 이 묘는 진시황이 즉위한 바로 그 해로 부터 37년 동안 건설되었으며 병마용 박물관팀의 연구 조사에 의하면 이 곳에 전체 면적이 약 60만평에 이르는 거대한 지하도시가 있다고 한다. 거대한 지하도시는 진시황의 궁전으로 현재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진시황은 기원전 246년 즉위한 진나라의 왕으로 철권통치와 분서갱유 등의 사건으로 악명이 높지만 중국 대륙을 통일한 최초의 왕이며 중앙집권제로 성문법 제정, 도량법 통일, 화폐 통일과 만리장성 축조 등 치적이 눈부신 왕이기도 하다.


44위 아이슬란드


▶대서양 북부에 있는 섬나라로, 면적은 10만 2928㎢, 인구 29만 명(2003), 레이캬비크, 정식명칭은 아이슬란드 공화국이다. 아이슬란드의 섬은 북위 63°20'부터, 66°33'까지, 서경 13°30'부터 24°32'까지를 차지하며, 남북길이 340km, 동서길이 530km의 계란형을 이루고 있다. 가장 가까운 서쪽의 그린란드까지는 278km, 남동쪽의 스코틀랜드까지는 708km, 동쪽의 노르웨이까지는 970km 떨어져 있다. 동해안과 북해안에는 홍적세(洪積世)에 섬 전체를 뒤덮었던 빙하가 만든 피오르드가 많다. 서쪽 지방과 남쪽 지방, 피오르드 안쪽에는 평지가 있으나 해발고도 200m로 경작한계(耕作限界)에 이르고 있다. 국토의 70%는 400m 이상의 불모지이고, 12%는 빙하이다. 이들 빙하는 6개 그룹으로 나뉘는데, 그 중 가장 큰 것은 바트나이외쿠틀(바트나 빙하)이며 넓이 8,400㎢나 되는 세계 굴지의 규모이다. 섬의 북부 중앙에서 남서부 일대에 걸쳐 제4기 현무암, 파라고나이트 지대이며, 나머지 반인 동부와 북서부는 제3기 현무암 지대이다. 동부에는 1,100년 동안 헤클라·카틀라·아스캬·쉬르트세이·베스트만 등 30여 개의 활화산이 있으며, 온천과 간헐천(間歇泉)도 260개 지역에 달하여 증기(蒸氣)를 합계한 총열량이 매초 11억 kcal나 된다.
대부분의 아이슬란드인은 영국 셀츠(Celts)지방과 노르웨이 정착민의 후손들이다. 아이슬란드의 주민은 놀랍도록 단일한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이슬란드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99%의 국민이 도시 지역에 살고 있으며 그의 60%가 레이자비크(Reykjavic)과 그 주변에 살고 있다. 아이슬란드의 언어는 고대 노르웨이어에 가까우며 12세기이후 상대적으로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
91%의 주민이 국가교회, 복음 루터파 교회, 혹은 다른 종류의 루터파 교회에 소속되어 있다. 그렇지만, 아이슬란드에서는 완벽한 종교적 자유가 있고 프로테스탄트나 로마 가톨릭 집회도 현존한다. 대부분 아이슬란드인 이름의 성(Surname)은 조상의 이름을 따서 만들게 되어 있으며 이것은 법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 예를들면 성인 Pertursson은 아버지의 이름 Petur에서 딴 것이다. 대부분의 아이슬란드인들은 서로의 성을 부르지 않으며 전화번호부 조차 성이 아닌 이름 순으로 분류되어 있다. 여성은 결혼 후에도 원래 자신의 성을 사용하게 되어 있다.


43위 서인도제도 바베이도스


▶면적은 430㎢, 인구는 27만 2000명(2003)이다. 수도는 브리지타운이며 공용어로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서인도제도의 남쪽, 윈드워드제도(諸島) 동쪽 끝에 있는 영연방(英聯邦)에 속하는 독립국. 국토는 바베이도섬[島]이다. 입헌군주국이므로 총리가 경제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관광산업을 개발하여 국민소득을 올리고 있다.
주변의 섬들이 대부분 화산섬이나,바베이도스는 석회암섬이다. 약 335m 높이의 힐러바이산(山:374m)이 솟아있고 계곡에는 많은 토종 식물상과 동물군이 서식한다. 섬 주위에는 산호초가 있다. 일년내내 햇볕이 비쳐 따뜻하여 '태양 속의 섬'이라고도 한다. 섬의 대부분은 경작 가능한 평지로 되어 있다. 기후는 열대해양성기후로, 저녁에는 약간 기온이 내려가지만 대체로 23~29℃ 정도 된다. 7~9월의 고온기에는 23~31℃, 2월의 저온기에는 21~28℃를 나타낸다. 우기와 건기로 나누어지는데 건기는 1월에서 5월, 우기는 6월에서 12월까지이다. 6월에서 10월까지 허리케인이 발생하지만 큰 피해를 준 적은 거의 없다. 1955년에 허리케인 자넷이 내습하였다.
바베이도스 주민의 약 80%가 아프리카인, 4%는 유럽인, 16%는 혼혈이다. 바베이도스인의 약 70%가 영국성공회를 믿고 있으며, 나머지 대부분은 로마 가톨릭, 감리교, 침례교 등을 믿는다. 바베이도스인은 영어를 사용한다.


42위 태국 방콕


▶태국의 수도이자 관문이 되는 도시이다. 1782년 라마 1세 국왕 때 세워진 이 도시는, 옛 것과 새 것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태국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시암 만(Gulf of Siam)에서 조금 떨어진 짜오 프라야 강(Chao Phraya River) 기슭에 위치한 방콕은 평원을 가로지르며 뻗어 있다. 왕가가 거주하는 곳이며 행정의 중심이자 주요 항구도시로 태국 인구의 약 1/10이 살고 있다. 방콕은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구분된다. 강과 철도 사이에 위치한 구 시가지에 대부분의 오래된 사원이 있다. 신시가지는 철도의 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주요 상가와 관광 지구, 광대한 주거 지역이 펼쳐져 있다. 시내에는 대소 300의 사원이 있을 만큼 일찍이 불교의 꽃을 피워 온 도시이다. 왕궁에 인접해 있는 왓 프라깨오에는 약 60cm 높이의 에메랄드 불상이 있어서 일명 에메랄드 사원이라고 부르는 가장 유명한 사원이다. 그 밖에 대리석으로 만든 대리석사원, 누운 석가상이 있는 왓 포, 방콕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왓 아룬 등이 있다. 한국 보다 2시간 늦다.

인기 여행지
▶태국 왕궁 & 왓 프라 깨우(Grand Palace & Wat Phra Kaew) (에메랄드 사원)
왓 프라 깨우(에메랄드 부처의 사원)는 가장 성스러운 불상을 모신 곳으로 태국 최고의 성지다. 에메랄드 부처는 높이가 66센티미터밖에 안 되지만 태국의 가장 중요한 불상으로 종교적인 의미가 크다. 왓 프라 깨우 사원은 1782년 라마 1세가 방콕으로 수도를 옮길 때 광활한 땅에 지었던 왕궁과 접해 있다. 라마 1세 이후의 왕들과 가족들이 이 궁에 살았다가 라마 5세가 두씻으로 왕실을 옮겼다. 오늘날 태국 왕궁은 주로 대관식 같은 예식이 있을 때만 사용된다.
94만 5,000평방미터의 땅에 펼쳐진 100여 개의 건물들(대부분이 랏따나꼬씬 건축 양식)을 돌아보는 것은 태국 관광의 백미다. 이곳은 신성한 곳이므로 복장을 제대로 갖추어야 한다. 본관 사무소에서 적당한 옷을 빌려 입을 수 있다. 왓 프라 깨우의 본당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어야 한다. 신발은 슬리퍼 스타일만 아니면 된다. 즉 스포츠 샌들도 가능하다. 신발도 대여 가능하며, 왕궁 밖 노점보다는 왕궁 내 대여소에서 보증금만 내고 빌리는 것이 좋다(보증금 100B은 돌려받을 수 있다). 단, 왕궁 내 대여소에서 신발을 빌리려면 양말을 구입해야 한다. 복장은 반바지는 불가능하나 칠부바지 정도, 즉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옷은 괜찮다.
▶왓 아룬 (Wat Arun) (새벽 사원)
배를 타고 짜오프라야 강을 따라가다 보면 톤부리 제방 위에 펼쳐지는 왓 아룬 사원의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모습에 끊임없이 사로잡힌다. 가장 멋진 모습의 왓 아룬을 보는 것이므로 이 모습을 마음 속에 담아두자. 가까이 가서 실제로 사원을 보면 그리 낭만적이지는 않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19세기 초에 지어진 탑을 올라가면 도시의 전경이 보인다. 이 탑은 크메르와 태국 양식을 접목한 독특한 디자인으로 인정 받고 있다.
▶왓 포 (Wat Pho)
왓 포는 방콕의 사원에서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한다. 16세기에 탄생했으니 방콕보다 역사가 더 오래됐으며 가장 큰 규모의 사원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엄청난 와불상(臥佛像)을 비롯해 태국에서 가장 많은 불상이 이곳에 모여 있다는 점이다. 이곳의 와불상은 태국에서 가장 높은 불상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왓 포를 태국 전통 마사지의 중심지로 알고 있다. 다리가 피곤하면 사원의 동쪽 끝으로 가라. 그곳에 바로 그 유명한 태국 전통 마사지 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차이나타운 (China Town)
간단히 말해서 방콕에서 가장 흥미로운 곳이 바로 차이나타운이다. 시끄러운 소리와 냄새에 재미도 있는 곳이다. 골목은 어둡고 큰 도로들은 교통이 막힌다. 활기차고 싼 값에 물건들을 파는 가게들은 물론 발길을 멈추게 하는 먹거리 노점상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서 있다. 차이나타운은 대략 활람퐁 스카이트레인 역 서쪽 지역과 클롱 옹 앙 동쪽 지역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랏따나꼬씬에 새로 수도가 들어설 때 그곳에 살던 중국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했다. 19세기 말에는 암흑가로 악명이 높았다. 1920년대와 30년대에는 으리으리한 태국 아르 데코 빌딩들이 차이나타운의 주요 도로인 야와랏(지금은 금은보석상들로 유명)과 챠루엔 크룽을 따라 줄줄이 들어섰다. 오늘날 차이나타운은 두말할 것도 없이 여전히 방콕의 중국 문화 중심지로, 중국어 신문이 4개나 있으며 성대한 중국 신년 축제를 자랑하고 있다.
▶짐 톰슨 하우스 (Jim Thompson's House)
미국 출신인 짐 톰슨은 삶과 죽음에서 모두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그가 남긴 것은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게 된 태국 비단과 아름다운 동남아 미술품, 평화로운 모습의 태국 전통 주택이다. 여행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면 1959년 짐 톰슨이 클롱 샌 샙 옆으로 기둥 위에 지은 목조 주택 6개 가운데 몇 채를 볼 수 있다. 이 집들에는 곳곳에 버마나 캄보디아, 태국 공예품들뿐 아니라 진귀한 중국 도자기를 비롯한 짐 톰슨의 예술품과 개인 소장품들이 전시돼 있다. 짐 톰슨의 뛰어난 디자인 감각은 고사 위기에 있던 태국의 가내 공업을 되살리는 데 가장 큰 몫을 했다. 손으로 짠 실크를 유럽의 패션 회사들에 보내 오늘날까지도 전통 기술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 냈으니 말이다.


41위 스리랑카 시기리야


▶인도 남부 인도양 해상에 위치하며, 면적은 6만 5,610㎢, 인구는 1906만 5000명(2003)이다. 인구밀도는 290.6명/㎢(2003)이다. 정식명칭은 스리랑카 민주사회주의공화국(Democratic Socialist Republic of Sri Lanka)이다. 18세기 말부터 영국의 식민지였으나 1948년 영국연방 내의 자치령으로 독립하였으며, 1972년에 국명을 실론(Ceylon)에서 스리랑카공화국으로 개칭하여 영국연방에서 완전 독립국이 되었다가 1978년에 현재의 국명으로 바꾸었다. 1985년 수도가 이전되어 콜롬보 외에 정치적 역할을 하는 수도로 스리자야와르데네푸라코테가 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해상의 요지를 차지하며, 인구는 섬의 남서부에 집중해 있다. 최근까지 스리랑카의 수도로서, 콜롬보는 매력적인 도시일뿐만 아니라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접점으로서 그리고 현재와 과거가 융해되는 도시이다. 콜롬보는 인구 50만 정도에 15개의 지구로 나뉘어져 있다. 볼거리로는 불교사원과 힌두사원, 이슬람사원, 기독교 교회당과 같은 사원부터 국회의사당 건물, 공원, 동물원, 박물관과 미술 갤러리 등이 있다. 보통 한나절 여행을 하면 40 km정도를 커버하고 불교사원과 힌두사원 그리고 동물관과 거주지역을 볼 수 있다.
▶Nuwara Eliya 누와라 엘리야
차 재배지인 이 섬의 고원지대의 중앙에 위치한 산악지로서 콜롬보로부터 169km, 캔디에서 77k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누와라 엘리야는 해발 1,900미터높이에 위치해 있으며, 영국 식민지시대의 향수가 가장 잘 서려있는 해발 1989미터의 피서지로 유명하다. 이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인 해발 2,524미터인 피두루탈라갈라(Pidurutalagala)산이 있다. 모든 공공건물, 집, 거리, 길, 공원 등은 옛 영국식으로 되어 있어 이곳의 맑고 시원한 산 공기를 마시며 가끔씩 내리는 비를 맞다보면 마치 영국시골에 와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라 한다. 이곳의 차는 고지대의 기후에서 경작되기 때문에 가장 좋은 맛을 낸다 하며 이 일대를 둘러보면 차 재배와 가공의 전 과정을 견학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이곳의 18홀 골프코스도 유명한데 여행객에게도 오픈되어 있고, 근처의 학갈라(Botanical Garden)는 누왈라 엘리야의 명소이다.
▶Sigiriya 시기리야
폴론나루와로부터 66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시기리야는 가파른 경사길을 따라 370미터의 화강암반 정상에 자리잡고 있는 "사자 바위(Lion's Rock)"가 사방으로 둘러싸인 밀림지대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시기리야의 바위산에는 5세기에 신할리왕조 제65대 왕 카사파 1세가 건설한 성채도시 유적이 있고 산기슭에는 정원과 담장들로 둘러싸인 시가지 유적이 있다. 높이 약 200m, 넓이 약 2㏊인 평평한 산 정상에는 좁은 계단과 작은 길을 연결하여 궁전·저수지·정원 등을 세웠으나, 지금은 벽돌로 된 기단만 남아 있다. 산 북쪽 중턱에는 성문 유적이 남아 있는데, 문 양쪽 옆에는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거대한 동물의 앞발 조각상이 있다. 문 중앙에는 왕궁으로 오르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일부만 남아 있다. 1982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40위 세이셸제도 라디게섬


▶세이셸은 아프리카 대륙의 동쪽 약 1600㎞ 인도양에 떠있는 92개의 섬들로 이루어진 섬나라이다. 적도의 바로 남쪽에 있지만 인도양 위에 있기 때문에 시원하고 진귀한 동식물에 둘러싸인 「인도양 최후의 낙원」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제일 처음에는 16세기에 포르투갈이 상륙했다고 하지만 19세기 초에 모리어스 제도와 함께 영국령이 되어 1979년 6월 세이셸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동부아프리카, 케냐동방 약 1580km 인도양 상에 위치하며, 면적 455평방 Km, 인구는 79,000名 (2000년), 수도는 빅토리아(Victoria), 공용어로는 영어, 프랑스어, 크레올어이고, 종족구성은 세이셀인, 종교는 천주교 90%, 성공회 8%이다.
세이셜 제도는 마스카렌 해령(海嶺)의 북단에 위치하는 고기(古期) 화강암질의 군도이다. 섬은 곤드와나 대륙이 분리했을 때 아프리카 대륙과 남부아시아 대륙 사이에 고립되어 남은 부분으로 추정된다. 지질적으로는 거 의가 화산섬으로 구성된 마다가스카르 부근의 섬들과는 다른 형태를 이루고 있다. 최대의 섬인 마에섬은 산이 많으며 최고점은 928`m에 달하여 전 제도 중에서 가장 높다. 그 밖에 프레슬린섬 라디게섬 실루엣섬 프로비덴스섬 등 이 있으며 큰 섬 외에는 거의 환초(環礁) 등의 산호초로 구성되어 있다. 적도 바로 아래에 위치하나 인도양에 있으므로 연평균기온은 26∼27`℃로 1년 을 통해서 큰 온도 변화는 없다. 12월부터 3월에 걸쳐 습기를 가진 북서몬순 이 불어오고 6월부터 10월에 걸쳐서는 남동무역 등의 영향을 받아 건계(乾 季)를 이룬다. 또한 진기한 동물과 식물이 풍부하여 ‘인도양 최후의 낙원’이라고도 일컫는다. 세이셀공화국의 알다브라 환초지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어 있다.
▶라디게 섬에는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허가해 주지 않는다. 우마차와 자전거만 허용된다.


39위 싱가포르


▶적도 북쪽 137km 지점에 있으며, 면적은 685.4㎢, 인구는 423만 3000명(2003)이다. 60개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조호르 해협을 가로지르는 둑길 위의 도로와 철도를 통해 서말레이시아와 이어지며, 남서쪽으로 말라카 해협을 사이에 두고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섬과 마주보고 있다. 수도는 싱가포르이며 언어는 중국어, 영어, 말레이어, 타밀어 등을 사용한다. 정식명칭은 싱가포르공화국(Repubic of Singapore)이다. 중국 표준어로는 신자포(新加坡), 타밀어로는 Singapore Kudiyarasu. 말레이 반도 남단의 섬으로 이루어진 도시국가.
싱가포르의 지형은 대체로 평탄하다. 낮게 굽이치는 경관 가운데 약 2/3가 해발 15m 미만의 평지이고 섬 중앙의 울퉁불퉁한 화강암 고지에 있는 최고봉 티마 산도 높이가 165m에 지나지 않는다. 섬의 동부는 언덕과 침식 계곡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낮은 대지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 고지의 남쪽과 서쪽에는 해안을 따라 일련의 낮은 벼랑과 얕은 계곡을 이루는 급경사면이 펼쳐진다. 짧은 하천들이 그물처럼 촘촘히 얽혀 있으며 싱가포르에서 가장 길다는 셀레타르 강도 길이가 16km에 채 못미친다. 연평균 강우량이 2,400㎜에 달하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물 공급의 2/3 이상을 이웃 말레이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월평균기온은 높은 편으로 1월의 25℃에서 6월의 27℃ 사이에 연중 고르게 분포한다. 연강우량도 상당히 고르게 분포하지만 북동 계절풍이 부는 11∼3월 사이에는 월평균 250㎜, 남쪽 계절풍이 부는 5∼9월 사이에는 178㎜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육지면적 가운데 2% 정도가 경작이 가능하며 토양은 대체로 메마른 편이다. 가경지에서는 현대적 집약농경이 이루어지는데 세계에서 과일과 채소의 생산성이 가장 높은 지대로 손꼽힌다. 국토 면적 중 약 4.9%가 삼림지로 자연보존위원회에서 관리한다. 우림(雨林)이 가장 울창한 곳은 중앙 고지의 티마 산 자연보호구에 있다. 많은 하천 가운데 특히 북쪽으로 흐르는 하천에는 홍수림으로 둘러싸인 넓은 하구가 내륙까지 깊숙이 뻗어 있다. 원래 우림지대였던 대부분의 지역이 관목지대로 바뀌었다. 포유동물로는 꼬리가 긴 마카크(아시아산 원숭이)와 천산갑(穿山甲) 등이 있다. 여러 종류의 조류, 코브라와 도마뱀도 많이 서식한다.
중국인이 전체인구의 3/4을 차지한다. 이들은 주로 푸젠성(福建省)과 광둥 성(廣東省) 출신이 많으며, 서로 통하지 않는 방언을 쓴다. 말레이인과 타밀족·말라얄리족·시크교도를 포함한 인도인이 나머지 인구를 구성한다. 공용어는 영어·중국어·말레이어·타밀어이다. 중국인은 대부분 유교·불교·도교를 믿는다. 말레이인들과 일부 인도인들은 이슬람교도이고 나머지는 그리스도교도이거나 힌두교도이다.
싱가포르는 주로 국제무역과 국제금융에 바탕을 둔 시장경제가 중심을 이룬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인구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한다. 싱가포르에는 100개 이상의 상업은행이 있는데, 대부분이 외국은행이다. 1968년에 아메리카은행의 도움으로 개설된 아시아 달러 시장이 싱가포르를 거점으로 주로 아시아계 기업에 대한 외국의 투자를 중개한다. 싱가포르는 영연방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ASEAN)의 회원국이다. 주요 교역대상국은 미국·말레이시아·일본이며, 원유·자본재·공업원료가 수입의 주종을 이루는 한편 석유제품, 전기기구와 섬유 완제품을 비롯한 공산품 등을 수출한다. 제조업 부문의 급성장으로 중계무역에 대한 의존도는 줄었지만, 싱가포르는 연간 출입 선박의 총 t수로 따져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큰 항구 가운데 하나이다.


38위 두바이


▶인구는 91만정도이다. 아랍에미리트 연방을 구성하는 7개국 중의 한 나라로, 전에는 트루셜오만의 구성국 중 하나였다. 두바이는 아랍어(語)로 ‘메뚜기’를 뜻하며, 토후국 중 유일한 국제 무역항으로 발전하여 중계무역지가 되었다. 1969년부터 석유를 수출하기 시작했으며, 1971년에는 650만 t의 원유를 수출하여 새로운 산유국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엄청난 오일달러를 투입해 중동의 허브로 발돋움하기 위해 매일 변하고 있다. 아랍 에미리트 연합에 약 1세기전 석유가 발견되어 생산되기 이전에 두바이는 작은 촌락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석유가 발견되고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두바이에는 고속도로가 뚫리고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가 들어서 사막위의 신기루처럼 도시가 생성된 것이다. 현재는 두바이 비치에 세워진 7성급 호텔인 버즈 알 아랍 호텔(Burj Al Arab Hotel)이 전 세계적으로 화보집이나 달력, 인터넷 매체를 타고 인기를 얻으면서 자연스럽게 두바이라는 도시도 유명해졌으며 2005년 5월 1일부로 매일 1회씩 아랍 에미리트 항공의 직항이 한국과 개설되면서 한국 관광객들도 점차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바다를 항해하는 거대한 아라비아 돛단배를 형상화해서 만들어진 버즈 알 아랍 호텔(Burj Al Arab Hotel)은 지금은 타계한 통치자 셰이크 라시드(Sheikh Rashid)가 정책적으로 건축하도록 한 두바이의 명물로 당시까지 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두바이를 세계에 알리는 일등공신 역할을 하고 있다. 발상의 전환이 만든 '세계 최대' '세계 최고'의 허브 "두바이 도시 전체가 세계 8대 불가사의다."
야자수 모양의 매혹적인 인공섬 '팜 주메이라'는 지상과 낙원의 경계에 놓여있는 듯했다. 하얗다 못해 차라리 푸르러 보이는 모래 백사장과 끝없이 펼쳐진 쪽빛 바다, 해안가에 입을 맞추는 부드럽게 일렁이는 바닷물 위로 우뚝솟은 거대한 인공섬 팜 주메이라는 그 자체가 `위용`이었다. 유람선 위에서 바라본 팜 주메이라는 아직 미완성이다. 하지만 엄청난 규모와 기획력에 인간 상상력의 끝은 어디인지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길이가 400m가 넘는 팜 주메이라의 각 줄기섬에는 형형색색의 최고급 빌라 수천가구가 한창 공사 중이었다. 바다의 한 지점을 돌과 흙으로 막아 달에서도 보이는 인공섬을 만들겠다는 이 야심찬 프로젝트는 분명 눈앞에 펼쳐져 있건만 인간의 힘으로 만든 것이라고 믿기지 않는다. 사막으로 사방이 가로 막혀있지만 `공간의 한계`에 전혀 구속당하지 않는 두바이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지금의 두바이와 미래의 두바이를 엿보게 하는 상상력의 힘이기도 하다.
▶두바이를 관통하는 발상의 전환= 흔히들 두바이의 천지개벽을 '오일달러의 힘'으로 잘못 생각하기 일쑤다. 그러나 두바이 곳곳을 다니다보면 이 천지개벽의 출발점은 '석유'가 아닌 '발상의 전환'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지난 1966년 처음 석유를 발견한 두바이는 2026년까지는 걱정없는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두바이 지도자였던 세이크 라시드는 석유의 발견과 함께 석유자원의 고갈을 염두에 두었다. 그리고 그는 겨우 60년치 밖에 안되는 석유자원의 고갈을 두바이 민족의 멸망이라는 객관적인 위기의식으로 전환시켰다. 두바이 민족의 존립을 위한 비전을 두바이 뿐 아니라 전세계에 공고히 한 것이다. 두바이 천지개벽 참관단의 삼성생명 금융연구소 주창돈 상무는 "이슬람 국가로서 두바이에 홍콩이나 싱가포르와 같은 개방적인 허브 도시를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두바이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중동의 허브가 되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단기, 중기, 장기의 로드맵도 정확하게 그려나갔다"고 평가했다. 라시드의 이같은 발상의 전환은 그의 아들 세이크 모하메드로 이어지면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중동의 허브' 두바이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한다. 팜 주메이라는 물론 팜 데이라, 팜 제벨알리, 더 월드에 이르기까지 인공섬들을 가득 메운 것은 돌과 흙이 아닌 무한대로 치닫는 '역발상'이다. 발상의 전환과 인간의 한계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정신은 두바이의 현재와 미래를 만든 핵심코드다. 4개의 인공섬으로 새롭게 탄생하는 인공해변 길이는 1100Km로 경부고속도로의 3배에 육박한다.
▶천지개벽의 총 지휘자, 세이크 모하메드= 두바이의 천지개벽은 세이크 라시드가 시작했지만 그 정점에는 현 왕세자 세이크 모하메드가 있다. 모하메드는 두바이의 정치, 경제, 산업, 관광을 아우르는 총 지휘자다. 그는 실질적으로 두바이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영국의 군사학교를 졸업한 모하메드는 인공섬과 인터넷시티 등 두바이 개발사업의 각종 아이디어를 직접 내놓는가하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땅을 기증해 천지개벽을 일궈냈다. 두바이의 천지개벽은 존경받는 왕권정치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두바이는 모든 토지가 국왕 소유로 엄청난 개발에도 불구, 민원과 보상으로 골치를 썩는 일이 없다. 모하메드의 의지만 있다면 어떤 지역도, 어떤 규모로든 개발할 수 있다. 모하메드는 그러나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지 않고 극대화시킨 위대한 지도자다. 세이크 모하메드는 각계 전문가 2000여명으로 구성된 씽크탱크를 직속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이를 통해 두바이 개발과 관련된 각종 사안들을 빛의 속도에 비유될 정도로 빠른 속도로 결정한다고 한다.
세이크 모하메드와 씽크탱크가 두바이 개발에 얼마나 치밀한 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두바이는 대형 개발사업을 추진할 때 민간 디벨로퍼에게 99년 임대조건으로 토지를 판다고 한다. 이때 땅값을 계산하는 방식이 독특하다. 표면적인 땅값은 250만원 안팎으로 불모지를 바꾼 땅값 치고는 그다지 비싸지 않다. 그러나 실제 계약서상의 땅값은 여기에 해당 지역 용적률을 곱해 산출한다. 평당 250만원인 땅값에 용적률 600%만 적용해도 평당 땅값은 15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사업시행자가 얼마나 치밀하고, 철저하게 개발을 추진하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두바이 최대 부동산 개발회사인 엠마와 낙힐의 실질적 소유주는 세이크 모하메드다.
▶두바이 전체가 세계 8대 불가사의=두바이의 기적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두바이는 이미 20년전인 1985년 중동 최초로 제벨알리 항구의 배후지역에 제벨알리 경제자유구역(프리존)을 설치했다. 두바이 공항자유무역지대를 만든 것도 벌써 10년째다. 일찌감치 앞선 마인드로 허브를 구축하기 위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왔다. 두바이 개발은 최근들어 더욱 무서운 속도를 내고 있다. 특이한 점은 두바이의 각종 개발사업에는 항상 '세계 최대',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것. 홍콩과 싱가포르를 앞서는 허브를 위해서는 '평범함'으로는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800m 높이의 세계 최고층 빌딩 버즈두바이와 골프장과 주거시설을 포함, 미국 디즈니랜드의 8배가 넘는 두바이랜드, 인공섬 프로젝트로는 세계에서 전무후무한 팜 아일랜드, 세계 최고급 7성호텔 버즈 알아랍(사진)에 이르기까지 두바이의 최고 정신이 녹아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를 압도하는 것은 두바이의 천지개벽이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 최근 두바이 정부는 제벨알리 내륙지역에 40억달러 안팎의 대규모 크릭(인공수로) 건설을 계획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안 인근지역의 개발은 거의 마무리 단계로 이제 광활한 내륙 사막지역의 공략에 나선 것이다. 이 크릭이 완공되면 현재 두바이 곳곳에서 진행중인 개발사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초대형 프로젝트가 또다시 넘쳐날 전망이다. 끝없는 발상의 전환과 피와 땀, 강력한 지도력을 바탕으로 두바이는 인간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고 있다. 우리가 두바이 전체를 '세계 8대 불가사의'로 부를 수 있는 것은 이 도시가 도무지 한계를 느낄 수 없는 무한대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원종태 기자)


37위 스페인 바르셀로나


▶이베리아반도 북동쪽과 지중해안의 우수한 위치에 자리잡은 바르셀로나는 크기나 인구면에서 스페인 제 2의 대도시이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의 자치구의 까딸루냐의 수도이기도 하다. 까딸루냐어와 스페인어 두 가지의 공식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현대 바르셀로나는 19세기 후반에 공업화가 시작되면서 경제적 성장을 이루게 된다 .바르셀로나는 예로부터 예술활동이 번성하였고 그 지역을 대표하는 현대 예술이 생겨 난곳으로 유명하다. 단일도시 이상인 바르셀로나는 다면적이고 다양한 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인구는 31만 1,475명(2000)이다. 카라카스에서 동쪽으로 333km 떨어진 곳에 있다. 카리브 해안에서 약 5km의 내륙, 네베리강(江) 연안에 위치한다. 연평균기온은 26.7℃. 1960년대에 관타·푸에르토라쿠르스 공업지대의 일부로서 발전하였다. 주변지역은 콩·카카오·커피·목화·옥수수 등을 재배하는 농업지대이며, 그 상업중심지를 이룬다. 주요 탄전도 부근에 있으며, 주의 석유산업발전과 함께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였다.
▶교통정보
항공편 - 바른셀로나공항이 시 남동쪽 12km지점의 엘 프라트 데 요가레트 구역에 위치.
기차편 - 파리,제네바,쮜리히 ,밀라노행 국제 열차가 항구 인근에 위치한 산츠 역에서 출발
▶숙박정보- 바르셀로나에서 이용할수 있는 호텔객실은 5성급,4성급,3성급호텔을 포함하여 총25,000개에 이른다. 등급별로는 5성급 호텔이 6개,4성급 호텔이 48개,ㄴ3성급 호텔이 60개가 있다.
▶날씨정보- 바르셀로나의 기후는 전형적인 지중해성기후다.평균 기온은 겨울이 11도이며 여름은 24도이다. 12월과 1월이 가장 추운 달이며 가을과 봄이 일반적으로 우기에 해당한다.
▶쇼핑- 까딸루냐광장에서 폴탈 데 란젤거리를 따라가면 portaferrissa거리에 다다르는데,이 곳에는 두개의 백화점과 의류 악세사리, 기타 물건을 파는 상점들이 늘어선 쇼핑지역이다. 시의 고지대인 다아아고날지역은 또 다른 흥미있는 쇼핑지역이다. 이곳에는 두개의 백화점과 함께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유명한 디자인 부띠끄가 있다. 그로리에스 카타라네스광장에는 모든종류의 고 물건과 신상품을 파는 Mercat de les Encants벼룩 시장이 선다.
▶주요관광지
1.고딕지구 -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인 고닥 지구는 시의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 근처에는 바르셀로나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까딸루냐광장이 있다. 람브라스거리는 까딸루냐광장에서 항구의 콜롬부스 전망대까지 이어진다. 항구앞의 Avinguda del paral-lel이라는 도로는 피라 데 바르셀로나 경기장이 위치한 스페인광장으로 연결되어 있다. 아빈구다 레이나 마리아 크리스티나에서 1992년 올림픽경기를 위핸 건설된 여러 스포츠 시설이 잇는 몬쥬익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파라우 나시오날이 보인다.
2.리베라 지구 - 고딕지구에서 비아 라이에타나로 분리되는 첫번재 성벽 바깥지역이 리베라 지구이다. 이 지구는 원래 중세시대의 상인들이 거주했던 산 페레지구와 뱃사람들이 거주했던 산타 마리아 델 마르 지구로 분리되어 있다.특히 15번지에는 정원과 장식 창문, 야외 계단이 특징적인 15세기 건축물인 피카소 미술관이 있는 아길라 저택을 볼 수 있다.
3.레산프레지구와 현대 건축 - 레산프레 즉,"확장" 지구는 다이아몬드 형태의 교차로로 된 격자구조의 도로로 형성된 바르셀로나시의 중심지역이다.이곳은 19세기 후반에 도시 확장계획에 기초하여 도시가 확대된것을 반영하고 있다. 그라시아 대로 왼편으로 가면 Luis Demenechi Montaner의 작품인 레오 모레라 저택으로 꽃을 주제로한 현대적 양식의 현관이 특징적이다. 또한 다채색의 자기로 현관이 장식된 신고딕 양식의 아마트렐 저택과 용을 주제화한 모자이크 현관이 아름다운 가우디작품의 바트요 저택을 볼수있다.
4.람브라 지구 - 람브라라고 칭하는 거리는7개 의 각각 다른 이름을 가진 구역을 되어 있으며 랍브라지구에서 가장특색있는 곳은 보케리아시장으로 신선한 야채와 육류, 생선으로 끝없이 연결된 가판대와 한잔의 술을 즐길수 있는 바가 늘어서 있다.
5.골동품 벼룩시장 - 대다수의 골동품상점도 역시 레산프레에 있다. 그라시아 대로에 있는 쇼핑센터의 1층에 73개의 골동품 상점이 있는 골동품 거리가 있다. 대 성당 광장에서는 매주 목요일골동품 벼룩시장이 열린다.
6.벨항구 - 바르셀로나의 새로운 오락단지이다. Juan de BorbOn거리와 Rambla de Mar거리는 산책하기 좋은 코스로서 항구의 장엄한 풍경을 감상할수 있다.


36위 미국 샌프란시스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도시. 태평양 연안에서는 로스앤젤레스에 이은 제2의 대도시이다. 샌프란시스코만(灣)에 면한 천연의 양항(良港)으로, 골든게이트에서 남쪽 서안(西岸)에 위치한다. 시가는 반도의 북쪽 끝을 차지하며, 북쪽은 골든게이트 브리지(金門橋)에 의해서 대안(對岸)의 마린 반도(半島)에 이어지며, 동쪽은 샌프란시스코만을 넘어 오클랜드와 마주 보고 있다. 이 사이에는 길이 13.5km에 이르는 샌프란시스코-오클랜드 베이 브리지가 걸려 있다. 신흥도시 로스앤젤레스가 최근에 샌프란시스코를 앞지를 때까지는 오랫동안 태평양 연안 제1의 항구이었으며, 지금도 세계 유수의 항만 도시 및 국제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골든게이트 브리지(金門橋)는 San Francisco의 상징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이 지역에 금이 많이 나와 이곳 항구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금을 캐기 위해 드나들었기 때문에 골든-게이트 브리지라고 한다. 미국 서남부의 골든게이트 해협을 사이에 두고 남쪽의 샌프란시스코와 북쪽의 마린반도를 연결하는 강철로 만든 현수교(懸垂橋), 금문교(金門橋)라고도 한다. 길이 2,825m. 1933년에 착공하여 37년에 완공되었다. 탑은 오렌지색으로 칠해져 있고, 2줄의 케이블을 지탱하고 있는 탑의 높이는 약 227m, 기둥 사이는 약 1280m로 뉴욕 베라자노내로우즈교(Verra-zanoNarrows Bridge)에 이어 세계 제 2 위의 다리이다. 이 6차선의 자동차 전용 다리 밑으로는 대형선박이 통과할 수 있다.


35위 이탈리아 로마


▶이탈리아는 지중해 중앙부, 북서에서 남동으로 약 1200km에 걸쳐 장화 모양을 한 반도와 시칠리아·사르데냐 두 섬으로 구성된다. 북쪽은 알프스 산맥을 경계로, 프랑스·스위스·오스트리아와 접하며, 동쪽은 아드리아해(海), 서쪽은 티레니아해에 면한다. 이탈리아 반도는 발칸·이베리아 반도와 함께 남유럽의 3대 반도의 하나로서 동(東)지중해와 서(西)지중해 사이에 위치하기 때문에 자연·문화면에서 두 반도와는 달리 순수한 유럽형을 이루고 동시에 지중해 지역의 특색을 가장 잘 나타낸다. 행정구역은 15개주(regione)와 5개 자치지역(regione autonoma)으로 되어 있다.
이탈리아는 산지와 구릉이 풍부하며, 평야는 전국토의 약 1/5로 협소하다. 가장 큰 평야는 포 평원(55,000㎢)이며, 그밖에 캄파니아 평야(1,900㎢) 등 소규모의 평야가 분산되어 있다. 지형상 알프스·포 평원·반도부·도서부(島嶼部)의 4개 부분으로 나뉜다. 이탈리아에 속하는 알프스는 서쪽으로 제노바만(灣)(Golfo di Genova)의 카디보나에서 아드리아해 북쪽의 트리에스테까지 뻗어 있으며, 서(西)알프스·중(中)알프스·동(東)알프스로 구분된다. 서알프스의 안쪽은 함몰(陷沒)되어 형성된 평원을 둘러싸고 있다.
로마는 중부의 아펜니노산맥에서 발원하는 테베레강(江) 하류에 면하며 주로 홍적대지로 이루어진 구릉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시의 중심부이며 또 로마가 기원한 티베리나섬 부근은 테베레강 하구에서 약 25km 떨어진 곳에 있다. 로마의 발상지는 테베레강 좌안, 카피톨리노 구릉을 중심으로 한 지대로서 현재에도 남아 있는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의 시벽(市壁)이 고대 로마시의 규모를 나타낸다. 중세의 로마는 테베레강 우안, 산피에트로가 순교한 바티칸 언덕에 건설된 산피에트로대성당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 종교지구로 고대 로마의 시가지는 석조건조물과 함께 폐허가 되었고 흙과 모래에 매몰된 채 방치되었다. 르네상스시대에 이르러 ‘르네상스 교황들’ 밑에서 주로 고대 로마시의 북부에 새로운 시가지가 건설되었는데, 고대조각 오벨리스크 등의 몇 개는 르네상스·바로크 시대에 건설된 광장과 건물을 장식하기 위하여 이동되었고, 콜로세움 등에 사용되었던 대리석도 헐려서 새로운 건조물에 사용되었다. 이와 같이 로마의 고대도시 부분은 대부분 폐허가 되었지만, 현재에도 유적으로서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고대의 유적이나 카타콤 등은 고대 로마의 주요 가도(街道)였던 아피아 가도 연변에 많이 남아 있다. 로마의 구시가 부분은 르네상스·바로크 시대에 그 기본적인 계획이 세워졌던 곳으로 이곳에 고급 상점가와 정부기관이 많이 집중되어 있다. ‘종착역’에서 로마의 번화가 베네토 거리에 이르는 지구는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 발달하였다. 구 시가의 북쪽, 핀키아나문(門)과 포폴로문 사이에 있는 보르게세 공원이 현재에는 시의 중심부에 위치하게 되었으나, 본래는 17세기 초에 건설되어 계속 보르게세가(家)의 소유였던 것을 1902년 이탈리아 왕가가 매수하여 로마시에 기증한 것이다. 이 때문에 현대 로마는 시의 중심부에 광대한 녹지대를 소유하게 되었다. 테베레강 우안에는 몬테마리오 및 자니콜로 언덕 등 높이 약 100m에 이르는 높은 구릉이 있고, 이 구릉지대는 1930년대부터 택지로 조성되기 시작하여 제2차 세계대전 뒤 로마 중산계급의 주택지로 발전하였다. 시가지로서 특수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에우르(EUR)인데 이는 무솔리니 정권시대에 만국박람회장으로 설계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만국박람회가 중지된 뒤에는 관청가·고급주택가를 이루는 부도심지로서 다시 구획되었다. 따라서 이곳에는 파시즘 양식의 의고적(擬古的) 건축과 현대건축이 병존하고, 정부의 몇 개 부(部)와 국영 콘체른 에니(ENI) 등 관청이 모여 있으며 근대적 건축물과 로마 구시가에서는 볼 수 없는 몇 개의 마천루도 솟아 있다.
로마는 현대 이탈리아 문화의 중심지이며, 또 그 오랜 역사를 반영하여 고대로부터 르네상스·바로크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문화유산을 지니고 있다. 베네치아광장·바티칸광장·포폴로광장·바르베리니광장으로 둘러싸인 지대는 르네상스에서 바로크시대에 걸친 도시계획에 의하여 건설된 지역으로, 이곳에는 많은 역사적 건조물이 집중되어 있으며, 그 중 몇 개는 현재 총리부·상하 양원 등의 정부기관 건물로 사용된다. 또 나보나광장·트레비분수·에스파냐광장 등 관광할 곳도 많다. 근대미술관·보르게세미술관·로마국립박물관·카피톨리노박물관 등 수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있으며, 바티칸시국에는 바티칸도서관 및 바티칸박물관이 있다. 이밖에 성당과 옛 건조물에는 많은 미술품이 보존되어 있다. 고대로마 유적은 카피톨리노·팔라티노·카일리오·아벤티노·에스퀼리노·비미날레·퀴리날레 등 7개 구릉지대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곳에 포룸 로마눔도 있다. 로마의 출판·예술활동은 밀라노만큼 활발하지 못하나, 현대미술 등 밀라노와는 색다른 독자적 경향을 지닌 것이 많다.
또 바티칸의 존재와 결부하여 로마에는 가톨릭 관계의 국제적인 연구·교육·문화기관이 많다. 특색 있는 문화활동으로서 영화제작이 있으며, 이것은 무솔리니 정권시대에 로마의 동쪽 교외에 건설된 치네치타가 그 중심이다. 1960년 올림픽 경기가 개최되기도 하여 시내에는 스포츠 시설이 많다. 올림픽 메인스타디움이 있었던 포로이탈리코는 무솔리니 시대에 건설이 시작된 것으로 시의 북부, 테베레강 우안에 있으며 테베레강을 사이에 두고 대안에는 본래 올림픽촌이었던 공무원 아파트가 있다. 포로이탈리코에는 이탈리아 방송(RAI)의 공회당도 있다.


34위 이집트 룩소르


▶룩소르는 카이로에서 비행기로 1시간, 열차로는 10시간 이상이 걸리는 남부 이집트의 대표적인 유적지이다. 고대 왕국의 수도 테베의 일부인 룩소르는 최전성기 1500 B.C.에는 인구가 1천만명이 넘는 대도시로 전해지며, 호머의 '일리아드'에도 그 화려함이 묘사돼 있다. 이곳에 그 유명한 카르낙 신전과 룩소 신전이 거대하게 장엄함을 뽐내고 있으며 오벨리스크가 하늘 높이 치솟아 있다. 룩소르 신전의 오벨리스크 둘 중 하나는 나폴레옹 침공시 프랑스로 옮겨져 현재는 파리의 뽕피두 광장에 있다. 그래서 인지 룩소르의 분위기는 무언가 빠진듯한 어설픈 인상을 지울 수 없는 도시이기도 하다.
룩소르는 나일강에 의해 동서로 대별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태양이 뜨는 나일강 동쪽에 신전을 지었고,태양이 지는 서쪽은 주로 묘지나 제전 등을 지었다. 따라서 나일강 서쪽은 사자(死者)의 도시,네크로폴리스(necropolis)이며 이곳에 그 유명한 왕들의 계곡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피라미드 시대 다음인 1580-1085 B.C.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다. 도굴 방지를 위해 깎아지른 듯한 암벽 위에 조그만 구멍을 파고 그 지하에 미로(迷路)로 연결된 보물 창고, 분묘 등이 있고 바위 표면을 뚫어 신전을 지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64기가 발견되었고 그중 9기만을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기후
나일계곡이라고 불리는 폭 1~20km의 초원지대로 기후는 비교적 온화하다. 강변을 걸으면 그늘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여름이라도 약간 시원하다. 그러나 햇볕은 강력하다.

▶룩소 신전(룩소)
룩소르의 중심지이고 나일강변에서 돋보이는 장소에 거대한 신전이 있다. 이것이 신왕국시대의 황금기였던 약 200년 사이에 걸쳐 완성된 대 신전이며 비교적 모든 부분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조형성 넘치는 건축물이다. 제18대 왕조 아멘헤테프 3세가 창건, 후에 람세스 2세가 탑문과 제1중정을 부설했다. 원래,카르낙 신전의 부속 신전으로 건립됐기 때문에 카르낙 신전과 참배길이 연결돼 있어 왕조 시대에는 매년 신년이 되면 배의 출영식이 성대히 행해졌다.
동 신전은 나일강 동안에 나일강을 따라 남북으로 건축되었으며 폭 40 - 70m 길이 180 - 200m 정도의 규모이며 태양신 AMUN을 숭배하기 위한 신전이다.
- 신전 탑문 앞에서 시작되는 스핑크스 대로는 2km 정도 떨어진 KARNAK 신전까지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 정문 외벽에는 KADESH 전투(RAMESES 2세가 HITTITES 족을 격퇴) 장면이 벽화로 묘사되어 있으며,정문 좌우에 RAMESES 2세의 좌상 2개 및 입상 4개가 세워져 있었으나, 현재는 좌상 2개와 입상 1개만 남아 있다.(입상 2개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 또한, 정문 좌우에 원래 2개의 OBELISK가 있었으나 하나는 19세기에 MUHAMMAN ALI 왕이 프랑스에 기증(콩코드 광장에 전시)함으로써 현재 하나만 남아 있다.
- 탑문 안쪽의 RAMESES 2세 광장에는 TUTHMOSIS 3세(BC 1504 - 1450간 재위) 당시 건축된 성소가 남아 있으며, 또한 후대에 건축된 회교 모스크 건물이 광장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동 광장 주위를 74개의 기둥이 2중으로 둘러싸고 있다.
- AMENHOTEP 3세의 열주 RAMESES 2세 광장을 지나면 AMENHOTEP 3세의 열주(16미터 높이의 파피루스 모양을 가진 기둥 14개) 있으며 RAMESES 2세의 석상들이 기둥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 AMENHOTP 3세의 광장 열주를 지나면 AMENHOTEP 3세의 광장(약 2,400평방미터)이 나오는 데 RAMESES 2세의 광장과 모양이 유사하며 파피루스 모양의 기둥이 광장 3면을 2중으로 둘러싸고 있다.
- 신전 내부 AMENHOTEP 3세의 광장을 지나면 32개의 기둥이 배열된 다주식 광장(HYPOSTYLE HALL)이 나오며 다주식 광장을 지나면 8개의 기둥이 있었던 제 1 전실에 이른다. 제 1 전실(ANTE CHAMBER)은 서기 4세기에 기둥들이 제거된 후 콥틱교회 예배장소로 변경되었으며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제 1 전실을 지나면 4개의 기둥이 있었던 제 2 전실이 있고 그 안쪽에 태양신 AMUN의 성스러운 배를 모셨던 지성소가 위치한다.
-가는방법 : 룩소르 역에 도착하면 역앞의 큰길을 똑바로 가면 나일강에 다다르는데 그 역 앞거리가 중심가이다. 이 거리를 500m 가량 가면 룩소르 신전이 나온다.
-개장시간 : 매일 07:00-21:00시

▶왕가의 계곡(룩소)
신왕국 시대의 파라오들이 도굴을 피하기위해 암굴을 파서 만든 묘지로 모든 묘가 바위를 뚫고 만든 것이다. 그러나,현재까지 발견된 64개의 묘가운데 도굴을 면한 것은 겨우 투탄카멘의 묘 뿐이다. 중요한 묘는 동쪽 계곡에 있다. 그 중 최대는 세티1세의 묘로 투탄카멘 묘의 20배에 달한다.
- 신왕조 초기 무덤(예:TUTHMOSIS 3세)
통로가 직각으로 굽어진 형태이며 내부 벽화 바탕색이 엷은 황색(파피루스 색)이고 사자의 서 내용도 단순하다.
- 후기 무덤(예 : SETI 1세)
통로가 직선 형태로 오렌지색 벽화 바탕에 다양한 내용의 사자의 서를 기록하고 있다.
- 투탕카멘의 무덤
너무나도 유명한 무덤으로 20세기 초에 발굴되었으며 현재 황금마스크를 포함한 수많은 부장품이 카이로의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왕의 미이라는 지금도 현실에 안치되어 있다. 현실 정면의 벽에는 오시리스 신의 모양을 한 투탕카멘 왕과 후계자인 아이 왕이 묘사되어 있다.
- 투트메스 3세
현실의 선묘화가 아름답지만 실내가 어두우므로 손전등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 아멘호테프 2세
현실의 6개의 기둥이 오시리스신·아누비스신·하토르신·호루스신과 함께 아멘호테프 2세가 그려져 있다.
-가는방법 : 룩소르 역에 도착하면 역앞의 큰길을 똑바로 가면 나일강에 다다르는데 그곳에서 배를 타면 왕가의 계곡에 도착한다. 배는 일반용과 관광용의 2종류가 있는데 일반용은 동쪽 강변의 여러 곳에서 떠나 약간 비스듬히 맞은편 강변에 도착하지만 관광용은 윈터 팰리스 호텔 앞에서 떠나 약간 하류의 선착장에 닿는다.
-개장시간 : 여름 06:00-17:00 시, 겨울 06:00-16:00 시

▶카르낙 신전(룩소)
태양신 AMUN 신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MUT 신전, MONTU 신전,KHONSU 신전 등 LUXOR의 수호신들을 모신 신전들이 기본 신전들로 배치되어 있으며,TUTHMOSIS 3세의 신전,AMENHOTEP 2세 및 3세의 신전,RAMESES 3세의 신전 등 다수의 소규모 신전들도 복합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고대 이집트 중왕국 시대의 제 12왕조(BC 20세기)때부터 건축되기 시작하여 프톨레미 왕가(BC 1세기)에 이르기까지 약 2000년에 걸쳐 계속 증축되어 왔으나,기본 구조는 제 1 탑문(PYLON)이 건설된 제 25왕조(BC 7세기)때 완성된 것으로 알려진다. 전체 신전 배치는 남북으로 되어 있으나,AMUN 신전은 동서로 배치 되어 있으며 전체 신전 규모는 남북으로 2km,동서로 500 - 600m 정도 크기이다.
AMUN 신전 제 1 탑문(정문) 앞 입구에는 양의 머리에 사자의 몸통을 가진 스핑크스들이 도열한 스핑크스 대로가 남쪽으로 약 2km 떨어진 룩소르 신전 입구까지 연결된다. AMUN 신전의 제 1 탑문을 지나면 22왕조때 건축된 대광장(GREAT COURT)이 나온다. 넓이가 약 8,650평방미터에 달하는 대광장의 북쪽에는 AMUN신,MUT신,KHONSU신의 성스러운 배를 모셔두었던 SETI 2세의 신전이 있고,대광장의 남쪽에는 RAMESES 3세의 신전이 있다. 대광장을 지나면 제 2 탑문 앞에 붉은 화강암으로 조각된 RAMESES 2세의 석상을 볼 수 있다. 제 2 탑문은 18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호렘헵이 건축을 시작하여 19왕조 RAMESES 2세때 완성되었다.
제 2 탑문을 지나면 열주전(GREAT HYPOSTYLE HALL)이 나오는데 그 넓이는 5,356평방미터로서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과 런던의 성바울성당의 크기를 합친 것과 같다고 한다. 이 열주전은 134개의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중앙 12개(좌우 6개씩) 기둥은 아멘호텝 3세가 건축하였으며 외곽의 파피루스 모양의 122개 기둥들은 세티 1세가 건축하기 시작하여 람세스 2세때 완공되었다. 가운데 12개 기둥과 외곽의 122개 기둥간의 높이 차이를 이용하여 햇살을 받아들이는 창문을 천장에 건축하였다. 고대에 기둥을 채색한 흔적이 아직도 기둥 윗부분에 약간씩 남이 있다.
제 3 탑문은 아멘호텝 3세때 건축되었으며,제 4 탑문은 툿투모세 1세때 건축된 것을 세티 2세가 복원하였다. 제 3 탑문과 제 4 탑문 사이에는 작은 광장(SMALL COURT)이 위치하며,동 광장에는 툿투모스 1세의 OBELISK가 있다.(높이 23미터,무게 143톤) 제 4 탑문 안쪽에는 핫셉슈트 여왕의 OBELISK가 있다.(높이 27.5미터,무게 320톤) 툿투모세 1세와 3세가 건설한 제 5 탑문과 제 6 탑문을 지나면 태양신 AMUN의 지성소에 도달한다.
지성소는 동쪽과 서쪽으로 개방되어 일출과 일몰 때 햇살이 AMUN신의 지성소를 비출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지성소는 2중 구조로 되어 있는데 외실은 툿투모세 3세가 건축한 것이며 내실은 기원전 3년경 프톨레미스 왕조가 건설하였다. 지성소 남쪽에는 제사장들이 종교의식을 행하기 전 목욕 재개하던 성스러운 호수가 있고,성스러운 호수 입구에는 고대 이집트에서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던 딱정벌레(SCARAB)의 석상이 있다. 호수 입구쪽에 핫셉슈트 여왕의 누워있는 OBELISK가 있다.
-가는방법
룩소르 역에 도착하면 역앞의 큰길을 똑바로 가면 나일강에 다다르는데, 그 역 앞거리가 중심가이다. 이 길을 북쪽으로 3km 정도 간 곳에 카르나크 신전이 있는데 자전거를 빌려서 가는 것이 좋다.
-개장시간 : 매일 09:00 ~ 16:00시

▶합세슈트장제전
이집트를 통치했던 유일한 여왕 합세슈트의 무덤


33위 에콰도르 갈라파고스제도


▶남아메리카 에콰도르에서 서쪽으로 약 9백60km를 가면 동태평양 적도 아래에 갈라파고스 (Galapagos)제도가 있다. 13개의 큰 섬과 6개의 작은 섬,그리고 수많은 암초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면적은 7천8백50km2. 가장 큰 이사벨라섬의 면적은 5천8백km2로,제주도 보다 3배 이상 크다. 그러나 최고봉은 1천4백32m로 한라산 보다 낮다. 다른 섬들은 면적이 작고 고도는 해발 4백m 내외로 비교적 평탄하다. 갈라파고스는 약 2백만에서 5백만년 전 화산활동으로 형성됐다. 이사벨라섬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화산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갈라파고스의 환경은 매우 다양하다. 돌과 선인장 뿐인 황무지 같은 섬도 있지만, 산타크루즈 처럼 열대해역에 발달하는 홍수림(紅樹林,mangrove)이 있는 섬도 있다.
갈라파고스제도의 공식 명칭은 '콜론제도'이다. 이 이름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지 4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붙여졌다. 갈라파고스의 섬들은 공식적으로 불리는 이름 외에도 한 두개의 이름을 더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산살바도르섬은 산티아고섬 또는 제임스섬으로도 불린다. 영국식 이름은 영국 해적들이 은신처로 쓰면서 붙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열대 지방인 만큼 후끈한 더위와 습기가 엄습해오는 곳이다. 적도 바로 밑의 땅이므로 햇살이 강력하고 무덥다. 적도 지대임에도 불구하고 한낮에도 30 C 정도로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갈라파고스 국립공원
에콰도르의 과야킬시에서 1시간30분 정도의 거리에 갈라파고스 제도가 있다. 진화론으로 유명한 찰스 다윈이 이섬을 찾은 것은 1835년이다. 그는 영국 해군의 관측선 비글호에 생물학자로서 승선하여 남반구를 향해해가면서 동식물과 지질관찰에 종사하던 중에 발견한것이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해저 화산으로 인해 생긴 섬으로 여기에 사는 동식물은 오랜 옛날 대륙에서 큰가지를 타고 떠내려 오거나 폭풍에 떠내려 온 표류자들이다. 먼섬에 도착한 표류자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어떤 곳에서도 발견할수 없는 독특하고 고유한 형태의 "종"을 만들어냈다. 해초를 섭식하는 바다도마뱀, 선인장을 먹는 육지 이구아나, 거대한 코끼리, 거북이, 날지 못하는 가마우지 등이 이곳에서 사는것이다.

▶찰스 다윈 연구소
찰스 다윈이 생물 진화론을 발표해 큰 파문을 일으킨 갈라파고스 군도에는 그의 연구 정신을 이어받아 현재 각 나라에서 다양한 분야의 권위자들이 모여 동식물의 보호와 관찰을 하고 있다. 특히,거북이의 사육 관찰이 왕성하며 새끼 거북이를 사육하고 있는 이외에 연구소 밖에서 거북이의 생태를 볼 수 있다. 이곳은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유일하게 거북이를 만지는 것이 허락되어 있다.또한 박물관엔 갈라파고스의 역사와 동식물 상태가 알기 쉽게 전시되어있다. ?가는방법 : 시내에서 도보로 20분(약 1km) 거리에 있다.
-개장시간 : 개관 시간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다.
-입장료 : 무료


32위 케냐 마사이마라


▶케냐는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체제이다. 농업에는 노동력의 4/5정도가 고용되어 있는데 총생산의 절반 이상이 자급용의 생산이며, 주식인 옥수수·밀·우유 등이 부족하여 식량 수입을 해야할 때도 있다. 커피와 차가 케냐의 주요 수출품이다. 독립 이후 좋았던 경제성장은 1976년 이후 세계적인 경기침체 석유부족 가뭄과 인구 증가로 하락되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두드러진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있는 나라이지만, 케냐의 출산율은 이례적으로 높아 인구가 급성장하고, 이로인해 경제기구의 일거리와 토지 및 사회복지사업 제공능력에 대한 압박을 가중시키고 있다. 케냐 주민의 평균연령은 낮아 전체의 3/4 이상이 29세 미만이며, 기대 수명은 남자 51세,여자 55세이다. 인구의 대다수가 촌락에 거주했지만 1970년대 도시인구의 급성장으로 현재에 이르러서는 전체인구의 약 1/5이 도시민이다. 현재 KOTRA 및 주재상사, 선교사 등 약500여명의 교민이 케냐에 있다.
'마사이 마라'란 아프리카 케냐의'세렝게티'(Serengeti)초원에 위치한 지역 이름을 말하는데, 세계에서 가장 멋진 사파리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도 정평이 나있다. 케냐의 나쿠루(남위 약 0°17')로 부터 탄자니아의 남위 6°까지를 가리킨다. 동쪽으로는 케냐의 차보 국립공원 및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산(山)과 접경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나트론호(湖) 주변을 포함하여 마냐라호(湖)와 접하고 있으며, 대체로 북동에서 남동으로 펼쳐져 있다. 마사이족의 보호구이며, 대부분은 풀이나 관목(灌木)밖에 자라지 않는 불모의 땅이므로 소와 염소의 유목지로 이용된다. 리프트밸리(大地溝) 등의 비교적 낮은 저지대(低地帶)에서는 연간 강수량이 500 mm 전후에 불과하며, 12∼2월, 7∼9월이 건기(乾期)가 된다. 마사이족은 이 기간 중에는 고지(高地)로 이동한다. 모든 야생동물이 서식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특히 약 4만마리의 얼룩말과 1,300만마리의 와일드비스트가 거대 종족을 이루고 살고 있어 장관을 이룬다. 탄자니아에 속해 있는 북부 세렝게티에서 매년 5-6월이면 동물들이 이곳의 세렝게티 초원으로 이주해와 다시 10월 중순에 돌아가게 된다. 물론, 무리를 쫓아 사자떼들도 같이 이곳에 이주해 와 사냥 솜씨를 겨루기도 한다. 특히,이곳에서는 각종 동물이 집단적으로 서식하는 모습과 마사이족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마사이마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사이 족의 마을이다. 창끝이 나뭇잎 처럼 보이는 창과 방패, 그리고 곤봉 처럼 생긴 마시이 방망이로 맹수를 사냥하는 마사이족의 용맹성을 이 근처 동물들이 다 안다고 한다. 마사이 족의 복장은 빨간색으로 특이한데 비록 어린아이일지라도 사자들도 겁을 낸다고 전해진다.
사바나 기후로 마사이 마라의 기름진 8월이 되면, 참을 수 없을 정도의 날씨가 계속되어진다. 무엇보다도 이글거리는 태양이 떠오르면 아프리카의 평원은 더위의 위협을 받게 된다.
▶관광제안
-아프리카에 와서 사파리 투어를 하지 않으면 온 보람이 없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이 지역에서의 사파리 여행은 새벽 5시쯤 일어나야 생생하게 즐길 수 있다. 차가운 새벽공기를 가로 지르면서 길을 나서 동물 탐험에 나서는 이것은 대부분의 동물들이 아침해가 떠오를 즈음 활동을 시작하여, 오전 시간에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뜨거운 한낮 보다는 아침의 사파리가 관광에 적합하다.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마사이족 마을을 한번 방문하는 것이 필수일 것이다. 마을을 방문하여 그들 종족의 집 구경도 하고, 기념촬영도 하고 인사로 그들이 팔고 있는 기념품도 사올 수 있다. 마사이마라는 마사이족의 마을이라는 뜻인데 한마디로 소똥마을이다. 소떼를 키워 소똥으로 집을 짓고 소똥으로 담을 쌓고 마당도 소똥가루로 파리가 많아 이런데서 어떻게 사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작열하는 햇볕을 막아주는데 소똥이 주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요긴한가 보다.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추장인지, 족장인지 10여 가구 되는 곳의 우두머리는 영어도 할 줄 알고 소똥집도 서 너채나 된다고 한다. 이곳의 소똥집에서 능력에 따라 거느리는 첩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방문적기
성수기는 8월말에서 10월초이며, 따라서 마사이 마라지구는 6월 중순에서 10월 중순이 가장 방문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할 수 있다.
-여행상식
공항에서 호텔로 차를 타고 가면서 마사이족이 창을 메고 걸어 가는 모습을 흔히들 볼 수 있다. 관광객들한테는 자동차에서 내리지 말고, 롯지에도 철조망 밖으로는 절대 나가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철조망 밖은 곧 맹수의 공격대상이 된다고 한다. 사파리 관광시 쌍안경 또는 망원경 휴대가 바람직하며, 대부분의 이 지역은 고지대이므로 밤에는 기온이 많이 떨어진다. 따라서 그 점을 감안하여 두꺼운 복장을 휴대토록 하는 게 좋다. 사파리 여행시 야생 동물들이 어느 순간에 공격할지 모르므로 차량에서 내리는 것은 절대 금지라는 것도 필수이다.
-사파리 1
케냐 남서부의 빅토리아호와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 사이에 위치한 곳이 마사이마라 국립보호구로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국립공원과 인접해 있으며 면적은 제주도와 비슷한 1,800Km2,로서 기구를 타고서 사파리를 즐길수 있는 곳이다. 이 곳은 약 4만 마리의 얼룩말과 1,300만 마리의 누우떼가 이를 찾아 세렝게티와 마사이마라를 이동하는 장관으로 유명하다.
-?가는방법 : 나이로비 공항으로 부터 약 380km 거리에 위치하며 2,100m의 고지대에 속한다. 따라서,60-70Km 구간은 도로상태가 좋지 않으므로 자동차 여행의 경우 4륜 구동차의 이용이 권장되며, 자동차를 이용시 약 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단체가 아닌 경우 전세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31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약칭으로 리우라고도 한다. 인구는 585만 544명(2000)이다. 대도시로 1763~1960년까지 브라질의 수도였으며, 자연미와 인공미의 조화로 세계 3대 미항(美港)의 하나이다. 동쪽은 대서양 연안의 과나바라만(灣)에 면하고, 서쪽은 해발고도 700m가 넘는 가파른 산지가 시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시가는 코파카바나·이파네마 등 아름다운 해안을 따라 좁고 길게 뻗어 있으며, 항구 입구에는 팡데아수카르라고 불리는 높이 약 400m의 종 모양 기암이 있어, 항구의 표지 구실을 한다. 또 시가지 바로 뒤에 있는 높이 약 700m의 코르코바도 암봉(岩峰) 꼭대기에는 리우의 상징인 그리스도상(像)이 세워져 있다. 카니발축제 또한 유명하다.
▶교통편
갈레온 국제 공항(Aeroporto Internacional Galeao)
리우데 자네이루의 갈레온 국제공항은 초승달 모양의 4층 건물로 1층은 로비가 있고 2층은 주차장, 3층은 출발로비, 4층은 호텔,기념품 가게, 레스토랑 등의 상점이 나란히 있다. 서울과 브라질간은 대한항공과 바스피 브라질항공이 운행되고 있으며 서울 출발 상파울루 도착편은 대한항공이 일, 수, 금요일, 바스피 브라질 항공이 화, 목요일에 운항한다. 상파울루 출발 서울 도착 항공편은 대한항공이 일, 화, 금요일 바스피 브라질 항공이 일, 화요일에 운항된다. 모든 항공편은 LA를 경유하는 노선이며, 거의 24시간이 소요된다. 국내선으로는 바리그항공, 크루제이로 항공, 바스프 트랜스 브라질 항공, 리우술 항공 등이 운행되고 있으며,한반도의 40배에 달하는 면적으로 도시간 이동으로 항공편이 많이 이용되고 있다. 특히 리우데자네이루와 상파울루간에는 폰테아에레아라는 셔틀 항공편이 거의 30분 간격으로 운항되고 있다. 국내선은 어느 노선이든 예약할 필요는 없지만 공항이 노선에 따라 다르므로 공항을 미리 확인해 두어야 하며, 국내선 공항세는 US$ 2.30정도이다. 바리그 항공과 바스프 트랜스 브라질 항공의 경우 특별요금으로 국내 순회여행권을 판매하고 있으며 14일권과 21일권의 2종류로 브라질 국내의 여러 지역을 여행할 계획이라면 국내 순회 여행권을 구입하는 것이 좋다. 시내에서 12km 정도 떨어져 있는 갈레온 국제 공항(Aeroporto Internacional Galeao)에 가려면 택시와 공항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공항버스는 시내에서 국내선 공항 터미널까지 30분, 코파카바 해변에서는 약 1시간 정도 소요되며, 요금은 각각 US$ 1와 US$ 1.25이다. 택시는 시내에서 공항 택시승강장까지 약 20분, 코파카바 해변에서는 약 40분정도 소요되며, 요금은 US$ 10,US$ 12이다.
-여행상식 1
길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환전상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강도로 돌변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므로 은행에서 환전할 수 있도록 하며,2-3일간의 생활에 필요한 만큼만 조금씩 환전해서 쓰도록 한다. 특히 복잡한 시내버스를 이용할 경우에는 소매치기의 위험이 높으므로 귀중품이나 여권등의 소지품은 안전하게 보관하도록 한다. 시내 관광을 할 경우에는 복잡한 노선과 정비되어 있지 않은 정류장으로 이용이 어려우므로 가능하다면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여행상식 2
공중화장실은 많은 편이 아니며, 드물게 발견되는 화장실에는 휴지를 주는 사람이 꽤나 많은 팁을 요구하므로 주의하도록 한다. 화장실은 소규모의 식당(Lanches)이나 카페테리아, 주스 전문점등에서 이용하는 것이 경제적이고 깨끗하다.
-즐길거리/활동거리 1
리우데 자네이루에서 열리는 카니발 축제는 2월초 또는 3월초에 세계적인 삼바축제가 토,일,월,화등의 4일간 열린다. 카니발 축제를 즐기기 위한 세가지 방법은 첫째,거리에서 시민 퍼레이드를 즐기는 방법이다. 둘째,클럽 하우스에서 열리는 카니발에 참가하여 즐기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티켓(US$ 100이상)을 구입해서 관람석(관광객은 No.7)에서 퍼레이드를 즐기는 방법이 있다.
-즐길거리/활동거리 2
버스와 지하철을 연계하여 이용할 경우 할인 티켓을 굽입할수 있다. 지하철에서 버스로 바꿔 탈 예정이라면 역에서 '인테그라존 오니부스'라고 말하면 할인 티켓을 구입할수 있다. 또한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환승할때 버스에 승차할 때 '인테그라존 메트로'라고 말하면 지하철 티켓을 할인하여 구입할수 있다. ▶마라카낭 축구장
좌석수 155,000석의 최대 입장수 225,000명, 높이 32m, 지름 944m등에서 알 수 있듯이 세계 최대의 축구장이다. 제 4회 월드컵을 의해 세워진 경기장으로 지어진 이곳은 경기가 없는 날에는 스타디움 내부를 견학할 수 있는데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스탠드에 올라가 경기장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브라질 국민의 축구 열정을 느낄수 있으며, 극성 팬을 위한 도랑도 설치되어 있다.
개장시간 :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09:00~17:00시까지 입장이 가능하다
입장료 : 유료
▶예수상
리오데자네이루에서 정신적인 지주라 할 수 있는 상징물은, 코코바도(Corcovado)산에 위치하고 있는 무려 730m에 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념상일 것이다. 그 대단한 높이 때문에, 이 동상은 도시 위로 불쑥 솟아 있어 모습이 장엄하다. 도시 어디에서든 보이는 이 상은 36m 높이의 예수님 상으로 팔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모두를 환영하는 듯 하며 일,기쁨, 꿈을 찾아 몰려드는 군중들을 모두 포용하려 한다는 느낌을 준다. 이 동상은 밤에는 신비로운 빛깔로 바뀌는데 어두운 밤하늘에 기적이 일어날 것만 같은 묘한 감정을 주기도 한다. 여행객이 어디에서 왔던 간에, 이 전지전능한 예수님 상으로 인해 이 지역에 익숙해 지는데는 단 몇 일밖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가는방법 : 코르도바도 언덕위까지 운행되는 스위스제 케이블식 등산열차가 있는데 이 열차는 코즈메베료 역에서 출발한다. 운행시간은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 40까지로 요금은 왕복 US$ 3.50이다.
▶이빠네마 해안
보사노바의 명곡인 (이파네마의 처녀)로도 유명한 이빠네마 해안으로 코파카바나 해안 남단의 아르포아도르고를 돌아 이빠네마 해안,레블론 해안이 이어져 있다. 이곳에는 고급주택가가 형성되어 있으며 근처 레블론 해안에는 레스토랑과 고급 부티크가 위치해 있어 리오에서 가장 분위기 있는 곳으로 손꼽힌다. 이외에도 플라멩고 해안, 보타포고 해안, 우르카 해안, 베르밀랴 해안, 레메 해안, 상콘라두 해안 등이 있다.
가는방법 : 리우브랑코 대로에서 버스를 승차하여 아타울포 데 파이바거리에 하차하면 리우데자네이루다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이빠네마 해안에 도착하게 된다.
▶코파카바나 해안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 휴양지인 리우데자네이루의 코파카바나 해안은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이 1년 내내 몰려드는 곳이다. 5km에 달하는 흰 백사장과 대담한 수영복 차림의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많다. 애틀랜티카 대로는 코파카바나 해안과 접해 있는 곳으로 레스토랑, 고급 호텔, 카페티라스 등이 있고 토산품점, 보석상등이 많아 리오의 관광 중심지이다. 그러나 최근 소매치기등이 많아 주의를 요하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해안은 여전히 구경할 만한 곳이다.
▶팡데아수카르 산
해면에서 2/3정도가 불쑥 튀어나온 것 같은 모양을 한 이산의 정상으로 가려면 산기슭의 프라이아 베르메랴역에서 곤돌라를 타고 올라간다. 돌기부의 정상은 해발390m이다. ▶H. Stern
1945년 브라질의 유색보석을 전문판매하는 조그마한 보석전문점으로 오픈한 H. Stern은 2000년 이후 전세계적으로 180여 개가 넘는 지점을 가지고 있는 유명한 보석상 중의 하나가 되었다. 토파즈, 아메지스트, 아쿠아마린, 에메랄드 등이 볼 만하며 본점은 리오에 있으며 보석이 가공되는 과정을 견학할 수 있다.
▶리우카니발
리오데자네이로 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이 카니발이다. 브라질 전역에서 사순절 직전의 마지막 향연으로 거행되는 카니발은 춤과 음악의 휘황한 퍼레이드이다. 매년 2월쯤이면 전 세계인들은 리오데자네이로의 광란에 가까운 카니발을 보러 온다. 편한 여행을 하고 싶다면 카니발을 보지 않는 것이 나을 정도이다.본래 카톨릭 국가들이 많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 행해졌고 우리 나라에서는 사육제라고 번역되는 이 행사는 19세기 중반 포르투갈을 통해 브라질로 상륙해 오늘날과 같은 대단한 축제로 발전했다. 리오 축제는 삿포로의 유키 마쓰리(눈 축제)와 뮌휀의 파싱과 함께 세계 3대 축제의 하나로 알려져 있지만 그 규모나 열정,화려함과 광기는 다른 어느 축제에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화려하다.토요일에 시작되어 꼬박 4일간의 밤낮동안 펼쳐지는 춤과 음악의 광란은 전시가지를 뒤덮어 버린다.
리오 카니발의 중요한 요소는 그 유명한 삼바. 삼바 학교라고 불리는 카니발 단체들이 거액의 상금이 걸려있는 '거리의 챔피언'이 되기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의 행진열차를 제작하여 가장 멋진 무도행렬을 기획해 내기 위해 1년 내내 경쟁하는 것이다. 이 거리 축제 퍼레이드는 거의 9시간이나 계속된다. 눈 부신 의상,화려한 꽃차의 행진,새로 발표되는 삼바의 리듬 등 20만명 정도의 엄청난 인원이 참가하는 거대한 퍼레이드에서,가장 독창적이고 호화로운 팀에게 영광이 돌아가는 것이다. 각 단체에서는 대원의 의상비 등 자금 조달을 위해 평소에는 쇼를 공연하기도 하고 레코드나 잡지를 발행하는 등,수익사업을 벌이거나 스폰서를 구하는 등 연습과 함께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며 카니발 기간에 대비한다.
브라질을 방문하는 2백만 가까운 관광객 중에서 3분의1이 리오의 카니발을 보러 온다. 그러나 관광객들로서는 그 시기에 맞추어 리오를 방문할 수 만은 없다. 웬만한 준비성이 아니고서는 호텔이나 관람석 예약도 힘들다. 이 시기에는 대중교통도 거의 마비 상태이기 때문에 걸어다니며 볼 각오가 아니라면 편한 여행은 포기하는 것이다 나을 정도이다. 결국 아무 때나 편한 시기에 여행을 와서 리오의 나이트 투어를 통해 쇼를 관람하면서 삼바의 리듬과 춤,그리고 무희들의 의상을 눈여겨 봐둘 수 밖에 없다. 야간의 시티 투어 코스에 가장 많이 소개되는 쇼무대는 스칼라,오바-오바,플라타포르마 I 둥의 세 곳이다. 관광객은 투어 중 이 세 곳 중 한 곳을 가게 되는데,필자가 가본 곳은 플라타포르마 I이다. 실내의 분위기는 대략 워커힐 가야금홀 비슷한 인상이다. 은 곳을 노출시킨 옷차림을 한 무희들의 현란한 춤과 신나는 음악이 거기에는 있다. 워낙 여러 곳에서 모인 관광객들을 상대하다 보니 상업적인 솜씨도 꽤 부리는데,단체 관광객들이 모인 국가의 민요를 연주해 주기도 하고 엉덩이와 등에 각 나라의 국기를 꽂고 무대에 나오기도 하는 식이다.
▶삼바쇼
삼바쇼는 남미 특유의 정열을 느낄수 있다. 특히 스칼라(Scala)의 1,800석의 대규모 좌석을 갖춘 곳으로 뮤지컬식과 삼바식의 두가지 방식의 쇼가 열린다. 이외에도 레리키아스, 오바오바, 플라타포르마운 등의 삼바쇼도 즐길수 있다.


30위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산


▶히말라야는 산스크리트어로 '눈이 머무는 곳'('히마(hima)'는 '눈', '아라야(alaya)'는 '보금자리'라는 뜻)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세상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땅이다. 남북으로는 인도대륙과 중국의 티벳고원 사이에 200~400km의 폭을 가지고 동서로는 낭가파르밧으로 부터, 동쪽으로는 남차바르와까지 2500km나 연속되면서 네팔, 인도, 중국, 파키스탄, 부탄 5개국의 영토에 걸쳐 있는 정말로 거대한 세계 최대의 산맥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의 측량국장 앤드루 워가 1846년부터 1855년까지 히말라야 산계의 3각측량을 계속하였는데, 특히 히말라야의 고봉 79개를 커다란 경위의(經緯儀)로 정밀 측정한 결과, 1852년까지 피크 15(인도 측량국 번호)라고만 부르던 에베레스트산이 높이 8,848m로 세계 최고임을 확인하였다.


29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사원


▶앙코르톰의 남쪽 약 1.5km에 있으며, 12세기 중반경에 건립되었다. 앙코르는 왕도(王都)를 뜻하고 와트는 사원을 뜻하지만, 반영구적 사원은 아니다. 당시 크메르족은 왕과 유명한 왕족이 죽으면 그가 믿던 신(神)과 합일(合一)한다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왕은 자기와 합일하게 될 신의 사원을 건립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유적은 앙코르왕조의 전성기를 이룬 수리아바르만 2세가 바라문교(婆羅門敎) 주신(主神)의 하나인 비슈누와 합일하기 위하여 건립한 바라문교 사원이다. 그러나 후세에 이르러 불교도가 바라문교의 신상(神像)을 파괴하고 불상을 모시게 됨에 따라 불교사원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건물·장식·부조(浮彫) 등 모든 면에서 바라문교 사원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전형적인 열대몬순기후로 10월 중순∼5월 초의 건기와 5월 중순∼10월 초의 우기로 나누어진다. 건기는 비교적 서늘한 11∼2월과 더운 3∼5월로 나누어져 앙코르와트를 방문하는 관광객은 12∼1월에 많다. 강수량은 주변 산지에 많고 몬순의 영향이 미미한 중앙평원에서는 적다. 연평균 강수량은 1,000∼1,500mm이나 남서부 산지의 바다쪽 경사면은 5,000mm 이상이다. 따라서 식생은 주변산지에 밀림이 우거져 있을 뿐 다른 지역은 관목과 초원이 혼합하는 사바나의 경관을 이룬다. 중앙평원은 제1의 농업지역으로 대부분은 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기후가 자연식생에 적합하며 동물로는 코끼리, 야생 물소, 호랑이, 퓨마, 표범, 곰 등과 수많은 작은 짐승들이 있으며 특히 코브라, 왕코브라, 줄무늬 크레이트(코브라의 일종), 러셀 등 위험한 독사가 많다.


28위 미국 알래스카


▶'위대한 땅'이라는 의미의 에스키모 말에서 유래한 알라스카는 면적 1,530,694㎢에 인구 626,932명(2000)로 가장 넓은 면적과 최소의 인구밀도를 가지고 있다. 주도(州都)는 주노이며 1959년에 49번째의 주가 되었다. 미국 전체의 1/5에 달하는 면적을 가지고 있는 알라스카는 북쪽으로 북극해, 남쪽으로 태평양에 면하고 있으며 동쪽은 캐나다의 유콘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알라스카는 덴마크의 탐험가 베링이 1741년에 발견하였다. 이후 러시아는 알렉산드르 바라노프를 지사로 파견하여 이곳을 통치하게 하였으나1867년 재정(財政)이 궁핍하여 720만 달러로 매각, 이후 미국령(領)이 되었다.
길이 약 760km. 반도 기부(基部)는 북위 59°이며 남서쪽으로 돌출해 나가다가 끝이 북위 55°에 이른다. 환태평양조산대의 일부로 알류샨산맥이 뻗어 있으며, 빙식지형이 도처에 있다. 화산도 많은데, 특히 반도 기부의 카트마이 활화산이 유명하며, 부근 일대는 카트마이 국립자연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북서쪽의 브리스틀만(灣)은 게·핼리벗(넙치의 일종)·바다표범 등의 산지로서 유명하다.


27위 프랑스 파리


▶파리는 프랑스의 수도이며, 유럽 최대의 대도시권 가운데 하나인 도시로서 2,000여년 전 세느강(Seine River)의 시테섬에 세워졌다. 세느강(Seine River)은 파리시의 한가운데를 흐르며 시를 강의 북쪽(Rive Droite, 하류를 바라볼 때 우안)과 강의 남쪽(Rive Gauche, 좌안), 두 부분으로 나누고 있는데, 북쪽은 상업이 성하고, 남쪽에는 소르본 대학교 등 교육 기관이 많아 문화 활동이 활발하다.
파리시는 영국 해협에 면한 세느강 어귀로부터 내륙쪽으로 약 375㎞ 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일드프랑스(Il de France) 지방에 속한 8개주 가운데 하나로서 파리분지로 알려진 비옥한 농업지역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 파리의 지형을 살펴보면 7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졌는데, 북쪽에 몽마르트르 언덕이 있고, 남쪽에 생트 쥰비에브 언덕 및 까이유 언덕, 서쪽에 샤이오 언덕, 그리고 동쪽에는 벨빌, 메닐몽땅, 샤론과 같은 언덕이 있다. 파리의 외곽은 고도로 공업화된 지역의 공기를 정화시키는 역할을 하여 '파리의 허파'라고 불리는 너도밤나무와 참나무의 거대한 산림으로 둘러싸여 있다.
지난 몇 백년간 파리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매력적인 도시 가운데 하나였으며, 현재도 세계의 예술, 패션, 유행 등을 선도하는 주요한 도시이다. 세계 각 국의 사람들은 파리를 일컬어 '예술의 도시', '패션의 도시', '빛의 도시', '낭만과 고독이 함께 숨쉬는 도시', '꿈과 사랑의 도시' 등으로 부르고 있다. 파리는 연간 가장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세계 최대의 관광도시이기도 하다.
파리시는 2,000년의 찬란한 역사를 지닌 도시로서 프랑스 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의 중요한 교통망의 교차점에 있어 성장을 계속해왔다. 파리시는 크게 중심부의 시테섬과 세느강을 중심으로한 좌안과 우안으로 구분된다. 또한 파리는 각 구마다 고유의 특색을 가지고 있는 총 20개의 구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구들은 파리의 심장부에서부터 달팽이의 소용돌이꼴로 번호를 매겨, 제1구, 제2구 등으로 부른다.
파리시 자체는 그리 크지 않은 도시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파리는 특히 밤이 더 아름답다고 하는데, 연인들이 밤새워 얘기를 나누는 세느강변, 샹젤리제 거리의 화려한 불빛 등은 파리의 꿈과 낭만을 보여준다. 또한 파리는 유럽에서 가장 숲이 우거져 있는 도시 중 하나로서 역사적인 건축물들과 현대식 빌딩 사이로 수많은 정원과 공원 등 녹지대가 조성되어 있다. 무수히 많은 역사적인 건축물 및 기념물, 박물관, 초현대적인 패션 및 예술 등이 어우러져 있는 파리는 누구나 한 번쯤은 가봐야만 하는 도시이다.
파리는 그 자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다. 괴테의 말대로 ‘거리의 모퉁이 하나를 돌고, 다리 하나를 건널 때마다 바로 그곳에 역사가 전개’된다. 또한 파리는 역사적 유적의 무한한 보고일 뿐만 아니라 현대에 살고 현대에서 활동하는 도시이다. 짧은 시간으로 파리를 모두 돌아보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몽마르트르 언덕 위나 에펠탑·개선문 등에 올라가 지형·건물의 배열 상황을 살펴보고 나서, 여러 코스로 나누어진 관광 버스를 이용하고 센강의 관광선을 타보면 전체적인 윤곽은 파악할 수 있다. 그 다음에는 자기가 목표한 대로 거닐어 보고, 베르사유·생드니·퐁텐블로 등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파리의 기후는 온화한 해양성 기후로서 여름에는 따뜻하고 겨울에도 꽤 온화한 편이다. 연평균기온은 약 10℃정도로서 가장 추울 때인 1월의 평균기온은 약 3℃, 가장 더울 때인 7-8월의 평균기온은 약 18℃이다. 파리의 연평균 강수량은 약 619mm로서 여름과 가을에 다소 많은 편이지만 상당히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연중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날은 약 35일 정도이며, 평균 15일간 눈이 내린다.


26위 이과수 폭포


▶녹색의 정글지대를 가르며 지나온 거대한 물길이 떨어지며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300여 개의 물기둥과 높이는 100m를 넘는다. 이과수폭포가 일반인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1897년 이후 브라질군의 장교인 에드문두 데 비루스가 이곳을 국립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주변을 정비하면서 부터이다. 이곳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파라과이가 만나는 접경지대이며 폭포의 80%는 아르헨티나에 속해 있다. 그러나 폭포의 전경은 브라질 쪽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과수 폭포를 관광할 수 있는 포스두 이과수시는 파라과이와 아르헨티나의 국경에 접해있는 도시이다. 이과수라는 이름은 원주민인 인디오의 '이구'는 물이라는 뜻이며,'이수'는 장대한 것에 대한 경탄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가 되었다. 항공편으로 리우데 자네이루에서 2시간, 상파울루에서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현지에 가면 지프를 타고 이과수 폭포 근처의 정글을 트래킹한 후 배를 타고 이과수 폭포를 여행하는 코스가 있는데 이곳에서 폭포 웅덩이까지 다가가 세계적인 폭포의 진면목을 몸소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구명조끼를 입고 배가 폭포 쪽으로 다가갈수록 고막을 찢을 듯이 울부짖는 이과수의 괴성에 제압을 당하게 되며, 머리 위로 쏟아지는 이과수를 몸으로 느끼며, 자연의 장대함에서 평소에 느끼지 못한 스릴을 경험할 수 있어서인지, 스릴있는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이 늘어서인지 점점 관광자가 늘고 있다.
이과수 국제 공항은 포스두 이과수시의 동남쪽으로 10km 떨어져 있으며, 건물 안에는 관광안내소, 여행사, 레스토랑, 토산품점 등이 있다. 이과수 국제공항은 리우데자네이루와 상파울루, 브라질리아, 쿠이아바, 캄푸그란데, 쿠리티바, 벨로리존테, 벨렘, 아순시온, 부에노스 아리레스로 가는 항공편이 있다. 이과수 국제 공항을 이용하려면 시내에서 공항버스 및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공항버스는 시내의 근거리 버스 터미널에서 공항 터미널의 버스 정류장까지 약 30분 정도 소요되며 앞 유리창 아랫부분에 Cidade 표시가 되어 있다. 택시는 시내에 많이 있다. 그러나 특별한 표시가 없어 구별이 쉽지 않다. 공항까지 약 20분 정도 소요된다.
발로걷는 이과수 폭포를 즐긴 후 더욱 더 이과수 폭포를 만끽하기 위하여 지프자동차를 타고 정글을 탐험한다. 지프에서 내려 사람의 손이 거의 닫지 않은 정글을 만끽하며 걷다보면 이과수 강에 다다르게 된다. 오렌지색의 구명조끼를 입고 쌍발엔진이 달린 배를 타고 이과수 강을 거슬러 폭포로 향하게된다. 폭포가 가까울수록 배는 더욱 더 출렁거리며, 어느듯 폭포의 아래 부분에 다다랐을 때엔 폭포에서 나는 굉음에 귀가 멍멍거릴 정도이다. 아래에서 바라보는 이과수 폭포의 장관은 정말 장관 그 자체이다.


25위 뉴질랜드 북섬


▶뉴질랜드는 오스트레일리아대륙으로 부터 동쪽에 있는 섬나라로 북섬과 남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밖에 스튜어트섬, 오클랜드섬, 쿠크섬 등을 거느리고 있다. 뉴질랜드는 마오리 말로 '아오테아로아 Ao Tea Roa'라고 하는데, 이 말은 '희고 긴 구름'이라는 뜻이다. 탐험을 하던 마오리족이 멀리서 뉴질랜드를 본 후 외친 것이 아오테아로라라고 한다. 그곳이 낙원과 같은 아름다운 육지인 것을 알게되었고, 동료들에게 가서 뉴질랜드를 전하여 이 곳에 정착하게 된다. 1642년 네덜란드의 탐험가 아벨 타스민이 네덜란드의 한 지명을 따서 '새로운 젤란트'란 뜻으로 "Nieuw Zeeland"라고 명명한데서 뉴질랜드가 되었다.
북섬의 인구는 약 273만 3천(1996). 남섬과는 쿡 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 대한다. 북단 노스곶에서 남단의 팰리서곶 까지의 길이는 816km이다. 형태상으로는 북서쪽이 좁고 긴 오클랜드 반도가 돌출해 있으며, 북동쪽에 플랜티만(灣), 동쪽에 호크만이 있어 변형된 마름모꼴을 이룬다. 지형상으로는 섬의 중앙부에 활화산 루아페후(2,799m)를 주봉으로 하는 타우포 화산대가 있으며, 섬 전체는 고원 형태를 이룬다. 섬 중앙에는 화산이 집중되어 있고 온천이 분포하며, 타우포호(湖)가 있어 경치가 아름다워 통가리로 국립공원을 이룬다. 서부에도 에그몬트산(2,518m)을 중심으로 에그몬트 국립공원이 있다. 섬에서 가장 큰 강은 와이카토강, 호수는 타우포호이다. 유제품·목재·석탄·아마 등이 산출되며, 중심도시는 오클랜드와 뉴질랜드의 수도인 웰링턴이 있다.
▶오클랜드는 뉴질랜드 북섬에 위치하고 있고 경제의 중심지로 인구는 약 91만명이다. 코로만델반도 기부에 해당하는 대지성지역 중심에 있으며 지형은 복잡하여 좁은 타마키 지협에 의하여 북쪽의 와이터 마타 와 남쪽의 마누카우의 두 항구로 나누어진다. 어디에서나 맑은 물이 흐르는 이지역은 아름다운 해변과 수영, 다이빙, 낚시, 윈드서핑등의 수상 스포츠를 즐길수 있는 천국이다. 과거 화산의 활동지역이었기 때문에 그 영향으로 인해 언덕과 비탈길이 많아 도시의 단조로움을 없애줘 미적인 균형이 잡혀 있다. 오클랜드는 City of Sail (요트 도시)로 불릴 만큼 요트 보유량이 높다. 이와 더불어 하얀 구름과 파란 하늘, 바다에 빌딩가의 대조가 선명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항구도시이다.
▶웰링턴은 1865년 이후부터 뉴질랜드의 수도이며 도시의 이름은 영국의 장군 웰링턴의 이름에서 딴 도시다. 국회의사당이 있는 웰링턴은 뉴질랜드 정치의 중심지로 경제 중심지인 오클랜드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인다. 위치상으로 북섬의 남쪽 끝에 있어 두 섬 사이의 해협인 쿡 해협을 사이에 두고 남섬을 보고 있다. 웰링턴은 1839년 영국인이 도시를 건설하면서 발달한 도시로 현재 가장 번화한 곳은 '윌리스 거리'와 '쿠바 거리'로 상점과 레스토랑등이 다양하게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웰링턴은 오클랜드나 크라이스트처치에 비하면 조용한 도시로 수도로서 인구가 적은 편이다. 다양한 문화적인 모습은 웰링턴의 빼놓을 수 없는 면인데 발레와 같은 무용, 연극이나 오페라등의 공연, 회화, 오케스트라, 전시등의 활발한 문화 활동으로 웰링턴을 정치적인 수도이자 동시에 문화적인 수도라 할 수 있다.
▶타우포는 로토루아의 남쪽에 있는 북섬 중부에 위치한다. 뉴질랜드 최대의 호수가 있는 호반도시로 인구는 약 2만명 정도이다. 타우포는 마오리족과 백인과의 전쟁중에 군사적 전진 기지로 백인에 의해 최초로 점령된 지역이었다. 1945년 타우포의 인구는 750명에 불과했으나 점점 발전하여 지금은 2만명에 다다르고 관광의 명소답게 성수기에는 인구가 두배 이상으로 증가하는 휴양도시가 되었다. 도시의 남쪽에 자리잡은 타이포 호는 해발 357km,길이 40km,폭 30km,면적 606km,최대깊이 159m,호수 유역면적 3,289km로 왠만한 섬과 맞 먹는 크기를 자랑한다. 1830년도에 J.S. 폴랙과 토머스 채프먼 신부가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이 호수를 발견하였다. 호수의 이름은 마오리어로 '타이포 누이 아 티아(티아의 거대한 망토)'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타이포 호수는 거대한 화산 폭발로 생성되었는데 이 화산 폭발로 인하여 생긴 잔여물이 멀리 150km거리에 있는 네이피어와 350km거리에 있는 기스본에서도 발견되었다고 하니 과거의 화산 폭발의 위력을 상상할수 있다.
타이포 호수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긴 와이카토 강이 흐르면서 수력발전소들을 위한 저수지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송어가 살아가기 좋을만큼 물이 깨끗하여 매년 4월 25일 경이면 '국제 송어'낚시대회'가 열려 '송어의 천국'이라고도 불리운다. 화산 구조성의 함몰지에 생겨 아름다운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전망좋은 구릉지에 주택지가 밀집되어있고,도시 일대가 간헐천이나 열탕 호수등의 지열지대로 알려져 있어 명소로 유명해져서 매년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한다.


24위 미국 하와이


▶북태평양의 동쪽에 있는 하와이 제도는 미국의 50번째주로 면적은 16,729㎢, 인구는 127만 400명(2004)이며 주도(州都)는 호놀룰루이다. 50개 주 중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하며 100여 개가 넘는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있다. 주요섬으로는 하와이 최대의 섬인 하와이섬과 경제적, 정치적 중심지인 오아후섬이 있으며, 주민의 대부분은 오아후섬에 살고 있다. 모든 섬은 화산섬이고 대체로 남서쪽으로 갈수록 화산 형성의 시기가 늦다. 유명한 와이키키해변과 다이아몬드 헤드, 진주만 등이 유명하다. 하와이의 관광은 자연뿐만 아니라 원주민의 풍속이나 예술을 비롯하여 여러 민족이 보여 주는 풍물의 다양성에도 크게 힘입고 있다. 폴리네시아계 민족이 하와이에 이주하여 정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세기 후반에 사탕수수·파인애플 재배에 성공하여 제당업이 번창하자 아시아인을 포함한 외국이민이 증가하였다. 1941년 12월 8일에 일본군에 의해 진주만이 기습공격을 당해 이를 계기로 태평양전쟁이 일어났으며 1959년에 알래스카에 이어 미국의 50번째 주가 되었다.
▶ 호놀룰루 (Honolulu):
미국 하와이주의 수도로 호놀룰루란 폴리네시아어로 〈보호받은 만(灣)〉을 뜻하는 단어이다. 이곳은 온난한 기후를 이용하여 근교에서 재배되는 사탕수수·파인애플 등의 가공·통조림업이 활발하다. 현재 항만기능은 후퇴하였으나 항공교통 요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태평양 중부 최대의 거점이 되고 있다. 또한 서쪽의 진주만 군항은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다. 백사의 와이키키 비치, 칼라카우아거리의 고층 호텔들, 푸른 바다를 한눈에 바라다보는 다이어먼드 헤드 등, 현대적인 휴양지와 아름다운 자연이 조화된 "남국의 파라다이스"이다. 주민은 폴리네시아계·필리핀계·일본계·유럽계 등 다양하며 한국 교포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 하와이섬:
대자연 속에서 마음껏 즐길수 있는 곳이다. 바닷가는 잔잔한 해안지대여서 활발한 해양스포츠를 즐길수 있는 곳이고, 산을 오르는 등산은 마우나 로아가 있다. 이곳은 겨울이 되면 스키와 스노우 보드를 즐길수 있는 장소로써 관광객이 매력을 느낄만한 곳이다. 하와이섬은 각각의 다른 방향에서 보면 가지 각색의 즐길거리를 볼수 있다. 하와이섬은 빅 아일랜드 라고 불리우는데 이것은 다른 하와이섬들을 합친 면적보다 더 크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코알라 산, 마우나케이 산, 후엘랄라이 산, 마우나로아 산, 킬라우에아 산의 다섯 개화산이 합쳐져 만들어진 섬이고 아직도 활동 중인 화산도 있어서 관광지가 되기도 한다. 또 다른 별명으로는 서양란의 재배가 활발하여서 "서양란의 섬"이라고도 불린다. 활화산의 힘찬 위용이 있고 갖가지 양란 꽃이 번성하고 있는 열대식물의 보고 하와이섬. 난과 코나 커피의 산지이며 미국에서 유일한 활화산 킬라우에아 화산이 계속 활동하고 있다. 하와이섬은 하와이군으로 행정적으로 1969년 1월 1일 군헌법의 발효로 군의회중심의 체제가 정비되었다. 그래서 군장은 임무권한은 시장과 비슷하다. 하와이의 볼캐노 국립공원에서는 용암이 아직도 분출하고 있는 활화산으로 유명하다. 관광객이 활화산의 용암을 보기 위해 이곳을 많이 찾는다. 전설이 담긴 유적지는 관광객에게 추억으로 남는 장소가 될것이다.


23위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


▶1890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캘리포니아주의 중부, 시에라네바다산맥의 서쪽 사면 일대에 전개되는 대 자연공원이며,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국립공원 중의 하나이다. 1968년 존무어라는 사람에 의해 발견되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면적은 총3,081㎢이며 미국의 모든 식물대들을 해발의 차이를 느낄 때마다 만날 수 있다. 이 곳은 해발 609m에서부터 3,962m까지 분포되 있으며 각 해발마다 침엽수를 중심으로 경목, 철죽, 관목, 야생화를 볼 수 있다. 자연 국립공원인 만큼 75종 이상의 포유동물과 200종 이상의 조류동물 또한 관찰할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근접해 있어 찾는 사람이 많다. 광대한 면적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도로는 몇 개 밖에 없으며, 끝에서 끝까지 관통하는 도로는 그나마 동서 횡단로 하나뿐이다. 공원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남서부에 있는 머세드강의 상류이며, 빙식으로 생긴 거대한 엘캐피탄·하프돔 등의 절벽과 브라이들베일·요세미티·네바다 등의 폭포가 있다. 그 밖에도 북부의 투올러미강 상류에는 투올러미 협곡의 웅대한 경관이 있다. 공원의 동쪽 경계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주맥에 상당하며, 해발고도 3,000m의 고산이 이어져 있다. 공원의 서쪽과 남쪽의 입구 일대에는 세쿼이아의 거목들이 늘어서서 장관을 이룬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엘 캐피탄 바위
높이 1,000여m의 화강암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 것으로, 수직으로 쭉 뻗은 것이 보는 이에게 신비감을 불러일으킨다. 이곳은 요세미티 밸리 안에서도 가장 높은 곳인데, 특히 전세계의 암벽등반 전문 산악인들에게 경외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곳의 암벽을 오르기에 가장 좋은 시기인 여름에 가보면 바위에 매달려 아슬아슬하게 경사면을 오르는 산악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22위 홍 콩


▶1898년 영국에 조차되어 1997년 중국에 반환되었으며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Special Administrative Region)’로 1국가 2체제의 경제체제를 이루고 있다. 주장강[珠江] 하구의 동쪽 연안에 있는 홍콩섬과 주룽반도 및 그 밖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 대륙의 남동부에 있는 특별 행정구. 면적은 1,091㎢, 인구는 678만 5000명(2002)이다. 주도(主都)는 홍콩섬의 빅토리아시(홍콩市)이다. 전인구의 99%가 중국인이고, 그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광둥인(廣東人) 외에 커자인(客家人)·푸젠인(福建人)·차오저우인(潮州人)이 있다. 그 밖에도 영국인·미국인·유럽인·아시아인들이 살고 있다. 공용어로는 영어와 베이징어(北京語)가 함께 쓰이고 있으나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언어는 광둥어이다.
▶ 홍콩섬 (Hong_Kong)
구룡과 더불어 홍콩의 대표적인 중심지인일 뿐만 아니라 홍콩 상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홍콩섬의 해안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노쓰포인트에서 웨스틴 지역에 지르는 해안선을 따라 발달한 대도시의 모습이 특히 아름다운 곳이다.
?관광명소 리스트
낭만의 거리, 덕크링,리펄스베이, 마담투소밀랍인형관, 몽콕야시장, 빅토리아 산정, 스타페리, 오픈카, 침사츄이, 해양공원, 황대선 도교사원
▶ 구룡(九龍)
구룡반도(九龍半島)는 2백여만명의 주민이 46평방킬로미터에 불과한 면적에 모여 사는 곳으로, 이 중에서도 몽콕지역은 인구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구룡반도(九龍半島)는 홍콩 국제 공항이 근접해 있어 건물의 높이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아직도 완전한 도시화가 되어있지 않은 모습이지만 빅토리아 항이 근접해 있고, 반도 중심에 위치한 공원과 경관 좋은 산 등으로 인해 자연을 맘껏 느낄 수 있다. 아홉 용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구룡은 신계와 항구 사이에 위치해 있는 곳으로 홍콩의 전통적인 모습과 현대적인 모습이 공존해 있는 곳이다. 1860년 홍콩섬과 함께 영국에 양도된 곳으로 침샤취, 몽콕, 야우마티 등은 시끌벅적한 풍경들로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는 곳이다. 지난 100년 동안 구룡은 인구밀도가 조밀한 도시지역으로 성장하였다. 이 지역은 홍콩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관광명소들을 많이 갖고 있으며 쇼핑거리와 호텔, 밤의 유흥가 등 북적대는 도심의 활기찬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구"구룡과 중국과의 경계선에 바운더리 스트리트가 있는데 주룽반도를 가로 질러 몽콕의 지하철역의 몇블록 위에 까지 뻗쳐져 있다. "신"구룡은 1898년 영국이 바운더리 스트리트의 북부와 심천가의 남부를 추가로 조차하면서 형성되었다. 현재 이곳을 신계지라 부르고 오늘날 구룡은 북쪽으로 구룡언덕 까지 포함한다.
북회귀선의 남쪽에 위치해 아열대에 속하고 있다. 여름(6∼9월)은 기온 30∼32도,습도 90%이상. 가을(10∼12월)은 기온 25 도 전후,습도 70 %정도로 1년중 가장 생활하기 좋다. 겨울(1∼2월)은 추운날도 많지만 10도 이하는 내려가지 않는다. 봄(3~5월)기온이 20 도전후로 비,안개가 많아 비행기 발착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연간 강우량은 2,225 mm 로 5∼9월 사이에 내린다. 태풍철은 7-9월이다. 8월의 최고기온은 31℃이며, 최저기온은 26℃이므로 온도차가 5℃이다. 따라서 큰 기온차가 아니므로 기온변화에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이 지역의 월 평균강수량은 15㎜로 100㎜이하이므로 많은 비가 집중적으로 내리는 지역은 아니다.
-관광명소 리스트
구룡공원, 구룡역 시계탑, 뉴 월드 센터 (新世界中心), 몽콕, 홍콩 문화 센터, 홍콩 박물관
▶ 신계
주룽 반도〔九龍半島〕북쪽에 있다. 동쪽으로 다펑 만〔大鵬灣〕에서 서쪽으로 주장 강〔珠江〕 어귀의 선 만〔深灣〕까지 이어진다. 이 안에는 다위 산〔大嶼山〕과 다른 섬들이 있다. 대부분 산지이지만 그 계곡들은 홍콩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은 농토이다. 홍콩의 영역 중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신계지는 대부분이 전원지역이지만 자체수급능력을 가진 신도시가 건설되고 있다. 홍콩의 새로운 베드타운으로 떠오르는 이곳은 현대적 시설을 갖춘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많이 들어섰다. 작고 조그만 어촌에 불과 했던 이 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게 됨에 따라 많은 발전을 하였지만 이곳이 아파트들만 들어서 있는 삭막한 곳으로 남지 않은 이유는 아직도 옛 향수를 자아내게 하는 작은 어촌들과 정부에 의해 잘 보존되고 있는 깨끗한 해변과 산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4계절로 나뉘어진 아열대성 기후이다. 그러나,우리나라의 4계절과는 달리 계절의 시기는 비슷하지만 전체적으로 온도가 높다. 여름에는 기온이 30도를 웃돌며 고온다습하고 겨울에는 10도 정도로 약간 쌀쌀한 편이다.
-관광명소 리스트
록마차우 (落馬洲), 사이쿵 (西貢), 삼동옥 박물관 (三棟屋博物館), 샤틴 (沙田), 셩수이 (上水), 유엔롱 (元朗), 추엔완 (灣), 타이푸타이 (大夫第)


21위 빅토리아 폭포


▶아프리카 남부, 잠비아와 짐바브웨의 국경을 흐르는 잠베지강에 있는 폭포. 표고 약 900m의 고원에서 흘러내리는 잠베지강의 물이 너비 약 1,500m의 폭포로 바뀌어 110∼150m 아래로 낙하한다. 폭포 위에는 몇 개의 섬이 있어서 레인보 폭포 등 다른 이름을 가진 폭포로 갈라져 있다. 수량이 많은 11∼12월에는 1분간에 낙하하는 수량이 무려 30만m3에 달한다. 이 폭포는 아래 쪽의 강폭이 50∼75m에 불과하여 반대쪽 낭떠러지 끝에서 내려다볼 수 있을 뿐이며, 멀리서는 치솟는 물보라만 보이고 굉음 밖에는 들리지 않기 때문에 현지에서는 옛날 부터 천둥소리가 나는 연기라고 불렸는데 1855년 영국 탐험가 D.리빙스턴이 발견하여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따서 빅토리아 폭포라고 명명하였다.


20위 중국 만리장성


▶장성은 고대 중국을 대표하는 건물이자, 중화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적 우수성을 과시한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서쪽 산해관(山海關)에서 동쪽 가속관까지 무려 12,700(里), 6,000km에 이르는 만리장성(萬里長城)은 우주에서 보이는 유일한 인공 건축물이다.
중국에서 처음 장성을 쌓기 시작한 것은 BC 7C경으로 당시 북방 초원지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중원에 침입해 약탈을 일삼던 북방 유목민족들로부터 백성들의 재산과 인명을 보호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훗날 중원을 통일한 중국 최초의 황제 진시황은 제국의 경계를 확고히 하고, 북방 유목민족들의 침입을 차단하겠다는 대전제 하에 막대한 인력과 물력을 총동원 하여, 과거 6개국이 쌓아 놓았던 각각의 장성을 하나로 연결하는 대토목공사를 추진, 결국 '만리장성' 이라는 인류사에 길이 남을 역작을 만들어 냈다.
북경 시내에서 서북쪽으로 약 7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빠다링장성은 북경 인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장성으로 산 정상까지의 높이가 해발 1,015m에 이른다. 빠다링은 쥐용관(居庸關)의 북쪽 입구로 사방팔방이 훤히 보이는 넓은 시야와 북경 외각으로 연결되는 사통팔달의 교통요지라는 뜻에서 그 같은 이름이 붙여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현재의 모습은 명나라 때 완성되었다. 10여 년 전 부터 케이블카가 운행되고 있다. 개방하는 곳 중에 많이 찾는 곳은 팔달령(八達嶺)·모전욕·사마대(司馬臺) 장성 등이다. 현재 일반인들에게 등정이 허용되고 있는 팔달령관성은 1505년 명나라 때 중건된 것으로, 그 입구에서는 '신위 대장군'이라 불리는 길이 2.85m, 주장 1.05m의 명나라 대포도 볼 수 있다.


19위 몰디브


▶몰디브 공화국은 1,200개의 산호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중 202개가 사람이 사는 섬이다. 스리랑카에서 남서쪽으로 600km 지점에 위치해있는 몰디브는 19개의 행정조직으로 나뉘어진다. 전 국가가 해발 2미터도 채 안되기 때문에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받기 쉽다. 어업과 관광이 중요한 산업이다. 몰디브는 오랜 전통의 격리된 독립을 가져왔다. 이 나라는 1965년까지는 영국의 독립 보호령이었고 1968년 이후로는 정당이 없는 민주 공화국이다. 몰디브는 적도를 가로지르는 인도양의 한가운데 흩뿌려진듯 보석같은 몰디브의 섬들은 열대의 천국이라 할 만큼 그 모습이 희귀하고 아름답다.야자수로 장식된 섬들과 눈에 띄게 흰모래톱, 터키색의 환초에 둘러싸인 바다, 바닥까지 보이는 따뜻한 바닷물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아름다운 산호군과 물고기는 여행자를 유혹한다. 섬의 높이가 2미터에 미칠까 말까하는 1,19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이 공화국은 26개의 군도가 사방 약90,000평방킬로미터에 펼쳐져 있다. 몰디브의 섬들은 물이 앝고 크리스탈 처럼 투명한 라군에 둘러 싸여있고 라군 주변에 산호군들이 산재하여 발달해 있다.
이 독특한 섬들은 여행자들에게 해저의 숨막힐 것 같은 장관을 제공한다. 남북으로 820킬로미터, 동서로 120킬로미터인 이 나라의 가장 가까운 이웃은 인도와 스리랑카이다. 인구는 238,363명, 유인도인 199개의 섬을 제외하고 74개의 섬은 전문적인 휴양지로 개발되어 있다. 여기에는 원주민들이 있지 않고 섬에 체류하는 모든 사람의 관계는 손님과 종업원의 관계 뿐이다. 한편, 몰디브의 수도는 1.77평방Km가 조금 넘는 면적으로 6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주하며, 몰디브에서 가장 큰 회교사원이 있는 말레(MALE)이다. 언어는 인도, 이란 계통의 디베히어로 강한 아라비아의 영향을 받았다. 영어 및 다른 외국어도 관광산업 분야에서 자주 사용되며 몰디브는 16세기 중엽 포르투갈의 지배 아래 15년 반동안의 시기를 제외하고는 독립국가였으며 1887년에서 1965년 사이에 영국의 보호령이었다. 1965년 주권국이 되었으며 1968년 11월 11일 군주국에서 공화국으로 바뀌었다.
적도를 가로지르는 인도양의 한가운데 빛나는 산호 보석을 뿌려 놓은 듯한 아름다운 섬들로 일찌기 마르코 폴로는 몰디브를 “인도의 꽃”이라 표현했으며, 아이반 바투다는 "세상의 경이 중의 하나" 라고 표현했다. 섬의 높이가 2m에 미칠까 말까하는 1,19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공화국은 26~29개의 군도로 이루어져 있다. 이 지구의 외딴섬, 환상의 휴양지에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2년 남짓하지만 유럽사람들에게는 휴가기간 동안 지내는 휴양지로서 최상의 지역중 하나이기도 하여 연중 객실 예약을 미리하지 않으면 객실확보가 쉽지 않다. 따라서 몰디브는 일년내내 따뜻한 몬순 기후로 계절의 변화가 거의 없고 빠듯한 여행 일정에 끌리듯이 다니는 다른 여행지에 비해 한가롭고,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적인 틀에서 벗어나 그야말로“자유”를 만끽 할 수 있다는 점이 젊은 신세대 신혼 여행자, 가족 휴양여행객에게 각광을 받고 있다.


18위 이탈리아 베니스


▶베네치아 (Venezia)를 영어로는 베니스(Venice)라고 한다. 이탈리아 북부 베네치아만(灣) 안쪽의 석호 위에 흩어져 있는 118개의 섬들이 약 400개의 다리로 이어져 있다. 이 섬들 사이로 중심 수로인 그란데 운하가 2개의 넓은 만곡부 주위를 흘러 도시를 통과한다. 섬과 섬 사이의 수로가 중요한 교통로가 되어 독특한 시가지를 이루며, 흔히 물의 도시라고 부른다. 대안의 메스테르와는 철교·다리로 연결되어 있으나, 철도역은 철교가 와 닿는 섬 어귀에 있고, 다리를 왕래하는 자동차도 시내에는 들어올 수 없다. 시가지는 본래 석호의 사주(砂洲)였던 곳에 들어섰기 때문에 지반이 약하고, 따라서 근래 지반 침하와 석호의 오염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한때 지중해 전역에 세력을 떨쳤던 해상공화국의 요지였고, 오늘날에는 주로 운하, 예술, 건축과 독특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로 알려져 있고 또한 프랑스의 파리와 더불어 유럽 여행을 꿈꾸는 이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도시로 꼽히고 있다.


17위 이집트 피라미드


▶피라미드는 초기 왕조시대의 마스타바에서 발전된 것으로, 제18왕조 초에 왕묘가 암굴묘(岩窟墓)의 형식을 취할 때까지 계속된다. 최성기는 제3∼5왕조로 피라미드시대라 부른다. 최고(最古)의 피라미드는 사카라에 있는 제3왕조 제2대 조세르왕의 계단식 피라미드로 재상 임호테프가 설계한 것이다. 처음에는 한 변이 63m인 직사각형 석조 마스타바로, 중앙에 깊이 28m의 견혈(堅穴)을 파고 그 밑에 매장실을 만들었다. 그러나 확장공사가 시작되어, 결국 마스타바를 6단 포개 놓은 모양의 밑변 109×126m, 높이 62m의 계단 피라미드가 완성되었다. 이것은 종교적으로는 헬리오폴리스를 중심으로 예로 부터 존재했던 태양신 숭배가 피안(彼岸)의 신앙과 결부된 결과로, 계단은 죽은 국왕이 하늘로 올라가기 위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 기자
'기자의 피라미드를 보지 않고는 이집트를 말하지 말라.'
흔히 기자의 3대 피라미드를 보고 하는 말이다. 기자는 카이로 시내에서 서쪽으로 13km 가량 떨어져 변두리, 사막과의 경계에 홀연히 웅대한 피라미드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금은 카이로시의 도시확장으로 주변지역까지 주거지역이 확대되어 결코 격리된 외딴 곳이 아니다. 사막이라는 무한의 공간에 놓여진 피라미드는 우주적인 신비를 감추고 있으며 추상예술로 최고의 위대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피라미드들은 지금부터 약 4500년 전인 고왕국 제 4왕조시대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제 4왕조(BC 2613 - 2494)의 쿠푸왕,카프레왕,멘카우레왕의 무덤등이 있으며, 현존하는 70여개 피라밋중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피라미드의 가장 경이로운 점은 아마도 그 거대한 구조물의 방향일 것이다. 각 능선은 거의 정확하게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다. 그 각도의 오차는 진북(眞北)에서 5분 밖에 벗어나 있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도 미미한 것이어서,우연의 배열의 결과라고는 도저히 생각 할 수 없다. 또한 현대 20세기의 건축물로도 따라갈 수 없는 정확성은 도저히 인간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이다. 105 m 높이의 '상승통로'는 완벽한 배역에서 1 cm 도 벗어나지 않았으며, 이 피라미드가 건조될 당시 천구(天球)의 북극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던 용 자리의 알파 별을 지표로 삼아 이 통로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다.
기자는 나일강 델타지역에 있는 도시로 남북으로 111km, 동서로 96km 크기의 도시이다. 나일 강 하류 델타 지역은 풍족한 평야 지대로 건조한 사막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대부분이 아열대성 기후로 겨울(11∼3월)과 여름(5∼9월) 두 계절만 있는데 겨울은 서늘하고 온화하며 여름은 일반적으로 무덥다. 3월부터 5얼에 걸쳐서는 함신이라고 불리는 열풍이 불어오고 때로는 소비아라고 불리는 모래폭풍도 거칠게 불어온다. 우기가 되어 간혹 비가 내리면 대도시라도 하수도가 정비되어 있지 않아서 거리는 온통 진흙투성이가 된다. 6월부터 9월까지는 대단히 덥다.
▶기자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 쿠푸 왕의 피라미드(Pyramid of Khufu)
세계 최대의 건축물로 지저부의 1변이 230m, 창건 때의 높이는 146.7m였지만, 지금은 꼭대기 부분이 무너져서 137.2m, 부피는 259만 4914 평방미터이다. 피라미드를 구성하는 석재의 평균 무게는 1개당 2.5톤으로 추정되고, 사용된 석재 숫자는 230만개라고 하고 268만개라고도 한다. 돌을 쌓은 단층의 수효는 원래 210단인데, 지금 남아 있는 것은 203개이다. 쿠푸왕의 것을 비롯해 이곳 기제의 3대 피라미드는 약 4500년 전인 BC 26세기 경에 건조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가까이 가보면 겉에 돌을 쌓아 올린 것이 드러나 보이지만, 건축할 때에는 화장석으로 겉을 마루리해서 매끄럽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풍화와 약탈로 인해 화장석이 벗겨져서 지금과 같이 되어 버렸다. 내부 관람을 하려면, 9세기 알마문이 뚫은 북쪽 도굴 구멍으로 들어간다. 이 입구의 위쪽으로 약 10m되는 곳에 원래의 입구가 있었지만 지금은 폐쇄되어 있다. 입구를 들어가면 곧 오른쪽으로 ??여서 높이 약 1.2m의 좁고 가파른 통로를 오르게 되고, 다시 높이 약 8.5m의 큰 회랑을 거쳐 왕의 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내부로 들어가려면 피라미드의 석축을 오르고, 좁고 가파른 통로를 올라가야 하므로 여성도 바지를 입는 것이 좋다.
- 카프라 왕의 프라미드(Pyramid of Khafra)
3대 피라미드의 중앙에 위치하고, 쿠푸 왕의 피라미드 보다 좀 작은 듯하지만, 높이가 143m로 지금은 가장 높다. 또한 쿠푸 왕의 것보다 좀 높은 곳에 세워져 있으므로, 보는 방향에 따라서는 좀 더 크게 보인다. 피라미드 가운데 비교적 잘 보존되고 표면의 화장석도 일부 남아있어 가장 아름다운 외관을 자랑한다. 이 피라미드의 동쪽에 신전이 축조되어, 스핑크스 남동쪽에 세워진 아안신전과 참배용 도로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곳도 북쪽의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 멘카우라 왕의 피라미드(Pyramid of Menkaura)
기저부의 1변이 105m, 높이 65m, 3대 피라미드 중에서는 가장 작다. 카프라 왕의 것과 같은 배열의 신전이다. 하안신전을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은 폐허로 변했다. 기자의 3대 피라미드의 석재는 대부분 석회암인데, 이는 기자 남동쪽 약 15km 지점의 투라에서 잘라낸 듯하며, 화장석으로 쓰인 화강은 남쪽으로 850Km나 떨어진 아스완에서 나일강을 이용하여 운반된 듯하다. 찾아오는 관광객이 적고 도로에 떨어져 있어서 정적에 싸여 있다.
- 스핑크스(Sphinx)
피라미드와 마찬가지로 기자의 스핑크스도 수많은 순례자와 여행자를 매료시켰다. 1735년 마예는 스핑크스를 '사자의 몸통, 여자의 머리'라고 생각하고 '처녀와 사자가 한 몸을 이룬 12궁일지 모른다.'고 적었다. 아주 오래 전에 그려진 스핑크스는 모두 모래 위에 불쑥 튀어나온 기념비적인 머리의 형태만이 묘사되어 있다. 1816년 카비글리아의 지휘로 시작되었던, 모래 제거 작업은 한때 중단되었다가 1886년 마스페로와 브룩슈의 작업으로 파라오 카프렌의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건축된 배를 깔고 엎드려 있는 기제의 사자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났다. 높이 21m에 길이 57m. 스핑크스 중에 가장 오래되고 큰 것으로 유명한 것은 제 4왕조의 카푸라왕의 피라미드에 딸린 스핑크스이다. 이것은 자연 암석을 이용하여 조각한 것인데, 군데군데 보수되어 있다. 전장은 약 70m,높이 약 20m라는 거상으로, 그 얼굴은 상당히 파손되어 있으나 카푸라왕의 생전 얼굴이라고 한다. 앞으로 뻗은 앞다리에는 투트메스 4세의 석비가 있다. 이 스핑크스는 <지평선 상의 매>를 나타내고, 태양신의 상징이라고 한다. 스핑크스는 머리는 사람이고 몸통은 사자인 신화적 존재로서 날개가 있는 경우도 있다. 이집트가 발상지라고 하는데 그 후에는 시리아,아나톨리아와 지중해 그리스 본토 등에 전파되었다. 이집트의 스핑크스는 일찍이 제4왕조기(BC2650무렵)에 기자에 있는 왕 카프레의 피라미드 남동쪽에 조각된 대스핑크스로 등장한다. 이것은 왕자신의 상이라 한다. 애초에 왕을 사자로 여긴 이집트의 옛 관념에서 나왔다 하며 왕비도 여성 스핑크스로 표현되었다. BC2000년대에는 스핑크스는 종종 신, 예컨대 태양신의 화신이라고 믿어졌다.
BC2000년대 중엽부터 BC1000년대 전반에 걸쳐 아나톨리아, 시리아, 팔레스타인, 키프로스 등에서도 스핑크스가 중요시되었다는 것은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밝혀져 왔다. 스핑크스 석상은 문 양쪽에 세워지거나 건조물의 일부로 사용되었으며, 상아의 부조 또는 청동상이 종교색 짙은 장식으로 사용되었다. 이들은 모두 날개돋친 상이며,수호신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리스의 스핑크스는 처음에는 죽음으로부터 지켜주는 신학적 존재로서 액막이 목적으로 방패나 무덤 등에 새겼으나, 뒤에 테베의 전설에 흡수되어 유명해졌다.
▶가는방법 :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997번 버스를 탄다.(약 30~40분) 돌아올때는 정문으로 나와서 997번이나 타흐리르 광장 가는 버스를 탄다.
▶개장시간 : 매일 09:00-16:00


16위 요르단 페트라


▶요르단의 공식 이름은 요르단 하심 왕국(Hashemite Kingdom of Jordan/al-Mamlakah al-Urdunnmyah al-Hbshimmyah)인 요르단은 서남아시아에 있는 아랍 국가이다. 요르단 강 동쪽에 있으며 수도는 암만이다. 남북으로 약 460km, 동서로 약 355km 뻗어 있고 북쪽은 시리아,북동쪽은 이라크, 남동쪽과 남쪽은 사우디아라비아, 서쪽은 이스라엘을 경계로 한다. 아카바 만에 19km의 해안선을 끼고 있다. 웨스트뱅크로 알려진 요르단 강 서쪽 지역도 1949년부터 이스라엘군에게 점령당한 1967년까지는 요르단의 영토였다. ▶페트라
사해 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요르단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이며 배낭여행의 최적지이다. 2,000년 전에 건설한 붉은 바위 도시로 암만에서 대략 3시간 소요된다. 아랍계 유목민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해발 950m의 산악도시로서 최고 높이 300m의 바위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교역로의 교차지점에 있어서 사막의 대상로를 지배하며 번영을 누렸다. 시가지 입구는 동쪽의 시크, 남쪽의 투그라, 북쪽의 투르크 마니에라 라는 3개의 협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곳곳에 뛰어난 기술로 세워진 건축물과 수로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유적 가운데 가장 유명한 카즈네피라움은 장례사원으로 추정되는 건축물로서 바위산 벽면을 깎아 만들었다. 사원 정면에는 높이 약 30m, 너비 약 25m의 파사드가 있고 앞에는 넓은 광장이 펼쳐져 있다. 파사드는 2개의 박공벽, 프리즈, 기둥, 조각상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15위 나이아가라 폭포


▶나이아가라 폭포는 세계에서 가장 신비스런 자연 장관 중의 하나로 매년 관광객이 1000만명을 넘는 유명한 관광지이다. 수억년 전 빙산기의 산물인 이 폭포는 5대호의 하나인 이리호에서 흘러나온 나이애가라강이 온테리오호로 들어가는 도중에 이 거대한 두 호수의 높이 차이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즉,이리호 호수의 물이 온타리오 호수로 흘러 들면서 절벽에 의해 약 50m의 낙차가 생기는데 이 낙차가 세계최고의 자연 경관 나이아가라 폭포를 만드는 것이다.
인디언은 나이아가라 폭포를 천둥소리를 내는 물이라고 한다. 실제로 나이아가라의 굉음은 어마어마해서 한순간 귀가 멍하게 되는데,하루 중 시간에 따라 연중계절에 따라 물소리가 달라진다. 이것을 인디언은 신이 노한 것으로 알고 매년 아름다운 처녀를 제물로 바쳤다고 한다. 안개의 소녀의 전설이 지금도 전해져 내려오며 가끔 물보라 속에서 그 모습을 볼수 있다고들 한다.
나이아가라는 고트 섬을 경계로 미국 폭포와 캐나다 폭포로 나뉜다. 캐나다 폭포는 폭675m 높이 54m 매분 1억 5,500만 리터의 물이 낙하하고, 뉴욕 주에 속해있는 미국폭포는 폭 320m 높이 56m로 매분 1,400만 리터의 물이 흘러내린다. 그러나 캐나다 폭포는 미국 폭포에 비해 그 규모와 경관에 있어 훨씬 뛰어나다. 그래서 이런 이유로 흔히 나이아가라 폭포라 하면 캐나다 폭포를 연상하게 된다. 지질학적으로 볼때 나이아가라의 역사는 매우 짧아 마지막 빙하기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폭포는 물줄기의 기세로 매년 평균 1.4Cm씩 침식을 계속하고 있다. 폭포의 생성기인 빙하시대에는 지금의 위치보다 10Km나 하류에 있었다고 한다. 19세기에 나이아가라는 관광객으로부터 돈을 벌어들이려는 온갖 장사꾼이 모여들었으나 온타리오와 뉴욕 주정부가 이에 개입하여 재정비하여서 오늘날 나이아가라는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그래서 어디에도 바가지 요금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는 국제관광지로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있다. 또한, 나이아가라는 아래에서 볼 때와 위에서 볼 때 그리고 정면에서 볼 때등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고 색다른 감동을 받는다.
▶교통편
-버스
버팔로 공항 버스 정류장의 17번 게이트에서 나이아가라 폭포행 메트로버스가 출발하고 있다. 6:00부터 30~1시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으므로 이용하기 편리하다. 또한 버팔로 공항에서는 리무진 버스가 있다.
▶여행상식
밤에 펼쳐지는 '빛의 축제'(일류미네이션 쇼)는 나이아가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이다. 오색찬란한 야간조명으로 인해 시시각각 폭포의 색이 바뀌는 신기한 영상을 즐길 수 있어서 폭포를 찾은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해 준다. 특히,흰 눈이 내리는 겨울철의 빛의 축제가 더욱 아름답다. 거대한 물줄기를 쏟아 붓는 나이아가라 폭포 바로 앞까지 작은 배로 접근하는 나이아가라에서 꼭 추천할 만한 코스는 '안개의 숙녀호'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스릴 만점이다. 배가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절로 들정도로 위련이 대단하다. 여기서 꼭 레인코트를 걸쳐야 한다. 안개의 숙녀호는 관광객을 태운 후 먼저 북미>북미&en2=미국>미국>미국 쪽 폭포로 가는데,이때 누구나 물방울로 흠뻑 젖게 된다. 다음 더 큰 캐나다 폭포로 가서 엄청난 폭포의 굉음과 더불어 쏟아지는 물줄기로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상태가 되는데, 여기서의 사진촬영은 아예 불가능하다. 가운을 걸쳤지만 신발 등에 적지 않은 물세례를 각오해야 하지만,세계어느곳에서도 이와 같은 경험은 할 수 없다.
▶관광명소
-나이아가라 레져베이션 스테이트 파크 -나이아가라 파워 비스타 -나이아가라폭포 -레인보우 다리 -미놀타 타워 -바람의 동굴 -시닉터널 -안개속의 숙녀호 -테이블락 하우스 -포트 나이아가라 스테이트 공원 -프로스펙스 포인트 옵저베이션 타워


14위 페루 마추피추


▶안데스 산지에 메아리치는 폴클로레의 멜로디라든가, 민속의상을 입고 세갈래의 머리를 늘어뜨린 인디오의 여인들 아침 안개에 싸여 있는 잉카의 유적, 불가사의한 지상 그림, 그리고 아마존의 밀림 지대 등 남미 이미지의 모든 것을 지니고 있는 나라가 페루이다. 아마존이라고 하면 브라질을 연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페루 국토의 60%가 아마존의 열대우림 지대이다. 아마존 강은 페루의 안데스를 발원으로 하여 시작한다. 예전에 남미의 최대제국을 쌓았던 잉카를 비롯하여 페루에는 기원전부터 몇 개의 고대 문명이 꽃피었다가 사라졌다. 프레 잉카의 유적 위에 다시 고대 문명의 다시 잉카의 건축물이 세워지는 등 몇천년 전에 만들어진 유적에나 잉카의 유적 위에 식민지 시대의 건물이 서 있다. 페루의 여행에서는 머나먼 과거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불가사의한 매력이 끝없이 사람을 끌어 당긴다.
▶ 마추피추
잉카의 '잃어버린 공중 도시', 우루밤바 강 줄기가 S자 형으로 크게 구비치는 유역에서 400m 올라간 해발 2,280m에 위치하여 밀림으로 무성한 아래에서는 도저히 그 존재를 알 수 없고 접근하기 조차 불가능한 곳으로만 보인다. 공중에서 본 마추피추의 총 면적은 5㎢이며, 절반가량이 경사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적 주위는 높이 5m, 두께 1.8m의 성벽으로 견고하게 만든 요새 형식이다. 유적의 가장 오래된 부분은 지금 부터 2,000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하는 설도 있으며, 적어도 잉카 이전부터 알려져 있었다고 생각된다. 스페인 정복 후 꾸스꼬나 다른 도시는 모조리 파괴되어서 잉카의 건축양식을 충실하게 재현하는 것이 매우 곤란했다. 마추피추는 그런 잉카 시대의 잃어버린 과거가 손 닿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귀중한 유적이다.
1534년 정복자인 에스파냐인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던 만코 2세 이하 사이리 토파크, 티투 쿠시, 토파크 아마르 등의 잉카가 거점으로 삼았던 성채도시로 보인다. 그 시대에 세운 건조물이 주체를 이루고 있으나, 정복 전의 잉카시대에 속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출토된 유물은 후기 잉카의 토기 ·금속기가 대부분이며, 1911년 미국인 하이람 빙엄이 발견하여 알려졌으며, 스페인의 정복자들의 파괴에 손길이 닿지 않았던 유일한 곳으로 잉카 시대의 잃어버린 과거가 그대로 담겨져 있는 잉카 최고의 유적지이다. 유네스코의 세계유산목록에 수록되어 있다.
이 도시의 건기인 6월부터 9월까지는 세계 각국에서 하루에 천여명이 몰려들 정도로 관광하기에 적합한 시기이다. 그러나 표고가 높은 만큼 온도 차이가 극단적이다. 특히 6-8월에는 한낮의 태양은 무척 강렬하며,밤에는 갑자기 추워지는 일이 많다. 여행하기 적합한 시기라도 일교차가 크므로 날씨에 맞는 옷을 준비하도록 한다.
▶교통편
-철도
마추피추는 당일관광하기에 좋다. 계절의 변경에 따라 변동이 심하기 때문에 현지에 가서 직접 확인해 봐야 한다.
▶관광제안
마추피추는 작은 도시이지만 잉카문명의 도시이기 때문에 여러 지역적 축제 들이 벌어지고 있다. 곡식을 잘 자라게 해준 태양에 감사하는 태양제, 그리고 각 달마다 열리는 여러 축제, 볼거리들이 있다.
-태양제
태양제는 과거 잉카 제국에서 농작물을 잘 자라게 해 준 태양에 감사하며,다음해에도 많은 수확을 거두도록 기원한 행사였다. 지금도 해마다 6월이면 쿠스코에서 태양제 의식을 갖는다. 잉카 제국 때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형식과 내용면에서는 같다. 축제가 시작되기 3일 전부터는 금식(禁食)하고 남자들은 여자를 멀리했으며 밤에는 태양을 맞기 위해 모든 불을 꺼 버렸다. 다음날 드디어 태양이 떠오르면 군중들은 무릎을 꿇고 일제히 찬양노래를 부른다. 황제는 금 술잔에 담긴 치차술을 태양과 더불어 마신 다음 태양의 신전으로 행진하는데 신전 안에는 황제와 혈족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신전에 제물을 바치는 의식이 끝나면 다시 행렬을 지어 또 다른 제단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야마(잉카의 가축)를 신께 제물로 바치는 예식이 끝나면,그때부터 먹고 마시는 잔치가 열리고 황제는 옥좌에 앉아 궁정의 귀족들과 함께 치차 술을 따라 마시며. 정신을 순화시키는 신비스런 음악을 감상했다. 이후 9일 동안 먹고 마시는 뜨거운 축제가 열린다. 이 때의 미친 듯한 춤과 음악의 아우성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규모는 작아도 면면히 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 처럼 오늘날쿠스코 교외 삭사이후아만에서는 태양제가 열린다. 잉카 제국 때 처럼 화려하고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형식과 내용면에서는 대동 소이하다. 이러한 축제를 통해 잉카 인들은 그들의 조상을 섬기고 독자적인 문화를 구축해 가는 것이다.
- Day Of The Kings (Dia De Los Reyes) ; 1월에 개최되는 것으로 잉카제국을 재현한 축제이다.
- Candlemas (Festival De La Virgin Del La Candelaria) ; 2월 2일에 열리는 개최되며 모든 참가자들 이 가면을 쓰며 춤을 춘다.
- Holy Week ; 3월과 4월에 열리는 축제로 페루국민 모두가 엎드려 절하는 의식이 있다.
- Corpus Christi ; 6월에 개최되며 가면을 쓰고 춤을 추며,악단,그리고 각종 공연이 이루어진다. 대성당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 Inti Raymi ; 6월에 개최되며 훌륭한 안무로 이루어진 야외극도 벌어진다
▶관광명소
-계단식 밭 -마추피추 -오두막 전망대 -태양신전


13위 멕시코 치첸이트사


▶멕시코 유카탄반도 북서부의 도시 메리다의 동쪽 약 110km 지점에 있는 마야문명의 대 유적지이다. 건조한 석회암 지대에 있고, 유적은 석회암, 회반죽한 흙, 목재 등으로 되어 있다. 이트사족(族)에 의한 최초의 취락 건설은 530년 이전의 일이라 하며, 7세기에 일단 포기되었다가 10세기에 재건되었고, 11세기 이후는 마야 신제국(新帝國)의 종교의 중심지로서 번영하였다. 13세기 초에 이트사족은 아스테크-톨테카족의 연합군에 패하였으나, 이후 가장 번영시대를 맞아 많은 건물이 만들어졌다. 그러다가 15세기 무렵에 갑자기 폐허가 되었다. 유적은 8㎢의 넓은 지대에 걸쳐 있고, 카스티요(높이 25m의 피라미드)와 그 동쪽의 전사(戰士)의 신전(神殿), 도로 건너편의 천문대 등이 알려져 있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 메리다
메리다는 유카탄 주의 주도로 유카탄 반도의 정치·경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 또한 메리다는 시우다드블랑카(하얀도시)라고도 불리우고 있으며, 이는 열대의 태양이 작열하는 하얀 벽의 집들, 주민들의 하얀 복장 그리고 도시의 청결함 때문에 사람들에게 하얀 도시라는 이미지를 주는 것이며, 이 때문에 시우다드블랑카라고 불리고 있다.
메리다의 매력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관광 포인트는 누가 뭐래도 주변에 흩어져 있는 마야의 유적과 치첸이트사나 우스말, 그밖에 많은 마야의 유적지이며, 마야 유적지로 가려면 이 도시가 기점이 되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칸쿤 등 카리브 해의 리조트 도시도 버스로 5∼6시간 거리에 있기 때문에 편리하다.
열대에 속하는 메리다는 5∼6월이 가장 덥고, 최고 기온은 34℃ 정도이다. 그러나 겨울에 해당하는 12∼2월에도 가벼운 재킷이 필요한 정도의 날씨로, 최저 기온이 17℃정도로, 추운 날씨는 아니다. 나머지는 우리 나라의 여름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어쨌든 덥기 때문에 여름철이 12:00∼16:00사이에는 외출을 삼가는 것이 좋으며, 활동은 밤에 하고 낮에는 여유있게 낮잠을 자도 좋다.
▶교통편
-공항안내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자동차로 약 20분 거리이며, 교통 수단으로는 택시·시티 버스의 2가지가 있지만, 가장 싸게 센트로로 가는 방법은 시티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공항을 나오면 오른쪽에 'Autobuses Urbanos'로 가는 표지가 있는데, 그곳에서 '79Aviacion'이라는 표시의 버스를 타면 되고, 버스 요금은US$0.1이다. 그러나 창유리가 없고 시트에 구멍이 뚫려 있는 등 깜짝 놀라겠지만 이것이 보통의 버스이므로 적응하는 게 현명한 일일 것이다. 이 버스는 시내로 들어가면서 Calle 66×69에있는 버스 터미널 옆을 지나므로 이 근처에서 내려서 호텔을 찾도록 하자. 공항에는 관광안내소가 있으며, 영어를 할 줄 아는 여직원이 앉아서 친절하게 대해준다. 시내에서 공항으로는 Calle 60×69의 모퉁이에서 같은 버스가 공항까지 가나, 30분에 1회 정도의 간격으로 떠나므로 시간에 여유를 두고 나가도록 해야한다. 그리고 공항에서 택시를 이용해 센트로로 가는 택시는 티켓제이기 때문에, 바가지를 쓸 염려는 없으므로 안심하고 이용하자
-버스
멕시코시티의동부 버스 터미널에서 ADO 사의 버스가 1일 7편이 운행하고 있으며 약 20시간이 소요된다. 팔렌케이서는 2등 버스로 카타사하까지 가서 갈아타야 하며,약 24시간이 소요된다. 또 메리다에서 카리브해의 푸에르토하아레스나 칸쿤으로는 1시간 마다 버스가 출발하고 있으며, 약 5시간이 소요된다. 그리고 칸쿤 방면에서 버스로 오면 구 버스 터미널(Calle 59,65×67)에 서는 경우도 있으므로 문의해 보자.
-철도
메리다는 멕시코시티·팔렌케와 철도로 연결되어 있으며,멕시코시티 출발인 경우 기차표는 미리 서둘러서 구입해야 한다. 그러나 메리다에서 가는 경우에는 출발 2시간 전까지도 표를 살 수 있으므로 원한다면 언제라도 기차를 타고 돌아갈 수 있다. 기차의 1등 침대라면 버스보다 약간 비싸지만 1등 보통석은 버스보다 조금 싸다. 그러나 2등석의 차내가 어둡고 더러워서 그다지 권할 만한 것이 못되며, 시간은 버스의 2배까지 걸리지만 기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여유 있게 여행하려는 사람에게는 이용해 볼만 할 것이다. 또한 기차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도둑이 많으므로 소지품에 주의해야하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하자. 메리다에서 팔레켈로행은 메리다 출발로 매일 밤 22:00이며,약 12시간 소요되며,메리다에서 멕시코시티로는 매일 22:00출로로 약 35시간 소요된다.
-택시
택시는 여럿이 같이 이용하지 않으면, 너무 비싸므로 일행이 여럿이라면 같이 이용한다면 부담은 적어질 것이다
-기타
멕시코시티에서 아에로멕시코 항공과 멕시카나 항공이 1일 7편 떠난다. 또 멕시코의 주요도시나 로스앤젤레스·마이아미·샌앤토니오에서도 항공편이 있다.
▶여행상식
-여행상식1
메리다 관광국은 소칼로의 북쪽의 주청사 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입구를 들어가 오른쪽에 있는데 수위가 서 있기 때문에 들어가기가 조금 부담스럽지만, 신경쓰지 않아도 되므로 당당하게 들어가도록 하자. 좁은 방에는 항상 1∼2명의 여직원들이 앉아서 친절하게 관광 안내를 해 주고 있으며, 영어도 잘하므로 이것저것 물어봐도 된다. 또한 간단한 시내 지도가 있으므로 그것을 꼭 받아 이용하자. 그리고 유카탄 반도의 지도도 받을 수 있다. 여기에는 도로가 전부 기입되어있기 때문에 이동하는 사람들이 현재 위치를 확인하는데 도움이 된다.
-여행상식 2
소칼로 주변에는 항상 관광 마차가 있는데, 이 마차는 메인 스트리트를 주로 달리면서 메리다 시내를 일주한다. 관광 마차에 몸을 싣고 여행 기분을 만끽하는 것은 어떨까? 요금은 1인 2,000패소이며 도중에 박물관이 있으므로 둘러보아도 좋을 것이다.
-여행상식 3
메리다는 덥기 때문에 활동은 밤에 하고 낮에는 여유 있게 낮잠을 자도 좋다, 이곳은 상점도 시에스타(낮잠)이므로 거의 쉬고 있다. 또한 메리다는 치안이 좋으므로 여성이라도 안심할 수 있다. 그리고 우기에는 저녁 무렵에 쏟아지는 소나기가 대단해서 고무 슬리퍼를 신지 않으면 돌아다닐 수가 없기 때문에 이점 유의하자.
-여행상식 4
메리다에서 환전율이 좋은 곳은 몬테호의 집이 있는 은행이 아니고 Calle 60,61×59의 시계·보석상(Joyeria Luis)이다. 이곳은 은행보다도 약 US$0.03이 높으며, 게다가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도 없이 빠른 시간 내에 환전할 수 있으며, 가게 앞에 커다란 시계를 매단 샌드위치맨이 있으므로 쉽게 알 수 있다. 환전 시 이곳을 이용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여행상식 5
멕시코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코인 란도리(Coin Laundry)가 있는데, 위치는 Calle 72를 지나면 왼쪽에 있다. 이용료는 세제를 포함해 1회에 1,000페소 정도이며, 배낭 여행족이라면 밀린 세탁물을 이곳에서 해결해 보는 것은 어떨까?
▶즐길거리
-즐길거리/활동거리 1
메리다의 버스 터미널에서는 우스말·치첸이사·카바·사일·라브나의 유적을 둘러보는 투어가 출발하고 있는데,우스말·치첸이사 외의 유적은 교통편이 나빠 혼자서 가기가 쉽지 않으므로, 투어에 참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마야 유적에 흥미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이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즐길거리/활동거리 2
메리다에서는 매일 밤 어디에선가 음악 콘서트가 열리고 있는데,. 대개는 무료이므로 시원한 저녁 바람을 쏘일 겸 이용해 보자.
▶관광명소
-민예 장식 박물관 -우카탄 역사 고고학 박물관


12위 호주 에어즈락(울룰루)


▶오스트레일리아 노던주의 앨리스스프링스에서 남서쪽으로 약 340㎞ 떨어진 오스트레일리아 중앙부의 사막지대에 자리잡고 있으며, 총면적은 1,325㎢이다. 이 지역은 원래 백인이 들어오기 훨씬 이전 부터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애보리진) 부족인 아난그족의 거주지로, 정부에 의하여 남서부 애보리진 보호구로 지정되어 있던 곳이다. 그러나 1958년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이 보호구 안에 있는 에어스록과 올가산 인근 지역을 보호구에서 제외시켜 에어스록·올가산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였다. 1987년 유네스코(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 의해 생물권 보호구로 지정되었고, 1994년에는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목록 중 복합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우루루(에어즈록)와 카타쥬(올가산)는 6억 년 전의 지각변동과 침식에 의하여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암석들인데, 우르르는 단단한 1장의 바위로 이루어진 거대 암석이며, 카타쥬는 36개의 바위로 이루어진 해발고도 1,069m(지표에서 546m)의 기암군(奇岩群)이다.
▶ 엘리스스프링스
오스트레일리아의 노던 준주에 있는 마을로 남과 북을 연결짓는 중심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1871년 애들레이드와 다윈의 통신을 연결하기 위해 지역을 찾던 중 메마른 강을 발견했는데 이곳을 애들레이드 통신국 감독관이였던 '찰스 토드'의 이름을 따서 토드강이라고 불리게 됐다. 근처에 있는 샘물의 이름은 찰스 토드의 부인 이름을 따서 '앨리스'라 지어졌는데, 그 후 오스트레일리아의 탐험가 스튜어트가 이름을 본 떠 도시 이름을 '앨리스 스프링스'라 불리게 되었다.
과거의 애버리니지로 불리웠으며 1933년에 정식으로 도시이름이 공식화 하였다. 하지만 당시 인구가 200명밖에 되지 않은 도시였기 때문에 도시답게 변모하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도시의 발전은 '더 간'이라 불리우는 대륙 종단 열차가 개통되면서부터 2차 세계대전 당시 다윈까지 갈수 있는 고속도로 '스튜어트 하이웨이'가 생겨 거듭나게 되었다. 그 후, 에어즈 록과 킹스 캐니언, 올가 국립공원과 같은 유명한 관광지가 있어 1970년대부터 3만 5천명 이상의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방문했다. 이처럼 앨리스 스프링스는 화려하고 독특했던 애버리지니의 현재와 과거의 모습을 한 눈에 알아볼수 있는 곳이다. 또한, 일명 '아웃백'이라 불리우는 넓은 사막과 산맥으로 둘러싸인 간헐천 토드 강과 스튜어트 고속도로가 멋진 장관을 연출한다.
앨리스 스프링스의 연 평균 기온은 온화한 편이지만 일교차가 커 여행시 주의가 필요하다. 한 여름인 12월 - 2월은 우리나라 여름 못지 않은 무더위가 계속되고 간혹 40도가 넘는 날씨를 보일때도 있다. 따라서 선크림이나 선글래스등의 용품을 준비하는 것이 좋고, 여행 하기에는 오히려 겨울철인 4월 - 9월이 좋다. 하지만 엘리스 스프링스는 일교차가 큰 지역이므로 보온을 위한 스웨터나 겉옷을 미리 미리 준비하자.
▶교통편
국내선 공항인 앨리스 스프링스 공항은 시내 중심부에서 남쪽으로 약 14km 떨어져 있다. 공항에 도착하면 터미널 바로 앞에는 택시가 대기하고 있고 좌측에는 공항 셔틀버스정류장이 있다. 공항 셔틀버스는 시내 곳곳의 주요 숙박시설과 역을 순회하면서 돈다. 택시를 이용하면 시가지까지 15분 정도 걸린다.
-버스
▣ Alice wanderer
10여곳의 관광지를 1시간 30분정도에 순회하는 익스플로러 버스로 하루 티켓과 반일 티켓이 있어 시내 어디든지 승하차 할 수 있다. 주요 운행 노선은 카멜농장-올드간-항공 박물관-통신무선학교-옛 전신중계소 - 안잭힐-파노라마 구스 박물관으로 운행하고 있다. 티켓은 하루권 반나절 권이 있고 운전수에게 직접 지불하면 된다.
▣ 시내버스
앨리스 스프링스의 시내버스는 하틀리 거리에 있는 예페레니 쇼핑 센터 앞에 정류장이 있다. 시내버스는 노선이 그다지 많지 않고, 아침 7시 30분부터 저녁 6시 까지만 운행되고 토요일은 오전에, 일요일이나 공휴일에는 운행이 되질 않아 불편한 점이 많다. 정류장에서 1번 버스를 타면 시의 서쪽으로, 2번 버스는 시의 동쪽, 3번 버스는 시의 북쪽, 4번 버스는 시의 남쪽으로 이동하는 각각의 노선들이 있다. 60분에서 100분간격으로 운행하고 요금은 탑승시 운전기사에게 말하면 알려준다.
▣ 시외버스
장거리버스는 장기간의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교통수단으로 대단한 각오를 하고 탑승해야 한다. 황랑한 사막과 같은 벌판을 적게는 5시간부터 많게는 20시간까지 타고 달려가다 보면 힘겹게 목적지에 도착할수 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다보니 먹을거리와 책 한권정도는 준비해야 기나긴 여정을 벗어날 수 있다. 토드 몰의 그레이 하운드에서 출발하여 매카퍼티스가 다윈, 애들레이드, 에어즈 록을 비롯하여 여러곳을 순회한다.
-철도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기차는 단지 교통수단보다는 관광의 일부분이라 생각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차 또한 장거리 버스에 맞먹는 시간이 소요되지만, 여러 가지 편의 시설이 준비되어 있어 버스보다는 훨씬 더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수 있다. 시 중심부의 서쪽에 자리잡은 앨리스 스프링스 역에서는 시드니나 멜버른을 출발하는 '더 간'이 일주일에 딱 한번 운행하는데 약 20시간 이상 걸린다. 요금은 좀 비싼편이지만 멋과 낭만을 느끼고자 한다면 기차를 이용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단, 역 근처에는 황량한 사막에 음식점이나 숙소같은 편의시설이 전혀 없기 때문에 약 15분 정도 걸어가거나 택시, 셔틀버스를 이용해서 앨리스 스프링스 시내에 들어서야 한다.
-택시
그레고리 테라스의 타운 가운실 앞에 택시 정류장에서 탑승하거나 콜택시로 부르면 된다. 미터대로 요금을 내고 이용할 수 있고 원한다면 하루정도 전세를 내서 이용할 수 도 있다.
-기타
▣ 시내교통 개요
앨리스 스프링스의 시내를 모두 10개의 도로로 둘러싸인 아주 작은 도시이다. 하지만 관광 명소는 너무 광범위하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시내에서는 그다지 볼거리가 많지 않다. 시내는 걸어 다니는 것이 가장 좋고, 시외곽으로 이동 시에는 렌터 사이클을 이용하거나 관광버스인 '앨리스 원더러'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시내버스는 몇 대 되지 않아서 불편한 점이 많다.
▣ 시외교통 개요
외부에서 앨리스 스프링스를 올때는 대단한 각오를 하고 출발해야 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일대 어느곳이든 이곳으로 오는 장거리 버스가 준비되어 있지만, 시간이 만만치 않게 걸려서 힘겨운 인내력을 요구한다. 장거리 버스외에도 애들레이드에서 출발하는 대륙종단 열차인 '더 간'을 이용하거나 국내선 비행기를 타는 것이 현명한 방법중 하나이다.
▣ 기타 시내교통수단
앨리스 스프링스는 시가지가 좁은편이며 교통이 원만하고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어 시내 구석구석을 모두 둘러볼수 있다. 렌터 싸이클은 숙소앞에 쉽게 빌릴수 있고 숙박객들을 위해 1일 요금이 A$10 으로 굉장히 저렴한 편이다.
▶여행상식
▣ 여행상식 1
애버리지니의 숨결을 잘 간직해온 앨리스 스프링스에는 현대의 문명속에서 그들만의 긍지를 엿볼수 있는 예술품들이 많이 있다. 애버리지니인들은 신화와 전설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이 있는데 자연주의 양식을 비롯하여 사람 인체의 선을 그림 X 표법이 있다. 독특한 예술품들이 많아 관광객들에 대단한 인기를 받고 있어,얻어진 수입들은 애버리지니들의 경제 기반이 되고 있다.
▣ 여행상식 2
다른 도시에서 앨리스 스프링스까지 걸리는 시간이 보통 15시간에서 20시간 걸리므로 장거리 버스를 이용할시에는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먹거리부터 즐길거리를 준비해야만 지루하고 무료한 시간을 보낼수 있다.
▣ 여행상식 3
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적막한 사막과 흙먼지만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 '더 갭'을 지날 때 바깥을 살펴보면 일명 거리의 무법자로 통하는 '로드 트레인'을 볼 수 있다. 로드 트레인은 어디에서도 볼수 없는 바퀴수가 무려 62개이고, 길이가 53m에 이르는 거대한 트럭인데 보는이의 시선을 압도하여 무료함을 약간 달래준다. 노던 테리터리를 지날 때 이 트럭을 보지 못하면 반드시 후회를 할 것이다.
▣ 여행상식 4
앨리스 스프링스에서는 장거리 버스의 운전기사들이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한다. 도시의 주요사항과 금지사항을 비롯하여 편안한 여행을 위해 가이드들도 알지 못하는 전설이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준다. 다만,모든 이야기를 영어로 이야기하여 알아들을수 없는 말들이 있으므로 가기전에 영어공부를 많이 하는것이 좋다.
▶즐길거리
▣ 즐길거리/활동거리 1
앨리스 스프링스에서 가장 대표적인 투어로 손꼽히는 '열기구'타기는 하늘 위에서 도시의 멋진 전망을 감상할수 있다. 특히,해가 뜨기 전에 열기구를 타고 올라 일출을 감상하는 것은 보는이의 탄성을 자아낸다. 열기구 전문 투어 회사를 통하여 가는 것이 좋고 시간은 30분 60분 진행된다.
▣ 즐길거리/활동거리 2
플런티어 캐멀 농장이나 모엘 풀러턴스 캐멀 아웃백 사파리를 통해 경험할수 있는 낙타 투어는 시간이 약 1시간정도 소요된다. 영화에서나 볼수있는 낙타를 타고 토드강변을 따라 가다보면 어떤곳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기분을 받을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2일에서 6일간 맥도널 산맥이나 심슨 사막으로 이동하는 투어코스도 있다.
▣ 즐길거리/활동거리 3
에어즈 록이나 킹스 캐니언을 탐험하면서 캠핑할수 있는 '아웃백'투어는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자연 신비를 한층 더 새롭게 경험할수 있다. 젊은 배낭족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웃백 투어는 전문회사의 도움을 받아 가는 것이 가장 좋고 기간은 적게는 2일에서 길게는 5일까지 걸린다. 모든 준비과정부터 투어실시는 영어로 설명하므로 어학을 필수적으로 해야 어려움이 없다.
▶관광명소
-구 전신 중계소 -스트렐로 리서치 센터 -안잭 힐 -애버리지널 아트 & 컬처 센터 -앨리스 스프링스 사막공원 -에어즈 록 -킹스 캐니언 -프론티어 카멜 농장 -피치 리치 생튜어리


11위 루이스 호수


▶해발고도 1,732m, 최대수심 70m, 길이 2.4km, 폭 1.2km이다. 캐나다 앨버타주 밴프국립공원 안에 있다. 1884년 캐나다퍼시픽 철도를 건설하기 위해 캠프를 설치하면서 마을이 들어섰다. 빙하에 의해 깊게 팬 땅에 빙하가 녹으면서 호수가 되었다. 1882년 철도 노동자가 발견하였으며, 빙하에 깎인 미세한 진흙이 호수 바닥에 가라앉으면서 햇빛에 반짝여 물 빛깔이 청록색을 띤다. 처음에는 에메랄드 그린 호수라고 이름이 붙었지만 후에 빅토리아 여왕의 딸 루이스 공주의 이름을 따서 루이스 호수가 되었다.
캐나다 록키의 수많은 호수 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호수로 세계 10대 절경의 하나. 길이 24km, 폭 800m, 수심 70m이며 빙하의 침식으로 생긴 웅덩이에 빙하가 흘러내려 고인 호수이며, 샤토 레이크 루이스(호텔)에서 호수를 바라보면 저 멀리 빙하를 안고 있는 빅토리아 산(3,464m)이 Fairview 산, Whyte 산의 시중을 받으며 우뚝 솟아 있는 것도 모잘라 호수 안에도 똑같은 모습을 비쳐주고 있다.
▶ 밴프
캐나다 앨버타 주 남서부에 위치하고 있는 읍으로, 보 강가에 자리잡고 있으며 경관이 아름다운 루이스호와 브리티시 컬럼비아 경계 지대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또한 밴프 국립공원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밴프는 스트래스코나 경이 스코틀랜드의 특허칙권 도시인 밴프에서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고 한다. 이후 1883년 캐나다 퍼시픽 철도가 들어오고 1885년 밴프 국립공원이 설립되면서 휴양지로 발전했으며, 이후 캐나다 횡단 고속 도로를 따라 자리잡고 있어서 1년 내내 관광객들과 회의 참석자들의 발길의 끊이지 않고 있다. 관광 명소로는 유황온천·예술학교·박물관·요양소 및 스키 시설 등이 있으며, 인디언 시대 축하 행사(8월)와 겨울 스포츠 카니발은 연례행사등이 있다. 경공업으로는 제약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석탄이 인근에서 채취되고 있다. 캐나다 앨버타 주 남서부의 읍으로서 인구는 약 4,800명 정도이다.
▶교통편
-버스
밴프의 버스 디포는 시내 북서쪽에 위치하여 시내 중심부까지는 걸어서 5~10분 정도 걸리고 있으며,또한 이 곳은 브르스터와 그레이 하운드의 정류장을 겸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Banff Ave. 의 안내소나 호텔 내에서 접수하고 있는 브루스터의 투어 예약을 이곳에서도 할 수 있다. 각 방면으로 가는 관광 버스가 동시에 출발하므로 자신이 신청한 관광 버스의 게이트 번호를 미리 확인해 두어야 한다.
-철도
VIA Rail의 철도역에서 시내까지 거어서 5~10분 거리이며,역 앞의 Eik St.에서 곧장 거어가면 밴프 거리에 이르게 된다.
-기타
밴프 시내와 밴프 스프링스 호텔을 연결하는 노선과 Valleyview Park Ave. 사이를 연결하는 노선의 셔틀 버스가 여름과 겨울 관광 시즌 중에 운행되고 있으며,Banff Ave.에서 07:00~19:30사이에 15분 간격으로 출발하고 있으므로 확인해 보자. 또한 시내에서 터널 산의 캠푸장까지도 버스가 운행되고 있고,요금은 $1로 여름에 주로 운행되고 있다.
-시외교통 개요
밴프 근교에서 밴프로 이동을 하려면 주로 민간이 운영하고 있는 Mountaineer Railtours가 주 1~2펴 대여편을 이용한 투어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이용하는 것이 제일 좋다. 이밖에 철도를 이용할 수 있지만 오래되고 많은 편수가 운행되고 있지 않아서 불편하다. 조그마한 읍이므로 랜트를 해서 이동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랜트에 관한 사항은 관광 안내소에 문의를 해 보면 자세히 제공해주고 있다. 자전거 대여점에서 자전거를 대여한 후 자전거로 이동해 보는 것은 어떨까? 조그마한 읍이므로 충분히 자전거로 이동할 수 있다.
▶여행상식
시내의 중심가에 위치한 Banff Ave.와 Wolf St.가 교차하는 모퉁이 부근에 관광 안내소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숙박시설 목록, 로키 지도, 행사 정보 등 다양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직원은 매우 친절하여 여러가지로 상담도 해주고 있다. 캠프장 지도와 로키에서 캠프할 때의 주의 사항, 곰에 대한 대비책 등에 대한 비디오 상영도 있으므로 캠프할 사람은 가능한 한 들러보자.
▶즐길거리
-사이클링(Cycling)
로키를 방문한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 이용한는 것이 자전거일것이다. 자전거 대여점도 많이 있으며, 1시간에서 24시간까지 빌릴수 있는 서비스가 있다. 하루동안 빌리면 밴프 시 안을 돌아다니는 데도 편리하며,로키에는 택시를 제외하면 간편한 교통 수단이 없으므로 자전거를 이용하면 저렴하면서도 곳곳을 둘러 볼 수 있을 것이다. 도시를 벗어나 로키의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는 사이클링을 들 수 있다. 단 하이킹 코스에도 자전거의 진입이 금지된 곳이 있으므로 이점은 유의하도록 하자.
-급류타기(Rafting)
6~8인승의 고무 보트를 타고 강을 내려갈 수 있다. 래프느 투어에는 단지 보트를 타고 강을 내려가는 것과 참가잔 전원이 노를 저어가는 것(White Water)이 있는데, 후자를 권하고 싶다. 옷은 갈아입게 되므로 미리 수영복을 준비해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승마 (Horesback Riding)
개척시대를 생각하면서 말 등 위에서 흔들리며 로키 산 속으로 달려보는 것은 어떨까? 캐나다에서는 자연을 산책하는 승마가 일반적인 스포츠이다. 코스로는 1~3시간의 가벼운 코스부터 며칠에 걸쳐서 야산을 돌아보는 트래킹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즐길거리/활동거리 1
밴프는 산 속에 위치하고 있지만,관광 시즌 중에는 매우 번화한 곳으로 한밤중까지 유흥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밴프이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쉬는 것도 좋고 세련된 맥주집에서 회화를 즐기는 것도 좋으며, 디스코에서 춤을 추면서 즐기는 것은 어떨까?
-즐길거리/활동거리 2
밴프에서 가장 번잡한 밴프 대로와 카리브 거리의 모퉁이에 위치한 빌딩 2층에 자리하고 있는, Rose and Crown은 젊은이들의 열기로 가득한 곳이다. 가게는 작지만 분위기 좋은 술집이며,실내장식도 공들여한 흔적은 없지만 한쪽 구석의 핀볼이나 아무렇게나 놓인 소파,플로어에서 선 채로 술을 마시는 사람들과 춤추른 젊은이들 등,캐나다다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이것에서 현지인들과 어울려 보는 것은 어떨까?
▶관광포인트
4~5월까지 언다는 호수 위에는 보우트를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호수 옆에는 보우트 빌려주는 곳도 있다. 너무나 비싸 그저 구경만 하는 샤토 레이크 루이스 호텔 에는 수많은 꽃이 화단을 장식하건만 그것도 부족한지 꽃마차를 만들어 그 위에도 심었다. 오후에는 해가 정면에 오니까 좋은 사진을 원한다면 오전에 가야 한다. 루이스 호수에는 알프스 산맥의 목동 복장을 한 할아버지가 파이프를 연주한다. 루이스 호수에서 빠트리면 안되는 명물이다. 잡음을 내면 연주를 절대로 안한다. 정적 속에서 곡을 듣노라면 바로 천국이 어디 있겠는가.
호수 주변에는 산책로가 많이 있다. 호텔을 등지고 오른쪽 산책로를 800m 따라가면 갈림길이 나옵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거대한 침엽수가 빼곡히 찬 산책로 3.5km(왕복 4시간) 오르면 아그네스 호수(Agnes Lakes)이다. 이 호숫가에 찻집(영업은 5월~9월)이 있는데 발코니에서 차 한잔 하며 루이스 호수를 바라보며 숨을 고르자. 시간이 있다면 3km 더 가자. Plain of Six Glaciers라는 빙하에 마음을 빼앗기고 하산할 것이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면 호수를 끼고 가는 산책로(왕복 40분)이다. 그렇게 맑은 호수도 시발점으로 가면 빙하 녹은 탁한 물이 가는 물줄기를 만들어 호수로 들어갈 뿐이다. 호숫가 산책로 옆 숲속 길은 승마 코스이다. 워낙 말이 많이 다녀 온통 말똥이다. 말을 타고 아그네스 호수로 가려면 이 길을 지난다. 레이크 루이즈 정션의 VIA 역은 영화 닥터 지바고를 촬영한 곳. 계속 재스퍼로 갈 경우 차량에 연료를 채우자. 중간에 주유소가 없다.
▶관광명소
-레이크 루이스 -레이크 루이스 스키장 -레이크 루이스의 곤돌라 -미네완카 호수 -밴프 스프링스 호텔 -보우폭포 -선샤인 빌리지 스키장 -설퍼산 곤돌라 -어퍼핫 스프링스 온천 -자연의 다리 -캐슬산 -케이브 앤 베이슨 센타 -콜럼비아 대빙원 -킥킹홀스고개 -MT.Norquay 스키장 -Tri Area Ski Pass


10위 인도 타지마할


▶우타르프라데시주 아그라 교외 아그라성 동쪽 약 2km, 자무나강이 바라보이는 곳에 만들어진 궁전형식의 묘묘(墓廟)이다. 타지마할은 마할의 왕관이라는 뜻으로, 무굴제국 황제 샤 자한이 사랑했던 여인 뭄타즈 마할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1630년부터 18년 동안 국가의 재정이 기울어질 정도의 거액을 들여 완성하였다. 대문을 들어서면, 길 중앙에 있는 일직선의 풀이 양 옆의 나무의 녹색을 비추고, 우윳빛의 대리석으로 된 돔과 조화를 이루어 아름답다. 태양 광선은 대리석을 그물 모양으로 투조(透彫)한 이중장치를 통하여 돔 내부에 이르도록 설계되어 있고, 그곳에 황제부처의 묘관을 안치하였다. 특히 달밤의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은 형언할 수 없으며, 인도·페르시아 양식의 대표적 건물로서 세계적으로 이름높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아그라시는 17세기의 타지마할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며, 뿐만 아니라 인도의 최대 관광지이면서, 지독한 릭샤왈라며, 악덕 상인들이 붐비는 곳이기도 한다. 아그라와 그에 이웃한 파테푸르는 델리에서 당일 여행도 가능하지만 숙박하는 것도 좋다. 아그라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타지마할이지만 그 외에 아그라 성과 시칸트라, 람바그, 이토마드, 우드 다울라 묘라고 하는 것들을 볼 수 있다. 또한 아그라 남서쪽으로 무갈 제국의 유적과 파테푸르 시크리가 있다. 아그라와 파테푸르 시크리는 무갈 역사의 유산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힌두와 이슬람의 요소가 융합된 건축물의 최고 걸작으로서도 평가되고 있다.
이곳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에는 샤 자한기리마할과 악바르 황제가 건설한, 흰 대리석의 진주(眞珠)사원(Moti Masjid)을 포함하고 있는 16세기 성채이다. 또한 대사원(Jami' Masjid)과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잘 알려진 훌륭한 능묘인. 북서쪽으로 시칸드라에는 악바르의 무덤도 명소이다.
▶교통편
-버스
델리의 시외버스터미널(ISBT)에서 출발하며,아그라까지 약 5시간이 소요된다. 일반 버스에서부터 수퍼디럭스급의 에어컨 버스까지 다양한 종류의 버스가 1시간에 1대 꼴로 05:00∼19:50까지 운행한다. 버스를 이용할 경우에는 이드가(Idgah) 정류장에서 하차한다.
-철도
여러 종류의 열차가 시간별로 델리를 출발하여 아그라를 통과하고 있고,약 2∼3시간이면 아그라에 도착할 수 있다. 델리나 뭄바이,캘커타에서 오는 열차는 아그라 칸트(Agra Cantt Sta.) 역에서 하차한다. 그러나 자이푸르 등에서 들어오는 열차는 아그라 포트 역(Agra Fort Sta.)에서 하차하므로 미리 열차의 시각표와 하차 역을 확인해야 한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약간 비싼 편이지만 샤타바디(Shatabadi) 익스프레스나 타지(Taji) 익스프레스를 이용한다.
▶관광제안
세계적으로 유명한 타지 마할(Taj Mahal)을 자랑하는 인도 최고의 관광도시이다. 그러나 아그라는 유럽이나 미국 등의 여타 다른 관광도시와는 사뭇 그 분위기가 틀리다. 시내를 걷다 보면 짐을 싣고 천천히 걸어가는 낙타의 행렬이 옆으로 지나가고, 한참 길을 달리던 자동차도 까맣게 그을린 아이들이 몰고 가는 양떼에 의해 길이 막히기 일쑤이다. 이처럼 아그라는 인도의 전형적인 시골마을의 모습을 보여줄 뿐 관광객을 위한 세련된 시설을 갖추고 있진 않다. 비좁은 골목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아그라 시내는 크게 구시가지와 신시가지 두 지역으로 나뉜다. 그리고 도시 남쪽의 영국군 거주지역은 사다르 바자르(Sadar Bazaar)를 중심으로 펼쳐진 신시가지 지역이다. 이곳 신시가지 지역에는 인도정부 관광청과 우체국, 레스토랑 등이 자리하고 있으며, 수공예품점과 현대적인 호텔들도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무굴제국의 향기를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을 것이며, 델리에서 불과 2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어, 델리와 함께 짧은 일정으로도 인도 고유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여행상식
이곳 아그라에는 다소 특이한 여행 프로그램이 있다. 이것은 델리의 코넛플레이스에 있는DTDC에서 운행하고 있는 투어 프로그램인데,만일 한여름 푹푹 찌는 때에 인도를 찾았다면,인도내에서도 덥기로 유명한 아그라를 찾는 것이 걱정(?)아닌 걱정거리가 될 것이다. 더위에 약한 이들을 위한 최고의 프로그램이 될 이것은 델리 이남 지역(뭄바이나 우다이푸르같은 도시)에서 올라와서 마날리나 쉼라로 갈 경우 아그라도 보고싶다 할 경우에,델리를 두 번 들려야 하는 불편함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델리에서 아그라로의 투어를 한뒤 다시 델리로 돌아오는 이 방법을 이용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가 있다. 아그라에서 쉼라나 마날리로 이어지는 차편은 별로 좋지 않기 때문에 보통 아그라에서 북쪽으로 가는 경우는 별로 없어서 다시 델리로 돌아오는게 일반적이다. 이 투어의 코스로는 '델리-아그라-시칸드라-타지마할-아그라포트-아그라-델리'이며,최선을 다해서 관광객들에게 친절하고 성실한 설명을 해주는 가이드가 안내를 맡아 더욱 좋을 것이다. 그러나 다소 가격이 좀 비싼 편이다. 1인당 600루피인데,이 600루피에는 델리-아그라 왕복 에어컨 버스(DTDC전용)비용과 입장료가 포함되어 있는 가격이다. 예약은 DTDC사무실에서 하지만 당일날 버스는 Coffee home에서 출발하므로 그곳으로 가야 한다.
▶관광명소
?시칸드라 ?아그라 성 ?자마 마스지드 ?타즈마할 ?파테뿌르 시크리 ?팔각탑(무삼만 버즈)


9위 미국 뉴욕


면적 약 787㎢, 인구 800만 8,278명(2000)이다. 미국 최대의 도시로서, 1790년 이래 수도로서의 지위는 상실했으나, 미국의 상업·금융·무역의 중심지로서, 또 공업도시로서 경제적 수도라 하기에 충분한 지위에 있으며, 또 많은 대학·연구소·박물관·극장·영화관 등 미국 문화의 중심지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교외를 포함하여 1600만이 넘는 방대한 인구를 수용하는 이 거대 도시는 미국 내에서도 독자적인 세계를 이루는 독특한 도시이다. 국제적으로는 대 무역항으로서 대서양 항로의 서단에 위치하는 가장 중요한 항구이며, 1920년대 이후에는 런던을 대신하여 세계 금융의 중심지가 되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미국의 국제적인 지위향상과 더불어 세계 경제에 대한 지배적 지위는 한층 강화되었으며, 1946년 국제연합(UN) 본부가 설치된 후에는 국제정치의 각축장이 되었다. 뉴욕주의 남동단, 뉴욕만(灣)으로 흘러드는 허드슨강 어귀 일대에 위치한다. 허드슨강·이스트강·할렘강·뉴욕만 및 롱아일랜드 수로 등에 의하여 구획된다. 대 도시권으로서의 뉴욕은 시역 밖으로 뻗어, 뉴저지·코네티컷의 두 주에도 미치고 있다. 시는 맨해튼·브롱크스·브루클린·퀸스 및 스태튼섬의 5개 구(boroughs)로 이루어져 있다. 맨해튼은 시의 중심부이며, 그 남단에 금융 중심지인 월가가 있다. 월가에서 북동쪽으로 브로드웨이와, 이것과 비스듬히 교차하는 5번가의 두 대로가 시를 종관(縱貫)하고 있다. 브로드웨이의 42번가는 타임스스퀘어로 시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며, 그 남쪽에 펜실베이니아역(驛), 동쪽에 그랜드센트럴역 등 도심의 두 주요 역이 있으며, UN 본부도 동쪽 이스트 강 가에 있다. 1983년에는 항공기, 정보화 시대를 맞아 국제선 직행편은 73개국 118개도시와 연결되고, 스태튼섬에는 텔레포트가 건설되는 등 24시간 도시이며, 뉴욕에 세계 제1위의 특파원을 둔 신문사·방송국·출판사와 시주재 각국 외교관을 가지고 있다. 인종의 전시장이라고 불리우는 뉴욕은 다민족다인종의 세계적인 도시이다. 19세기 전반에는 영국이나 중부유럽, 북부유럽의 게르만계, 후반에는 이탈리아 등 남부유럽계와 동부유럽의 슬라브계가 이민의 주류를 이루었고, 1855년부터 90년까지의 급증기에는 700만의 이민이 뉴욕에 상륙했다. 뉴욕시의 인구는 1980년대에 대략 백인 60%, 흑인 25%, 아시아계 3%, 인디언 0.2%, 기타 11%이지만, 이 중에서 백인으로 분류된 유대인이 17%, 백인이나 흑인으로 분류된 푸에르토리코인 등 에스파냐계가 20%를 차지하고 있다.
?교육
NEW YORK UNIVERSITY은 1831년에 사립대학으로 발족한 NYU는 특히 동부의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한 유학생들이 선호하는 학교로 산하에 이름높은 어학코스(American Language Institute)를 가지로 있어 외국학생들의 대거 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NYU가 위치한 맨하탄 남주는 특히 첨단 예술을 자랑하는 곳으로 뉴욕 중 뉴욕이라 할 수 있으며 각종 화랑,공연장들이 밀집돼 한국의 대학로를 연상시키는 지역이다. 뉴욕대 부설 어학코스에는 89년까지만 해도 800여명의 외국학생이 등록돼 미국에서 외국학생 많은 10대 Language School에 포함돼 왔으며 이 어학코스에만 1백명이상의 한국학생이 재학해 온 것으로 집계됐었다. 기숙사는 신입생 우선으로 배정되고 되고 있으며 설혹 입주가 거부되더라도 빌려 쓸 수 있는 방들이 주변에 많으므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산업
뉴욕시는 세계자본주의 경제의 중심지이며 미국 최대의 증권거래소를 비롯하여 은행증권회사 등 세계적인 금융기관의 본지점이 집결해 있다. 또한 봉제공장이 많이 몰려있어 세계 제1의 기성복 제조도시이기도 하다. 그밖에 인쇄,출판,담배가공,기계 등의 공업이 성행한다.
?기후
뉴욕의 기후는 대체적으로 온화한 기후이다. 32도를 넘는 일이 거의 없는 여름과 12도 이하로는 내려가는 일이 거의 없는 겨울 때문이다. 그러나 겨울에는 피부로 느끼는 체감 온도가 상당히 썰렁하다. 따라서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다. 또한 봄은 온화하고 가을은 상쾌한 기후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5월부터 10월 사이가 여행하기에 좋다. 7월달의 평균기온이 가장 높고 1월의 평균기온이 가장 낮다. 평균 강수량이 많은 달은 7월과 11월이며 우리나라의 서울에 비해 겨울에도 비가 많이 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통편 ? JFK공항(John F Kennedy Airport) (국제공항)
맨해튼에서 남동부 쪽으로 약 24km 정도 떨어져 있는 국제공항이다. 행정지역으로는 퀸즈에 속하며 시카고의 오헤어 공항과 더불어 미국을 대표하는 국제 공항 중 하나이다. 약 60여개 항공사의 비행기가 1분당 2대 꼴로 이착륙을 한다고 한다. 여러 개의 터미널을 가지고 있으므로 뉴욕에서 다른 곳으로 나갈 때에는 자신이 탈 비행기가 어느 터미널에 있는지 확인을 해 두어야 한다. 공항버스(Carey Bus Service)는 모든 공항 터미널에서 30분 간격으로 출발하는 맨해튼 행 직행버스로써 그랜드 센트랄 터미널 행과 포토 오소리티 버스터미널까지 가는 2개의 노선이 있다. 맨해튼의 주요 호텔인 힐튼(Hillton), 플라자(Plaza), 세라톤(Sheraton), 홀리데이 인(Holiday Inn), 마리오트 마퀴스(Marriott Marquis)호텔 등을 경유한다. 타기 전에 기사에게 미리 얘기를 하면 노선 안에 있는 호텔의 경우에 승차장에 아니라도 내려준다. 미니버스(Gray Line Air Shuttle)은 공항과 시내의 주요 호텔 등을 연결시키는 합승버스이다. 23rd Street와 63rd Street사이에서는 어디든지 내릴 수 있고 주요 호텔을 기점으로 하고 있다. 소요시간은 대략 50분이다. 택시는 맨해튼 중심부까지 약 40분정도 소요되며 택시를 탈 때에는 반드시 엘로우 캡을 이용하도록 하고 만일을 위해 택시 지붕에 있는 등록 번호를 적어 두도록 하자. 리무진 택시는 뉴욕에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리무진 택시 회사가 여러 개 있다. 소요시간과 요금은 옐로우 캡과 거의 비슷하지만 야간이라도 안심하고 탈 수 있다는 점과 뉴욕에 관한 최근정보를 접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2인 이상이라면 리무진 택시가 유리하다.
? 뉴왁(Newark International Airport)
뉴욕의 또다른 국제 공항으로 3개의 터미널이 운영되고 있다. 위치상 뉴저지와 펜실페니아와 가까우며 JFK 공항과는 Princetin Airporter van이 운항하는데 대략 1시간 정도 걸린다. 시내가지는 Olympia Trails Express Bus룰 이용하면 약 2-30분 정도 걸린다. 택시의 경우엔 요금 외에 고속도로 톨비를 추가한다.
? 라과디아 공항(La Guardia Airport)
국내선 항공편과 캐나다 행 노선이 주로 이용하는 곳으로 4개의 터미널로 되어 있다. 뉴욕시내까지는 약 3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Carey Bus를 이용하면 된다. JFK 공항까지는 Carey의 리무진 버스가 있으며, 뉴왁공항까지는 시내로 가서 다시 한번 갈아탄다.
?버스
지하철이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라고 한다면 지상의 버스는 비록 느리기는 하지만 거리의 풍경을 차장으로 내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뉴욕을 여행하는데는 더없이 좋은 교통수단이다. 버스는 맨해튼에서 동서로 이동할때 중요한 교통수단이기도 하다. 또한 미드타운과 로어 맨해튼을 여행할때는 도리어 지하철보다 버스가 훨씬 유용한 교통수단이다. 로어 맨해튼을 운행하는 버스는 그 노선 자체가 하나의 관광 노선이기 때문이다. 버스의 요금은 지하철과 같은 1.5$이다. 지하철과 같은 토큰을 사용하고 있으나 다른 도시와는 달리 지폐는 받지 않으므로 상당히 주의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환승은 무료이다. 환승을 하려고 할 때는 승차할 때 기사에게 미리 요구하면 환승권을 준다. 그러나 같은 방향의 차량을 같은 버스로 환승해 탈수는 없다. 버스승차장은 대개 'NO STANDING' 또는 'BUS STOP'라고 쓰여진 곳에 정차한다. 2블록 또는 3블록에 한 번씩 정차하며 주의해야 할 것은 뉴욕의 거리가 거의 대부분 일방통행이기 대문에 자신이 가야 할 곳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착오가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철
뉴욕시민의 발과 같은 존재이다. 뉴욕의 지하공간을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있어 뉴욕에서는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다. 지하철은 남북으로 이동할때 편리하다. 맨하튼의 지형적 특성상 대부분의 지하철이 남북으로 달리기 때문이다. 예전에 비해 지하철이 깨끗해지고 안전해졌지만 아직까지는 심야에 혼자 지하철을 타는 것이 불안하다. 어쩔 수 없이 야간에 지하철을 이용한다면 플랫폼의 중간에서 기차를 기다려야하며 사람이 적은 칸보다는 많은 칸에 타야만 한다. 특히 야간에 지하철을 이용해서 할렘가 근처로는 가지 말아야 한다.
지하철은 한번 타면 몇번이고 갈아타도 상관이 없다. 지하철 입구 중에는 업타운과 다운타운이 구별되어 있는 곳도 있으므로 주의해서 타야하며 한 개의 플랫폼에 여러 노선이 지나가는 경우가 많으므로 열차의 앞부분이나 옆부분에 있는 표시를 잘 확인해야 한다. 지하철 노선의 구별은 숫자나 색깔로 하고 있으며 지하철역은 대부분 거리의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어 찾기에 편하다. 지하철 중 익스프레스(Express)는 중요한 역만 정차하므로 타기 전에 확인해야 한다. 지하철을 이용하기 전에 지하철 노선도를 꼭 구하도록 하자.
?택시
뉴욕의 택시는 차 색깔이 노란색이기 때문에 '옐로우 캡(Yellow Cab)'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으며 뉴욕의 또 다른 명물이다. 택시를 잡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다. 맨해튼은 그리 크지 않으므로 요금도 생각보다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것은 미터기 없이 운행하는 집시 택시이다. 논쟁의 소지가 있으므로 타지 말자. 내릴 때는 요금 외에 10~15%정도의 팁을 주어야 한다.
?기타
뉴욕의 경우 렌트비가 다른 도시에 비해 상당히 비싸다. 또한 일방통행 도로와 교통정체, 엄청나게 비싼 주차료 등이 문제여서 렌트를 하기에 적당한 도시가 아니다.
▶관광제안
911 테러 쓰러진 트윈타워로 뉴욕의 스카이 라인이 바뀌었지만 뉴욕은 여전히 대도시의 번화하고 화려한 면을 가진 도시다. 미드타운은 대체로 14St에서 59th St 또는 79th St사이를 말한다. 이 지역은 팬암 빌딩, 시티콥 빌딩 등 세계적인 기업들과 세계외교의 중심지 UN빌딩. 엠파이어 빌딩, NBC방송국, 링컨 센터, 브로드웨이 등 세계적인 관광명소 등이 모여 있어 맨해튼 내에서도 중심이 되는 지역이다. 특히 42St 과 59St 사이는 뉴욕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지역으로 뉴욕의 화려함을 실감할 수 있는 각종 최고급 상점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브로드웨이의 역사는 1882년에 현재의 타임 스퀘어에 처음으로 극장을 건설했던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1920년에 들어서자 뮤지컬은 브로드웨이의 상징으로서 이야기하게 되었고, 후에 '마이 페어 레이디', '사운드 오브 뮤직' 등 수많은 명작을 탄생시켜서 그 지위를 확고하게 하였다.
다운타운은 맨해튼에서도 항구를 끼고 있다는 이유로 해서 가장 먼저 개발되었다. 아직도 당시의 때가 묻은 낡은 건물과 복잡하기 그지없는 골목길들을 볼 수 있는가 하면 하늘을 찌르는 듯 위용을 자랑하는 세계 무역 센터 등 초현대식 빌딩들도 볼 수 있다. 이곳의 매력이라면 무엇보다도 다양한 종류의 볼거리와 동시에 저렴한 가격으로 기념품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미드타운이 고급스러운 쇼핑가인 것에 반해 다운타운의 그리니치 빌리지나 소호를 둘러보면 우연히 마주치는 작은 상점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싼값에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여행을 하다가 피곤해졌을때 부근의 노천 카페에서 커피를 즐기는 것도 다운타운이 아니면 누릴 수 없는 특권이다. 업타운은 59th St 또는 72nd St의 북쪽을 가리키는 업타운은 크게 네 개의 지역으로 나뉜다. 센트랄 공원의 동쪽인 어퍼 이스트 사이드, 공원의 서쪽에 있는 어퍼 웨스트사이드, 100th St와 125th St사이의 콜롬비아 캠퍼스 주변의 작은 지역을 일컫는 모닝사이드하이츠, 이 지역을 제외한 센트랄 공원의 이북을 가리키는 할렘 등 4지역이다.
할렘에는 뉴욕 흑인의 10%이상인 약 200백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원래 이 일대는 백인 중산층의 거주지였지만 1930년 전후 대공황의 영향으로 백인들이 이곳을 떠나기 시작하였고 때마침 남부지방에서 일을 찾아온 흑인들이 살게 되었다. 할렘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흑인이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많기 때문에 뉴욕 시가 골치를 앓고 있는 우범지역이다. 그러나 할렘은 음악이나 문학등 예술 방면에 독자적인 흑인 문화를 발달시켰다. 아폴로 시어터는 마이클 잭슨이나 제임스브라운을 탄생시킨 유명한 곳으로 최근 재개장 하였다. 뉴욕 째즈의 근원이 대부분 할렘이다. 지금도 아폴로 시어터, 코튼 클럽 등 째즈 클럽이 약 70여군데나 된다.
▶여행상식
? 물가는 미국 내에서도 비싼 편이다. 한끼 식사에 5$ 이상이 들며 숙소의 경우 유스호스텔이나 게스트 하우스를 제외한 호텔들의 요금은 중급호텔도 130$ 은 넘는다.
? 전화카드의 경우 우리나라와 사용방법이 다르다. 전화카드 뒷면에 있는 1-800으로 시작하는 Too-Free전화를 건 후 자신의 전화카드의 비밀번호를 누른 후 사용하면 된다.
▶즐길거리
? 뉴욕에서는 1년내내 오페라와 발레 등이 공연된다. 대규모의 정식 공연은 대부분 링컨 센터에서 공연되고 있지만 이밖에도 소규모 공연이 시내 곳곳에서 브로드웨이는 세계 어디서나 쇼 비즈니스의 대명사로 여겨지고 있다. 그 만큼 이곳은 세계 최고 수준의 뮤지컬과 연극이 공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중에서도 뮤지컬은 브로드웨이의 상징이며 숱한 명작을 공연시켜 뮤지컬과 브로드웨이는 마치 동의어처럼 쓰이게 되었다. 전화예약을 하려면 텔레차지(telecharge 239-6200), 티켓트론(Ticketron 399-4444)으로 전화하면 된다. 신용카드가 필요하다. 공연 정보는 보이스, 뉴욕, Where등의 잡지와 뉴욕타임즈 일요일 판에 상세히 안내되어 있다. 공연 시간은 대체로 오후 8시 전후이며 수요일, 토요일, 일요일은 낮 공연도 있다. 극장에 갈 때에는 최소한의 의상을 갖추는 것이 예의이다. 비정기적으로 공연되고 있다. 특히 링컨 센터 내의 오페라하우스에서는 세계적인 오페라단의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다. 링컨센터의 주소는 Between Columbus & Amsterdarm Ave,62nd to 65th Streets.
? 뉴욕은 카멜레온과 같은 도시이다. 뉴욕에 밤이 찾아오면 뉴욕은 낮과는 분위기가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다. 세계 어느 도시보다도 밤의 문화가 발달했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디스코 택,째즈 바,클럽,극장 등 모든 종류의 오락시설이 시내 곳곳에 있어 낮에 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던 뉴욕 시민의 휴식처로써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뉴욕 아니 미국의 또 다른 모습을 체험해 보고 싶다면,여행 중 나타난 피곤을 풀기 위한 많은 시설 중 한곳을 선택하여 가보는 것도 좋은 경험과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관광명소
?그리니치 빌리지 ?뉴욕시내 ?뉴욕야경 ?록펠러 센터 ?링컨 센터 ?맨하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브로드웨이 ?사우스 스트리트 시포트 ?성 요한 성당 ?성 패트릭 성당 ?센트럴 파크 ?소호 거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워싱턴광장 ?월가 ?자유의 여신상 ?차이나타운 ?카네기 홀 ?UN본부


8위 호주 시드니


인구 약 393만 5000명(1997)이다. 지금은 호주의 가장 거대한 대 도시권으로 1770년 제임스 쿡 선장이 이끄는 탐험대가 시드니 항만을 처음으로 발견하였다. 1788년 1월 26일 보터니만으로 부터 포트 잭슨에 들어온 총독 필립은 유형수 770명, 군인 250명을 데리고 이곳에서 최초의 식민지 건설을 개척하였다. 도시이름은 당시 영국의 관료였던 시드니경의 이름을 딴 것으로 천연의 양항이라는 점과 육상교통의 요지라는 사실도 발전에 크게 기여 하였다. 1842년 시제가 시행된 이후 1851년 시드니 근처의 배더스트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인구가 급증하였다. 시드니 대도시권은 서쪽 블루산맥, 북쪽 호크스베리강, 남쪽 보터니만 까지 뻗어 있으며, 전국 인구의 약 1/4이 몰려 있는 이 나라 최대의 도시이다. 중생대의 사암층의 대지와, 서쪽 내륙에는 이암질(泥岩質)의 파랑상(波浪狀)의 저지를 사이에 두고 해발고도 1,000m 전후의 블루산맥이 남북으로 뻗어 있다. 이 대지의 계곡은 하류지역에서 익곡(溺谷)을 이루어 포트잭슨만, 보터니만 등을 이룬다. 포트잭슨만의 남안 일대는 세계 3대 미항의 하나인 시드니항의 항역(港域>)이 되어 있다. 이 항구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 무역액의 1/4, 뉴사우스웨일스주 무역액의 3/4을 취급한다. 온화한 기후로도 유명하며, 연간 평균기온은 17.6℃, 가장 더운 달이 21.9℃, 가장 추운 달이 12.3℃로 연교차가 적다. 연 평균 강수량은 1,205mm이며, 1년 내내 강수량이 고르다.
시드니는 수상 스포츠와 위락시설 및 문화생활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항만의 잔교 동남쪽에 세워진 오페라하우스는 극장, 음악당을 모두 갖춘 곳으로 공연예술의 중심지이다.
▶교통편
?공항안내
시드니 국제공항은 킹스포드 스미스 공항으로 도시 중심부에서 10km 정도에 위치한 공항으로 보타니 만에 자리잡고 있다. 마스코트 공항이라고도 불리는 이 공항은 국제선 터미널과 국내선 터미널이 약 2km 정도 떨어져 있어 공항 전용버스가 10분마다 연결하고 있다. 국제선 터미널은 영국식 건물로 1층에는 도착 플로어, 2층은 출발 풀로어, 마지막 3층에는 레스토랑이 있다.
?버스
시내버스는 시드니 시내 구석구석을 운행하는 수백개의 노선이 연결되어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수 있으며 정류장에는 노선번호와 운행 시간표가 자세히 적혀져 있다. 요금은 버스 탑승시 운전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하고 직접 요금을 지불하거나 할인 패스를 이용하여 요금정산기로 계산하면 된다. 단, 주의할 사항이 있다면 시에서 운영하는 시드니 버스와 민간인이 운영하는 사설 버스가 있는데 요금도 다르고 할인 패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도 있기 때문에 알아두어야 한다. 또한, 구간별로 요금이 다르므로 시내를 벗어나게 되면 요금이 비싸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외에도 시드니 시내의 유명한 관광명소를 순환하는 시드니 익스플로러 버스는 약 2시간동안 20여곳을 관람할수 있는 시내 관광 버스이다. 멀리서도 빨간바탕에 하얀 글찌로 'Sydney Explorer'이라고 적혀있어 한눈에 알아볼수 있고 티켓을 한번 구입하면 오전 8시 40분부터 오후 7시까지 하루동안 몇 번이고 탑승이 가능하다.
시드니 시티에서 포트 잭슨가의 베이 지역을 거쳐 본다이 비치, 패딩턴을 순회하는 '본다이 베이 익스플로러'버스가 있다. 파란바탕에 검정글씨로 'Bondi & Bay Explorer' 라고 크게 적혀 있어 금방 알아볼수 있고, 45km 거리를 약 2시간동안 순회하는 관광버스이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30분 간격으로 운영되며 시드니 익스플로러와 마찬가지로 한번 티켓을 구입하면 하루종일 탑승이 가능하다.
?전철
일명 'City Rail'이라 불리우는 지하철은 시내보다는 시드니 근방으로 이동시 편리하게 이용할수 있다. 노선편이 적은 만큼 직통으로 센트럴 역에서 서큘러 키, 킹스크로스까지 갈 때 편리하다. 지하철표는 우리나라와 똑같이 매표소나 자판기에서 구입하면 된다. 단, 하나의 플랫폼에서 여러개의 노선이 운행되므로 탑승시 행선지와 정차역을 반드시 확인하여야 한다.
?택시
택시 승강장에서 승차하거나 콜택시로 이용할수 있으며 요금은 미터제이고 팁을 주는 것이 원칙이다. 기본요금은 A$2 로 시작하여 1km마다 A$1씩 올라간다.
?페리
시드니 만은 항구도시답게 노스 시드니나 관광명소를 연결하는 교통수단으로 페리를 많이 이용한다. 선착장은 오페라 하우스 바로 옆인 서큘러 키부두에서 출발하고 다양한 노선들이 있다. 서큘러 키는 2번부터 6번까지 5개의 부두로 나뉘어져 있으며 개찰구 위에 행선지와 출발시간이 표시되어 있어서 쉽게 이용할수 있다. 먼저 2번 부두는 맨리 행의 고속선 제트 캐트와 타롱가 동물원으로 출발하고, 3번 부두는 맨리 행 전용, 4번 부두는 노스 시드니행과 모스만행, 5번 부두는 달링하버행, 6번 부두는 여러 가지 크루즈 선이 출발한다. 요금티켓은 4번 부두에 있는 티켓 판매소에서 구입하거나 자동판매기로 산다.
?모노레일
교통수단이라기 보다는 시드니의 명물로 자리잡은 모노레인은 시티와 달링하버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충분히 걸어다닐수 있는 거리에 위치한 달링하버 주위를 순환하는 모노레일은 6개의 정류장에서 승차한다. 요금은 자동판매기의 토큰을 사용하고 운행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약 4분 간격으로 운영된다. 이외에도 '시드니 라이트레일'이라고 하는 교통수단은 일종의 트램과 비슷한 역할로 센트럴 역에서 달링하버를 지나 웬트워스 공원까지 운영되며 센트럴 역에서 콘벤션 센터까지가 1구간, 피어몬트 베이부터 종점까지가 2구간이다. 요금은 1구간 편도권 A$2 이고 왕복은 A$3 이며,2구간 편도권 A$3,왕복 A$4 로 약간 비싼편이다.
▶여행상식
▣ 여행상식 1
시드니에는 여러 인종들이 모여있는데 특히, 중국인과 한국인들이 밀집되어 있다. 지하철을 타고 캠시역에서 내리면 그 일대 전체가 일명 '코리아타운 캠시'로 불릴 정도로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이곳에 가면 한글로 써져있는 간판을 쉽게 볼수 있어 마치, 한국에 온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시드니에 와서 한국이 그리워지면 한번 들러보는것도 좋을 듯 하다.
▣ 여행상식 2
달링하버에 가면 배서스트 거리 근방에 200m에서 300m의 작은 거리가 나오는데 일명 '조지 거리'라고 한다. 서울의 종로와 같은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이곳은 특히, 매주 화요일이되면 어느 극장이든 영화표의 반액을 할인해 주므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또한, 주위에는 각종 편의시설이 준비되어 있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에는 안성맞춤이다.
▣ 여행상식 3
세계에서 두 번째로 게이들이 많다는 오스트레일리아서는 게이들을 위한 축제가 시드니에서 열린다. 과거와는 달리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중에 게이들이 많아서 시드니에서는 점차 보편화되어가고 있는 분위기이다. 패딩턴의 옥스퍼드 거리에서는 매년 2월이 되면 관객 50만명 달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화려한 축제를 연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볼거리인 만큼 축제 시즌에 맞추어 가면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수 있을 것이다.
▣ 여행상식 4
시드니 병원의 건물내부에는 특이하게 멧돼지 동상이 요염한 자세로 세워져 있다. 이 멧돼지의 이름은 'I1 porcelino'라고 불리우는데 이탈리아와 호주의 우호를 기념하기 위해 피렌체시에서 기증한 것이다. 또한,지금은 소원을 들어주는 멧돼지로 동상에 동전을 던지고 돼지의 코를 반지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멧돼지를 살펴보면 유난히 코만 번들거리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는지 알수 있다.
▣ 여행상식 5
시드니의 치안정도는 비교적 안전한 편이지만 어느 나라든지 범죄는 있기 마련이니까 특별한 지역의 밤거리는 피하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지역은 안전하지만 특히, 밤거리 골목길은 피하는 것이 좋고 늦게되면 택시를 이용하는 편이 현명하다. 하지만 호텔 근처에는 소매치기가 많으므로 항상 주의해야 한다.
▣ 즐길거리/활동거리 1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Star City Casino'는 24시간 영업을 하므로 언제든지 부담없이 찾아갈수 있다. 시간의 여유가 생긴다면 구경삼아 방문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 될 수 있다. 내부에는 화려한 카지노부터 각종 편의 시설이 준비되어 있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즐길수 있다.
▣ 즐길거리/활동거리 2
해양 스포츠의 명소로 유명한 맨리 비치와 본다이 비치에서는 서핑의 천국이라는 찬사가 나올만큼 서핑을 하기에 가장 좋은 지역이다. 매년 3월이면 대 규모의 서핑대회가 열려 한국의 겨울일 때 시드니는 여름이기 때문에 시즌을 맞춰서 가게 되면 색다른 줄거움을 느낄수 있다.
▣ 즐길거리/활동거리 3
오스트레일리아의 자연을 만끽할수 있는 대표적인 스포츠로 골프와 승마를 손꼽는다. 골프는 우리나라와 달리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잡아 가고 있어 패키지로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광대한 대륙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승마는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이다. 가장 대표적인 승마장으로는 센터니얼 파크로 공원 대부분이 승마와 스포츠를 할수 있는 시설로 되어 있어서 다양한 운동을 할수 있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니까 시간 날 때 한번쯤 들러보는것도 좋을 듯 하다.
▶관광명소
?갭팍 ?노스헤드 전망대 ?뉴 사우스 웨일스 미술관 ?뉴 사우스 웨일스 주립도서관 ?달링하버 ?더 도메인 ?더들리 페이지 ?록스 방문자 센터 ?록스 지역 관광 ?맨리 ?모노레일 ?본다이비치 ?블루 마운틴 ?블루마운틴 엣지 시네마 아이맥스 영화 ?세자매봉 ?센터니얼파크 ?쇼보트 디너 크루즈 ?스마트 크루즈 ?스타시티 카지노 17층 ASTRAK BAR ?시드니 수족관 ?시드니 유람선 ?시드니야생동물원 ?시드니타워 ?시드니타워 & 스카이투어 ?야생동물공원 ?오스트레일리아 박물관 ?오페라 하우스 내부 가이드 투어 ?오페라하우스 ?오페라하우스 공연 관람 ?와일드라이프 월드 ?웨스트 팩 박물관 & 현대 미술관 ?캡틴쿡 시드니2000 ?킹스 크로스 ?타롱가 동물원 ?파워 하우스 박물관 ?패딩턴 ?하버브릿지 ?하이드 파크 ?해리스 카페 ?헌터밸리 가든 ?호주 국립해양박물관 ?MRS맥콰리체어


7위 미국 라스베가스


인구는 47만 8,434명(2000)이다. 관광과 도박의 도시로 네바다주 최대의 도시이다. 1700년대 초에 에스파냐인 들이 부근 지역을 발견하였고, 1885년 유타 주에서 온 모르몬 교도들이 이곳에 처음으로 정착했다. 옛 스페인 산길을 따라 있는 메마른 계곡 속의 깊은 샘에서 물을 끌어올렸기 ??문에 초원이라는 뜻의 라스베가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네바다주의 동남부의 사막에 있는 관광도시이다. 또한 미국 최대의 도박도시이며 꿈의 도시이기도 하다. 1864년에 36번째로 주로 승격된 네바다주에 속해 있고, 다른 곳에 비해 음식, 호텔 및 공연이 싼편이다. 그 이유는 도박에 의한 수입이 많기 때문이다. 라스베가스는 5Km 에 걸친 호화 호텔이 즐비한 스트립(Strip)구역과 서민적인 다운타운으로 크게 구별된다.
1905년에 샌페드로-로스앤젤레스-솔트레이크 철도가 개통되면서 철도의 중심지가 되었다. 1930년대에후버댐이 건설되면서 도시(라스베가스)의 발전이 촉진되었다. 또 미드 호는 부근의 마운트칼스턴 휴양지, 그리고 데스벨리 국립기념지와 함께 관광객이 즐겨 찾는 휴양지가 되었다. 1940년 이후 인구가 급속히 증가했는데, 특히 헨더슨 신흥 교외지역과 북부 라스베이거스에서 두드러지게 증가했다. 이 도시는 고급 호텔과 특이한 카지노 도박장이 즐비하며 이국적인 연예무대 때문에 환락가로 알려져 있고 연중 무휴의 독특한 사막휴양지로서 매우 유명하다. 또한 라스베이거스는 상업과 광산지역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사막으로 둘러쌓인 산악지대로서 실버타운등 레져타운이 건설된 세계최고의 휴양관광지이며 호텔, 컨벤션 및 운송산업이 예로부터 발달하였다.
▶교통편
?공항안내
맥커랜 국제공항(McCarran International Airport)
전화: 702/261-5743 http://www.mccarran.com/
국제공항은 스트립 거리에서 3마일,시내에서 5마일 떨어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그레이라인 등의 회사가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고,스트립의 각 호텔과 다운타운의 호텔을 운행한다. 택시로 스트립의 중심에서 가게 되면 약 15분 걸린다.
?버스
Citizens Area Transit (CAT)은 라스베가스의 대중교통시스템으로 39개의 노선과 195대의 버스를 갖고 있고, 그 중에서 가장 이용도가 높은 것은 스트립과 다운타운을 연결하는 버스 노선들이다. 크로스타운의 많은 버스노선들이 다운타운 교통센터(Downtown Transportation Center)에서 발착하며 그밖에 헨더슨(Henderson)의 트리플 제이 카지노(Triple J casino)와 스트립의 남단(Vacation Village) 등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 #301 스트립노선은 매 7-10분, #302 스트립 익스프레스는 6pm - 1am 사이에만 운행한다. 가장 이용이 많은 시간에는 매 20-30분마다 운행하고 이용객이 줄어드는 시간은 45-6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주소: Regional Transportation Commission,301 E. Clark Ave. Ste. 300 89101 전화: (702) 455-4481
▶여행상식
? 라스베이거스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카지노지만 그곳에 카지노만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매우 다양한 종류의 공원들이 호텔마다 부설되어 있어 그 호텔에 묵지 않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다.
? 라스베이거스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길 수 있는 오락. 빠져들다 보면 왠만한 예산 가지고는 속수무책이다. 라스베이거스 시내 관광은 사선으로 시내를 관통하는 스트립을 중심으로 하면 어느 정도 정리되는 셈이다. 라스베이거스 하면 시내 관광이 핵심이지만,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후버댐이나 레드록, 그랜드 캐니언 등이 기다리고 있다.
? 라스베가스의 여행시즌은 일년내내라고 봐야 한다. 다만 12월 첫번째주-세번째주,7월의 주중을 제외하고 라스베가스는 언제나 풀스피드도 돌아가고 있다. 주말이면 늘 관광객으로 붐비며 바렌타인데이,부활절,독립기념일 등 미국의 주요공휴일이 끼어있는 날이면 더욱 붐빈다. 크리스마스와 신년이 끼어있는 주간이 일년중 가장 붐비는 기간이다.
▶즐길거리
? 라스베가스의 번화가인 Las Vegas Blvd.는 연번에 화려한 호텔과 카지노가 즐비한 더 스트립과 서민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다운타운으로 나누어진다. 두 지구는 약 1마일 정도 떨어져 있지만 시내버스가 24시간 운행한다. 더 스트립은 라스베가스의 메인 스트릿 Las Vegas Blvd.와 만나는 Sahara Ave.에서 Tropicana Ave.까지의 사이를 말하고, 라스베가스에서 가장 호화로운 곳이다. 연도의 대형 호텔은 1층이 카지노이며 호텔 안에는 일류 연예인이 출현하는 극장이나 레스토랑, 24시간 영업하는 가게와 식당등이 있다. 시설은 푸울을 비롯하여 테니스 코트,심지어 골프 코스까지 있는 호텔도 있다. MGM테마 팍,그랜드 슬램 캐년 등의 어트랙션도 이곳에 있다. 다운타운은 스트립에서 북쪽으로 약 1.6㎞ 떨어져 있고,그레이하운드의 버스터미널과 앰트랙의 역이 있는 서민적 분위기가 넘치는 곳이다. 호텔과 식당은 싸며, 카지노의 레이트도 스트립보다 낮다. 다운타운의 메인 스트릿 Fremont St.은 가장 번화하며, 3블록에 걸친 연변에 20개 이상의 카지노가 즐비하다. 여기서는 그 네온사인이나 일루미네이션으로 해서 밤에도 플레시 없이도 사진을 찍을 수 있을 정도로 밝다. 또 다운타운은 충분히 걸어서 돌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으므로 느긋하게 야경을 즐길 수 있다.
? 매일 밤 각지의 호텔을 중심으로 각종 쇼가 행해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라스베가스의 쇼가 가장 볼만하다. 쇼를 보기위해 일부러 라스베가스로 오는 사람도 많다. 라스베가스의 쇼는 크게 나누어 세계적인 슈퍼스타의 원맨쇼, 프렌치 캉캉 스타일의 레뷰,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소형무대 등의 세 종류가 있고, 이 가운데 세계적인 연예인에 의한 원맨쇼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최고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또 장기 연속 공연 쇼로 인기가 있는 것은 'Jubilee'이다.
▶관광명소
?더 스트립 ?라스베가스야경과 Stratosphere Hotel타워전망대 ?미드호 ?밸리 오브 파이어 주립공원 ?카지노 센타 ?포럼 숍스 ?후버댐 ?MGM 테마 유원지


6위 인도 암리차르 황금사원


인도 시크교의 성지이며, 황금사원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있다.
1604년 구르아르준이 세웠다. ▶암리차르
인도 북서쪽 펀잡주 서부에 있는 도시. 인구 44만. 파키스탄과의 국경에서 약 30km 떨어진 지점에 있으며, 라호르와 대치하는 교통 군사상의 요지이다. 1577년에 시크교의 제 4대 교주 람다스가 시크교 신앙의 중심지로서 성천(聖泉) 암리타사라스(불멸의 연못)를 건설하였으며 시명은 여기서 비롯된다. 연못의 중심에는 황금빛을 발산하는 황금사원(黃金寺院)이 건립되었으며, 이것은 시크교의 총본산이다. 펀잡 평원에 위치하고 있는데 주변은 관개가 잘된 선진 농업지대이며 주변의 상업 중심지이다. 델리 및 주내 각지와는 철도로 연결되어 있다. 1919년에 간디 지지파의 군중들이 영국군에 의해 학살된 곳으로 유명하다.


5위 남아공 케이프타운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주(州)의 주도(州都). 배후에 테이블산(1,087m)과 라이온즈헤드가 솟아 있으며 테이블만(灣)에 면하는 천연의 양항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의회의 소재지로서 행정부가 있는 프리토리아와 더불어 수도의 지위를 나누어 맡고 있다. 기후는 온대의 지중해성 기후로 1월 평균기온 20.3℃, 7월 평균기온 11.6℃이며, 연강수량 526mm로 겨울인 5~8월에 비가 많다. 주민의 약 35%가 백인이며 유럽풍의 대도시 경관을 이룬다. 1652년 4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아시아 무역의 보급기지로서 건설하여 처음에는 네덜란드어로 카프스타드(Kaapstad)라고 하였으나, 그 후 영국계 식민활동의 기점이 되었다. 1860년 창설된 독은 수에즈 운하 폐쇄 중에 비약적으로 확장되었다. 남극 관측의 보급기지로서도 알려졌다. 조선·기계·냉장·농수산물 가공·제분·제과·가구 등의 공업이 발달하였으며 상업·금융업도 활발하다. 백인 전용으로 세운 케이프타운대학(1829), 유색인 전용으로 세운 서(西)케이프대학(1960)을 비롯하여 각종 전문학교, 박물관·미술관·도서관·식물원·동물원 등이 있다. 정비된 항만시설이 있는 외에 항공로·철도·도로 등의 기점을 이루는 교통상의 요지로 여름철에는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1666년에 기공한 성곽과 1699년에 기공한 네덜란드의 신교 교회 등 역사적 건축물이 많다. 관광명소로 남아프리카 해양박물관, 로빈섬, 물개섬, 블루트레인, 블루트레인2, 블루트레인3, 블루트레인4, 블루트레인5, 블루트레인6, 스텔렌보쉬, 워터프론트, 커스텐보쉬 국립식물원, 케이프 천문대, 테이블마운틴, 희망봉 등이 있다.
▶로빈섬
길이 4.5km,너비1.5km의 직사각 모양의 돌섬으로서 곳곳에 타조와 키 작은 아프리카펭귄들이 서식하고 있으며 500여 년 동안 백인에게 저항하는 흑인들의 유배지가 되었다. 17세기 초에는 앙골라·서부아프리카에서 잡아온 흑인노예들을 가두어두는 장소로 썼고, 19세기 초 영국의 식민지가 된 뒤에는 식민통치에 저항하는 흑인 추장들을 감금하였다. 1960년대부터는 감옥을 세워 백인통치와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는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등의 흑인지도자들을 가두어 노역시켰다. 1994년에는 흑인해방운동의 상징으로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가 역사유적으로 지정하였으며 만델라가 갇혀 있던 감옥건물은 '자유의 기념관'으로 바뀌었다. 1999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가는방법 : 케이프타운에서 배로 30∼40분 정도
?관광포인트 : 17∼20세기까지 병원·군사기지, 최고의 보안장치를 갖춘 감옥 등으로 사용하였다. 이곳에 세워진 건물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암울한 역사, 압제에 대한 민주주의와 자유의 승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물개섬
케이프타운에서 쾌속선을 타고 약 20분 거리에 있는 바다 한 가운데의 섬으로 수 천 마리의 물개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으며, 시원한 바닷 바람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약 40분 소요됩니다.
▶블루트레인
과거 유럽 귀족들의 휴가 문화의 상징이었던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아프리카에서 가장 유럽적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는 이 전통을 이어받은 기차가 있다. 바로 남아프리카를 대표하는 호화 열차 블루 트레인이다. 블루 트레인은 기차 맨 앞에 특수 카메라를 장착하여, 시간에 관계없이 객실에 앉아 생생한 아프리카 경관을 모니터로 감상할 수 있으며, 개별 욕실과 샤워룸이 갖춰진 두 종류의 스위트룸이 있고, 흡연자를 위한 클럽카도 운영하고 잇다. 이용자 보다 승무원이 더 많다는 것이 특징. 11개국 언어를 지원하고 있으며, 총 4개 노선이 있다. 프리토리아-케이프타운 1박짜리 노선이 가장 인기 있는 노선이다.
▶워터프론트
케이프타운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은 빅토리아 앤 알프레드 워터프론트이다. 쇼핑,음식점, 여흥, 관광 시설들이 모두 갖추어져 있고 항구에 들어서 있으며 19세기 건물을 재현하였다.
09:00 ~ 21:00 영업.
▶테이블마운틴
케이프타운의 상징으로 거대한 테이블산은 케이프타운 전체를 감싸고 있다. 워낙 바람이 강한 케이프타운의 기후에도 끄덕없도록 새롭게 개조한 케이플-카를 이용하여 산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산 정상에서 1시간 가량 산책을 한다. 정상에는 여러군데의 전망대를 만들어 놓아 아름다운 케이프타운의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희망봉
희망봉이란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인도양에서 항해를 마치고 유럽으로 돌아가던 선원들이 이 곳만 지나면 유럽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희망을 가졌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희망봉은 아프리카 대륙의 가장 남단에 위치하며 바다로 보면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곳이다. 희망봉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1488년 포르투갈에 의해서이며, 이후 바스코다 가마에 의해 인도양으로 가는 길로 더 많이 알려졌다. 이곳은 현재 관광지로 각광 받고 있으며 수많은 희귀 자연생물로 인해 자연보호지구로 지정되어 있다.


4위 뉴질랜드 남섬


면적 15만 1,971㎢. 인구 약 92만 6천(1996). 뉴질랜드 최대의 섬으로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840km 가량 뻗어 있는 길쭉한 섬이며, 북쪽은 쿡 해협으로 북섬(北島)과 마주보고 남쪽은 포보 해협으로 스튜어트섬과 마주 보고 있다. 산악과 구릉지가 많으며, 중서부의 서던 알프스의 최고봉 쿡산(3,764m) 및 3,000m를 넘는 고봉군(群) 부근과 나더 고개 부근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남서부에는 많은 피오르드가 후미져서 피오르드랜드 국립공원을 이루고 있다. 동부는 비교적 비가 적으며, 서풍을 직통으로 받는다. 연간 강수량은 평균 2,000mm이지만, 일부 산악지역에서는 3,000∼5,000mm나 되어 삼림의 발달이 현저하다. 동해안의 캔터베리 평야, 남부의 오타고 고지, 인버카길 평야 등 낮은 대지와 충적평야가 주요한 농업지역을 이루며 밀 ·귀리 등의 재배 이외에 목축이 성행한다. 서부에서는 석탄과 주요 수출품인 금이 산출된다. 해안지대에 크라이스트처치 ·더니든 ·인버카길 등의 도시가 발달해 있다.
▶ 서던알프스
뉴질랜드 남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산맥으로 만년설과 빙하로 둘러싸인 3천m 이상의 고봉이 10여 개나 솟아 있어 장관을 이루며, 뉴질랜드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마운트 쿡이 있다. 특히 남섬과 태즈만해협 사이의 해안지대는 빙하와 산악지대 그리고 드넓은 황야로 형성되어 있으며, 빙하의 끝쪽에는 숲이 우거지고 그 위에 솟아있는 만년설로 덮인 스노위 (snowy)봉은 오세아니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유명하다. 또한 서던알프스에 의해 둘러싸인 여러 호수들은 남섬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단순히 지나치면서 경치를 보는 것보다 현지 투어나 레저에 참여하는 것이 여행의 참 맛을 느끼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뉴질랜드 남섬 지역기후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데, 서던 알프스산을 기준으로 서쪽부분, 즉 서해안(West Coast)는 비가 많이 오는 우기를 형성하고, 반대로 서던 알프스의 동쪽인 캔터베리지역은 바람이 서쪽보다는 찬기운이 아니지만 바람이 더 강하게 된다. 특히 호주와 뉴질랜드 사이에 위치한 태즈먼 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서던 알프스가 막으면서 기단이 상승하여 많은 비를 뿌려 서던 알프스 서쪽에는 습한 기후가 형성되는데 강수량이 2,500~3,000mm까지 달한다.
??관광제안
?카벤디쉬산(Mt. Cavendish)의 곤돌라와 번지점프
이 곳은 서던유럽 스위스 알프스의 산들과 호수,그리고 주변 도시들을 관람할 수 있는 곳으로 항구도시인 리틀턴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시내의 중간에 있는 해발 400m의 산으로 곤도라를 이용하여 카벤디쉬산(Mt. Cavendish) 정상인 봅스 힐(Bob's Hill)까지 올라갈 수 있다. 정상에는 스카이라인 샬레(Skyline Challet)라는 레스토랑이 있어 저녁식사를 하면서 주변 경관과 도시야경을 관람하는 것이 운치가 있다. 이 레스토랑 안에서 상영하는 키위 매직(Kiwi Magic)이라는 남섬의 자연경관을 담은 관광영화는 생동감있는 공중촬영으로 즐거움을 더해 준다. 또한 시내에서 곤도라까지 셔틀버스가 무료로 운행된다. 곤돌라가 설치된 산정에서 뛰어내리는 박력있는 번지점프 번지점프의 본고장 뉴질랜드 퀸스타운에 생긴 최신 점프대이다. 장소는 곤돌라 역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는 번지점프장은 최신 점프대로서 경사면에 돌출된 다리 끝에서 점프하는 구조이다. 아래에 내려다 보이는 도시전경이나 호수전망이 아주 좋으며,고도감이 있으며, 개장한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뛰어내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경비행기 투어
서던유럽 스위스 알프스를 구경하는데,경비행기투어는 한차원 다른 흥미거리를 제공해 준다. 데카포호수와 마운트 쿡의 글렌태너공원,프란죠셉 빙하 세지역에서 경비행기가 출발하는데, 마운트쿡과 웨스트내셔날파크의 광범위한 지역의 장엄한 경관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기에 충분하다. 경비행기에는 조종사와 전문가이드가 동승하며,뉴질랜드 서던알프스 지역의 지형과 자연을 가이드가 상세히 설명해 준다. 전체 비행시간은 약 50분이며 마운트쿡 국립공원과 프란죠셉, 폭스빙하, 태즈만 해협과 웨스트코스트 지역 일대를 운항한다.
?헬리콥터 투어
서던유럽 스위스 알프스 지역에서의 헬기투어는 마운트쿡(Mt.Cook)과 프란조셉-폭스빙하 (Fox Glacier and Franz Josef)지역에서 운항한다. 먼저 마운트쿡지역에서 출발하는 헬기는 마운트쿡 빌리지에서 20분가량 떨어진 현대적 시설물을 갖추고 있는 글렌태너 공원에서 출발한다. 헬기에서는 서던 알프스와 마운트쿡의 웅장한 만년설을 볼 수 있으며, 실제로 태즈만 빙하의 눈위에 착륙하여 주변경관을 찍을 수 있다. 그러나 헬기운항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이 단점이다. 둘째로,프란조셉-폭스 빙하(Fox Glacier and Franz Josef)에서 출발하는 헬기관광은 프란죠셉빙하 정상과 설원이나 얼음 폭포 위에 각각 한차례씩 착륙하며, 총 비행시간은 약 30여분 정도이다.
?남섬의 기차여행
뉴질랜드 남섬에서 기차여행은 서던유럽 스위스 알프스의 장엄한 광경을 장시간 구경할 수 있는 방법중의 하나로 예약은 각지역에 있는 Intercity Travel Office에서 할 수 있다. 기차여행 중에는 식음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기차노선은 Southerner Express(크라이스트처치>크라이스트처치-인버카길간(Overnight)), Coastal Pacific(크라이스트처지-픽턴간), Southerner(크라이스트처치-인버카길간(Daylight)), Tranz Alpine Express(크라이스트처치~그레이마우스~ 크라이스트처치(Daylight)) 및 Tranz Alpine Express노선의 다섯개가 있다. 이 중에서 Tranz Alpine Express는 뉴질랜드 남섬의 서던 알프스를 가로지르는 가장 장쾌한 경관을 즐길 수 있는 세계적인 기차여행 코스로, 여행 도중에는 박물관, 공예품점 및 옥석을 만드는 공장등을 볼 수 있으며, 소요시간은 약 9시간 30분 정도이다.
▶ 밀포드사운드
밀포드사운드는 피오르드랜드 국립공원 안에 위치한 산이다. 뉴질랜드 남선의 남서부에 펼쳐지는 피오르드랜드 국립고원은 면적 1,252,297ha 로 뉴질랜드의 최대, 세계에서 다섯번째의 크기를 자랑하는 국립공원이다. 그 대표적인 경관은 험하고 뾰족한 산과 빙하 시대의 모습이 남아있는 U 자 계곡(빙하에 의해서 침석된 지형), 깊은 골짜기에 바닷물이 들어와서 생긴 피오르드 등이다. 이곳은 깊은 숲과 눈 골짜기, 호수, 높은 폭포 등으로 꾸며져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이곳은 투어객들에게 대단히 매력저인 곳이다. 그리고 그 매력의 원점을 느끼려면 트레킹(뉴질랜드에서는 트램핑이라고도 한다.)에 도전해 보는것도 좋다. 밀포드 트랙을 비롯하여 루트반 트랙, 흘리포드 트랙 등이 지방의 트레킹 루트는 무수히 많아서 전세계의 트랙커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피오르드랜드 국립공원에서 가장 볼만한 곳은 우선 밀포드 사운드이다. 이곳을 관광하는 크루즈는 피오르드의 경관을 간편하게 즐길 수 있어서 인기가 있다. 테 아나우에서 버스로 편도 3시간 정도의 거리로 1일 투어로도 쉽게 갈 수 있지만 1박 하면서 즐기는 것도 좋다. 테 아나우 주변에도 몇군데의 볼만한 곳이 있는데 특히 트티보다르의 동굴은 신비적이기도 하다. 패키지 투어의 경우 위에 말한 두 군데를 보고 떠나버리는 일이 많지만 시간에 여유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트래킹도 해보면 좋다. 이 지방의 자연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물론 경험을 필요로 하는 산행이 아니라 하이킹 감각의 당일 치기로 즐길 수 있는 코스도 많다.
이 지역의 트래킹 시즌은 대부분 여름인 10월 중순부터 4월 중순까지로 한정된다. 그 이외는 이용할 수 있는 교통기관이나 산장이 극히 적기 때문에 일반인에게는 알맞지 않다. 개발을 제한하고 있는 국립공원 안이라는 점도 있어서 숙박시설은 한정되어 있다. 호텔, 모텔, 유스호스텔 등의 각종 숙박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곳은 테 아나우이다. 밀포드 사운드에는 리조트호텔과 값싼 숙소가 한 군데씩 있다. 그 이외에는 매너포리, 테 아나우 다운즈 등에 몇 군데 산재해 있지만 교통편이 좋지 않으므로 여기저기 돌아보기에는 불편하다. 교통이 편리하고 도시의 기능이 있는 곳은 테 아나우뿐이므로 대부분의 투어객들은 이곳은 주로 이용한다. 우선은 테 아나우에서 며칠 머무르면서 트래킹 등을 즐긴 후에 다시 밀포드 사운드로 발길을 옮겨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거울호수
밀포드 사운드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호수로서 빙하 녹은 물의 맑음을 보여주는 곳이다. 그 맑음이 거울을 닮아 주변풍경을 그대로 담고 있어 거울호수(Mirror Lake)라 불리운다. 약 30m정도의 짧은 거리이지만 맑은 날은 Mirror Lake라고 거꾸로된 글씨가 물속에서 바로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바닥에 낀 투명한 이끼가 그 물빛을 더욱 맑게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테아나우 반딧불 동굴
테아나우 반딧불 동굴은 특이한 체험을 할수 있는 훌륭한 관광명소입니다. 배를 타고 테아나우 호수를 가로질러 맞은편에 도착하여 가이드를 따라 소그룹으로 지하 동굴로 들어가게 됩니다. 소형 보트를 타고 조각된 듯한 종유석의 형상과 폭포,소용돌이 그리고 반딧불 동굴을 차례로 탐사해 볼수 있습니다. 수천 마리의 반딧불 벌레들이 비추는 섬세한 불빛의 신비로움을 느껴보세요.


3위 미국 디즈니월드


정식명칭은 월트디즈니월드이다. 세계 최대규모의 종합 휴양지로, 올랜도에서 남서쪽으로 약 32km 떨어져 있다. 개발되지 않은 호수·늪지대의 환경을 잘 살려 조성하였으며 1971년 개장하였다. 월트디즈니프로덕션이 경영하고 있다. 건설 당시 면적은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에 있는 디즈니랜드 보다 훨씬 넓은 111㎢였다. 마법의 왕국은 디즈니랜드에 있는 것과 유사한 내용과 시설로 이루어졌는데, 신데렐라성(城)·메인스트리트·모험의 나라·개척의 나라·자유광장·환상의 나라·미래의 나라 등의 테마랜드가 있다. 실험적 미래도시인 EPCOT센터(Experimental Prototype Community Of Tomorrow Center: 1㎢)에는 미래의 세계와 세계 11개국의 모습이 인공호 주위에 조성되어 있으며 각국의 역사·특산품·요리 등이 즉석에서 연출된다. 영화의 세계라는 주제 아래 1989년 세워진 영화촌 디즈니-MGM스튜디오에서는 영화촬영 장면을 직접 보거나 체험할 수 있으며, 헐리우드와 뉴욕 거리를 재현한 6개 구역이 있다. 그밖에 6개의 골프장, 포트윌더니스 캠프장, 베이레이크와 세븐시즈래군의 수상 레크리에이션 시설, 플레저아일랜드, 동물의 왕국, 쇼핑몰, 호텔 등이 있다.
▶관광포인트
월트 디즈니월드는 플로리다의 호수와 늪지대를 개발해 만든 상상을 초월한 거대한 테마파크 왕국이다.
총면적 : 3,327만 5,000평 (서부도시 샌프란시스코와 비슷한 면적)
위치 : 미국 플로리다 주 중부의 올랜도 남서쪽 35km지점
?특징
- 1971년에 개장한 세계 최대 규모 (약 3,327만 5천평 )의 휴양형 주제 공원
- PGA 공인 골프코스 등 스포츠 시설
- 지구내 관광 교통수단으로 모노레일, 버스, 트램, 페리 등을 운행
- 200여 척의 디즈니 함대를 수상 레크리에이션 관광 수송에 이용
?주요시설
테마파크 : Magic Kingdom, Epcot, MGM Studio, Animal Kingdom
워터파크 : Typhoon Lagoon, Blizzard Beach
호텔 : 18개, 객실 수 약16,425실
상가 : Market Place, Pleasure Island (공연장, 나이트클럽, 상품점,극장 등 )
골프장 : Magnolia, Palm, Oak Trail, Lake Buena Vista, Eagle Pine, Osprey Ridge
교육시설 : Disney Institute
▶ 올랜도 (Orlando)
대부분의 방문객들이 실제로 올랜도로 생각하는 것은 Kissimmee와 Lake Buena Vista도 포함된다. 디즈니 월드의 테마 파크들은 플로리다 중부의 방문객들을 위한 의무적인 마술쇼와 같다. 신데렐라 성의 첨탑들은 마술 왕국의 상징으로서 전세계에 잘 알려져 있다. 성 안에는 훌륭한 시설의 놀이 기구들과 국제적인 유명 인사인 미키 마우스 같은 캐릭터들이 걸어 다닌다. 디즈니의 동물의 왕국은 야생에서의 생활과 자연의 드라마로 가득 차 있다. 방문객들은 동물들의 생활과 그들에 대한 상상으로 부터 스릴을 느낄 수가 있다. 디즈니의 동물의 왕국은 최근에 아시아 지역을 추가하여 외래의 야생 생물과 청청한 열대 다우림들을 전면에 내놓았다. 방문객들은 항상 자연의 신비들을 경험하며 많은 매력적인 여행을 하게 된다.
Epcot는 상상력에 도전하고, 여러 감각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계획되었으며, 교육적이고 문화적인 두 가지의 매력이 있다. 이 곳에서 여러분은 프랑스 빵집에서의 따뜻한 크로와상을 시식할 수 있고, 실제의 독일과 같은 oom-pah 밴드에서 당신의 발을 가볍게 칠 수 있고, 공룡들의 시대에 대해 알 수 있으며, 하룻동안 인체의 탐구를 통한 활기찬 여행을 할 수 있다. 디즈니-MGM 스튜디오에서는 멋진 캐릭터들을 만들고 있는 디즈니 만화 제작자들을 만날 수가 있고, 영화 제작과정에 대해 설명 받을 수도 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플로리다는 디즈니-MGM 스튜디오들의 영화 제작을 공유하지만 매우 다른 흥미거리를 제공한다. 유니버설에서 프로모터들은 여러분들에게"영화를 경험하십시오"라고 하면서,"Kongfrontation" 같은,과거의 유명한 영화에 관한 즐거운 볼거리를 제공하며, 이 곳에서 손님들은 뉴욕 지하철 위의 킹콩을 만날 수가 있다. 죠스, 대지진, 터미네이터2와 같은 색다른 영화의 매력들도 제공된다. 또한, 트위스터는 손님들에게 엄청나게 살아 움직이는 듯한 광경과 실제 회오리바람 처럼 파괴적인 힘을 경험하도록 해 준다.
중부 플로리다로의 방문객들은 이러한 환상적인 것들 뿐만 아니라, 자연의 매력적인 것들을 경험하고 싶어할 것이고, SeaWorld는 그것을 경험하는 멋진 장소이다. 여기서 손님들은 하룻 동안의 조련사들이 될 수도 있다. 쇼를 준비하고, 훈련기술들을 배우는 등, SeaWorld 동물 조련사들의 옆에서 일을 할 수도 있다. SeaWorld의 가장 새로운 매력적인 곳은 거친 북극해를 나타낸 곳이다. 그 곳은 북극의 자연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기 위한 방문객들을 차가운 모험의 세계로 안내한다. 방문객들은 진짜 북극곰, 점박이 바다표범들, 고래들과 직접 정면으로 마주치게 된다. 비록 자연 해변은 아니지만 대형 물 놀이 시설이 중부 플로리다의 도처에 있다. 축축한,그리고 야생인 디즈니의 Typhoon Lagoon과 Blizzard Beach는 방문객들이 헤엄치고, 미끄럼을 타며 즐겁게 플로리다의 더위를 이겨낼 수 있는 대표적인 물놀이 공원들이다. 가장 최근에 디즈니의 Blizzard Beach는 인공 눈을 이용한 미끄럼장을 만들어 방문객들에게 새로움을 선사한다.
?교육
올란도지역의 주요 대학들은 다음과 같다. Barry University(배리 대학교), Can Udoit University(캔 유돗 대학교) 등이 있다. 또한, 어학연수과정은 University of Central FIorida(플로리다 중부대학)에서 가능하며 홈페이지(http://www.ucf.edu)를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올랜도 주변의 각 도시마다 많은 교육기관이 산재해 있다.
?산업
1970년대 초기에는 감귤류 생산이 주요 산업이었던 평범한 지방도시였던 올랜도는 급속한 경제성장과 토착 오락, 위락산업의 중심지로서의 주요 도시로 부상되었다. 현재는 최첨단기술 산업도 급성장하였으나 무엇보다 대표적인 산업은 관광산업으로 1971년 월트 디즈니 월드가 개장된 이래 호텔, 모텔, 쇼핑센터 등 관광산업과 더불어 컨벤션 시티로서의 발전을 거듭, 현재 연간 3천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세계 최대 리조트 타운이 되었다.


2위 호주 그레이트배리어리프


면적 20만 7,000㎢. 길이 약 2,000km. 너비 약 500~2,000m. 북쪽은 뉴기니 남안의 플라이강 어귀에서 남쪽은 퀸즈랜드의 레이디 엘리엇까지 이어져 있다. 대부분이 바다에 잠겨 있으나 군데군데에 무수히 많은 조그마한 산호초가 바다 위에 나와 있어 대륙의 방파제와 같은 외관을 한다. 대륙과 사이의 초호(礁湖)는 수심 60m 이하의 대륙붕이며, 해저는 평탄하여 동쪽으로 약간 경사져 있을 뿐이다. 또한 바깥쪽은 급경사를 이루어 갑자기 깊어지며, 파도가 높고 세다. 초호 안을 항행하는 것은 많은 암초 때문에 위험하나, 근래에는 관광시설이 발달하였다. 북부의 케언스 부근에는 산호초에 열대수족관을 만들고 해저에서 수중의 생태를 관찰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하였다. 관광의 중심은 케언스와 브리즈번인데, 관광객 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 케언즈 (Cairns)
케언즈 하면 떠오르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름다운 자연,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The Great Barrier Reef)와 열대 우림지역 쿠란다 국립공원. 이 두 가지 이유로 케언즈는 BBC가 선정한 죽기 전에 꼭 가봐야할 50곳 중 2위로 선정될 정도의 위용을 자랑한다.
케언즈 앞 바다를 둘러싼 거대한 산호초 군단.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The Great Barrier Reef)라 불리는 이 거대한 산호초 장벽은 2,000km에 달해 인공위성에서도 보일 정도이며, 세계의 다이버들이 가장 동경하는 곳이다. 이 풍요로운 띠를 따라 바다 속은 무한한 식물과 동물, 형형색색의 열대어와 바다거북 등 신비한 광경이 펼쳐지며, 리프에서는 350종 이상의 산호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케언즈에서 스노클링과 스킨스쿠버는 가장 흔한 놀 거리이지만 꼭 해봐야 할 것이다.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The Great Barrier Reef)를 즐기기 위해서는 배를 바다 한가운데 정박시키거나 케언즈를 둘러싼 1,000여개의 섬으로 가야한다. 이 중 관광객의 발길이 닫는 곳은 주로 20여개 정도, 주로 가는 섬은 플랭클린섬과 피츠로이섬 그리고 그린섬으로 각각의 섬들은 자신들 만의 독자적인 매력을 자랑한다.
쿠란다 국립공원은 케언즈에서 34km 북서쪽에 위치한 이색적인 지형과 식물군을 자랑하는 열대국립공원이다. 쿠란다 국립공원 관광은 바론강을 끼고 형성된 인구 1,000명 미만의 작은 마을인 쿠란다 마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웅장한 폭포와 협곡 울림을 가르며 달리는 쿠란다 관광철도(Kuranda Scenic Railway)와 케이블카를 타고 발 아래로 조망할 수 있는 스카이레일(Sky Rainforest Cableway)등 교통수단도 관광거리 중 하나이며, 그밖에도 자연을 이용한 나비 보호구역(Butterfly Sanctuary), 야생조류관(Birdworld)과 케언즈의 애버리진(호주의 원주민)을 지칭하는 차푸카이 민속촌, 수륙 양용차 아미덕 투어와 원주민 문화를 배울 수 있는 레인포레스테이션 네이쳐 파크(Rainforestation Nature Park)등 다양한 즐길 거리 들이 있다. 또한 케언즈에는 이렇듯 웅장한 자연을 이용한 550여종의 육, 해, 공을 망라하는 다양한 레포츠가 있는 레포츠의 천국이다.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The Great Barrier Reef)를 만끽하는 크루즈와 스킨스쿠버, 스노클링, 제트스키, 페러세일링을 비롯하여 털리강과 바론강을 이용한 래프팅, 그밖에도 골프, 승마, 낚시 등 너무 완벽한 놀이 천국을 구현하고 있는 곳이 바로 케언즈이다.


1위 미국 그랜드캐니언


미국 애리조나주(州) 북부에 있는 거대한 협곡(峽谷)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길이 350km(리틀콜로라도강의 합류점에서 미드호 까지). 너비 6~30km. 깊이 약 1,600m.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협곡은 콜로라도강(江)이 콜로라도 고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곳에 형성되었다. 계곡 벽에는 많은 단구가 계단 모양을 이루며, 계곡 저지에는 콜로라도강이 곡류한다. 그랜드캐니언의 상 ·하류에도 협곡이 이어진다. 원래 콜로라도강이 흐르던 곳에 콜로라도고원의 일부가 융기하여 깊이 약 1,600m의 협곡이 생긴 것인데, 계곡 벽에는 시생대 이후 7억 년 동안의 많은 지층이 나타난다. 지층의 빛깔은 여러가지이나 적색 또는 주황색이 많다. 협곡의 북쪽은 카이바브 고원이고 남쪽은 코코니노 고원인데, 이들 고원은 평탄하다. 반 건조지역이기 때문에 계곡 벽에는 수목이 간간이 있을 뿐이지만, 고원에는 수목이 무성하다.
그랜드캐니언의 단구에는 하바수파이 인디언 보호지구가 있으며, 소규모의 농경이 이루어진다. 고원에는 나바호 ·카이바브 ·후아르파이 등 인디언 부족의 보호지구가 있다. 그랜드캐니언의 중심부는 1919년 국립공원(면적 2,600㎢)으로 지정되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카이바브 고원과 코코니노 고원을 잇는 길은 곡저에는 작은 길 하나 뿐이며, 자동차를 이용할 경우에는 가장 가까운 길로도 350km나 된다. 국립공원의 하류에는 그랜드캐니언 국립 기념공원과 미드호(湖) 국립 레크리에이션 지역이 있다. 해마다 수백만명이 다녀가는 이곳의 진정한 여행법은 공원에서 캠핑을 하는 것이다.
아리조나 주의 기후는 전체적으로 건조한 기후로 여름에는 무더운 편이다. 따라서 여름 보다는 봄 가을에 여행객이 많으며 겨울에는 추운 편이다.
▶교통편
그랜드캐년에서는 캐년 국립공원을 돌아볼 수 있는 경비행기 투어용 비행장이 있어 여행객들이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랜드캐년과 가까운 여객기 공항은 피닉스 공항으로 피닉스 공항에서 그랜드캐년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플래그스태프까지는 기차로 3-4시간 정도 걸리며 기차 편수도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여행 가이드
? 날씨면에서 볼때 이곳을 방문하기 가장 적합한 때는 봄과 가을이다. 여름엔 너무 덥고 겨울엔 공원의 일부를 개장하지 않으며 편의시설 중 일부가 문을 닫기 때문이다.
? 공원을 가장 실감나게 느낄 수 있는 여행 법 중의 하나가 공원 내 캠핑이며 허가를 받고 들어가 캠핑지역에서 취사를 할 수 있다. 안내소나 여행자센터 같은 곳에서 캠핑에 필요한 도구를 빌려준다. 공원내에 여행자를 위한 Lodge가 있어 이를 예약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객실 수가 많지는 않다.
? 시간적 여유가 적은 여행객은 하루나 이틀 코스의 트레킹 여행상품을 이용하기도 하는데 특별히 여행사를 찾지 않더라도 유스호스텔같은 숙소에서 투숙객을 대상으로 예약을 받아 일정을 진행하기도 한다. 이를 이용하면 차량과 식사를 포함하고 현지 가이드가 설명하면서 가장 인기 있는 코스로 안내한다.
? 광활한 지역으로 주로 차를 이용해서 여행하며 경비행기를 이용해 하늘에서 공원을 내려다 보는 투어상품도 있다. 하지만 경비행기 투어는 협곡을 보여주고 또 일종의 조종 묘기로 항공기 운전이 다소 거칠 수 있으므로 멀미에 약한 사람은 미리 멀미약을 먹어두는 것이 좋다.
? 관광지 안내센터는 주 공원(main park) Grand Canyon Village 동쪽에 있다. 영업시간은 매일 오전 8시 에서 오후 5시까지 영업하며 성수기에는 연장 영업을 한다. 이곳에 통역센터가 있으며 Yavapai Observation Station, usayan Museum, Desert View에도 통역센터가 위치해 있다. 다만 Grand Canyon Lodge은 5월부터 10월까지만 영업을 한다.
▶관광 포인트
라스베가스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약 50분 정도가 소요되는 곳에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그랜드 캐년이 있다. 그랜드 캐년은 자연의 위대함과 신비로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랜드 캐년은 4억년이 넘는 세월 동안 콜로라도 강의 급류가 만들어낸 대협곡으로 446Km에 걸쳐 펼쳐져 있고, 해발고도가 2,133m에 이른다. 미국 애리조나주에 자리잡고 있는 국립공원으로 미대륙의 광활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세계적인 명성의 관광명소이다. 빙하기에 시작해 현재에 이르는 무구한 세월 속에서 형성된 그랜드 캐년은 장구한 지구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름에 쓰이는 한자는 대법원에서 정한 인명용 한자가 있고 이름자로 쓰기를 꺼리는 불용문자가 있습니다.
많이 쓰이는 자가 아니라 쓰지 않아야할 불용문자에 대해 알아두시는 것이 더 유용한 지식이 될 것입니다.
쓸 수 있는 자가 수없이 많은데 굳이 불용문자를 쓸 이유가 없습니다.





불용문자의 종류


1. 음이나 훈이 부적합한 교육용 한자

대법원 제정 인명용한자에는 교육용한자 1,800자가 포함되어 있어
인명으로 쓰기에는 독음이나 훈이 부적합한 자가 많습니다.
예컨데 惡, 凶, 死, 哭 등과 骨, 怪, 橘, 惱 등은 뜻이나 음이 부적합합니다.


2. 자연의 이름이라 피하는 글자

天, 地, 日, 月, 星, 春, 夏, 秋, 冬, 金, 銀, 石, 山, 江 등은 특별하거나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피해야할 글자입니다.


3. 성이나 다른 이름자와 함께 쓰일 때 획수가 어울리지 않아 피하는 자

李씨 성의 知, 祉는 좋으나 志나 智는 쓰지 않는데 흉한 수리를 만들어 가정운이

흉해지기에 피하는 획수를 가진 경우입니다.


4. 사주나 성별에 맞지 않아 피하는 글자

부족한 기운은 채우고 넘치는 기운은 빼주어야 조화가 이루어 지는데
水가 넘칠 때 水氣를 가진 자를 피하며 火기가 넘칠 때 火氣를 가진 자를 피하는 경우이며

또 여성에게 특별히 피해야할 그런 자도 있습니다.


5. 자의나 어원이나 기가 좋지 않아 피하는 글자

妃, 非, 悲나 亞, 兒, 牙 등은 각각 첩이나 부정적인 기가 있으며 불구, 미숙, 신체 등을

나타내므로 기가 좋지 않아 피하는 자입니다.


6. 字形이 형성문자나 회의문자인 경우 위아래로 모두 열린 자만을 쓰는 경우나
획수가 모두 짝수나 홀수로 이루어진 경우



불용문자도 '이것은 불용문자다'하고 어떤 자를 지정하여 쓰지 않아야 하는 자도

있습니다만 그 외에도 쓰임에 따라 경우에 따라
작명에 대해 음양 오행에 관해 총체적인 이해를 하여 피하는 글자가 있으며

다만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이것은 불용문자다'하여 그 흉함이 특별히 드러나는 자를 예시한 것뿐이지

그런 불용문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글자만 피하면 된다는 그런 발상으로

접하면 생각지 못한 불용문자를 쓰게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이름이나 이름자에는 氣가 갊아 있습니다.
좋은 氣는 그 기가 발현하여 좋은 성품과 팔자 피어나는 인생을 피우며
흉한 기는 그 기가 발현되어 기박한 인생을 유도하기 때문에
이름대로 산다는 말씀이 결코 허황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얼마 전에 '생노병사의 비밀'에서 웃음과 울음의 효능에 대해 웃음이 암을 치료하는

기전을 실험을 통해 밝혀 주목을 끌었고 엔돌핀과 같은 홀몬의 분비에 관계하고

NK세포를 활성화시켜 암세포가 파괴된다는 것은 상식이 되었습니다만 또 음이온과

피톤치트가 LAK세포를 활성화시켜 신체를 생생하게 건강하게 유지케 한다는

 '야생의 충고'는 하나도 새삼스럽지 않은 氣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不吉文字 [작명할 때 피하는 글자]


한자는 글자마다 음과 뜻이 있고, 문자는 생각과 마음과 뜻을 표현하고 전달하고 보존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물론 타인에게도 그 미치는 영향이 대단히 크다.

작명할 때 뜻이나 氣가 천하고 흉한 글자와 드물게 쓰이거나 지나치게 쓰기 어려운 글자는 가급적 피해야 하고 명성이 자자한 인물의 이름도 삼가야 한다.

자신의 운명과 능력에 알맞게 지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면서 성공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이름이 그 사람의 성격과 행동, 생김새와 생활 등에 큰 영향을 주어 운명까지 바꿔

놓는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庚 별 경 - 머리는 좋으나 부모덕이 없고 막힘이 많아 고독하고 재운 불리하고 불구,폐질 


光 빛 광 - 머리는 좋으나 허약, 단명, 재운에 풍파


鑛 쇳덩이 광 - 막힘이 많고 고독, 고뇌, 고난을 암시

龜 거북 구 - 지나치게 강직하거나 온순한 성격, 박명하다.

九 아홉 구 - 종말을 의미

國 나라 국 - 정신이나 육체 허약, 쇠약, 조난이나 요절

菊 국화 국 - 매우 약하다. 고독과 불운의 연속, 무덕, 박약

貴 귀할 귀 - 부모덕이 없고 재운과 자손에 불운, 병고

極 지극할 극 - 부모덕이 없고 가난

錦 비단 금 - 고독, 고난

吉 길할 길 - 하천, 불화, 조난, 천한 인품으로 유도



南 남녁 남 - 남자는 무난하나 여자는 부모덕이 없다.

女 계집 녀 - 하천, 불의 재난, 산재, 고난, 고독

德 큰 덕 - 말년 고독

桃 복숭아 도 - 끈기가 없고 허영, 고난, 이별, 슬픔, 병고

挑 돋을 도 - 인내력이 부족, 질병

乭 이름 돌 - 하천, 형제 분산, 불우, 빈곤, 단명

東 동녘 동 - 단정하나 근심, 걱정, 자존, 수심

冬 겨울 동 - 강성, 흉사, 자손 근심

童 아이 동 - 막힘, 고독, 고뇌, 우매



良 어질 량 - 배짱은 크나 단절운

了 마칠 료 - 종말을 암시

龍 용 룡 - 귀천의 성패 많고 고독, 고난, 戌亥生은 특히 불길

留 머무를 류 - 불성, 불화, 부진의 불운


馬 말 마 - 경솔, 비천

滿 찰 만 - 초반 부운, 후반 빈곤

末 끝 말 - 종말, 신고, 고독, 무덕, 부부운 박약

梅 매화 매 - 의지는 강하나 허영, 향락, 과부, 이별, 슬픔, 고독, 병고

命 목숨 명 - 고독, 재액

明 밝을 명 - 성품이 온순하고 머리 좋으나 실패, 단명, 굴곡

文 글월 문 - 부모 부부운 박덕, 시상에 괴로움

美 아름다울 미 - 온유하나 허영, 사치, 조난, 비운

敏 민첩할 민 - 성질이 불같고 날카로워 불성, 불화, 정신 박약, 단명운


法 법 법 - 고지식, 재해, 재난

福 복 복 - 성질이 거칠어져 고난, 재난, 고독, 빈천

富 부자 부 - 처음은 좋으나 쇠패, 단명 불운, 여자는 무난

不 아니 불 - 항상 불충분하고 되는 일이 없다.

分 나눌 분 - 과부가 많다.

粉 가루 분 - 과부가 많다.


四 넉 사 - 조난, 단명

糸 실 사 - 극히 적다. 고독, 박복

山 뫼 산 - 고지식, 강직, 불우, 비운

殺 죽일 살 - 허무한 종말

上 위 상 - 진실하고 고결한 성질이나 형극, 하극상

霜 서리 상 - 용두사미, 단절, 멸실

石 돌 석 - 옹고집, 꾀하는 일마다 실패, 박명

雪 눈 설 - 처음은 그럴 듯하나 실패, 탄식, 고독

星 별 성 - 꿈은 크나 이루어지지 않아 불행, 단명, 헛수고, 허황

笑 웃음 소 - 뜻밖의 재앙으로 비참한 운명

松 솔 송 - 투지는 있으나 재운, 박약, 산재, 단명, 고독, 불길

壽 목숨 수 - 단명, 하천

順 순할 순 - 눈물, 탄식, 하천, 중년 불운, 불화, 불길

勝 이길 승 - 활달하나 고독, 재난, 고난

新 새 신 - 성질은 온순하나 고독, 고뇌, 병약, 단명

伸 펼 신 - 발전과 막힘이 잇따라 오고 불행, 고독

神 귀신 신 - 무섭고 위험

實 열매 실 - 정결한 성격, 단절, 고독, 조난, 불길


愛 사랑 애 - 비애, 부부 이별, 성질은 온순하나 가정 불화, 정신박약

榮 영화 영 - 단정하나 재난, 재앙, 수심

玉 구슬 옥 - 쇠패, 산재, 고독, 신음

完 완전할 완 - 강직, 성패 반복, 고독, 고난

隅 모퉁이 우 - 부부 이별, 부모 무덕, 타향살이, 고독, 재난

雲 구름 운 - 우애 없고 산재, 호에는 무관

元 으뜸 원 - 형제 자손에 수심

月 달 월 - 감정 풍부, 낭만적, 의지 박약, 불성, 고독, 호에는 무관

銀 은 은 - 강직하고 불운, 비운, 재앙

伊 저 이 - 배짱은 크고 마음이 작아 소득이 없다.

仁 어질 인 - 후덕한 성격이나 박복, 고난, 질병

寅 범 인 - 불손, 과격, 고독, 병고, 신유생은 불용

日 날 일 - 부모덕 없고 깨끗한 성격이나 고독


子 아들 자 - 재액, 재앙, 불화, 정신 박약, 축미생은 불용

長 길 장 - 허영, 욕심, 과욕, 불운, 허세, 불행

柱 기둥 주 - 머리는 좋으나 육친 무덕, 파산, 고독, 신음

竹 대 죽 - 불굴의 의지, 박복, 수심

地 땅 지 - 기초는 좋으나 재액, 조난, 단명

眞 참 진 - 성질은 온유하나 재난, 불운

珍 보배 진 - 고집 세고 무덕, 자손운 불길, 고독, 고난

進 나아갈 진 - 발전이 끊기고 고난, 고뇌, 신고


千 일천 천 - 치밀한 성격, 무덕, 타향살이, 불운

川 내 천 - 산재, 형제 불목, 고난, 고독

天 하늘 천 - 극도로 잘되거나 천하게 된다. 무덕, 빈한

鐵 쇠 철 - 영리하나 강기 아집으로 실패, 손재, 고독

初 처음 초 - 끈기가 없고 나태, 고난, 재난

秋 가을 추 - 정신 박약, 불운, 단명, 고독

春 봄 춘 - 의지 박약, 단절, 고독, 여자는 이성관계 복잡, 과부

治 다스릴 치 - 종결, 허무


 

泰 클 태 - 욕망 과다, 게으르고 흥망의 기복, 불운


平 평평할 평 - 평온한 성격이나 경솔, 단절, 쇠약

豊 풍년 풍 - 미약, 재운 자손 불길, 파산

風 바람 풍 - 어지럽고 불안, 초조


夏 여름 하 - 파란 곡절, 불성

鶴 두루미 학 - 신수부침이 심하다. 불길, 박명, 비천

韓 나라 한 - 박복, 파란곡절, 단명

海 바다 해 - 파란곡절

虎 범 호 - 불손, 과격, 고독, 병고, 신유생은 불용

好 좋을 호 - 시종이 다르다. 무산, 고뇌

紅 붉을 홍 - 경솔, 경박, 고독, 불운

花 꽃 화 - 온유하나 줏대 없어 유흥, 사치, 패가 망신, 화류계, 하천

孝 효도할 효 - 충직하나 무덕, 고생, 단절, 고난

輝 빛날 휘 - 강렬, 부침, 손실, 불우

喜 기쁠 희 - 형제 불화, 자손 수심, 단명

姬 계집 희 - 자립, 개척, 고생, 불운


------------------------------네이버 지식in 펌-----------------------------





헉. 계집 희 가 불용문자라니..  엄마,  작명소에서 지어다믄서!





이런 부류의 영화를 보면 항상 이해가 안되는 부분...




미래로 간 주인공이 벡커박사에게 들은 어떤 사람들의 이름을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벡커박사에게 알려주는데
벡커박사가 그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다름아닌
미래에 다녀온 주인공에게서 들은 것이다. 라니...



말하자면, 빽투더퓨처 에서처럼-


현재의 내( 마티 : 마이클 J. 폭스 )가 미래로 가서
자신이 태어나기전의 부모님들을 만났고
나를 인상깊게 기억한 (그러나 마티가 그들 미래의 아들인줄은 모르는)부모님들은
아기의 이름을 나와 같은 '마티'로 지었다.

내용과 비슷한 스토리인데..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거야? 말이 안되잖아!







헐렁한 남자, 꽉 조이는 여자.’


한 출판사의 편집자는 전유성 진미령 부부를 이렇게 표현했다. 많은 이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맞아”.

어울리는 구석은 없으면서 어쩐지 궁합이 좋을 것같은 부부. 툴툴거리며 다투지만 계속 붙어다니는 오누이같은 부부.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결혼 이후 이들의 모습을 ‘보기좋다’고 말한다.

그리곤 덧붙인다. 그러 게 다 ‘임자’가 따로 있는 거라고. 전유성이라는 ‘강적’을 일상의 주파수 속으로 끌어당겨 컨트롤하는, 만만찮은 그 작업을 마치 ‘귀신잡는 방위’ 처럼 진미령은 척척 해내고 있다.

확실히 전유성은 변했다. 신수도 훤해지고 사람이 건실해졌다는 얘기를 듣는다. 물론 전유성은 예전의 그 전유성이지만 최소한 우리 곁으로 더 가까이, 세상 속으로 더 깊게 들어온 것이다. 남자는 여자에 의해 변화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건 즐겁다.

그러나 조금 더 속으로 들어가보면 변한 건 남자만이 아니란 걸 알게 된다. 전유성이 장가를 잘가거나 진미령이 유능한 조련사여서가 아니라, 이들이 결혼생활이라는 그 복잡다단한 뫼비우스의 띠를 자연스럽게 풀어가는 데는 이미 프로라는 사실을.

불간섭, 혹은 혼자 있을 권리

언뜻 들으면 옳은 소리만 하는 남자, 하루 세끼 밥을 꼭 챙겨먹는 남자, 개그계의 디오니소스. 그런 전유성을 꽉 ‘잡고사는’ 진미령은 대체 어떤 여자일까.

“애같죠 뭐. 내가 볼 땐 애기예요. 작은 건 몰라도 큰 일엔 계산, 도박을 전혀 못합니다.”

전유성은 아내의 투명함을 알아본다. 상대의 투명함을 볼 수 있다는 건 자신 역시 그것을 비출 거울을 내면에 지니고 있다는 말도 된다. 그 말대로 진미령은 ‘작은 일엔 소심하고 큰 일은 저질러버리는’ 형이다. 이런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진미령 역시 씩씩하되 여린 ‘속’으로 인해 누군가를 상처주기보다는 상처받는 쪽에 들 터이다.

전유성은 아내가 밥먹고 글씨 쓸 땐 오른 손을, 칼질이나 가위질 할 땐 왼손을 쓴다는 걸 안다.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 일어를 구사하고 아무 음식이나 잘 먹으니 ‘혓바닥의 세계화’는 이미 이루어진 셈이고 손바닥의 세계화도 일찌감치 이룬 ‘경쟁력있는’ 여자를 ‘데리고’ 산다.

지난 5년 동안 이들은 서로에게 조금씩 적응해가며 살아가는 방법을 익혀왔다. ‘처음엔 잔소리도 어지간히 하고 사사건건 부딪치기도 했지만 물이란 게 바위를 만나면 굽이치기도 하고 휘돌아가기도 하는 이치를 체득했다’고 한다.

아무리 피곤해도 옷은 꼭 개켜놔야 자고 자다가 이불이 흐트러지면 일어나 제대로 딱 펴고서야 다시 잠이 드는 깔끔한 진씨의 성격은 이제 조금은 구김이 간, 그래서 입기에 부담없고 편한 옷쯤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전유성 역시 마찬가지. 아침 7시면 세상 없어도 눈을 뜨는 자신과는 달리 밤무대 일로 오전은 무조건 푹 자야하는 진미령의 잠 습관이 처음엔 맞지 않지만 그 정도 사이클 차이는 접어두고 산 지 오래다. 이른 아침 누군가 전화라도 걸라치면 그는 ‘미령이가 지금 곤해서 자고 있으니까 나중에 다시 걸어달라’고 말한다. 그 자신 담배를 끊은 지 2년이 넘었지만 아내에게는 끊으라 말라 얘기하지 않는다.

서로 기본만 지켜준다면 자질구레한 거 ‘터치’하지 않고 토닥거리지 않겠다는 게 이들 부부의 원칙. 혼자 있고 싶을 때 혼자 있을 권리는 이들의 결혼전제이기도 했다. 하루 온종일 자기방에서 컴퓨터를 들이파건 책을 보건 이들은 ‘정말로’ 상관하지 않는다. 각자 배고프면 부엌을 찾고 또 각기 잠을 잔다.

손끝이 매운 여자

진미령의 매운 손끝에 대한 소문은 방송가에 잘 알려져있다. 타고난 ‘주부기질’은 물론이지만 특히 혀끝과 손끝의 감각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불시에 집을 방문해도 냉장고에서 기본 다섯가지에서 열가지의 밑반찬을 확인할 수 있다.

“할머니 어머니가 모두 개성분이었고 아버지도 중국음식을 좋아하시는 미식가였어요. 개성사람들 손맛, 입맛은 맛깔스럽기로 유명하죠. 새우젓으로 간을 한 개성식 호박무침이나 오이장아찌같은 음식은 기본이죠.”

어디를 가더라도 전유성은 볼거리를 찾느라, 진미령은 먹거리를 찾느라 이산가족이 되는 경우도 적지않다.

일식집 ‘향진’이나 중국집 ‘외백’ 오장동 ‘흥남집’같은 식당은 어린 시절부터 식구들과 함께 들락거린 곳. 냉면불고기는 우래옥이나 한일관, 닭곰탕은 중구청 옆 버드나무집… 하는 식으로 오래된 국내의 맛집, 별미집이 그의 머리 속에 차곡차곡 입력돼 있다.

특기할 것은 한번 점 찍은 음식은 만드는 방법을 반드시 배워 직접 요리한다는 것. 한두번 맛만 봐도 재료와 요리법이 머리 속에서 자동적으로 ‘불러오기’가 되고 좀 복잡한 건 주방장에게 물어 입력한다. 그의 집 싱크대 한 귀퉁이에는 이런 식으로 모인 요리메모가 두툼하게 쌓여 있는데, 이런 묵은 노트들을 모두 모아 만든 살림살이 책을 다음달 쯤 선보일 참이다.

이젠 남편도 ‘먹는 일’에 차츰 전염돼가고 있다. 토화젓, 어리굴젓, 제첩국, 꼬막비빔밥 등은 이 부부가 좋아하는 음식들. 지난해 유럽여행에서도 이들은 각 지역의 명물 음식이나 전통음식을 기를 쓰고 찾아가 먹었다.

찰츠부르크의 돼지고기 커틀릿, 독일의 족발, 프랑스의 케밥, 헝가리의 굴라쉬수프, 스페인의 새끼돼지구이, 노르웨이의 정어리 초절임과 바이킹 카레 등 수십가지의 토속음식 가운데 특히 인상에 남는 건 스위스에서 먹은 퐁뒤. 조리법이 무척 인상적이어서 언제고 직접 해먹을 요량으로 조리기구 일체를 사가지고 왔다고.

요즘 두사람은 인사동 밥집 ‘밥 이야기’의 ‘깍빔밥’을 새로 개발, 한창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뜨끈뜨끈한 밥에다 아주 잘게 썰어 달큼하게 익힌 개성식 깍두기에 참기름을 둘러 비벼 먹는 감칠맛 나는 이 밥은 개성출신 아주머니가 운영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드나들고 있는 중.


소일삼아 시작한 노래인생


목포 수원 강릉시장을 거쳐 이북 5도 함경도지사를 마지막으로 정년퇴임한 진씨의 아버지는 지금도 한미친선골프협회 회장직을 20년 넘게 역임해오고 있는 골프애호가. 지금까지 한번도 ‘변변히’ 아파본 경험이 없는 진씨의 건강은 일흔여섯 고령에도 매일 필드로 나가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영지와 선식, 마죽 등을 상복하는 등 열심히 건강관리를 하는 아버지를 보며 배우는 게 많다고. 어머니 역시 ‘일찍이 깬’ 분으로 자식 중 하나는 외국말을 가르쳐야 한다며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진씨를 화교학교로 진학시켰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은 그를 화교로 잘못 알고 있기도 하다.

언젠가는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국제 결혼한 부부로 이들을 초대하는가 하면 심지어 몇년 전 한 스포츠신문에선 아예 ‘대만 출신 가수 진미령, 추석에 연변 위문공연’이라는 제목까지 뽑았다. 주민등록증은 있냐고 물어오는 사람은 부지기수.

진미령의 본명은 김미령이다. 어릴 땐 집에서 ‘미송이’로 불렸지만 가수데뷔를 하면서 그럴듯해 보이고 싶어 성을 바꿨다. 혜화국민학교를 나왔고 대만은 몇년 전에 처음 가본 ‘순수토종’이다.

화교학교 졸업 후 대만대학 유학을 준비하던 그가 ‘가수의 길’을 밟게 된 건 9월학기까지 기다리는 몇달 동안 소일삼아 노래나 배우려고 찾아간 작곡가 사무실에서였다. <벤> <마이 웨이> 등 올드팝을 분위기있게 잘 부르는 열아홉의 깜찍한 아가씨를 한 눈에 알아본 작곡가 장욱조씨는 그를 당시 잘나가던 흥행사에 연결해주었고 ‘내친 김에 좀 더’하는 마음으로 낸 데뷔곡 <잊지는 못할거야>(75년)가 히트를 하면서 예비유학생은 졸지에 인기가수로 떴다.

그해 연말 방송사의 신인상까지 받으면서 ‘건방진’ 신인가수 진미령의 연예계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에게 노래야 ‘몇번 부르다 말’ 일이었고 마음은 유학에 쏠려 있었다. 당연히 ‘프로의식 없는 프로’는 그 생활의 무의미함을 느끼고 짐을 꾸려 미국으로 가게 된다.

산타모니카 칼리지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공부하며 낮에는 봉제공장에 나가 미싱을 밟던 몇년 동안 그가 깨달은 건 역설적으로 노래와 가수라는 직업에 대한 생각. 돌아온 그는 달라져 있었고 그때의 깨달음이 지금까지 그의 직업적 자의식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이제 그는 누가 물어도 당당히 대답한다. ‘가수 진미령’이라고.


좌우지간 편하게 살자구


요즘 진미령은 패러글라이딩에 빠져 있다. 얼마 전 배운 것인데 시간 나면 반찬 만들고 별미 찾아다니는 게 유일한 취미인 그에겐 최초의 ‘하드’한 관심사다. 집과 방송국과 쑥탕. 세 꼭지점의 바깥세계에 대해선 관심도 시간도 없이 단순하고 조용하게 살던 결혼 전과는 엄청 ‘와일드’해진 셈.

부부관계라는 건 자신이 가진 기본 위에서 서로에게 물어보고 배워가는 것이라고 전유성은 말한다. 한꺼번에 가르치며 살진 못한다는 걸 이해하면 편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편하게 사는 게 결혼생활이라고 봅니다. 그렇지 않다면 함께 살 이유가 없죠.” 결혼해서 종종거리며 사는 건 상상해 본 일도 없다고 진씨는 말한다. 부엌데기 노릇이 마누라의 의무이기 때문이 아니라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어서 최선을 다한다고. 아침은 꼭 먹어야 한다니까 지켜주고, 혼자있고 싶다니까 놔주고, 부족한 부분은 챙겨주고… ‘내일 헤어져도 이 사람한테 기억되는 여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여관이 아니면 글이 안나온다는 남편을 위해 골방을 치워 보리찻잔과 양은 주전자를 넣어주는가 하면 기분이 심상한 밤이면 부담없는 대작상대로 마주앉기도 하는 진씨는 남편이 한밤중에 일개 소대를 끌고 와도 이젠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

가장이라는 이름의 부담이든 남편으로서의 의무든, 어떤 이유로도 함께 사는 상대를 ‘쪼지’ 않는 건 진씨의 철칙. ‘아, 가정이란 게 이런 거구나’ 해서 스스로 느끼고 행동하게끔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전유성은 얼마전 아내에게 ‘벤츠’를 사줬다. 지하철 애용자인 ‘전유성다움’의 한 부분이라는 걸 아는 이들은 안다. “사주고 싶죠, 갖고 싶어하니까. 나야 뭐, 벤츠 타볼 생각은 한번도 안해보고 살았지만… 이렇게 미령이 덕분에 한번 얻어타보기도 하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평생 벤츠같은 거 타보겠어요?”


제비에 대한 꿈


고교 2학년인 제비는 주말이면 집에 온다. 빨리 시집가서 애 많이 낳고 살고 싶어하는 현모양처 지망생으로, 시집에 대학이 무슨 소용이냐며 일찌감치 상고에 원서를 집어넣은 ‘조숙한 숙녀’다. 어릴 때 아버지와 헤어진 친엄마가 미국에 있어 외할머니와 살고 있는 제비를 마음만큼 신경 써주지 못한 진씨로선 마음 ‘짠’할 때가 많지만 요즘 10대답게 ‘탄력있는’ 사고방식을 가진 제비는 그런 것쯤 초연하다.

“제비여관에서 만들어서 제비야” “제비여관 주인 아저씨가 지어줬어,”

주변사람들한테 던져온 우스개와는 달리 전씨가 딸에게 이 이름을 붙여준 데는 이유가 있다. 강남제비, 무슨 제비 이런 놀림을 받으면서 아이가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고민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나라는 뜻, 다른 사람과 틀린 시선, 자신만의 자의식을 가지라는 의미에서였다. 제비가 작가나 시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고심해서 지은 아버지의 선물이다.

제비에 대한 진미령의 원칙은 ‘친구처럼’. 부모다 자식이다 하는 거리를 애써 두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부분을 ‘저 하고싶은 대로 하게’ 놔둔다고. 그 자신도 고교시절 주머니에 담배를 ‘꼬불쳐’ 넣어다니던 호기심 많은 여학생이기도 했다.

아빠를 빼박은 제비는 가끔씩 엉뚱한 얘기도 하지만 ‘될 성부른 떡잎’의 조짐도 이따금씩 보여 두 ‘노친네’를 흐뭇하게 만든다. 초등학교 6학년때 이미 서점에서 책 골라주는 아르바이트를 할만큼 독서광이어서 연예계에서 독서가로 알려진 아버지를 놀래킨다고. 가끔 진씨에게 동생 하나만 낳아달라며 떼도 쓴다. 자식의 의미를 진씨는 별반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도 충분히 즐겁기 때문이다. 다행히 조카들이 많아 제비는 북적거리는 사촌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재미있게’ 살고 있다. 진미령의 요리수첩에는 원칙적으로 흔한 음식은 없다. 더구나 패스트푸드는 금지품목. 그러나 한가지 예외가 있다. 햄버거다. 제비는 햄버거를 제일 잘 먹는다.


다람쥐같은 여자의 도토리 모으기


전유성의 살림이 피기 시작한 건 확실히 결혼 후부터다. 전화 한대도 안놓고 내 집도 없이 ‘설렁설렁’ 살아가던 전씨에게 경제감각을 깨우쳐 준 건 아내 진미령의 몫. 결혼 이후 두사람의 활동은 각자 더 활발해져 살림규모도 커졌다.

KBS, MBC, SBS를 모두 합쳐 한사람 앞에 세개씩 있는 통장은 진씨가 일절 건드리지 않는 품목. 그녀가 만지는 건 큰 돈(전유성의 책 인세와 광고출연료, 가게 ‘학교종이 땡땡땡’ 수입)이다. 통장으로 들어오는 돈은 제비 학비며 생활비, 남편 용돈 등으로 다 알아서 쓰게 하고 뭉칫돈은 철저히 그녀 관할.

‘남들이 듣기에는’ 통장에 손도 안대는 멋진 아내 같지만 카드 요금, 핸드폰 요금 따위를 모두 자동이체로 걸어놨기 때문에 돈관념 없는 전씨가 ‘실수’할 여지는 제도적으로 봉쇄돼있다. 지출을 꼼꼼하게 관리하는 편이지만 지난해 겨울 남편이 동료연예인들에게 컴퓨터 무료강습을 해주려고 오피스텔을 임대할 땐 흔쾌히 지원을 했다. 컴퓨터 책 인세로 술턱을 내는 대신 교육을 하겠다는 남편 생각이 건실하다고 느꼈기때문이다.

진미령 역시 결혼 이후에야 ‘돈관리’에 조금씩 눈을 떠가고 있다. 인사동 찻집 ‘학교종이 땡땡땡’도 그런 재테크의 산물. 말년 대책으로 시작한 이 가게는 공방으로 쓰던 가게가 나자마자 ‘일 저지르는 기분’으로 진씨가 인수했는데 장사가 잘 되는 바람에 이들 부부의 경제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현재의 52평 아파트도 비록 전세지만 진미령의 매운 손으로 장만한 것.


우리 자신을 위해 즐기며 살기


“결혼 때 약속했어요. 우리 자신을 위해 즐기며 살자, 좀 놀면서 세상을 살자고. 처음 가보는 곳은 꼭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방송가를 뒤집어놓은 두사람의 유럽배낭여행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몇년씩 미뤄오다가 독한 마음 먹고 떠나 무려 1백3일씩이나 유럽을 훑고 온 것이다.

밤기차에서 학생들과 함께 구겨자고, 돈 아끼려고 바케트빵으로 끼니를 때우며 40시간 동안 완행열차에 시달린 경험은 의미심장했다. 진씨로선 긴 여행을 해보고 결혼하라는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고. 결혼 전 가졌던 ‘어쩐지 살다가 점점 친해질 것같은 느낌’의 남편과 실제로 한뼘은 더 가까워졌다.

내년 봄이나 여름쯤 이들은 아프리카로 다시 떠날 예정이다. 낙타도 사고 짐꾼도 사서 사하라를 횡단한 다음 내륙을 돌 계획. ‘아이가 없으니 우리야 언제나 신혼’이라는 진씨의 말처럼 긴 인생 여행의 마지막까지, 이들이 함께 할 굽이굽이의 길목을 지켜보는 일은 또 얼마나 즐거울지 기대된다.










[출처: 동아일보, 동아닷컴: 글/김희경]



 

 

  멕시코 출신의 스테판은 좋은 일자리를 구해놓았다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파리에 왔지만 스스로의 예술적 재능을 전혀 발휘할 수 없는 평범한 달력회사에서 일하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던 스테판은 이웃에 이사 온 스테파니를 흠모하며 그들이 꿈으로 연결된 운명적 관계라고 믿기 시작한다.

 독심술 기계, 1초 타임머신, 그리고 달리는 말 인형. 사랑스러운 것들을 선물하는 천진난만한 스테판에게 스테파니는 점점 더 마음을 빼앗긴다. 하지만 일의 스트레스와 사랑의 감정으로 점점 화려하게 날뛰는 꿈에 정복당한 스테판의 대책 없는 행동은 스테파니를 당황하게 만들고, 두 사람은 점차 진심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드는데..




주인공이 꿈꾸기만을 내내 기다렸었던 영화.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주인공 이야기.

  아주 먼 옛날, 인간들은 모르던 지하왕국, 행복과 평화로 가득 찬 환상의 세계에 공주가 있었다. 햇빛과 푸른 하늘이 그리웠던 공주는 인간 세계로의 문을 열고 만다. 하지만 너무나 눈부신 햇살에 공주는 기억을 잃은 채로 죽어갔다.

 꿈 많은 소녀, 오필리아는 만삭인 엄마와 함께 군인인 새아버지의 부대 저택으로 이사를 간다. 하지만 자신을 못 마땅해하는 냉혹한 새아버지에게 두려움을 느끼는데다, 신비한 숲으로 둘러싸인 저택의 이상한 분위기에 잠을 못 이루던 오필리아에게 요정이 나타난다. 신비로운 모습에 이끌린 오필리아는 요정을 따라 미로로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판이라는 기괴한 요정을 만난다. 판은 오필리아에게 그녀가 지하왕국의 공주였으나 인간세계로 나왔다 돌아가지 못하고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려주고 다시 공주로 돌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세 가지 미션을 제안한다.

 오필리아에게 판이 알려준 세 가지 미션은 용기와 인내와 희생에 관한 불가능한 모험들. 오필리아는 백지에 미션의 힌트가 그려지는 마법 동화책과 어디든 그리는 대로 문이 생기는 마법 분필, 그리고 충실한 안내자인 요정들의 도움을 받아 미션을 해결해 나간다. 과연 오필리아는 행복과 평화만이 존재하는 지하왕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판타지를 가장한 공포물,
딱 중학생 정도의 여린 감성을 지닌 내가 보기엔...

너무 잔인한 장면이 많아서 무서웠어 (짓이기고 쏘고 자르고 후려치고 꼬매고...)




본 아이덴티티
(The Bourne Identity, 2002)



  이탈리아 어부들이 지중해 한 가운데에서 등에 두 발의 총상을 입은 채 표류하고 있는 한 남자(Jason Bourne: 맷 데이먼 분)를 구하게 된다. 그는 의식을 찾게 되지만 기억 상실증에 걸려 자신이 누구인지 조차 모른다.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단서는 등에 입은 총상과 살 속에 숨겨져 있던 스위스 은행의 계좌번호 뿐...

 자신의 존재를 찾아 스위스로 향한 그는 은행에 보관되어 있는 자신의 소지품을 살펴본다. 그는 자신이 파리에서 ‘제이슨 본’이라는 이름으로 살았음을 알게 되지만, 여러 개의 가명으로 만들어진 여권을 보고 자신의 실명과 국적 또는 정체성을 잃게 된다. ‘케인’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미국 여권을 가지고 미대사관으로 향하지만 경찰들과 심지어 군인들까지 그를 추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제이슨 본. 그들의 추격을 피해 도망가다 대사관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마리(Marie Kreutz: 프랭카 포텐테 분)라는 여성에게 2만 달러라는 거금을 주고 파리까지 차를 얻어 타게 된다.

 어떤 거대한 조직이 자신을 살해할 목적으로 추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제이슨 본은 마리를 보호하는 한편, 자신이 어떠한 인물이었는지를 아는 것이 이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라 믿게 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과거를 찾아가면 찾아갈 수록 수수께끼 같은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음모와 가공할 위협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게 되는데.





본 슈프리머시 (The Bourne Supremacy, 2004)



  기억상실증에 걸린 전직 CIA의 요원 제이슨 본(맷 데이먼 분)은 밤마다 알 수 없는 악몽에 시달린다. 그 악몽이 바로 자신이 예전에 실제로 겪었던 일임을 확신하는 제이슨 본. 그는 자신을 제거하려는 CIA를 피해 연인 마리와 함께 떠돌이 생활을 하지만, 왜 자신이 쫓겨야 하는지 이유조차 모른다. 쫓고 쫓기는 와중에 연인 마리는 CIA 요원에게 살해되고, 제이슨은 자신이 모종의 음모에 연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여러가지 단서들을 조각조각 이어 붙여 퍼즐을 맞춰가던 제이슨은 자신이 러시아 하원의원 네스키와 그 부인의 피살사건과 연관돼있음을 알게 된다. 네스키는 러시아에 자본주의가 도입될 무렵에 카스피 해안의 석유개발 산업을 민간에 공개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러시아 하원의원이었다. 그 사건의 배후엔 CIA 자금 횡령의 음모가 숨어 있었는데...





본 얼티메이텀 (The Bourne Ultimatum, 2007)
 


  고도의 훈련을 받은 최고의 암살요원 제이슨 본. 사고로 잃었던 기억을 단편적으로 되살리던 제이슨 본은 자신을 암살자로 만든 이들을 찾던 중 ‘블랙브라이어’라는 존재를 알게 된다. ‘블랙브라이어’는 비밀요원을 양성해내던 '트레드스톤'이 국방부 산하의 극비조직으로 재편되면서 더욱 막강한 파워를 가지게 된 비밀기관.

 그들에게 자신들의 비밀병기 1호이자 진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인 제이슨 본은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대상이다. 니키의 도움으로 블랙브라이어의 실체를 알게 된 제이슨 본은 런던, 마드리드, 모로코 그리고 뉴욕까지 전세계를 실시간 통제하며 자신을 제거하고 비밀을 은폐하려는 조직과 숨막히는 대결을 시작하는데…












일년쯤전, 남자친구와 새벽 전화통화로
인류의 선조(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등)를 부정하는 얘기를 했다가
"그들이 우리 조상이 아니라는 증거도 없잖아" 소리에 확 혈압이 올라서
밤새 진화론을 부정하는 인터넷 게시물들을 죄다 찾아다가 프린트해서 준 적이 있었다.

(A4용지로는 대략 20장정도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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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화론은 열역학법칙에 위배된다.

열역학 제1법칙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量的)으로, 이 우주계에서는 에너지가 생성이나 소멸이 되지 않고 항상 일정하다는 것이다. 에너지의 형태는 열, 빛, 힘, 물질로 서로 전환될 수가 있는 데 이는 아인슈타인에 의해 다음의 공식이 발견됨으로써 확인된 것이다. 이 공식은 질량(물질)도 에너지의 한 형태로서 '질량-에너지의 등가성(等價性)'을 잘 보여 준다. 즉, 에너지(E)는 질량(M)에 빛의 속도(C)를 제곱한 수치와 같다는 것이다.

E = MC2

예컨데, 장작개비를 태우면 열과 빛을 발하면서 타 없어진다. 그러나, 그러한 에너지는 하늘로 올라 가 구름층에 흡수되었다가 비가 되어 지표에 흡수되며, 일부는 다시 식물의 뿌리를 타고서 잎으로 올라가 과일을 만드는 데 이용된다. 그리고, 과일은 동물과 사람에게 섭취되어 몸속에서 체온으로 바뀐다. 이처럼, 에너지는 물질로, 물질은 다시 에너지가 되어 우주 안에서 돌고 도는 것이며, 생성도 소멸도 되지 않고 총량은 항상 일정하다. 그러면 저절로 생성되지 않는 에너지가 태초에는 어디서 생긴 것일까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인과율에 따르면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화론으로는 이러한 질문에 답변을 할 수 없는 이론의 벽에 봉착하게 된다.

열역학 제2법칙은 에너지의 질적 쇠퇴에 대한 것으로, 자연계의 물리화학적인 반응은 모두 무질서도(disorderness)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열역학적으로는 자유에너지(F)가 가장 낮은 쪽으로 반응이 진행한다는 것이다. 일명 '엔트로피증가의 법칙'이라고 하며 다음 식으로 나타낸다. 엔트로피(entropy)란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로서 무질서도를 나타내는 단어이다.

F = H - TS

자유에너지(F)는 엔탈피(H)에서 절대온도(T)와 무질서도인 엔트로피(S)를 곱한 숫치를 공제한 것과 같다. 예컨데, 높은 곳에 있는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 잠재에너지(potential energy)가 가장 낮은 상태가 되도록 함으로써 안정적 상태를 유지한다.

모든 물질이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것을 붙들어 주는 힘(에너지)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만물은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힘은 쇠퇴하고 질서도는 깨어지는 쪽으로 작용한다. 동식물은 나이가 들면 노화하고 결국 죽어서 흙으로 돌아감으로써 무질서도가 극에 달하며 마침내 일에너지(기계적 에너지)가 가장 낮은 상태가 된다. 새것은 낡아지며 질서는 사라지는 방향으로 세상의 모든 반응계는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이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기 때문에, 그 형벌로 만물은 쇠패하며 동식물은 일정한 수준으로 자란 후에는 반드시 노화하여 죽게 된 것이라고 성경은 증언한다.

우주만물은 시간이 흐르면서 엔트로피가 증가하여 언젠가는 물리화학적 반응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열사상태(熱死狀態 thermal death point)에 도달할 것으로 물리학에서는 전망한다. 한 컴퓨터의 계산에 의하면 태양은 80억년 후에는 완전히 먼지로 바뀔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처럼, 인류는 어차피 사라져 없어질 우주 속에서 한정된 기간을 살고 있는 시한부적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주에는 시작이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우주만물이 지금과 같은 질서체계를 갖게 된 것은 외부로부터 의도적인 에너지의 주입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진화론에서는 질서도가 더 발달하는 쪽으로 자연계의 반응들이 진행되어 왔다고 말한다(그림 11). 우주는 태초에 가스들이 폭발하여 준성, 은하계, 태양계를 거쳐 질서의 극치인 오늘의 지구가 탄생하였으며, 무기물이 유기물과 단세포로 발전한 후 장기간에 걸쳐서 오늘과 같이 고도의 질서체계를 갖춘 동식물로 진화해 왔다는 것이다. 즉,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우주의 반응이 진행한다는 열역학 제2법칙과는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화학진화설을 주장했던 오파린은 '진화론의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의 변천과정은 복잡하고 조직화된 기관으로의 진화과정이다. 열역학 2법칙에 비추어 볼 때 화학진화의 반응이 고분자로 합성되기보다는 분해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솔직히 시인하였다. [A.I. Oparin; Problem of Origin of Life, Present State and Prospects in Chemical Evolution and Origin of Life, American Elsvier, p 6, 1871]

이처럼, 열역학 제2법칙으로는 우주의 시작이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며, 제1법칙으로는 우주가 저절로 탄생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따라서, 우주는 초자연적인 위대한 힘에 의해 설계되고 창조된 것을 알 수 있다.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이라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2. 진화론은 멘델의 유전법칙에 위배된다.

주지하듯이 멘델은 실험적으로 유전의 법칙을 확립하였다. 그러나, 실증도 안된 진화론의 풍조에 밀려 그의 생전에 인정을 받지 못 했다. 왜냐 하면 두 이론이 상충되었기 때문이다. 멘델은 임종하면서 '언젠가 나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하였으며, 베잇손(William Bateson)은 '만일, 멘델의 실험결과를 보았더라면 다윈은 종의 기원을 내 놓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다. 멘델의 법칙은 생명체에는 유전자라는 것이 있으며 모계의 유전형질이 자손으로 유전된다는 것이다. 반드시 모계의 형질이 유전되는 것이지 모계에 있지도 않은 형질이 외부에서 나타나 유전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전에는 불변하는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제1법칙은 독립의 법칙으로 유전자의 상이한 형질(유전자는 한 쌍으로 되어 있음)은 독립적으로 분리했다가 수정에 의해 재결합한다는 것이다. 열성형질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후대에 언젠가 다시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시 나타날 때 새로운 형질이 추가됨 없이 과거의 모계형질에 있었던 것이 다시 나타나는 것뿐이다. 그러나, 다윈은 불안정하게 형성된 작은 변이들이 축적되어 변종이 생긴다고 하였다. 돌연변이로 우량종을 만드는 것은 이미 있는 형질을 선별하여 강화하는 것일 뿐이다. 생명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진화할 수 없는 이유는 거기에 아무 것도 추가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제2법칙은 우열의 법칙으로 우성형질이 열성형질을 누르고 자손의 유전형질로 발현된다는 것이다. 제3법칙은 분리의 법칙으로 생식세포의 형성에 있어서 특성을 지배하는 각 쌍의 유전자는 각각 분리하여 다른 생식세포가 된다는 것이다. 모계의 유전자(2n)는 각각의 대립유전자가 분리되어 자손에게 일정한 비율로 유전이 된다.

그러나, 진화론에서는 모계에 없었던 형질이 외부요인에 의해 변화를 받아 전혀 다른 종으로 진화해 왔다고 주장한다. 어류가 양서류로, 양서류가 파충류로, 파충류가 새로, 새가 포유류로, 침팬지에서 사람으로 모계와는 전혀 다른 종으로 바뀌어 왔다고 하는 것은 멘델의 유전학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이다. 멘델의 법칙은 실험적으로 증명된 과학법칙이요, 학계에서 인정된 정설인 반면 진화론은 어디까지나 가설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설사, 인접한 종들 사이에서 잡종이 나온다 할지라도 그 후손은 번식능력이 없어서 당대에 없어지고 만다.

말과 당나귀를 교배시키면 잡종인 히니(Hinny)가 태어나지만 히니를 말과 교배시키면 말이, 당나귀와 교배시키면 당나귀가 태어날 뿐이다(그림 12). 즉, 종은 혼잡되지 않고 불변하도록 창조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잡종과 잡종을 교배하면 후손은 태어나지 않는다.

최근에 발견된 DNA 수리기구(DNA Repair System)는 변이가 일어났을 때, 그 부위를 신속하게 제거함으로써 원상이 유지되도록 하는 놀라운 기능을 수행하는 기구로 알려져 있다.

창세기에서 동물들을 잡종으로 만들지 말며, 한 밭에 두 종류의 씨앗을 뿌리지 말도록 경고한 내용을 재음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는 창조질서의 파괴에서 오는 혼란을 막으시려는 경고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3. 돌연변이는 진화가 아닌 퇴화를 일으킨다.

다윈의 진화론에서 자연선택의 전제조건은 변이(individual variation)이다. 이러한 변이의 개념은 드브리스가 달맞이꽃을 가지고 연구한 후 돌연변이설(mutation theory)로 발전하였다. 돌연변이가 진화의 요인이라는 이론이 신다윈주의(Neo Darwinism)인데, 이 이론이 부정된다면 전통진화론의 근거는 사실상 사라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몰갠, 뮐러, 집단유전학자 및 분자진화주의자들이 돌연변이를 진화의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연변이는 무방향적이고 비연속적이며 자연발생확률이 매우 낮고 일어난다 해도 유해한 방향으로 일어난다. 수많은 실험결과에 의하면 돌연변이는 108세대에 한번정도 발생하며 무방향적이고 역돌연변이(back mutation)도 일어나기도 한다. 진화론자인 심프손(Simpson)은 말하기를 '돌연변이가 만에 하나 일어난다 해도 다섯 개의 돌연변이가 한 핵에서 일어날 확률은 10-22에 불과하다'고 하였고, 초파리연구로 유명한 진화론자인 뮐러(H.G. Muller)도 '대개의 돌연변이는 해롭게 나타나고 유익한 변이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돌연변이가 다 해롭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라고 하였다.

몰갠이나 뮐러가 실험한 초파리들도 초파리의 종내에서만 변이가 일어날 뿐, 단 한 마리의 신종도 아직까지 태어난 적이 없다. 바뀐 것은 눈의 색과 형태, 날개의 길이와 모양, 몸체의 색깔만이 바뀔 뿐이다(사진 14). 이렇게 탄생한 변종들은 거의가 생존력이 취약한 기형종들 뿐이다. 인제대학장이며 생물학교수인 정계헌 교수(2000)는 이렇게 말한다.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연구하면 할수록 자연상태에서는..염기서열이 총체적으로 다 바뀌어 다른 종이 되는 경우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될 것이다.' [정계헌; 종은 변하는가?, 창조 121호(7-8월호), pp 9-12, 2000].

진화론자인 도브쟌스키도 '돌연변이는 생존능력의 약화, 유전적 질병, 기형을 만들므로 그런 변화는 진화를 일으키는 요인이 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실제로, 1945년에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탄으로 많은 돌연변이가 유발되어 기형아와 백혈병이 발병하여 오늘까지 고통을 당하는 환자들이 많이 있다. 그 폭탄의 피해자중 돌연변이적으로 몸이 더 좋아졌다거나 '바람직한 괴물'로 진화한 사례는 사람은 물론이고 어떠한 동식물에서도 보고된 바가 없다. 모두가 기형과 불구로 고통을 겪고 있으며, 그리고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었다.

로브트롭(S. Lovtrup 1987)은 '작은 변이는 일어난다. 그러나 이것으로 진화를 설명하려는 것은....모든 과학분야가 이런 거짓 이론에 중독이 된다면 큰 불행이라는 것을 부인치 않겠다. 그러나, 이런 불행이 생물학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다윈의 신화가 과학사에서 가장 큰 사기극으로 밝혀질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실제로 그렇게 될 때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반문하게 될 것이다...돌연변이는 진화가 아닌 퇴화의 메커니즘이다'고 하였다. 무신론자이면서 반진화학론자인 덴튼은 이렇게 말한다.

'과거 100 여년간 다윈의 진화설이 지지다운 지지를 받은 것은 소진화(종내 변화) 밖에 없다...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유리한 돌연변이가 축적이 되었다가 생긴 것이라 주장은 ..진리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가설이다.' [임번삼외; 진화론과 과학, p ,한국창조과학회, 1994, 원저는 Michael Denton; Evolutionism: A Theory in Crisis, 1986]

지난 1980년에 160여명의 진화론자들이 <대진화>(Macroevolution)라는 주제로 모인 시카고진화학술회의(1980.10.16-19, Chicago Field Museum)에서는 전통주의자들과 개혁주의자들간에 격론이 벌어졌다. 회의 후, 그들은 이례적으로 '소진화(microevolution)는 대진화(macroevolution)로 연결될 수 없다'고 파격적인 선언을 했는데, 이는 전통진화론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다. [Roger Lewis; Evolution theory under fire, Science, 1980]

더구나, 최근에는 모든 생명체에는 유전자수리장치(DNA-repair system)가 있어 돌연변이에 의해 유전자구조가 손상을 받으면 재빨리 응급조치를 하며 이차, 삼차적 방법을 동시적에 동원하여 파손된 유전기구를 수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바꾸어 말해서 모든 생물은 변화가 아니라 자기 종을 연원히 불변하게 보존하려는 방향으로 상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장치가 가동하고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진화가 일어났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4. 화석생물은 중간종이 없이 불연속적이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진화론자들이 진화를 증명하기 위하여 내세운 근거 중 하나가 화석이었다. 그러나, 화석은 연구할수록 오히려 진화론이 잘못되었음을 증거할 뿐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진화론자들이 화석을 점차 회피하고 있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진화론에서는 모든 생물이 한 조상에서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고등한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반드시 두 지층 사이에는 중간종(中間種 transitional form)이 수없이 있어야만 한다(그림 13). 그리고, 아직 지구상에 태어나지 않은 고등생물이 원시지층에서 발견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생물들은 아직 지구상에 태어나지도 안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화석들은 이러한 두 가지 조건들이 모두 잘못 되었음을 보여준다.

다윈은 '수많은 중간 형태의 화석들이 있어야 하는 데, 실제로 지층에서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라고 자문한 적이 있다. 그리고, 언젠가 보다 많은 화석들이 발굴되면 수없이 많은 중간종들이 나타날 것으로 예측하였다. [Charles Darwin; The Origin of Species(1872), 6th ed,, Colliers Books, p309, New York, 1962] 다윈은 그의 친구인 유신진화론자인 아사 그레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잃어버린 많은 간격들은 상상력으로 메꾸지 않으면 안 된다.'[C. Darwin; A Letter to Asa Grey, September 5, 1857, Zoologist, 16, p6299, 1858]

그러나, 덴튼(Micheal Denton 1985)은 '현재, 육상 척추동물의 329과(科)의 79.2%(261과), 조류를 제외할 경우 87.6%, 연체동물의 50%가 화석으로 발견되었다...그러나, 중간형태는 여전히 수수께기로 남아 있으며 일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중간형태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화석기록에서 읽을 수 있는 주요한 특징이며...다윈의 진화론은 20세기의 대우주적 신화 그 이상이 아니다.'고 하였다.

바안즈(Robert D. Barnes 1980)는 '화석에서 문(門)과 강(綱)의 기원에 대하여 어떠한 기록도 읽을 수 없다. 중간형태는 존재하지 않으며 발견도 안 되었고 흔적도 없다'고 하였다. 픽테트(Francis J. Pictet 1860)도 '중간형태가 실제로 있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고 하였다. 지질학자인 클라우드(1973)는 선캄브리아기의 화석에는 다세포인 후생동물의 화석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Preston Cloud; Geology, 1, p123, 1973]

시카고에서 열렸던 '다윈100주년기념 심포지엄'(Chicago 1959)을 주관했던 대표적 진화론자인 심프손(G.G. Simpson)은 '화석기록에는...새로운 생물들이 갑자기 출현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공식선언을 하였다. [The History of Life in Evolution of Life, Chicago, 1960] 그는 진화학계에서 권위가 있었기 때문에 그의 발언은 진화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현대종합이론의 권위자인 아얄라(Francisco Ayala)는 '화석학자들이 말하는 작은 변이들이 축적된 것이 아님을 이제 확신한다'고 하였고, 피터슨(1976)은 '조상의 형태는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으며..분류학자들의 생각속에 있을 뿐이나 (진화론자들은) 조상형을 얘기할 때에는 언제나 그것이 실제로 있었던 것처럼 말하고 있다'고 하였다. [C. Peterson; Major Patterns in Vertebrate Evolution. 1976]

현재, 가장 영향력이 있는 진화학자중 하나인 하버드대학의 굴드(Stephene J. Gould 1973)는 '조상과 자손사이에 기능을 잘 발휘하여 생존할 수 있는 전이형태의 계열을 추측할 수 있을까?...대답은 불가능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뉴엘(N. Newell)은 '화석기록은 수집하면 할수록 불연속성이 확대된다'고 하였다. [N. Newell; Nature of Fossil Record, 1959] 과학전문지인 뉴스위크는 '과학자들이 종사이를 연결하는 중간형태의 전이화석을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낙담하게 된다. 화석기록에는 중간형태의 전이화석이 없다는 것이 법칙이다'고 하였다.[News Week, Nov, 3, 1980]. 사이언스지도 최근호에서 말하기를 '실제로 발견되는 화석의 모습은 대진화의 가설을 부정하고 있다'고 하였다. [R. Lewin; Evolution Theory Under Fire, Science, No, Vol. 210, pp 883-887, 1980]

인류의 조상으로 제시되고 있는 유인원은 극소수의 뼈와 이를 조립하여 만든 허구로서 인류의 기원에 대한 해답은 아직 없다고 워시번(S.C. Washburn 1987)은 말한다. [Scientific American, September, p154, 1987] 타임지는 최근에 3회에 걸쳐 진화론특집 기사를 실었는 데 마지막장에서 이렇게 결론을 맺고 있다. '진화론이 나온 지 130년이 넘었으나 과학적 증거는 하나도 없고, 오히려 최근에 확인된 화석들은 다윈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사실만을 입증하고 있다.' [Times; 93.10.13, 94.3.4, 95.12.4]

진화론이 발표된 지 수십년간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화석고리들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그 고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화석발굴과 울창한 밀림 속이나 깊은 바다에 대한 탐사였다. 여기에는 코난 도일(Connan Doyle)의 탐험소설인 <잃어버린 세계>(The Lost World)가 한 몫을 하였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다음 해인 1860년대는 심해야말로 신비에 싸인 비밀의 세계였다. 마침내, 영국의 대서양연안과 노르웨이의 르포텐 피요르트 해역에서 역사적인 심해탐사가 개시되었다. 그 결과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어류들이 발견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심해야말로 가장 안전한 은신처이므로 오랜 지질시대의 생물들이 발견될 것이 확실하다'는 분위기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 속에는 중간종의 생물들이 발견되리라는 희망이 들어 있었다. 1972년에 영국군함인 체린저호가 본격적인 탐사작업에 들어갔는데, 그 당시에 동승했던 과학자중 한 사람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저인망이 올려질 때마다 배 위의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 그러나, 잃어버린 고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N.B. Marshall; Aspect of Deep Sea Biology, pp 8-9, Hutchinson Publishing Co, London, 1954]. 그 후의 계속된 해양탐사에서도 잃어버린 고리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임번삼 외; ibid, p 179]

마이클 덴턴은 이렇게 단언한다. '자연계에서 발견되는 모든 실험적 사실은 유형학적 모델로 설명할 수 있다. 유형학의 기본적 논리는 각 강(綱)은 독특성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그 구성원들은 자신이 속한 강의 특징적인 유형을 만족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모든 생물계에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불연속성은 생명체가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적용되는 특성이다...유사성은 진화를 암시하지만 구분은 변화에 대한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임번삼외; ibid, p 130, p 173]


5. 살아있는 '멸종생물'은 진화를 부정한다.

지금도 세계도처에서는 진화론자들이 수천만년 전에 멸종했다고 주장한 생물들이 산채로 발견되고 있어 우리의 비상한 관심을 끈다. 그 이유는 어떻게 진화론에 의하면 그토록 오래 전에 출현했던 생물들이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과, 그들의 모습이 과연 진화론에서 주장하듯이 다른 형태로 진화되었는가 하는 관심에서이다.

실제로 발견된 <멸종생물들>의 모습은 크기만 다를 뿐 놀랍게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거의 동일하여 진화론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7천만년 전에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실라칸스가 지난 1938년에 이어 1987년과 1989년, 그리고 최근까지도 동아프리카의 해저 300m의 심해에서 살고 있는 장면이 촬영되었으며 180마리 이상이 잡혔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이 기대했던 지느러미는 다리로 바뀌지 않은 채, 예나 지금이나 동일한 모습이었다. 진화론에 의하면 이들은 어류에서 양서류로 이행하는, 실루리아기에서 데본기에 살았던, 2억년 전의 생물로서 7천만년 전에 멸종된 것으로 주장되어 왔었다.

오르도비스기(4억5천만년전)에 살았다는 개맛(lingula)과 투구게(horseshoe crab), 그리고 데본기(4억년전)에 출현했다는 폐어(lung fish)도 옛날과 같은 모습으로 세 종류가 살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그림 14). 데본기에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갈라치아(Nepillina galathiae)라는 연체동물은 지금도 아카펄크 트랜치(중앙아메리카)의 심해(해저 3,500m)에서, 조개의 조상이라는 앵무조개는 필리핀의 팔라오섬에서 잡히고 있다.

쥬라기(1억6천만년전)에 살았다는 소나무가 호주의 월레미공원(Wollemi National Park)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에 확인되었다. 1억3,500만년전에 멸종되었다던 투아타라(Tuatara)라는 부리머리를 가진 파충류도 뉴질랜드에 살아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5만년전에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바다거북(라바라크룸 엘세야가)도 현재 호주의 북부해안에서 살고 있는 모습이 발견되었다고 한다[조선일보 1996.6.2].

그리고, 7천만년전에 멸종했다는 공룡의 일종인 사경룡(Plesiosaur)의 시체가 일본어선에 의해 1977년에 뉴질랜드연안에서 인양되었던 사건은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생생하다. 욥기(3,500-4,000년전)나 다른 구약성경에 악어나 하마로 번역된 리워야단(Leviathan)이나 베헤모쓰(Behemoth)는 공룡을 의미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6. 화석생물의 모습도 현재와 비슷하다.

화석생물들은 지금의 생물종과 거의 비슷하다. 간혹, 다른 점이 있다면 크기가 줄어들었다는 것 뿐이다. 선캄브리아기의 박테리아나 캄브리아기인 4-6억년 전에 살았다는 달팽이나 미국의 블랙힐즈(Black Hills, South Dakoda)의 쥬라기 암석층(5억년전)에서 발견된 불가사리의 화석도 지금 것과 동일하다. 미국(일리노이주)에서 발견된 바퀴벌레의 화석이나 발트해에서 발견된 화석(3천만년전)은 모두 오늘의 바퀴벌레와 동일하며 진화의 흔적도 없다. 그리고, 2억5천만년전의 거미와 지네, 신생대 제3기의 시신세(5천만년전)에 살았다는 박쥐의 화석도 지금과 동일하다(Science 1966).

수천만년이 되었다는 호박(amber)속의 화석들은 지금의 생물종과 완전히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곤충화석은 고생대의 펜실바니아지층에서 수백종이 발견되었으나, 그보다 앞선 데본기나 미시시피지층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가장 오래되었다(3억년전)는 호박 속에서 발견되는 1억년 전의 개미도 형태가 지금 것과 동일하기는 마찬가지이다.

5천만년 전에 출현했다고 추정되는 스칸디나비아산의 화석곤충도 현대의 것과 거의 일치한다. 곤충이 5천만년간 계속 존재하여 온 것이라면 과실파리는 매미보다 10억 회나 많은 세대교체를 하여 온 생물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곤충은 같은 종 내에서의 변이현상만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C.T. Brues; Insects in Amber, Scientific American, 185(5), pp 56-61, 1951]. 곤충학자인 브루스(1951)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의 곤충집단은 옛날의 모습과 유사한 형태로 남아 있다...어느 것은 거의 변화지 않은 채 7억년을 존재해 오고 있다.' [C.T. Bruce; Insects in Amber, Scientific American, Vol. 185, p 60, 1951]

식물의 경우, 실루리아기의 고사리류, 현화식물류, 백악기에 갑자기 나타났다는 수많은 식물류는 벌써 수천만년에서 수억년이 흘렀지만 지금의 것과 변한 것이 없다. 백악기에 살았다는 버드나무, 종려나무, 포도나무, 목련의 화석들도 지금의 것들과 동일하다 볼드(Herlord C. Bold)는 꽃의 화석은 풀리지 않는 신비라 하였고, 코너(Corner 1961)는 식물화석을 보면 볼수록 창조설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E.J.H. Corner; in Contemporary Botanical Thought edited by A.M. MacLeod and L.S. Cobly, Quadrangle Books, Chicago, p 97, 1961]

1960년대까지 알려진 십여만 종의 화석들은 다윈시대에는 거의 없었던 종들이다. [G.G. Simpson; the History of Life, in The Evolution of Life edited by Sol Tax, University of Chicago Press, pp 117-180, 1960] 그러나, 이들 대부분의 화석종들은 그 때까지 이미 알려진 화석형태와 같거나 유수동물처럼 어떤 종과도 관련이 없는 독립적인 특이형태를 취하고 있을 뿐이었다. [임번삼 외; ibid, p 181]


7. 시생대에는 아무런 후생생물의 화석이 발견되지 않는다.

캄브리아기에 수천 종의 생물들이 갑자기 나타난다는 것은 이미 기술한 바와 같다. 이러한 각 생물마다 전 단계의 생물화석이 발견되어야 상식적이지만 단 한 건의 후생생물도 발견되지 않는다. 진화론자이며 지질학자인 클라우드(Preston Cloud 1973)는 '선캄브리아기에서는 다세포 후생생물의 화석기록이 전혀 없다.'고 말한다. 더구나, 미국의 지질학자인 버딕(Burdic 1971)은 그랜드캐년의 선캄브리아기의 지층에서 중생대의 소나무와 느룹나무의 화분을 발견했다고 한다.

캄브리아기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삼엽충은 큰 것은 45cm에 이른다. 바닷가재와 같은 속(屬)으로, 지금은 멸종했지만 그 구조는 단순하기는커녕 매우 복잡하고도 정교하다. 또한, 캄브리아기에서는 나올 수 없는 사람의 발자국 속에 삼엽충이 들어있는 화석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화석은 최근(1999) 우리나라의 남해안(전남 해남)에서도 발견된 바 있다.


8. 확률론적으로 생명의 자연발생은 불가능하다.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듯이 생명이 과연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지 확률적으로 따져 보면 전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호일 등(1981)은 이렇게 말한다. '단백질 한 종의 출현확률을 10-20이라고 할 때 생명이 출현할 확률은 2,000종의 효소가 무작위적으로 결합되어야 하므로 10-20×2,000 = 10-40,000이다. 이러한 확률은 우주 전체가 유기스프로 가득 차 있다 해도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Fred Hoyle, C. Wickramasinghe; Evolution From Space, 1981]. 그는 <우주의 본질>이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우주의 나이를 100억년이라 하고 포유류 세포핵에 들어 있는 2,000개의 유전자가 자연적으로 생성될 가능성을 계산해 보았더니 시간이 충분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돌연변이에 의해 지금과 같이 복잡하면서도 질서정연한 생명시스템이 만들어질 수 있는 확률은 회오리바람이 티끌을 날려 제트기를 만든 것과 같이 황당무계한 것이다.'

생명체의 구성요소인 단백질은 20종의 L-아미노산이 수백에서 수만 개가 결합된 것이다. 자연발생설에서 주장하는 화학합성법으로는 아미노산이 두 가지 형태(D형, L형)가 반반씩 만들어진다. 따라서, 가장 짧은 단백질(L형 아미노산 100개로 구성)이 자연적으로 합성될 수 있는 확률은 10-130이다. '생명체의 형성확률이 10-130이라면 이는 생명은 주는 자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카프란(Kaplan)은 말한다. [R.W. Kaplan; Chemical evolution and the origin of life, p 320, 1971]. 덴턴은 평균적인 단백질의 생성확률은 10-13, 20개 아미노산의 특이적 배열순서는 10-26, 30개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단백질은 10-39이며 지구상의 단백질이 10-40 이상을 넘을 수 없으므로 기능성 단백질의 존재확률이 10-40 이하의 확률로 존재해 왔다면 기능성단백질이 우연히 지구상에서 발견될 수 있는 확률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임번삼 외; ibid, p 364]

단백질과 더불어 생명의 핵심요소가 유전자(DNA)이다. 이들은 오탄당, 인산, 핵산염기가 한 분자씩 연결된 뉴클레오타이드가 에스텔결합을 한 폴리뉴클레오타이드(polynucleotide)이다. 오탄당(D-ribose)은 자연계에서는 D형만 합성되는데 반하여 화학합성 시에는 두 가지 형태(D형, L형)가 반반씩 만들어진다. 이러한 세 요소로부터 유전자(DNA)가 자연적으로 합성될 수 있는 확률은 잘스버그에 의하면 10-600에 지나지 않는다. [F.B. Sallsburg; Dought of Modern Systhetic Theory of Evolution, American Biology Teacher, p 336, 1971]

이웬(Ewen 1973)에 의하면, 단백질합성의 유전정보를 가진 유전자의 염기배열이 변화를 일으키는 형태는 단백질의 기능에 변화를 주지 않고 유전변화만 일으키는 중립돌연변이(neutral mutation)과 유익성돌연변이(advantageous mutation)가 있다. 그 어느 경우든 단백질 집단에 균일한 진화율을 일으키는 기구로서는 적합치 않다. 돌연변이율이 커지면 유전적 변화의 속도도 커진다. 다른 계통간에 유전적 변이가 균일하게 나타나려면 생물마다 일정시간 내의 돌연변이율도 일정해야 한다. 그러나, 조사결과들은 세대시간이 다르고 돌연변이율도 종에 따라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각 생물의 연간 뉴클레오타이드당 돌연변이율은 대장균(0.7×10-6), 초파리(2.5×10-8), 생쥐(3.0×10-9), 사람(1.0×10-10)이 각기 다르다. 따라서, 진화가 일정한 속도로 진행되는 유전적인 변화의 가능성은 부정되고 있다. 각 유전자들은 서로 다른 속도로 유전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W.J. Ewens; Comments on Dr. Kimura's Paper, Genetics Supplement, Genetics, 73:36-38, p 36, 1973]

더구나, 단백질과 유전자가 결합되어 자기복제능력을 가진 정상세포 한 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확률은 10-167,626에 지나지 않는다고 와이송(1978)은 말한다. [R. W. Wysong; The Creation-Evolution; Controversy, Inquiry Press, p 118, 1978]. 수학자 보렐(Borrel)은 우주에서 10-50 이하의 확률이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라 하였다. 이러한 세포 한 개가 조직을 이루고 더 나아가 기관을 형성하며 뇌의 명령을 받아 일사분란하고 정교하게 동작을 하는 인체가 합성되려면 그 확률은 천문학적인 숫자로도 가히 표현할 수 없게 된다. 생명의 자연적 합성은 이처럼 확률론적으로 볼 때 불가능에 불가능일 뿐이다. 인체의 세포는 60-100조개로 추산되며 30억의 염기쌍, 3-4만개의 유전자, 46개의 염색체, 2,000여종의 효소, 100만개 이상의 단백질, 오장육부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처럼 방대한 인체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는 것은 자연발생적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세포와 같은 자동복제기능을 갖춘 기계가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수학자인 노이만(Von Neumann)은 '진보된 기계는 간단한 문제를 풀 수 있지만 미리 설정된 프로그램에 의하지 않고는 임의적 선택에 의해 스스로를 진화시킬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앞으로 언젠가 조금이라도 스스로 진화할 수 있는 기계가 만들어진다면 이는 인공지능을 넣어 준 것일 뿐'이라고 하였다. [J. Von Neumann; Theory of Self Reproducing Automata,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Urbana, 1966]. 쥬크스(Jukes)는 진화이론의 발전과정이 비행기의 발전과정과 유사하다고 하면서, 여러 종류의 비행기가 독자적인 설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진화하거나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T.H. Jukes; Aircraft Evolution, Nature, 295, p 548, 1982]. 지난 1965년에 열렸던 국제진화론전문가들의 연구보문 심포지움에서 미국국립보건원(NIH, Maryland)의 모라박사(Peter T. Mora)는 <확률론의 어리섞음>(The Folly of Probability)라는 글을 통해 '자동복제기구의 자연발생확률은 제로'라고 발표하여 큰 논란을 야기하기도 하였다. [Sydney W. Fox; The Origins of Prebiological Systems, p 45, New York Academic Press, 1965). 이처럼 생명의 자연발생은 확률론적으로 볼 때에도 일어날 수 없는 시나리오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9. 현재도 아무런 진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진화론에서 주장하듯이 모든 생물들이 진화를 계속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 사실이라면 현존하는 생물들은 이미 수천만년에서 수억년을 경과한 생물종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왜 하나같이 지금은 진화를 멈추고 있는 것일까? 무척추에서 척추로, 어류에서 양서류로, 양서류가 파충류로, 파충류가 조류와 포유류로, 설치류와 같은 포유류에서 유인원으로, 유인원이 사람으로 바뀌는(진화하는) 현상이 무수히 쏟아져 나와야 하는 데, 왜 최근 수천년간, 그리고 지금은 한 건의 이행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일까? 과거의 중간종들도 어디에 숨어 있기에 그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것일까?

참으로 상식적이면서도 근본적인 이러한 질문에 진화론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부분적으로는 왜 진화가 멈추었는지 해명하려는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러한 설명들은 극히 지엽적인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점잖은 진화학자에게 당신의 조상이 원숭이였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아마도 대노하면서 가족 모독죄로 당신을 법정에 고소할 것이 틀림없으리라고 생각한다.


10. 자연현상은 진화론과 상반된다.

다윈의 진화론은 적자생존에 의한 자연선택을 주장하지만 자연계에는 이와 반대로 약한 생물들이 더욱 번성하여 먹이사슬을 이루고 있다. 동물의 왕이라는 사자나 호랑이의 숫자는 매우 적지만 연약한 초식동물들은 번성하고 있다. 만일, 쥐를 잡아먹는 강한 고양이만 번성한다면 고양이들도 먹이인 쥐가 사라졌으므로 멸종하고 말 것이다. 이처럼, 자연계에는 먹이사슬이 작동하면서 생태계가 조화롭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자연계의 공생현상(symbiosis)도 그러하다. 나비와 벌들은 꽃이 없으면 아예 존재하지 못 한다.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도 신비롭기는 마찬가지이다. 공생의 원리는 동물뿐 아니라 식물의 세계에도 무수히 적용되는 법칙이다.

적자생존이론에도 반론의 여지가 많다. 예컨데, 강한 사자가 사슴을 공격할 때 운이 없이 무리에게서 떨어져 있는 사슴을 사냥했다면 이렇게 죽은 사슴은 약해서 죽은 것이 아니다. 단지, 운이 없어서 죽었을 뿐이다. 살아 남은 사슴들도 강해서 생존한 것이 아니다. 운이 좋았을 뿐이다. 더구나, 자연계에는 약한 짐승들이 더 잘 번식하며, 힘센 육식동물들은 그 숫자가 점차로 줄어 들어가는 추세이다. 이러한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본능(本能 instinct)도 창조주의 지적 설계를 암시하는 증거중 하나이다. 의도적인 정보가 유전자 내로 입력되지 않고서는 각종 생명체가 보여주는 본능적 행위에 대해 해석이 불가하다. 연어가 산란하기 위하여 먼 바닷길을 헤엄쳐서 자기가 태어났던 하천으로 되돌아오는 신비를 진화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철새들이 때를 따라 차질없이 머나 먼 대륙을 차질없이 이동하는 비행능력도 마찬가지이다. 거북이 새끼들은 알에서 부화하자마자 바닷 속을 향해 기를 쓰고 달린다. 제비갈매기의 새끼는 알에서 부화되면서 자기를 품어 준 어미새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어미새만 따라 다닌다. 다른 새들에게 접근하면 쪼여 죽기 때문이다. 모든 새들은 모성애를 어디서 배웠는지 자기가 품어서 낳은 새끼들이 자립할 때까지 쉬지 않고 먹이를 물어다 주며 양육한다. 그리고, 새끼들이 다 자라면 둥지 밖에서 먹이로 유인하여 자연에 적응하는 훈련을 시킨다. 종달새의 알을 분석하면 화학성분만이 분석될 뿐이다. 그러나, 봄이 되면 성장한 종달새는 하늘 높이 떠올라 무슨 사연인지 몰라도 온 종일 조잘거리며 노래한다. 그러한 노래는 화학적으로 분석되지 않는다. 이러한 노래의 정보는 어디서 온 것일까?

언젠가 필자가 부란기에서 갓 태어난 병아리 두 마리를 길가에서 구입하여 방바닥에 내려놓고 좁쌀을 뿌려 준 적이 있었다. 그러자, 병아리들은 기분이 좋다는 듯 조잘거리더니 뒷발로 흙을 헤집는 시늉을 하던 장면을 기억한다. 어미닭이 아닌, 기계에서 부화한 병아리의 이러한 거동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이러한 본능적 행위는 동물의 유전자 속에 미리 정보가 주입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들이다. 자연계에는 이처럼 진화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현상들로 가득 차 있다.


11. 물질의 화학구조가 창조론을 증거한다.

화학이 밝혀낸 특정원소들의 무기화학적인 역할들도 설계의 강력한 증거이다. 모든 생명체의 골격을 구성하고 있는 비금속성의 탄소(C)는 모든 종류의 원자들과 결합할 수 있는 연쇄(catenation)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성질 때문에 핵산, 단백질, 섬유소와 같은 생명구성성분들이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탄소는 지구상에 0.017%, 모든 생명체의 9-10%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지만, 탄소가 없이는 생명이 유지되지 못 한다.

비금속 주족원소인 산소(O2)도 특이한 분자구조를 하고 있다. 산소를 제외한 비금속 주족원소는 짝수개의 전자쌍으로 있을 때에만 안정하므로 모두 공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나, 산소만이 두 개의 비공유전자(unpaired electron)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소는 화학적으로 안정하며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이러한 비공유결합이 없다면 산소가 혈관 속으로 들어가 헤모글로빈과 결합할 수 없을 것이다.

아연(Zn)은 시스테인이나 히스티딘과 같은 아미노산과 결합할 때 손가락처럼 행동하면서 DNA의 위치를 인식하도록 한다. 이를 아연손가락단백질(Zinc finger protein)이라 한다. 이 밖에 생리작용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원소들(Na, K, Cl, Mg, Ca)도 생리작용에 적합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자연계에서 합성되는 20종의 아미노산들은 예외 없이 L-형만 만들어지는 반면, 오탄당(ribose)은 D-형만 만들어진다. 수많은 당류 중에 오직 간단한 구조를 가진 D-형 오탄당만이 핵산의 구성성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핵산의 단량체인 모노뉴클레오타이드를 연결하고 있는 에스텔결합은 오직 인산염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이 인산염은 결합의 정확도가 뛰어나며 체내의 화학에너지인 ATP, GTP등의 구성성분이 되기도 한다. 모든 생명체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물의 구조(H20)는 화학결합보다 약한 수소결합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액체(물), 고체(얼음), 기체(수증기)의 구조를 잘 유지하게 한다. 이러한 모든 화학적 구조들은 섬세하게 설계된 것임을 보여준다. [에드워드 부드로; 기초화학: 창조의 증거, 창조 121호, pp 17-21, 2000, 원문은 ;Edward A. Boudreaux; Impact No. 324, ICR] 더구나, 물(H2O)은 수소(H) 두 분자와 산소(O) 한 분자로 구성되어 있으나, 이들을 분리하면 물의 성질은 없어지고 가스성분만 남을 뿐이다.


12. 진화론은 추리에서 출발하여 추리로 끝나는 비과학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을 흡사 자연과학의 대명사인 양 혼돈하고 있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진화론은 그 속성상 자연과학이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물질의 기원에 대하여 설명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주계 최초의 원인물질(또는 에너지)이 어디서 어떻게 유래했는지 대답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형이상학적으로 사고해야만 해답이 나오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진화론처럼 모든 것을 오직 물질적인 것에서만 찾으려는 해석체계로서는 한계에 봉착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두 번째 이유는 진화론은 모든 주장을 주관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진화론에서는 모든 분야에 대해 항상 '...할 것이다, ...라고 생각된다, ...라고 추측된다, ...일 것이다' 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자세는 자연과학의 속성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과학은 본질적으로 '과학적 방법'(scientific methodology)에 따라 사물 속에 숨어 있는 원리나 법칙을 찾아내고 실험적으로 검증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가 어디서 실험을 하든 동일한 결과가 변함없이 나올 때, 즉 재현성이 있을 때 비로소 자연과학의 법칙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화론의 연구대상인 생명의 기원이나 생물종의 다양성문제는 실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이러한 문제들이 과거에 단 한번 밖에 일어나지 않았던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과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자기 나름의 주관적인 해석을 하는 것뿐이다. 따라서, 진화론은 그 스스로 정설이 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영국 자연사박물관의 고생물학자인 패터슨(Colen Paterson)은 뉴욕의 자연사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에서 행한 한 공개강연(Nov. 5, 1981)에서 지질학자들에게 '진화론이 사실이라고 하는 증명된 것이 있으면 하나만이라도 말해 보시오'라고 했으나 아무도 대답을 하는 사람이 없이 침묵만 흐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같은 질문을 시카고대학에서 열렸던 진화론 세미나(Evolutionary Morphology Seminar)에서 제기했는 데, 그 중 한사람이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한다. '내가 아는 한 가지 일은 진화론이 학교에서 가르쳐져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Albert Sippert; Evolution is not Scientific; 32 Reasons Why, p 353, Sippert Publishing Company, Mankato, MN, 1995]


13. 진화론의 주요 이론들은 이미 부정되었기 때문이다.

강자만이 살아 남는다는 적자생존 이론은 초식동물이 육식동물보다 더 번성하고 있는 현실로 볼 때 타당성을 잃게 된다. 그리고, 초식동물들이 잡혀 먹히는 것은 대개의 경우 약해서가 아니라 운이 나빴기 때문이다. 후천적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 장기간에 서서히 진화한 흔적도 자연계에선 찾아 볼 수 없다. 진화의 요인이라는 돌연변이는 진화가 아닌 퇴화의 메커니즘일 뿐이다. 그리고, 물질로부터는 어떠한 정보도 나오지 않는다. 정보는 누군가가 외부에서 넣어 주어야만 한다.






1) 수많은 화석들은 진화를 부정한다.

화석은 과거의 시대에 살았던 생물을 정확하게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1859년 다아윈 (1809~1882)이 "종의 기원" 이라는 책을 통해 진화론을 발표한 후 140여년 동안 1억개 이상의 화석이 발견되어 (25만종의 다른 생물로) 수천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지만 진화를 증거하는 화석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초창기 진화론자들은 앞으로 화석이 다량으로 발견되면 진화론이 입증될 것이다 라고 하였으나, 그 반대로 화석이 발견되면 될수록 진화론이 틀렸음이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Michael Denton은 "Evolution : A Theory In Crisis" 라는 책에서 육상척추동물중 생물분류학상 목(orders) 에 해당하는 살아있는 동물의 97.7%가, 과(familes)에 해당하는 동물의 79.1%가 화석으로 발견되었음을 보고하면서 (거의 화석이 발견되지 않는 조류가 배제될 경우에 87.8%로 올라감), 육상척추동물의 화석은 거의 모두 발견되었으나 진화의 증거는 발견할 수 없었다 라고 말하고 있다. Luther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가장 광범위했고 힘들었던 지질학적 탐사작업들이 모든 대륙과 대양바닥까지 이루어진지 120년 이상이 지난 지금, 1859년에 있었던 것에 비해 무한히 많고 생생하며 완벽한 그림들을 얻게 되었다. 지층은 수천억 개의 화석들을 함유한 채 발견되어졌고, 지금 우리의 박물관들은 각기 다른 25만여 종의 1억개 이상의 화석들로 가득 채워지게 되었다. 다아윈의 이론이 옳았다면, 이러한 풍부하고 구체적인 과학적 자료들은 객관적인 연구자들로 하여금 결정을 내리도록 허락하였을 것이다." - Luther D. Sunderland, Darwin's Enigma (1988), p. 9 [italics ours].


2) 가장 낮은 지층에서도 매우 복잡한 구조의 생물체가 발견된다.

가장 오래된 지층인 캄브리아기에 동물분류상 문(Phylum)에 해당하는 다양한 생물들이 발견되며, 이들은 고도로 정밀한 장기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매우 복잡하며, 완전한 기능을 갖고 있으며, 매우 다양한 형태로, 전세계적으로 산재되어 발견되고 있다. 예를 들어 물고기, 벌레, 산호, 삼엽충, 해파리, 해면동물, 연체동물, 완족류 등은 단순한 형태에서 점차적인 진화를 보였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다. 캐나다 로키산맥의 가장 오래된 캄브리아기 지층에서 연체동물, 많은 종류의 벌레, 새우, 게 등 다양한 종류의 화석들이 발견되었는데, 화석중에는 위, 소장 등의 소화기관, 눈, 감각기관, 신경조직, 아가미로 용존산소를 취한후 온몸으로 운반하는 혈관조직, 허물을 벗는 것도 발견되었다. 이렇게 정교한 기관을 가진 동물들이 가장 오래된 캄브리아기지층에서 발견되는데 그 조상은 어디 있는가?

"먼저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화석들의 첫번째 출현이다. 이것은 캄브리아기로 불리우는 시기로 화석계산으로 6억년 전의 시대이다. 화석들은 상당히 발달된 형태로 그 시대에서 나타난다. 그들은 매우 하등하게 시작하지 않았으며, 그리고 조금씩 오랜 기간동안에 진화하지도 않았다. 캄브리아기라고 부르는 가장 낮은 지층에 그들 모두는 이미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매우 복잡하며 현대적인 형태로 존재했다. ~드라마가 시작되면서부터 모든 것이 갖춰져 있었다. 당신은 커튼이 올라가자마자 무대위에서 이미 완전히 현대 복장을 하고 있는 배우(캄브리아기 지층에 나타난 최초의 생물체)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 Norman Macbeth, Speech at Harvard University, September 24, 1983, quoted in L.D. Sunderland, Darwin's Enigma (1988), p. 150.


3) 진보된 생명체들이 갑자기 출현한다.

선캄브리아기에 없던 생명체가 갑자기 캄브리아기 지층에서 1,500종 이상으로 수십억개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것을 "캄브리아기의 폭발 (Cambrian explosion)"이라고 하는데, 무척추동물의 대부분이 출현하고, 길이 60cm 짜리 오징어도 캄브리아 지층 밑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이렇게 정교한(고도로 진화된) 동물들이 갑자기 발견되는데, 그 조상은 어디 있는가? 곤충의 화석은 고생대 펜실베니아기 지층에서 수백 종이 발견된다. 그러나 그보다 앞선 미시시피기나 데본기 지층에서는 조금 앞선 생물이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공룡도 중생대지층인 트라이아스기, 쥐라기, 백악기에서만 발견되는데 그보다 앞선 고생대 말기에는 공룡의 조상이 될만한 어떠한 동물도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1995년 12월 4일자 타임지 기사이다. "캄브리아기 초기의 1000만년도 안 되는 기간동안에 모든 종이 한꺼번에 나타난다. ~진화론을 주장해온 사람들은 캄브리아기 지층에서 갑자기 모든 생물이 나오는 것 같아 보여도 그 밑 어딘가에는 오랜 기간동안 진화가 진행되온 지층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이제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1987년 이후 그린란드, 중국, 시베리아 등의 모든 지층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모든 지층에서 생물은 동시에 출현하였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4) 진화도중의 전이(중간)형태의 생물화석이 발견된 적이 없다.

사람은 무생물로부터 시작하여 원생동물, 후생동물, 척추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 유인원을 거쳐 사람으로 진화했다는 것이 진화론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단세포동물에서 오늘날과 같은 다양한 동식물로 진화되기 위해서는 무수한 진화중간단계의 동식물들이 발견되어야 한다.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진화하였다고 하는데 왜 2~5개의 세포로 구성된 동물체는 발견되지 않는가? 6~20개의 세포로 구성된 생명체들은 모두 기생체들이다. 최초에는 어디에 기생했다는 것인가? 단세포와 무척추동물사이, 무척추동물과 척추동물사이, 어류와 양서류사이, 양서류와 파충류사이, 파충류와 조류사이, 파충류와 포유동물사이, 수많은 식물종 사이에 있어야할 전이형태의 생물체 화석은 역사 이래로 한번도 발견된 적이 없다. 이것을 대부분의 진화론자들도 인정하고 있으며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 또는 "fossil gap" 이라고 한다.

일 예로 물고기에서 양서류로 진화하였을 경우 몇 가지 심각한 문제를 극복해야한다. 물고기는 물에서 살 수 있도록 지느러미와, 물속에서 산소를 취할 수 있게 아가미를 가지고 있다. 양서류는 대기중에서 호흡하기 위해 폐를 가지고 있고, 지느러미 대신 다리를 가지고 있다. 진화론에서는 물고기가 살던 곳이 가뭄이 들어 살 수 없게 되자 육지로 올라가는 모험을 단행하여 양서류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이때 물고기의 아가미가 갑자기 폐로 될 수 있을까? 물고기가 육지에서 살기 위해서는 물속에서 이미 폐구조로 변화가 일어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물고기는 물속에서는 살 수 없다. 여하간 이러한 엄청난 변화를 겪었을 동물들의 중간화석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격리된 그룹에서의 진화는 매우 빠르게 일어나기 때문에 중간형태의 화석이 결여되었다고 설명한다. 간혹 몇몇 진화론자들은 풍부한 전이형태의 생물화석들을 가지고 있다고 허풍을 떨기도 하는데, 그 예들은 거의 대부분 종내에 소규모적인 변이를 보이는 생물들인 것이다. 일 예로 4발 달린 포유동물에서 고래로 진화하였다면 다리(leg)에서 지느러미(flippers)로, 털(fur)은 oily skin으로, 앞쪽에 있던 콧구멍은 머리위로...변해야하는데, 이러한 변화도중의 동물은 발견된 적이 없다. 이 missing link는 진화론이 허구적 이론임을 말해주는 결정적 증거인 것이다

"무척추동물의 한 종으로부터 척추동물 또는 물고기로 진화되는데 필요한 시간은 대략 1 억년으로 평가되어진다. 또한 물고기에서 양서류로의 진화하는데는 약 3천만년을 요구한다. New-Darwinian 시각의 본질은 하나의 식물과 동물이 다른 종으로 진화되는 것은 소규모의 돌연변이가 자연선택에 의해 변형생물체 내에 축적됨으로 인해 일어나는 느리고 점진적인 진화인 것이다. 만약 이러한 진화론적 시각이 진실이라면, 화석기록은 무수한 전이형태를 만들어야 한다. 자연사 박물관에는 의심할 수 없는 중간형태의 생물들로 넘쳐나야만 한다. 25만 여종의 화석들이 수집되고 분류되어졌다. 이러한 화석 종들은 지구역사의 모든 지질시대를 나타내는 것으로 추정되는 암석으로부터 무작위로 수집되어진 것이다. 진화론에 확률의 법칙을 적용한다면 25만종의 대부분은 중간형태이어야만 한다. 그래서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의심과 질문들은 없어야 하고, 진화가 사실인지 아닌지와 같은 토론들도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 - Duane T. Gish, "The Origin of Mammals" in Creation : The Cutting Edge (1982), p. 76.


5) 화석으로 나타난 고대 동식물의 모습이 현재와 변함이 없다.

화석으로 발견된 과거의 화석생물들의 모습은 현재의 형태학적 분류가 그대로 적용될 정도로 지금과 똑같은 것이 대부분이다. 모든 기관과 장기, 형태 등이 수천만년 수억년을 지나면서 조금도 바뀌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단세포동물에서 오늘날의 수많은 종으로의 엄청난 종들의 진화가 일어났다고 하면서 어떻게 이들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생명은 35억년전에 박테리아와 같은 단세포동물에서 시작하여 사람까지 엄청난 진화를 하였다고 하는데, 오늘날 박테리아는 흔하게 우리 주변에서 발견된다. 이들은 35억년 동안 진화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박테리아는 엄청난 진화를 하면서 어떤 박테리아는 최초의 모습 그대로 있는가?

Blue-green algae의 일종으로 최초의 생물화석으로 생각하는 stromatolites는 20억년전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호주 Shark Bay에서 살아있는채 발견되었다. 화석으로 발견되는 백악기의 버드나무, 종려나무, 포도나무, 목련나무 등은 지금하고 똑 같고, 불가사리(5억년), 바퀴벌레(2억5천만년), 박쥐, 박테리아 등도 수억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 같은 것이다. 4억년 전인 데본기에 출현한 폐어(lungfish)는 지금도 똑같은 모습으로 3종이나 살아 있고, 4억5천만년 전인 고생대 오르도비스기에 출현한 개맛(lingula), 투구게(horseshoe crab) 등도 지금의 모습과 똑같은 것이다. 5천만년전(신생대 제3기) 박쥐의 화석이 발견되어 사이언스잡지 표지를 장식하기도 하였는데, 그 모습이 현재의 박쥐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또한 2억5천만년전 바퀴벌레 화석이 발견됐는데 현재와 모습이 똑 같았으며, 호박(amber)속에 갇힌 수천만년 전의 수많은 곤충들의 모습들은 현재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고, 4~6억년전 캄브리아기에서 발견된 달팽이 모습도 지금과 똑 같았다. 곤충 화석들에 대한 연구에서 발견된 곤충 목의 1,263개 과(families)의 화석을 조사한 결과 84%가 1억년전 중생대 백악기에 살아있던 형태와 완전히 동일한 모습으로 현존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그 외에도 현재와 조금도 변함이 없는 화석들(living fossils)은 다음과 같다. 메타세쿼이어(6천만년), 도마뱀(tuatara reptile, 1억3천5백만년), 은행나무(ginko tree, 2억년), 소철(cycad tree, 2억2천5백만년), Port Jackson 상어(1억8천만년), 바다나리(sea lily, 1억6천만년), 성게(sea urchin, 1억년), 오징어문어(squidoctopus, 2억년), 잠자리(dragonfly, 1억7천만년), 은붕어(silver fish), 속새(horsetails), 칠성장어(lamprey), 거북(tortoises), 악어(crocodiles), 칠레소나무(monkey puzzle tree), 주머니쥐(American opossum)...


6) 화석의 형성은 대홍수와 같은 대격변에 의한 것이다.

지구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엄청난 면적의 퇴적층이 발견되고 있다. 실제 육지의 75% 이상이 퇴적암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 지구적인 규모로 형성된 대부분의 퇴적층에서 엄청난 양의 화석들이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산들이 대양의 바닥층 바위들로 구성되어 있음이 밝혀졌고, 조개류, 해초류, 물고기 등 바다생물의 화석이 대륙가운데의 산지인 알프스나 히말라야산맥 등지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온대지방에 사는 식물과 동물의 화석이 극지방에서 무수히 발견되며, 시베리아의 벌판에서 얼어죽은 매머드의 위속에서는 온대지방 식물들이 발견되는데, 이것은 대홍수후 급격한 기온의 변화가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육지를 깎아 바다를 메울 경우 지구는 평균 2.4 km 의 바닷물에 잠기게 될 정도로 지구에는 물이 풍부하며, 세계도처에 고산지대에 남아있는 염호들은(터키 반호 해발 1,700m, 이란 우르미아호 1,470m, 안데스산맥 티티카카호 3800m) 이러한 바닷물의 침습을 말해주고 있다.

최근 그랜드 캐년은 진화론자들의 주장처럼 콜로라도강이 수천만년 흘러가면서 계곡을 만든 것이 아니라, 대홍수후 자연적 댐에 고여있던 엄청난 량의 물이 댐이 붕괴되면서 엄청난 위력으로 쓸고 지나가면서 급속히 침식된 것임이 밝혀졌으며, 꼭대기는 바닷물에 완전히 잠겨졌었으며, 지층들은 홍수에 인한 급속한 퇴적으로 형성되었음이 입증되고 있다.


7) 화석과 지층의 형성은 짧은 기간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진화론에서는 생물이 진화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층의 형성에 대해 동일과정설을 주장하고 있다. 지층이 1cm 쌓이는데 수백년, 30cm쌓이는데 수천 년이 걸리며 지구의 나이는 약 46억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십 만년의 시간이 걸렸다는 퇴적층을 수직으로 뚫고 서 있는 다지층나무들의 발견은(어떤 것은 7.5m나 됨)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으며, 빗방울자국, 물결자국, 발자국 등의 일시적인 흔적들이 화석으로 발견되고 있다. 즉 퇴적층은 결코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죽은 동식물들은 부패되거나 먹히기 때문에 빠르게 분해된다. 그러므로 화석으로 보존되기 위해서는 두터운 침전물에 빠르게 묻혀야 한다. 또한 물고기의 경우 죽으면 물위에 떠서 다른 물고기에게 먹히거나 쉽게 부패하기 때문에 화석이 되기가 극히 힘들다. 그러나 미국의 크로마이티 지역에는 뒤틀리고 구부러진 수억의 물고기 화석이 발견되는 것이다.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다가 화석이 된 물고기화석도 발견되며, 발버둥친 흔적들을 볼 수 있고, 해파리와 같이 죽었을 때 쉽게 부패하고 녹아 없어지는 연부조직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생물들의 화석들도 발견되는데, 이것은 순식간에 침전물들이 덮쳤음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또한 엄청난 량의 동식물 화석들이 무더기로 뒤엉켜진 채 발견되는 화석무덤들이 발견되고 있는데, Maryland의 Cumberland 동굴에는 추운 지역의 동물뿐만 아니라 온대, 아열대, 습지, 건조지역의 동물들의 화석들이 모두 섞여서 발견되고 있으며, 영국 Norfolk forest-beds에는 많은 수의 한대지역 동물들, 열대지역 동물들, 온대지역 식물들이 함께 발견되고 있다. 그 외에도 Nebraska의 Agate Spring Quarry, 인도의 Siwalik Hills, California의 Lompoc, Scotland의 Old Red 사암층, 이태리, 독일, 스위스 등지에는 여러 지역의 동식물들의 화석이 섞여있는 화석무덤들이 발견되는데, 이러한 것들은 전 지구상에 대홍수와 같은 대격변이 있었으며, 화석들은 짧은 기간 안에 형성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8) 화석은 오늘날 만들어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화석의 형성과정을 알아보고자 벌판이나 습지 등에서 수많은 시도를 하여 보았다. 그러나 동식물들은 썩어 버렸고, 화석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생물체가 화석이 되려면 순식간에 퇴적되어야 하고(부패됨으로), 거대한 압력을 받아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은 화석이 새로 생성될 수가 없는 것이다. 1920~40년대 미국에서는 수백만의 들소(buffalo)들이 죽었는데 화석으로 남은 것은 하나도 없다. 과거의 지층형성을 오늘날과 같다고 보는 동일과정설로는 오늘날과 같이 화석도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지구상에는 무수한 화석들이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9) 엄청난 량의 화석들이 발견되고 있다.

왜 이렇게 많은 량의 화석들이 발견되는가? 오늘날은 만들어지지 않는 화석들이 왜 이렇게 엄청난 량으로 세계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는가? 동일과정설로는 수 조(trillion) 개에 이르는 엄청난 량의 화석은 더더욱 만들어질 수 없으며, 이것은 전 지구적인 대격변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남부 오하이오주의 신시내티에는 160km2 의 면적에 수백 미터의 두께로 헤아릴 수 없는 정도로 수많은 해양생물들의 화석이 발견되는데, 이러한 것은 생물들이 매몰될 당시의 격변적 상황을 강력히 말하고 있다. 즉 엄청난 량의 동식물들의 화석은 대홍수에 의한 침전물들에 의해 격변적으로 만들어졌다는 또 하나의 증거인 것이다.


10) 현대보다 고대 생명체의 크기가 더 컸다.

이 사실은 진화론과는 반대되는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과거 화석생물들은 현재의 종보다 거대한 크기를 가졌음이 밝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날개길이 90cm의 거대한 잠자리, 날개폭 51cm의 나비, 날개폭이 9m이며 다리 굵기(직경)가 27cm인 조류, 40톤 정도의 도마뱀, 4.5톤의 나무늘보 등이 발견되는 것이다. 사람 발자국 화석도 어떤 것은 51~56cm 정도인 것들이 발견되는 것이다. 크기가 작은 쪽으로 진화되는(역진화) 이유는 무엇인가? 멸종과 크기의 감소는 진화론과는 정반대 되는 현상인 것이다.


11) 수천만년 전에 멸종했다는 생물들이 살아있다.

멸종돼 화석으로만 남아있던 생물종들이 살아서 발견되고 있다. 실러캔스(coelacanth, Latimeria chalumnae)는 3억7천5백만년 전인 고생대 데본기 후기에 지상에 나타나 고생대 후기에 크게 번성한 후 중생대 후기인 8천만년 전에 사라진 원시물고기로 1938년까지 백악기의 표준화석이었다. 그러나 마다가스카르섬 2~300m 깊이에서 수천만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그물에 잡혔던 것이다 (지금까지 약 180여마리가 잡힘). 조개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앵무조개는 지금도 필리핀 팔라오섬에서 잡히고 있으며, 1억6천만년전 쥐라기의 소나무가 호주 Wollemi 국립공원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미국 애리조나와 로데시아지역의 동굴이나 협곡에는 사람이 그려놓은 공룡의 그림이 발견되었고, 멕시코 원주민이 남겨놓은 흙으로 만든 토상에는 사람과 공룡이 같이 조각되어 있었으며, 미국 팔룩시 강변에는 사람과 공룡의 발자국이 같이 화석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성경도 7,000만년 전에 멸종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공룡에 대해서도 상당한 면을 할애해서 아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욥기40장 15절부터 41장 전체에 걸쳐 등장하는 소같이 풀 먹는 하마와 악어는 원어로는 베헤모쓰와 리워야단인데, 공룡의 화석들이 대대적으로 발견된 최근에 와서야 이 구절에서 설명하고 있는 동물이 하마와 악어가 아니라, 육지공룡과 바다공룡을 설명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욥은 대략 BC 2,000년경에 살았으며, 공룡의 존재가 화석을 통해 알려진 것은 불과 150여년 전이다. 어떻게 7천만년 전에 멸종했다는 공룡을 욥이 상세히 묘사할 수가 있었겠는가? 즉 공룡도 7,000만년 전에 멸종된 것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살아왔던 동물이라는 것이다.

또한 중국과 동남아를 비롯하여 많은 민족들의 전설 속에 무수한 용, 바다뱀들, 그리고 괴물들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이 이야기들은 공룡들과 실제로 만난 것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고대의 이야기로부터 알려진 무시무시한 괴물은 공룡의 화석을 복원하면서 매우 유사함이 드러났다. 근래에 사람과 마스토돈(mastodon)이 함께 존재했다는 화석증거들이 발견되고 있는데, 마스토돈을 조각한 바위가 애리조나 주에 있는 Hava Supai Canyon 안에서, 마스토돈의 뼈들이 에콰도르에서 발견되었고, 인디언들에 의하여 살해되었으며, 주변에 둥글게 고기를 불에 굽기 위해 불을 피운 흔적이 같이 발견되었다. 또 다른 마스토돈의 뼈들이 1928년 마야인들의 작업장에서 부서진 그릇과 항아리조각과 함께 발견되었는데, 마스토돈의 완전한 해골이 염장을 위해 인디언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소금연못에서 발견되었다. 이 연못의 바닥은 다듬어진 돌로 되어 있었고, 갑작스런 지각의 변동으로 동물과 함께 매몰된 것으로 보인다. 마야문명은 AD1,000 년경을 최번성기로 보기 때문에, 이것은 진화론자들의 멸종예상 시기보다 매우 늦은 최근까지 마스토돈이 존재하였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12) 화석과 지층의 연대가 매우 젊다는 증거들이 있다.

화석과 지층에 관한 최근 연구에 의하면 모든 지층에서 분해되기 쉬운 아미노산이 미량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있다. 이것은 화석을 갖고 있는 모든 지층은 최근에 만들어졌으며, 그것도 동시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억8천만년에서 1억3천5백만년전 쥐라기 지층에서 발견된 바다조개(seashells)에서는 아미노산과 단백질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 발견되었으며, 7,500만년에서 1억5천만년전의 공룡뼈에 단백질이 잔존하는 것이 발견되었다. 즉 이 바다조개와 공룡뼈는 수만년 아니 수천년 이상도 될 수 없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DNA도 동물과 식물이 죽은 후 분해되기 시작한다. 1990년까지만 해도 DNA는 10,000년을 넘어 존재할 수 없다고 학자들은 공공연히 말하여 왔다. 이 분해율에 대한 기준은 이집트의 미이라와 같이 보존 상태가 매우 좋으며, 분해 시점이 알려진 것을 면밀히 연구한 결과였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1,700만년 전의 목련속의 나무(magnolia) 잎에서 DNA가 남아 있는 것이 보고되었으며, 석탄층 속에 묻혀 있는 8천만년 전 공룡의 뼈에서 DNA 조각이 남아 있는 것이 발견되었고, 2억년 전의 물고기 화석의 비늘에서도 DNA가 남아 있었으며, 2천5백~1억2천만년 전으로 추정된다는 호박(amber) 속의 곤충과 식물들에서도 남아 있었던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보고에 대해 화석의 보존 상태에 따라 즉 건조, 한랭, 산소결핍, 박테리아결여, 방사선 등에 따라 오래 잔존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나, 보존상태가 매우 좋았던 시료에 대한 실제 측정된 분해율과는 수천 배에서 수만 배의 거대한 차이는 날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선캄브리아기의 하카타이 혈암에서 종자식물에서 볼 수 있는 꽃가루가 발견되었는데, 꽃가루는 중생대의 겉씨식물 형태의 종자식물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식물진화의 골격을 흔들어 버리는 사건이 되고 말았다. 또 하나 깊은 퇴적층에는 운석(meteorites)의 흔적이 전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지층경계면을 조사한 결과 긴 세월에 의한 풍화와 침식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13) 화석의 퇴적순서는 진화순서가 아니라 서식지와 기동성 순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층속에서 발견되는 화석들은 대체적으로 해저에 서식하는 생물종들이 지층의 아래에 보존되어 있고, 위로 올라가면서 양서류, 파충류, 포유류의 순으로 발견되고 있다. 실제 발견된 화석의 95%는 바다에 사는 무척추동물로서 조개류고, 4.75%는 조류(algae)나 식물화석, 0.2375%는 곤충 등 기타 무척추동물, 나머지 0.0125%가 척추동물 화석인데 그중 대부분이 물고기이며, 그나마도 발견되는 극소수의 육상척추동물 화석의 95%가 1개 미만의 뼈화석만 발견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화석의 기록은 대륙과 육지생물의 전멸을 가져온 marine cataclysm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며, 화석의 퇴적순서는 진화순서가 아니라 서식지와 기동성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해도 무리가 없는 것이다. 즉 기동성이 낮거나 바다에 사는 생물들이 먼저 퇴적층에 묻혀 아래지층에 나오고, 그 다음은 육지동물이나 식물들이 매몰되어 나오고, 기동성이 높거나 높은 곳에서 서식하는 조류나 포유류 등은 윗지층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하등하다고 생각되는 생물들도 육상에서 거주할 경우 윗지층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14) 수많은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다.

수많은 발자국화석들이 발견된다는 것은 전 지구적인 홍수가 있었음을 말해주는 또 하나의 증거인 것이다. 조류들은 그들의 발자국이 발견되는 지층에서 같이 화석으로 발견된다. 그러나 파충류와 공룡들은 그들의 몸(body)이 화석으로 발견되는 지층으로부터 수천만년 아래지층에 발자국만 남겨 놓는 이상한 현상이 발견되는 것이다. 이 현상은 대격변 초기에 불어나는 물에 의해 높은 곳으로 이동하다가 마지막에 묻혔다고 가정한다면 별 무리없이 해석되는 현상인 것이다.


15) 동물과 식물의 화석이 같이 발견되지 않는다.

동물과 식물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서로 의존하기 때문에 각각 다른 시대에서 따로 존재할 수 없다. 특별히 초식동물의 경우에는 식물이 없었으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진화론에서는 동물과 식물은 죽어 땅에 떨어져 화석이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지층에서 동식물의 화석은 서로 분리되어 다른 지층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초식동물들은 수십 수백만년 동안 식물없이 살 수 있었을까? 이 현상은 동식물이 대홍수에 의해 떠내려와 분리된 채 화석이 됐다면 이해되는 현상이다.

19) 사람이 출현하였다는 시대(최대로 400만년)보다 훨씬 이전 수억 수천만년 지층에서 사람의

두개골이나 뼈, 이빨 등이 발견된다.

지층 깊숙한 곳에서 사람의 화석들이 나오고 있다. 1971년 10구의 완전한 현대인의 유골이 1억4천만년전으로 추정되는 중생대 백악기 초기의 Dakota Sandstone 지층 17.4m 깊이에서 15~30m 에서 발굴되었다. 이 지층은 공룡들로 유명한 Dinosaur National Monument에서 발견된 지층과 동일한 지층이다. 10명의 유골중 4명은 여성이고, 1명은 어린이, 5명은 남성이었다. 뼈들의 일부분은 관절로 이어져 있었고, 연장이나 인공도구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1971년 이 뼈들을 처음 발견한 불도저 운전사는 어떠한 터널구조나 갈라진 틈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하였다. 뼈들은 녹색의 광물인 공작석(malachite)과 터키옥(turquoise)으로 치환되어 있어서 "Malachite Man"이란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10명의 유골이 동시에 한 지층에서 무더기로 나온 것은 어떤 격변에 의해서 빠르게 묻혔음을 알 수 있게 하며, 관절로 이어진 뼈들은 빠른 매몰을 더욱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몇몇 진화론자들은 지질연대와 전혀 맞지 않는 이 뼈들은 광산이 붕괴하면서 매몰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어떠한 터널구조도 없었으며, 여자와 어린이가 광산에 있었다는 것도 이상하고, 갱이 무너져 매몰되었다면 있어야할 도구나 연장도 발견되지 않으며, 무너진 갱에 깔려 부서진 형태의 뼈는 없었던 것이다. 400만년 전에 출현했다는 인류의 화석이 공룡들이 살았다는 중생대 백악기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외에도 이와 같은 발굴들은 많이 있었다. 1866년 1200만년 된 캘리포니아 Table mountain 금광에서 돌그릇, 돌연장 더불어 사람의 두개골과 유물들이 발견되었고, 1867년 Rocky Point 광산의 1억 3500만년전 지층에서는 사람 유골과 도구들이 발견됐는데 사람 뼈에는 구리 화살촉이 같이 발견되었고, 1877년 네바다주 Spring Valley 지역 1억8500만년전 쥐라기 지층에서는 사람의 다리뼈, 무릎, 정강이뼈, 완벽한 발뼈 등을 발견되었는데 여러 의학자들의 검사결과 매우 현대적인 사람의 뼈로서 크기는 뒤꿈치로부터 무릎까지가 99cm로 3.6 m의 신장을 갖는 사람의 뼈로 조사됐다. 1880년 미주리주 철광산의 무려 4억 2500만년전 고생대 실루리아기 지층에서 사람의 두개골, 갈비뼈 일부, 척추, 쇄골 등과 두 개의 화살촉 모양의 부싯돌, 숯조각 등이 발견되었고, 1926년 몬태나주 Bear Creek 석탄광산의 3,000만년 전인 Eocene 지층에서는 사람의 어금니가 발견되었는데 에나멜층은 탄소로, 뿌리부분은 철로 대치되어 있었으며 여러 치의학자들의 조사결과 사람의 두 번째 아래 어금니로 밝혀졌다. 1958년 이탈리아 투스카니 석탄광산의 지하 180m의 2,000만년전 Miocene 지층에서 5~7세의 완전한 현대인의 어린이 턱뼈가 발견되었고, 1973년 유타주 Big India 구리광산에서 1억년 이상 추정되는 Lower Dakota와 Upper Morrison formation 지층에서 두 구의 매장된 사람뼈들이 발굴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진화론적 지질시대와 맞지 않는 수많은 발굴들은 진화론적 편견에 의해 철저히 무시되어 버렸고 기록에서 모두 제외되었던 것이다.

20) 수억년된 지층에서 사람의 발자국이나 흔적, 사람이 만든 도구들이 발견된다.

사람의 유물이나 도구, 흔적들이 진화론적 지질시대로는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위치인 수억 수천만년전 지층에서 출토되고 있다. 1억4천만년 초기 백악기 석회암 지층에서 부분적으로 광물화된 나무손잡이가 달린 쇠망치가 출토되었고, 공룡과 사람발자국으로 유명한 파룩시강의 백악기 지층에서 완벽한 사람의 손가락 화석이 출토되었다. 이들의 생생한 사진은 http://www.bible.ca/tracks/dino-fossils.htm에서 볼 수 있다.

지층 깊숙한 곳에서 발견된 사람의 도구나 흔적들은 다음과 같다. 1851년 6월 Mssachusetts Dorchester의 Meeting House Hill의 10만년전 지층에서 금속용기(metallic vase)가, 1870년 8월 Illinois주 Peoria 20mile 북쪽의 Lawn Ridge에서 지하 30m 깊이의 10만년전 지층에서 금속메달이, 1885년 오스트리아 북부 Schwannstadt 근처 Wolfsegg 광산에서 나온 6천만년전 갈탄속에서는 쇠로된 입방체가, 1891년 6월 9일 Illinois Morrisonville에 3억년전 석탄속에서 금사슬(golden chain)이, 1896 Ohio river의 West Verginia side에 있는 Parkersburg 북쪽 4마일 지점의 1억5천만년된 암석에서 완전한 사람 발자국이, 1912년 Oklahoma주 Thomas의 Wilberton근처 광산에서 캐내어 온 3억년전 석탄속에서는 쇠단지(iron pot)가, 1927년 네바다주 Pershing Count Fisher Canyon의 2억2500만년전 중생대 지층에서는 사람발자국이, 1885년 켄터키주 Berea 마을 동쪽 16마일 지점인 Cumberland 고원의 Rock Castle County의 Big Hill의 3억년전 고생대 펜실바니아기 지층에서 사람 발자국이, 1948년 영국 Lake Windermere 근처 5억년 정도로 추정되는 고생대 오르도비스기 석회암층에서 사람 신발자국이, 1959년에 중앙아시아의 고비사막의 1500만년된 사암층에서 사람 신발자국이, 1961년 2월13일 캘리포니아주 Olancha 동남쪽 12마일 지역에 있는 Coso Mountains의 정상 1300m 부근의 50만년전 암석에서 기계장치가, 1968년 유타주 Delta시 북쪽 43마일 지점 Antelope Springs 근처 6억년전 캄브리아기 지층에서 사람발자국이, 1968년 프랑스 Saint-Jean de Livet에 있는 채석장의 1억2천만년전 Aptian 백악기 지층에서 이상한 금속덩어리들이, 1970년 오클라호마 북서쪽 Carrizo Valley의 1억년 이상으로 추정하는 Morrison formation and Dakota Sandstone에서 사람 발자국과 신발자국이, 1921년 아칸소주 Finch 북쪽 2마일에 위치한 Crowleys Ridge의 17만 5천년전 지층서 사람의 두상과 유물들이, 1889.8.1일 Idaho Nampa의 30만년 이상으로 평가되는 땅속 96m 지점에서 인형이, 1880.6.13일 스코틀란드의 Victoria 폭포 상단의 6억년전 캄브리아기 지층에는 이상한 두 줄의 띠자국이 발견되었다. (자세한 정보는 www.ior.com/~kjc/pages/strange.htm 참고)

21) 알려진 유인원(hominid)의 화석들은 거의가 다 잘못 해석되었음이 밝혀졌다.

동일과정적 진화론에서는 사람은 원숭이나 작은 생물체의 직계 후손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반은 원숭이고 반은 인간인 유인원의 뼈들이 발견되었다고 말하며, 교과서에도 실려있다. 그러나 이들 유인원들의 뼈에는 심각한 문제점들이 있는 것이다.

첫째, 왜 오직 각 견본의 작은 뼈조각 몇 개만 발견되는가? 왜 완전한 전체 뼈들은 결코 발견되지 않는가? 발견이 적을수록 많은 이론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 우리는 Java Man 과 Piltdown Man의 뼈들이 보여준 것과 같이, 단지 몇 개의 뼈만이 사용될 때 원숭이의 두개골이 얼마나 쉽게 사람의 것으로 속여질 수 있는지를 분명히 보았다. 1972년 Time-Life 라는 책이 출간됐는데, 그 동안의 발견된 모든 뼈들을 목록화하였다. 1,400 예들이 주어졌지만, 대부분이 뼈조각들과 격리된 이빨 같은 것들이었다. 사람 전체의 완전한 뼈는 단 하나도 없었다. 거기에는 파편들과 조각들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둘째, 왜 이러한 특별한 뼈들만 부패되지 않는가? 이들 뼈가 1 백만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한다면, 왜 부패되지 않았는가? 실제 뼈들은 흙속에서 200년 안에 썩어 사라져버린다. 바위암석에 화석으로 새겨진 화석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수백만 년씩이나 된 뼈들이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것과 같이 인도네시아나 중국, 영국 등의 습한 지역에서 발견될 수 있는가? 실제로 사람과 동물의 뼈들이 수백만년동안 썩지 않고 형태를 유지한다면, 전세계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과 동물의 뼈들로 덮여 있어야 한다.

셋째, 진화론자들은 사람이 10만년 전에서 진화를 멈췄다고 결정하였다. 만약 사람이 과거 10만년 동안 동일했었다면, 왜 10만년 전에는 문자, 기술, 도시, 농사 등과 같은 것들을 만들지 못했을까? 왜 인간의 역사는 단지 5,000년보다도 적게 이뤄지고 있는가?

넷째, 언제나 한 시대마다 오직 한 종만이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수백 수천 종은 없는가? 만약 이들이 우리의 조상이라면, 수백만의 우리의 조상들이 있었음에 틀림없는데 말이다.

.Java Man : 1891년 네덜란드 외과의사 Eugene Dubois가 인도네시아 자바에 있는 Trinil 마을 근처 강(Solo River)옆 습지에서 두개골 윗부분(용적 900cc로 추정. 현대인의 약 2/3)과 1년후 15m 떨어진 곳에서 한 개의 대퇴골,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장소에서 2개의 어금니를, 1898년에 1개의 앞어금니를 발견했다. Dubois는 그들 모두가 같은 사람의 것이고, 50만년 이전의 직립원인이라고 발표했다 (Pithecanthropus erectus). 그러나 그는 근처 Wadjac 지역에서 현인류와 같은 용적을 갖는 2개의 사람 두개골을 발견했으나 이를 숨겼다. 두개골 화석의 세계적 권위자였던 부울레는 "전체적으로 이들의 구조는 침팬지나 긴팔원숭이와 매우 비슷하다고" 라고 하였다. 1936년 Dubois는 자신이 죽기전 자바인은 단지 커다란 긴팔원숭이(gibbon)에 불과했다 라고 선언하였다.

.Pitldown Man : 1912년 영국 런던박물관장 A.S.Woodward와 고생물학자 Charles Dawson이 초기 인류의 화석발견이라며 보고한 필트다운인(Eanthropus dawsoni)은 50만년전 인류조상으로 추정되면서 500여 개가 넘는 박사학위논문이 필트다운인과 관련하여 쓰여졌으며, 대영 백과사전에도 유인원으로 정식 수록되었으나, 1953년 불소흡수에 의한 화석뼈의 상대적 연대측정법 개발로 불과 얼마전에 죽은 원숭이(orangutan)의 턱뼈 이었음이 밝혀졌는데, 오래된 것처럼 보이려고 뼈와 이빨은 중크롬산염(potassium bichromate)으로 변색 위장되었으며, 치아는 사람의 것처럼 보이려고 줄로 갈아낸 흔적이 발견되어 과학사에 큰 오점을 남긴 사기극이 되고 말았다.

.Peking Man : 1920년대와 1930년대 북경에서 25마일 떨어진 Choukoutien에서 두개골 30개, 아래턱뼈 11개, 치아 147개가 발견됐다. 유니온 의대의 D.Black 교수는 Sinanchropus pekinensis로 명명하였다. 중국에서 발견되어 남아있는 것은 석고상뿐이다. 원래의 뼈들은 후에 잃어버렸다. 그들은 동굴속에서 수백의 뼈들 중에서 발견됐는데, 대부분이 동물뼈였고, 단지 소수만 사람뼈였다. 그 장소는 쓰레기 집합장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사람의 뼈까지도 버려지기 전에 살이 먹혀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것에서부터 진화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Rhodesian Man : 1921년도에 몇몇 뼈들이 아프리카 Rhodesia 북쪽(오늘날의 잠비아) 동굴안에서 발견되어졌다. 그리고 사람 진화의 증거를 찾았다는 선정적인 뉴스가 모든 곳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후에 유능한 해부학자들이 그 뼈들은 단순히 정상적인 사람의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Nebraska Man : 1922년 Harold Cook 이 네브라스카 샛강 바닥에서 치아 한 개를 발견하여 고생물학자 Osborn이 유인원이라고 발표했다 (Hesperopithecus haroldcookii). 이 네브라스카인의 이빨은 1925년 테네시주 데이톤에서 있었던 유명한 스코프스 재판(Scopes trial, 일명 원숭이재판) 에서 진화를 증거하는 중요한 자료로 사용되었고, 이 기념비적 발견으로 영국의 왕으로부터 기사작위를 수여 받았다. 그러나 1928년에 그것은 멸종된 돼지 이빨인 것으로 밝혀졌는데, 1972년에는 동일한 종류의 돼지가 파라과이에 살아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Taung African Man : 1924년 Raymond Dart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있는 한 동굴에서 발견한 이 두개골은 사라진 잃어버린 고리 라고 주장되었다 (Australopithecus africanus). 그러나 후에 전문가들은 그것이 어린 원숭이의 두개골이었음을 밝혀냈다.

.Ramapithecus : 1932년 하버드대학 고인류학자 David Pilbeam에 의해 인도에서 이빨 몇 개와 턱조각 파편의 발견으로 유인원으로 추정되었던 라마피데쿠스는 한동안 진화론의 영광의 자리를 차지했으나 1980년 완전한 두개골이 발견되어 오랑우탄의 것임이 확인되었다.

.Neanderthal Man : 독일 뒤셀도프 근처 네안데르 계곡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은 연구결과 비타민D 부족의 구루병 환자였으며, 그 후 세계 여러 곳에서 100여명분 유골이 발견되었는데 옷감을 짜고 섬세한 조각도구를 사용하는 완전한 현대인이었음이 밝혀졌다. 유럽에서 수천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이러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한동안 동굴안에서 살았다. 그리고 우리들보다 확실히 큰 두개골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오늘날의 우리보다 훨씬 지혜롭고 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진화론에서는 그 사실을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네안데르탈인은 열악한 식량과 그들이 살았던 기후가 축축하고, 추운 것으로 인해 구루병과 관절염을 갖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이것이 그들의 휘어진 대퇴골과 큰 눈썹 마루의 원인이 됐다고 말한다. 네안데르탈인들은 햇빛이 많지 않았던 시절에 살았다. 만약 화산들의 폭발을 동반한 대홍수가 실제 있었다면, 화산재로 인해 수세기 동안 기온의 하강과 어두웠던 대기권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매우 큰 것이다. 또 다른 증거는 네안데르탈인이 근래의 세기까지 살고 있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는데, 한 명의 네안데르탈인이 중세의 쇠사슬 복장을 한 채 묻혀 있었던 것이다.

.Nutcracker Man. 1959년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일련의 뼈들은 잘못 짝지어진 또 하나의 경우이다. 두개골은 원숭이 같고, 턱뼈는 훨씬 컸다 (그래서 그 이름이 호두까기(nutcracker)가 되었다). 그리고 다른 뼈들은 거의 사람이었다. 후에 발견자인 Louis Leakey도 원숭이 두개골과 같음을 인정했다.

.Skull 1470 : 1973년에 Richard Leakey는 280만년 되었다는 두개골을 발표했다. 그러나 아래턱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것은 작은 뇌를 가진 현대인의 두개골로 보였다. 오늘날에도 사람 두개골의 크기는 1000~2000cc 사이로 다양하며, 평균은 1500~1600cc, 경우에 따라서는 750cc의 작은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작은 두개골의 발견은 진화의 증거가 아닌 것이다.

.Cro-Magnon Man : 1868년 프랑스 동굴에서 발견된 크로마뇽인은 연구결과 완전한 현대인이었음이 밝혀졌다. 몇몇은 신장이 6 feet(180 cm) 이상이었고, 두개골의 용량은 우리들 것보다 약간 컸다. 그들은 원숭이도 아니고, 원숭이로부터 사람으로의 변화되는 증거도 아닌 정상적인 사람들이었다.

.Lucy : 1974년 시카고대학 대학원생이었던 Don Johanson은 Ethiopia의 Hadar의 아와시 강가에서 320 만년전에 살았다는 유인원 Australopithecus afarensis (일명 루시)의 팔뼈, 넓적다리뼈, 척추뼈, 골반뼈 등을 발견하였다. 키는 약 107cm, 몸무게 28kg 정도의 25세 정도의 여성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이 화석은 침팬지 크기의 뇌, 침팬지와 비슷한 이빨과 턱, 길고 휘어진 손가락과 발가락 등을 고려하여 볼 때 침팬지로 추정되며 요한슨도 그것을 인정하였던 것이다.

1996년 6월 3일자 Time 지는 인류의 조상에 대한 특집기사를 마감하며 "현재로서는 원숭이가 진화되어 사람이 되었다는 주장은 사실 데이터에 입각한 과학적 주장이 아니라 한낱 상상에 불과하다." 라고 결론을 짓고 있다




=============================잘못된 증거모음-----------------------------------

라마피테쿠스 : 마이오세부터 플라이오세에 걸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
는 화석 영장류. 인도 북부‧파키스탄‧터키‧그리스‧헝가리‧케냐 등지에서 이와 턱뼈가 발견되었는데, 인류의 직계 조상이라는 설과 유인원이라는 설이 있다.


드리오피테쿠스 :신생대 제3기에 유라시아 대륙에 퍼져 살았던 화석 영
장류. 1856년에 프랑스에서 아래턱뼈가 최초로 발견되었는데, 오늘날의 유인원의 선조로 여겨진다.


시바피테쿠스 : 1910년에 인도 북서부의 시왈리크(siwalik)에서 발견
된 화석 유인원. 플라이오세 전기에서 중기까지의 것으로 보이는 아래턱이 발견되었는데, 오랑우탄의 선조로 추측되고 있다.


필트다운인 : 1911~1915년 영국의 서식스 주의 필트다운에서
발견된 화석 인류. 두개골 및 아래턱뼈 조각이 나왔는데, 처음에는 50만 년 전의 화석 인류라는 감정이 있었으나 오랜 동안의 논쟁 끝에 영국의 아마추어 지질학자 도슨이 명성을 얻기 위하여 위조한 것이 밝혀져 과학 사상 최대의 사기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진화론에 따르면 원숭이에서 사람으로 진화하는 최초의 혈통을 라마피테쿠스라 한다. 이는 미국인 필빔에 의해 처음으로 주장됐다. 이 때문에 진화계통도로 보면 라마피테쿠스는 원숭이와 사람의 분기점이 된다. 이를 첫 유인원(類人猿)이라 한다. 유인원이란 원숭이에서부터 현대 인류까지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라마피테쿠스의 화석은 지금으로부터 1200만년 전 것으로 진화론자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라마피테쿠스는 ‘인류의 조상이 아니다’라고 번복됐다. 그것도 처음 주장했던 필빔에 의해 뒤바뀐 것이다. 그는 1976년 파키스탄에서 발굴한 많은 화석으로 턱뼈와 이빨을 조립한 결과 “턱뼈와 이빨을 그럭저럭 연결한 것”이라고 고백하면서 자신의 학설을 뒤집어버렸다. 이렇게 뒤집힌 학설이 지금도 버젓이 정설인 양 진화계통도를 장식하고 있다.

라마피테쿠스는 그 후 장구한 세월이 흐른 뒤 300만∼400만년 전에 와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됐다는 것이다. 오스트랄로란 남쪽의,피테쿠스는 원인이라는 뜻으로 ‘남쪽에서 온 원인’이란 의미다. 이것이 90만년 전에는 호모하빌리스로,60만년 전에는 호모에렉투스로,30만∼7만5000년 전에는 네안데르탈인으로 각각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네안데르탈인은 다시 크로마뇽인으로 진화했으며 거기서 지금의 인류가 출현했다는 것이다. 문제의 필트다운인은 바로 네안데르탈인보다 훨씬 앞선 화석인류라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금세기 최고의 과학사기로 판명됐다



필트다운인

1911~1915년 영국의 서식스 주의 필트다운에서
발견된 화석 인류. 두개골 및 아래턱뼈 조각이 나왔는데, 처음에는 50만 년 전의 화석 인류라는 감정이 있었으나 오랜 동안의 논쟁 끝에 영국의 아마추어 지질학자 도슨이 명성을 얻기 위하여 위조한 것이 밝혀져 과학 사상 최대의 사기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네안데르탈인

흔히 진화론에서 인간이 진화했다고 믿는 이유 중의 하나가, 원숭이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화석이 발견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이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이다. 네안데르탈인은, 가장 중요한 두개골의 용량이 현대인보다 크거나 같았으며, 턱이라던가 어깨, 무릎, 등이 굽어 있어서 원숭이와 사람 사이의 중간 화석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네안데르탈인의 어깨와 무릎과 등이 굽었던 이유는 비타민 D 결핍으로 인한 곱추병(구루병) 환자였기 때문이었고,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두개골의 용량은 현대인보다 더 발달된, 즉 더 크거나 같았으며, 안면각도 미국 독립전쟁의 영웅인 라파이엣트 장군의 안면각과 같아서, 네안데르탈인이 원시인이라면, 미국의 지성인 라파이엣트 장군도 원시인이 되어야 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네안데르탈인은 원시인이 아니고 완전한 인간의 화석으로 밝혀졌다.


쟈바원인

또 인간이 진화했다고 믿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인도네시아 쟈바섬에서 발견된 피테칸트로프스 에렉투스, 즉 쟈바인의 발견 때문이었다. 쟈바인은 네덜란드의 의사인 듀보아 박사가 발견하였으며, 쟈바인의 화석은 머리뼈와 다리뼈가 발견되었는데 머리는 원숭이 같았고, 다리는 사람과 같아서 진화의 증거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쟈바인의 화석은 한 곳에서 발견된 것이 아니고 머리뼈와 다리뼈가 15m나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으며, 사람의 다리뼈가 발견된 가까이에 사람의 머리뼈도 있었으나, 그것을 취하지 아니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원숭이의 머리뼈를 취하는 등, 과학적으로 크나큰 모순이 있었다. 그리고 듀보아 박사 이외에도 쟈바인을 발견한 보고가 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코끼리의 무릎뼈였음이 밝혀졌다.


듀보아 박사

쟈바인을 처음 발견했던 듀보아 박사가 그후 오랫동안 더 깊은 연구를 한 결과 노년에 들어서 자기가 발견했던 쟈바인의 머리는 원시인이 아니고, 긴팔원숭이의 화석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쟈바인은 이제 더 이상 진화의 증거로 쓰이지 않고 있다.




네브라스카인

또다른 진화의 증거로서 미국 네브라스카주에서 발견된 네브라스카인의 화석이 있다. 이것은 어금니 이빨이 하나 발견되었는데 그것이 사람과 원숭이의 중간 형태를 띠고 있어서 원시인이라고 오해하여 상상화로 남자, 여자 원시인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그후 어금니뿐 아니라 온몸의 화석이 발견되었는데, 알고 보니 원숭이도 사람도 아니고 멧돼지의 이빨에 불과하였다. 그저 '진화'이고 싶은 생각에 엄청난 오해가 일어났던 웃지 못할 넌센스 사건이었다. 그 외에도 크로마뇽인, 하이델베르크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등의 많은 원시인의 화석 논쟁이 있으나 모두 인간 화석 아니면 원숭이 화석으로 밝혀졌고, 진화의 중간 단계의 화석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1925년 R.A.다트가 남아프리카에서 출토한 유아두골(幼兒頭骨)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A. africanus)라는 학명을 주었던 것이 속명의 시초이다. 다트는 유인원의 화석인 줄 알고 이 이름을 붙였던 것이나 그 후 수십 년을 지나는 동안에 이것을 화석인류인 것으로 인정하게 되었는데, 학명은 그런 의미를 떠나서 최초의 명명을 존중하게 되어 있어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중 가장 후대의 자료는 S.B.리키 부부가 동아프리카의 올두바이 협곡(Olduvai Gorge)에서 발견한 것으로서 진잔트로푸스(Zinjanthropus boisei)로 명명하였으며, 그 후 별개의 인류화석 5체를 발굴하였는데,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능력있는 사람)라 명명하였고, 진잔트로푸스보다 진화한 것으로 호모 사피엔스(H. sapiens)의 조상형이라 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일반적으로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 로부스투스(A. robustus) 및 아프리카누스(A. africanus)의 3종으로 분류되었다. 아파렌시스는 두개골의 구조상 현생인류보다는 이전의 유인원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두개골을 제외한 나머지 골격구조는 현생인류와 매우 흡사한 형태를 하고 있어 직립보행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로부스투스는 다른 종에 비해 두개골과 안면 형태 및 치아 구조가 거대하고 튼튼하다. 특히 먹이를 씹는 기능을 가진 어금니가 매우 크다는 점이 이 종의 특징인데, 극단적인 경우 그 크기는 현대인의 4배에 달한다. 큰 어금니에 비해 앞니와 송곳니는 작은 편으로 전체적인 치열 형태는 뒷부분이 크게 벌어진 포물선형을 이루고 있다. 아프리카누스는 아파렌시스와 로부스투스보다 현생인류와 유사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아프리카누스는 로부스투스와 상당기간 공존하였지만 로부스투스보다 일찍 소멸하였는데, 이에 대하여는 아프리카누스의 일부가 사람속(屬)으로 일찍 진화하였기 때문이라는 가설과 이미 발생한 사람속과의 생존경쟁 속에서 시간적인 차이를 두고 소멸하였다는 가설이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주변의 식물을 채집하거나 육식동물이 먹다 남긴 찌꺼기를 먹으면서 작은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였다는 설이 정설로 되어 있다. 이들은 유인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다운 특징을 지니고 있다. 즉, 생활근거지의 확보, 성에 따른 노동의 분담, 의사소통의 수단, 친족관계 등의 문화적 요소를 지니고 생활하였으며, 도구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점 등이다. 이들이 만들어 사용한 석기군을 흔히 올두바이 공작(Olduvai Industry)이라고 부른다. 이들의 석기는 자갈돌 끝을 간단히 가공한 석기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기능적으로 전문화된 도구의 제작은 아직 뚜렷하지 않고 석기는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현생인류의 조상임에는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진화의 과정에 대하여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많다.


호모사피엔스

인류의 진화단계를 원인(猿人)·원인(原人)·구인(舊人)·신인으로 구분했을 때 가장 진화한 단계가 호모사피엔스(지혜 있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4만∼5만 년 전부터 지구상에 널리 분포되어, 후기 석기문화(石器文化)를 가지며 농경·목축이라는 혁명적 생산수단을 발명하여 마침내 문명의 꽃을 피웠다. 분류학적으로는 구인, 즉 네안데르탈인(Homo neanderthalensis)도 호모사피엔스의 한 아종(亞種)으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크로마뇽인

1868년 프랑스 크로마뇽의 바위 밑에서 남성 3, 여성 1, 태아 1구의 뼈가 발견되었는데, J.A.카트르파지가 그 특징에서 특별한 인종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크로마뇽인이라 명명하였다.

신장은 180cm 이상으로 매우 크며, 상지(上肢)가 하지(下肢)보다 현저하게 길다. 머리는 길고 입은 돌출하였으며, 턱이 발달되어 있다. 같은 종류의 뼈는 유럽 각지에서 후기 구석기와 함께 출토되어, 이 시대의 유럽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살았던 대표적 인종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리말디동굴에서는 이 인종과 함께 별종의 특징을 가진 화석 호모사피엔스가 출토되어, 당시의 인종적 다양성을 시사하는 것으로서 주목되었다.



프레사피엔스

호모사피엔스, 즉 신인(新人)의 화석은 최후의 빙하기인 제1아간빙기(亞間氷期) 이후 다수 발견되었으나, 그보다 더 오래된 지층에서 출토된 인골(人骨)로서 신인의 특징을 갖추고 있는 것을 총칭하여 프레사피엔스라고 부른다. 따라서 프레사피엔스는 구인(舊人)과 동시대 또는 그보다 선행하는 시대에 생존했던 것이 되어 신인이 구인으로부터 직접 진화하였다고 단순히 말할 수는 없다. 이전에 프레사피엔스로 알려졌던 중요한 화석 중에서 필트다운인(人)을 비롯하여 많은 것이 플루오르 연대측정법에 의하여 실격되고 현재 확실한 프레사피엔스로 인정되고 있는 것은 영국의 스완즈컴 ·프랑스의 폰테슈바드 등 소수에 불과하다.



호모하빌리스
동(東)아프리카의 올두바이에서는 많은 원인(猿人)화석과 원시적인 역기(礫器)가 같은 지층에서 발견되었다. 발견자인 L.B.리키는 처음 원인 진잔트로푸스가 역기의 제작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후 원인화석 가운데 진잔트로푸스보다도 약간 진보된 단계의 인류의 뼈를 구별할 수 있다고 하여, 이 일군(一群)을 '손재주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호모하빌리스라고 명명하였다. 진잔트로푸스는 그때 역기를 만들 능력에 이르지 못하였고, 역기를 만든 것은 이 호모하빌리스라고 결론을 내렸다. 호모하빌리스의 뼈는 어느 것이나 단편(斷片)이어서 진잔트로푸스와 구별할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어떤 계에서 그 부분 중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전체 계의 작동이 정지되는 경우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휘트스톤 브릿지(물2에 나옵니다)도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가지고 생명체의 기작 중에는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갖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눈, 혈액응고, 섬모의 작용 등이죠. 이런 작용들은 점진적인 진화로는 절대 생겨날 수 없으며 지적설계의 존재를 증거하죠(물론 그 존재가 하나님인지는 모릅니다만). 다음 사이트를 참조하시고 진화론자들은 반박해 보시기 바랍니다.




***TIME지가 강력히 비판한 진화론의 문제점들***

Time 지는 최근 세 차례 진화론을 특집으로 다루었다. 한번은 생의 기원에 대해서, 또 한번은 진화에 대해, 그리고 한번은 인류의 조상에 대해 각각 표지를 장식하는 특집기사를 보도했다. Time 지는 세계 누구나 그 권위를 인정하는 시사주간지이다. 이러한 Time 지가 다윈의 진화론은 과학적 근거가 희박하고 이제 폐기될 수밖에 없는 이론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아래에서는 이 세 기사를 중심으로 세계 유명 시사주간지에 조명된 진화론의 현주소를 소개하고자 한다.

1993년 10월 11일자 Time 지의 표지기사는 "생의 기원"이다. 1871년 다윈은 첫 생명이 물 속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1953년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Miller 라는 대학원생이 유리관 속에 물, 암모니아 가스, 메탄 가스 등을 넣고 전기 스파크를 일주일 동안 가해보니까 소량의 아미노산이 검출되었다. (아미노산들은 다시 결합하여 단백질을 이룬다.) 이때 사람들은 '생의 기원' 논쟁이 끝난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서둘러 떠나기 시작했다. 이윽고 1963년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중고등학교에서 기도와 예배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다. (이 케네디 대통령은 그 일가가 계속적인 비극에 휩싸이는 사건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1994년 스페인에서 개최된 '생의 기원' 주제 세계학술대회에서 Miller 실험은 의미가 없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되었다. 그 이유로는 첫째, 지구상 대기가 암모니아 가스등으로 뒤덮인 적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현대 과학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생명체 내의 모든 단백질은 DNA/RNA 지령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므로 Miller 가 만든 방식의 아미노산은 생명체와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신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밝혀진 바에 의하면 DNA/RNA 자신이 생성되려면 다시 단백질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면 단백질을 만들라는 지령은 DNA/RNA가 내리는데, DNA/RNA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단백질은 누가 어떻게 만드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이것은 마치 닭과 달걀과 같은 수수께끼이다.) 셋째, 최근 지구상에서 확인되는 모든 화석 층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종들이 다 한꺼번에 출현된다. (이 기사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다룬다) 마지막으로 첫 생명체는 단순한 아미노산이어서는 안 된다. 이 개체는 처음부터 "완전한 번식능력"을 가지고 생겨나야만 한다. 번식능력을 갖추지 않고 생겨난 생물체는 후세로 이어지지 않은 생물체이다. 번식능력이 없이 생겨나 자신 한 세대만 살다 가버린 생물체는 우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생물체이고 우리와 관계가 있는 모든 생물체는 첫 세대부터 번식을 통해 우리에게까지 전달된 것들뿐이다. 그러니 생명체는 생겨난 첫 대부터 자신과 동일한 종을 재생산해야만 한다. 그러려면 처음부터 매우 정교한 생식기능, 유전자 등을 가지고 태어나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돌연변이도 적자생존도 시작될 수가 없다. 그런데 진화연습을 시작해보기도 전에 어떻게 이러한 복잡하고 정교한 기능을 갖출 수 있는가?

첫 생명이 물과 번개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가설이 위와 같이 무너지자 진화론자들은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 여러 개의 새로운 가설들을 제안하고 있다. 첫번째 주장은 바다 속 깊은 곳에서 화산이 폭발하면서 첫 생명이 탄생되었다는 주장이다. 지상에서는 Miller 실험과 같은 환경이 갖추어진 일이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그러한 환경이 있었을 법한 곳을 찾아 바다 속 화산을 지목한 것이다. 그곳은 화산 용암이 분출하면서 암모니아 가스등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가설은 섭씨 120 도가 넘는 뜨거운 곳에서는 모든 생물이 다 죽는다는 데 어떻게 거꾸로 생명이 생겨날 수가 있는가라는 질문등에 대해 잘 설명을 못하므로 아직 과학적 정설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바다 속 화산근처에 생명체가 있다면 그것은 거기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거꾸로 주변에서 이민해간 것이라는 설이 더 유력하다. 두번째 주장은 유성등이 대기 중으로 떨어지며 타 들어 가는 순간 암모니아 가스등이 발생되고 여기서 생명이 탄생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 연소 기간은 수 분밖에 안되어 너무나 짧고, 태어나야 할 생명체는 너무 복잡하여 이 역시 설득력이 모자란다. 셋째 주장은 외계의 생명체가 우주 먼지 등에 묻어 지구로 왔다는 주장이다. 외계에 생명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그곳에 안 가본 사람(?)은 반박해 볼 수도 없다. 그러나 생명체가 우주 먼지를 타고 지구로 이민해올 수 있는지 여부도 큰 의문이다. 지구까지 오려면 엄청나게 긴 세월 동안 엄청나게 비친화적인 환경 (온도, 유해 우주선 등)을 견뎌야 하는데 그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의문 투성이다. 물론 이것도 증명은 안된 것이다. 최근에는 화성 생물 탐사에 엄청나게 많은 돈을 쓰고 있고, 인터넷을 통해 외계로부터 전파를 받는다고 야단들이다. 화성의 생명체를 탐사하려고 엄청난 돈을 쓴다는 것은 곧 바꾸어 말하면 "지구에서는 생명이 스스로 우연히 생길 수 없습니다"를 시인하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결론으로 Time 지는 오늘 현재 "생의 기원" 에 대해서는 다만 서너 개의 설익은 주장만이 난립해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인류의 조상에 대해서는 Time 지가 1994년 3월 14일에 표지기사로 실었다. 여기서는 그 기사 중 가장 중심 부분인 네안델탈인에 대한 글을 소개한다. 네안델탈인 화석을 처음 조사한 과학자는 불란서 사람 Boule이었다. Time 지에 의하면 그는 그 시대를 풍미하던 다윈의 진화론에 매우 부담을 느낀 것 같았다고 적고 있다. 그래서 그는 네안델탈인을 인류와 원숭이 사이의 연결고리라고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Boule의 보고에 의하면 네안델탈인은 (그 모양이 마치 현대인과 원숭이의 중간처럼 보여서)

발을 원숭이처럼 곧바로 펴지를 못했었다.
원숭이처럼 발로 물건을 쥘 수 있었다,
원숭이처럼 척추를 곧게 펴지 못했었다.
원숭이처럼 턱이 앞으로 나왔다"
라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1957년 미, 영 과학자들이 Boule이 조사했던 바로 그 화석을 재조사해 보니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재조사에 의하면 네안델탈인은

발을 곧바로 폈었다. (Boule이 조사한 화석은 관절염 때문에 굽었었다)
발로 물건을 쥘 수 없었다.
척추는 곧바로 뻗었었다.
더욱 더 수상한 것은 네안델탈인의 두뇌는 우리의 두뇌보다 더 컸는데 이 중요한 사실을 Boule 은 보고서에서 일부러 누락시켰다는 것이다. 1957년 이후로도 계속 네안델탈인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연구가 되면 될수록 인류와 네안델탈인들은 완전한 다른 종임이 입증되고 있을 뿐이다. 1997년 12월 17일 CNN은 영국 과학자들이 네안델탈인의 DNA를 조사해 본 결과 네안델탈인은 인류와 무관한 종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도 국내 교과서는 오늘날까지도 네안델탈인을 인류의 조상으로 고집하고 있다.

네안델탈인뿐이 아니라 1996년 6월 3일자 Time 지는 Piltdown Man 에 대해서도 기사를 내보내었다. Piltdown Man은 1912년 영국에서 발견되어 한때 원숭이와 현대인 사이의 연결고리로 각광을 받았었다. 그러다가 1950년대에 그것이 가짜인 것으로 밝혀졌었다. 누군가가 사람의 두개골에 원숭이의 턱을 일부러 끼워 넣고 그것을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페인트 칠을 하고 줄칼로 밀은 사실이 정밀분석 결과 밝혀진 것이다. 1996년 Time 지는 그것이 누구 짓인지를 밝혀낸 것이다. 그는 바로 영국 박물관의 동물학부 책임자로 일하던 Hinton 라는 사람이었다. 그 증거로는 Hinton 씨가 생전에 소유하고 있던 여러 뼈들의 유전자를 조사해봄으로서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Time 지는 인류의 조상에 대한 특집을 마감하며 이 분야를 다음 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원숭이가 진화되어 사람이 되었다는 주장은 사실 데이터에 입각한 과학적 주장이 아니라 한낱 상상에 불과하다." 이러한 결론은 진화론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모욕이다. 또한 그것은 그들의 생업에도 큰 지장을 줄 수 있다. 과학이 아닌 상상따위로 알려지면 더 이상 연구비, 교수 승진 등을 기대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Time 지 독자란에 아무런 항의도 없는 것을 보면 이러한 모욕적인 기사에 대해 별달리 항의할 근거도 없는 것 같다.

1995년 12월 4일 Time 지는 화석과 진화에 대해 다루고 있다. 지구에서 발견되는 여러 가지 지층 중에 캄브리아기(Cambrian)는 매우 유명하다. 캄브리아기는 수 KM의 화석층을 이루는데 거기에서는 척추동물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종이 한꺼번에 다 발견된다. 캄브리아층은 영국에서도 많이 발견되고 다윈 시대에도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래서 다윈에게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캄브리아층에서는 모든 생명체가 다 한꺼번에 어우러져 발견되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캄브리아기 밑 어딘가 진화를 증명하는 지층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이제 더 이상 설득력이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다윈 이후 130년간 지구의 지층을 조사해왔고 이제는 그 조사가 다 끝났기 때문이다. 1987년 이후 그린랜드, 중국, 시베리아, 그리고 최근 나미비아까지 모든 지층이 보여주는 바에 의하면 전세계 지층들은 동일한 시간대에 동일하게 발전했음을 보여주고 있고 또 캄브리아기 위로는 거의 모든 종이 한꺼번에 갑자기 출현하지만 캄브리아기 밑으로는 생물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여 주고 있다. 캄브리아기 밑으로는 아메리카, 아프리카, 호주 등이 대양을 사이에 두고 서로 멀어지며, 육지와 바다와 히말라야 산들이 형성되던 흔적과, 엄청난 화산,지진 등의 흔적과, 도저히 생명이 살수 없는 환경이였음을 알려줄 뿐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만일 캄브리아기의 생명체들이 진화해서 생긴 것이라면 그 진화에 소요된 기간은 아무리 길어야 500만년 - 1000만년 정도로 확인되었다는 사실이다. Time 지는 이러한 현상을 "Biology Big Bang" 또는 "초음속 진화"라고 부른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 기사에서 취재대상이 된 하버드, MIT 교수들은 이러한 발견이 동료 생물교수들에게 매우 큰 충격을 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생물학자들은 모든 종이 500만년에 다 진화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하버드, MIT 교수들은 "우리가 과거 추정하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종들이 생겨났습니다. 엄청나게 이상한 일입니다 ... 이 결과는 생물학자들이 불안해할 정도입니다. ... ". Time 지는 이 기사 끝 부분에서 "다윈의 진화론은 이제 화석에 나타난 현상들을 더 이상 설명할 수가 없다. 다윈의 설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진화론이 나오지 않으면 안된다"고 맺고 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창조론은 시인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Time 지는 생의 기원문제에 대한 다원과 Miller 가설은 이제 완전히 폐기되었고 새 이론은 검증된 것이 없으며, 현재 화성 등 외계에서 생의 기원을 찾는 중이라는 말로 맺고 있다. 이는 곧 지구상에서는 생명체가 스스로 우연히 생겨날 수 없음을 시인하는 말이다. Time 은 인류의 조상을 연구하는 분야는 과학이 아니라 상상에 불과한 분야라고 결론 짖고 있다. 마지막으로 화석은 이제 거의 탐사가 끝난 상태이고 그 결과는 다윈 진화론의 폐기라고 보도하고 있다. 즉 모든 종은 한꺼번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종이 진화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면 그 진화 시기는 아무리 길어도 500-1000만년이라고 적고 있다. 그러므로 Time 지는 공공연히 다윈 진화론이 죽었음을 보도하고 있다. 이러한 수 차례의 도전적인 기사에 대해 진화론자들은 단 한번의 반론도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년간 과학은 실로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께 정면으로 도전하는 진화론은 단 한치의 진전도 없었다. 너무나 큰 대조이다.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은 Time 지 보도보다도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이다. 국내 언론들이 오늘도 UFO 같은 글들은 대문짝하게 다루면서도 위에서 소개한 기사는 한번도 제대로 다루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그 모든 과학 섹션기사들은 왜 이러한 중요한 보도를 외면하는가? Miller가 실험 결과를 발표할 때.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할 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도 난리법석을 떨며 하나님을 서둘러 떠나고, 헌법까지 고치고 했는데, 막상 그 진화론의 정정기사가 나가니, 이제 아무도 서둘러 이를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고, 서둘러 전하려 하는 사람도 없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과학이라는 이유로 하나님을 성급히 떠난 사람들이 왜 이제는 과학이라는 이유로 하나님 앞으로 성급히 되돌아오지 않는가? 왜 아무도 이 기사들을 보도조차 않는가? 그것은 아마도 과학이나 이성의 문제가 아니고 죄의 본성 문제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Time지는 매주 표지 기사마다 그 편집후기를 Time지 맨 앞 쪽에 게재한다. 1994 3월 14일 Time 지에는 (인류의 조상을 표지기사로 내보내었던 때이다.) 수석부사장이 표지기사 편집 후기를 쓰고 있다. 거기서 수석부사장은 그 기사를 취재했던 기자의 소감을 그대로 적고 있다. "인류의 조상을 취재했던 기자는 기자가 되기 전 테네시 고등학교에서 과학 선생님을 하셨습니다. 이제 그는 고등학교에서 가르쳤던 모든 진화론 내용이 엉터리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모든 학교도 마찬가지로 엉터리를 가르쳐왔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최근 몇 차례의 Time 진화론 특집기사로 밝혀졌습니다. 이제 진화론에 대해 잘못 알고 계시던 분들은 그러한 생각을 바로 잡으시기 바랍니다"

진화론의 허구가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인식도 서서히 바뀌고 있다. 1998년 4월 27일 Time 지는 미국 중고등학교에서의 종교활동 상황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앞에서 케네디 대통령을 언급하며 설명한 것과 같이 1963년 미국은 학교에서 종교활동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그후 공립학교에서는 일체의 예배가 금지되어 왔다. 요즈음 미국 법정은 이 문제를 다시 다루기 시작하였고 판결이 아직 나지도 않았는데 공립학교 중 상당수가 이미 학교에서 기도와 예배를 부활 시켰다. 최근에는 십계명까지 다시 교실에 걸기 시작하였다. 98년 당시 Time 지가 통계 낸 바에 의하면 미국 공립학교의 4분의 1이 이미 위와 같은 신앙활동을 부활 시켰다. 정부의 재정지원으로 살아가야 하는 공립학교가 헌법에서 금지한 예배를 교정에서 부활 시켰다는 것은 -- 그것도 준법정신이 유달리 강한 미국에서는 극히 이례적인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 최근 캔자스 주에서는 학교에서 진화론을 "검증이 안된 가설로만 가르칠 것". "진화론을 사실로 입증된 것처럼 가르쳐서는 안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또 "진화론은 일체 시험에 못 낸다"고 못박았고 다른 주들에서도 비슷한 조치를 검토 중이다.

많은 사람들은 최근 미국 고등학교에서 계속적으로 총기사고가 일어나는 근본원인을 미국 교육현장에서 기독교 교육을 없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진화론의 가장 큰 문제는 "진화론은 우리 사회와 역사를 죄악으로 몰아간다"는 데에 있다. 당연한 결과이다. 필자는 최근 서점에서 추천하는 역사책을 읽은 적이 있다. 서점 점원은 청아출판사의 이야기세계사 라는 책을 추천해주었는데 이 책은 서울대 역사학과 교수들을 위시하여 전세계 유명한 역사학자들이 저술하고 감수한 역사서로서 읽기 쉽도록 풀어서 쓴 책이었다. 그런데 그 책에서도 "진화론은 우리 인류에게 말할 수 없는 죄를 짖게 한 장본인"이라는 결론을 큰 지면을 할애해서 적고 있다. "서구인들은 다윈의 설을 빌려 제국주의, 인종차별, 민족주의, 군국주의를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시행할 수 있었다. 서구인들은 진화론의 적자생존 이론을 빌미로 우수한 인종이 열등한 인종을 착취하고 말살시키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계율이라고 받아들였다. 패자는 당연히 멸절되야 한다는 것을 자연의 법칙으로 받아들였다. 진화론이 나온 후 갑자기 정복민족을 자처하는 민족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진화론이 나온 후 갑자기 민족마다 민족주의, 민족우월성 고취운동을 경쟁적으로 벌이게 되었다. 영국은 섹스피어를, 독일은 괴테를 민족 우수성을 입증하는 도구로 부각하기 시작했다. 전세계적으로 상부상조 정신은 말살되고 휴머니즘은 찾아볼 수 없는 덕성이 되었다. 사회적 진화론자들은 진화론을 변용하여 영토확장, 군비증대, 민족간 불신, 국가간 적대감을 악화시키는 일, 유태인 말살 등의 인종청소에 사용하며 세계대전에까지 이르는 길을 예비하였다."고 적고 있다. 이 모든 죄악의 주범으로 이 역사책은 진화론을 지목하고 있다. (336 쪽 이야기 세계사)

나는 최근 web에서 허블망원경으로 찍은 밤하늘 사진을 보면서 다시 한번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을 체험하였다. 밤 하늘에서 우리 눈으로는 1000 억개 이상의 별들을 볼 수 있는데 보기에는 한 개의 작은 점으로 밖에 안 보이는 그 별들이 막상 허블망원경으로 찍어보니 그 하나 하나가 다시 1000억개의 별들로 구성된 은하계로 나타나고 있다! "deep space" 라는 이름이 붙은 이 허블망원경 사진은 (www.seds.org/hst/hst.html에 들어가면 누구나 그 jpeg 사진을 볼 수 있다.) 실로 우리 우주가 얼마나 광대한 가를 압도적으로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정반대로 나는 또 아주 가느다란 모기 다리를 보며 은혜를 받는다. 그 실보다 가는 모기 다리 속에 신경이 있고, 혈관이 있고, 양분과 산소를 결합하여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연소기관이 있고, 심줄과 같은 운동 기관이 있고, 연소후 나오는 노폐물을 몸 밖으로 걸러내는 기관이 있을테니 실로 신묘막측하다. 그 가는 다리로 모기는 (털이 수북하고 때로는 가파르기도 한) 우리 몸 위를 걸어 다니며 한번 넘어지는 일도 없이 잘도 다닌다. 어디 그뿐이랴, 천장에 거꾸로 매달리기까지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절묘한 다리를 만들되 (그것을 손으로 조립하듯 만드는 것도 어려운데) 그것을 일일이 DNA/RNA 로 설계하고 제작하셨으니 참으로 모기 다리는 상상을 초월한 하나님의 경이로운 작품일 수밖에 없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나, 눈을 내려 땅을 보나, 이 세상은 실로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만한 증거로 가득찬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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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인류보다 월등히 뛰어난 지능과 파워를 지닌 외계 생명체 ‘트랜스포머’. 정의를 수호하는 ‘오토봇’ 군단과 악을 대변하는 ‘디셉티콘’ 군단으로 나뉘는 ‘트랜스포머’는 궁극의 에너지원인 ‘큐브’를 차지하기 위해 오랜 전쟁을 벌여왔다. 하지만 행성 폭발로 우주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큐브’. 그들은 오랜 전쟁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큐브’를 찾아 전 우주를 떠돈다.

인류의 미래를 좌우할 에너지원인 ‘큐브’는 우주를 떠돌다 지구에 떨어지고 디셉티콘 군단의 끈질긴 추적 끝에 ‘큐브’가 지구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들은 최후의 전쟁의 무대로 지구를 택하고, 아무도 모르게 지구로 잠입한다. 어떤 행성이든지 침입해 그 곳에 존재하는 기계로 변신, 자신의 존재를 숨길 수 있는 트랜스포머는 자동차, 헬기, 전투기 등의 다양한 형태로 변신해 인류의 생활에 깊숙이 침투한다. 그리고 그들은 큐브의 위치를 찾는데 결정적인 열쇠를 지닌 주인공 ‘샘’의 존재를 알게 된다.

이 모든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살아가던 ‘샘’은 어느 날 밤, 자신의 낡은 자동차가 거대한 로봇으로 변신하는 놀라운 현장을 목격한다. 그의 자동차는 ‘트랜스포머’ 중 정의를 수호하는 ‘오토봇’ 군단의 ‘범블비’로 큐브를 차지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디셉티콘’ 군단에 맞서 샘을 보호하기 위해 파견된 트랜스포머. 우주의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반드시 샘을 지켜야만 하는 범블비는 자신이 형제들인 ‘오토봇’ 군단을 지구로 불러모으기 시작하는데..

거대 에너지원 ‘큐브’가 디셉티콘의 손에 들어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샘을 찾아내 큐브를 손에 쥐어 지구를 지배하려는 악의 ‘디셉티콘’ 군단과 지구를 지키려는 정의의 ‘오토봇’ 군단의 인류의 운명을 건 숨막히는 대결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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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인류의 문명이 탄생하기 한참 전, 이미 지구상에서 에이리언과 프레데터가 한차례 격돌했었다. 인간보다 훨씬 발달된 문명생활을 했던 프레데터 종족은 지구에 피라미드를 건설하고, 인간에게 신으로 군림하면서 그곳에서 중대한 의식을 거행했다. 바로 젊은 프레데터가 가장 강력한 종족인 에이리언과의 대결에서 살아 남으면 그들에게 전사의 지위를 주었던 것. 인간은 신적인 존재인 프레데터의 이러한 의식을 위해서 에이리언의 숙주가 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자신의 몸을 제물로 바쳤다. 하지만, 대결의 양상이 변하여, 에이리언의 어마어마한 번식을 막지 못한 프레데터는 자폭 장치를 작동시켰고, 그 결과 두 종족은 물론, 인간의 문명까지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로부터 수 천 년이 지난 현재, '웨이랜드' 기업의 광물탐사위성을 통해 남극 빙하 2000 피트 (약 600m) 아래에서 고대 건축 모양의 이상열이 감지되고, 그것은 고대 아즈텍, 이집트, 캄보디아 양식이 혼합된 피라미드로 밝혀진다. 이에 기업의 총수인 찰스 비숍 웨이랜드는 모험가이자 환경가인 렉스를 리더로, 고고학자, 과학자, 무장 용병들로 탐험대를 구성하고 역사적인 발굴을 위해 남극으로 출발한다.

바로 그 순간 외계에서는 프레데터 일행이 100년 만에 돌아온 사냥일을 맞아 지구로 향한다. 사실 남극에서 관측된 피라미드의 열선은 인간을 유인하기 위해 프레데터가 쳐놓은 미끼였던 것. 수천년 전 인간에게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던 프레데터는, 100년에 한번씩 지구에 찾아와 인간을 숙주로 에이리언을 번식시킨 다음 어린 프레데터들의 전사 자격을 시험하기 위해 '에이리언 사냥'을 시켰었다. 그러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에이리언의 번식을 막지 못해 전세가 불리해지자, 프레데터가 자폭 장치를 작동시킴으로써 두 종족은 지구상에서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프레데터는 남극에 묻혀진 피라미드에서 100년을 주기로 에이리언 사냥을 계속해 왔던 것이다. 이제 다시 사냥일이 되자 프레데터는 어린 프레데터 둘을 이끌고 지구로 돌아왔고, 에이리언을 만들어낼 숙주로 이용하기 위해 탐험대를 남극까지 유인한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모른채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간 렉스 일행은,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에이리언 알을 낳는 퀸 에이리언을 깨우게 되고, 미로 같은 피라미드에 갇힌 탐험 대원들은 하나둘씩 에이리언의 숙주가 되어 간다. 가까스로 숙주 신세를 면한 렉스는 탈출구를 찾다가 에이리언과 프레데터의 무시무시한 싸움을 목격한다. 그때 어린 프레데터 둘이 치열한 혈전을 치르는 과정에서 에이리언의 기습에 죽임을 당하자, 가장 강력한 프레데터 리더인 스칼( Scar)이 본격적인 에이리언 사냥에 나선다.

이제, 엄청나게 거대하고 포악한 퀸 에이리언과, 최강의 전사로써 에이리언을 하나씩 사냥해가는 프레데터 리더 스칼의 어마어마한 전투가 시작된다. 상상을 초월하는 외계종족의 전투지 한가운데에 홀로 남겨진 렉스. 그녀는 다시 지구가 초토화되는 비극을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만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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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2탄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어요.

300

읽을거리 2007/04/27 16:51 |


후반에 깜빡 잠이 들어서 결말을 못봤지만,
..... 재밌었었나?





아무튼, 책과 영화의 비교



레오니다스의 성인식 부분






페르시아 군과 처음 교전할 때의 장면






크세르크세스 왕






페르시아의 사자가 도착한 장면























신탁녀





임모탈









레오니다스







신록의 계절이라지만 하늘이 낮게 깔렸음인지 가슴조차 우중충한 월요일이었다. 아침부터 공연한 짜증이 울컥울컥 목구멍까지 치받고 있던 의령경찰서 궁류지서. 순경 우범곤(禹範坤)은 오전 11시 반쯤 지서를 나왔다. 야간근무 교대를 하려면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야 하겠기 때문이었다.
우라질.

우범곤은 지서 정문에 내 걸린 나무간판을 곁눈질로 흘겨보며 자갈길에다 가래침을 내뱉었다.

어쩌다 이런 촌구석까지 쫓겨왔담.

18년 간 경찰관으로 재직하다 병사한 아버지의 유훈에 따라 전문대학을 다니다 경찰관이 되었고 다부진 몸통에 173cm의 키, 태권도와 합기도 유단자에다 해병대 출신의 민첩한 동작 등, 육체적으로 우수했던 그의 첫 발령지 부산 남부서 관할의 감만 파출소에서 일거에 서울시경의 특별경비단에 차출되었다. 이때만 해도 그는 탄탄대로를 달린다는 뿌듯한 자부심도 있었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은 끝내 화근이 되고 말았다. 조그만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경비단의 임무와 역할 때문인지 우범곤의 이런 성격은 가는 곳마다 조직의 단합을 해치는 부적격자로 분류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지방으로 좌천이 되었고 이렇게 궁벽한 곳까지 밀려왔다는 생각을 하면 늘 울화가 치밀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시골에서 근무를 시작했더라면 이런 열패감은 덜했을 것이다. 자연 그는 술을 가까이 하게 되었고 취하면 모든 것이 불만스러워 주위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곤 했다. 그런데 이런 우범곤의 주벽을 업무처리 능력으로 연결시켜 매사에 못마땅해 하던 지서장이나 차석이 꽤나 떠들고 다닌 모양이었다. 면내에서 행세께나 한다는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는 눈빛은 묘했다. 경멸스러움 같기도 했고 비웃음 같기도 했던 것이다.

이 때문인지 벌써 전입한지 5개월이 됐음에도 이곳은 도저히 정이 붙지 않았다. 게다가 이곳 지방유지들은 지서 순경쯤은 아예 무시하고 있었다. 면장이나 간부들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마을 이장이나 안면 있는 촌노들까지 지서에 들어오면 지서장이나 차석만 찾아 일을 보았고 말단 순경은 본 체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심호흡을 해봤지만 후텁지근한 공기는 좀체 답답함을 해소해주지 못했다.

우범곤은 매곡부락으로 이어지는 개울을 건너면서 아직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있는 아내 전말순(田末順)을 생각했다. 그래도 혼인신고는 했으니 마누라는 분명했지만 이 또한 아픈 생채기였다. 8년 간 대구 제일모직 여공으로 일하다가 돌아와 고향에 눌러앉아 있던 26살짜리 처녀를 꿰찬 것까지는 좋았는데 아들 전문대 등록금 대느라고 그나마 가지고 있던 집도 처분하여 셋방으로 나앉아 고생하고 있는 어머니와 동생을 생각하면 결혼하겠다는 말이 쉽게 나오질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우범곤에게 그런 속도 모르고 그녀는 기회 날 때마다 결혼식을 올리자고 졸라댔다.

집에 도착하여 아내가 차려주는 점심을 먹고 우범곤은 잠을 청했다. 해만 지면 적막강산이 되는 동네지만 가끔 술 취한 청년들이 벌려놓는 싸움판도 말려야 하고 상급관서의 상황점검 전화도 지체없이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몇 구획으로 나눠져 있는 관할구역 순찰도 돌아야 하므로 근무 중에는 잠을 잘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늘 수면부족으로 시달리게 마련이었다. 그렇다고 자리에 누우면 바로 잠이 드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주위가 환한 낮에 청하는 잠은 그저 정신을 안정시키고 눈 주위의 피로를 쫓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우범곤은 온 몸의 긴장을 풀면서 무의식의 세계로 몰입하였고 오래잖아 비몽사몽간에 깜박 잠이 들었다. 그런데 뭔가 가슴 께에 갑작스런 충격이 있어 그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운동으로 단련된 방어감각이 극도로 예민해 있었던 것이다. 곁에서 아내가 멋쩍게 웃고 있었다. 정신이 멍했다.

“뭐꼬?”

우범곤은 사납게 아내를 노려보았다. 가까스로 잠이 들었는데 이게 무슨 심술인가? 선잠에서 깨어나 순간적으로 일기 시작한 짜증은 걷잡을 수 없이 끓어올랐다. 그는 백치처럼 웃고 있는 아내를 힘껏 걷어차 버렸다.

잠든 남편의 가슴 께에 앉은 파리를 잡으려고 자신도 모르게 손이 갔다는 설명을 할 겨를도 없이 아내 전말순은 방 한 구석에 처박혔다가 부스스 일어났다. 그녀 역시 악에 북받쳤나보다.

“그 깐 일로 사람을 때리고 지랄이가.”

“뭐라꼬?”

그러잖아도 길다란 우범곤의 눈이 더욱 매섭게 찢어졌다.

“동네사람들 쑤군대는 소리도 안 들리나? 공무원이 결혼식도 안올리고 동거생활을 하니까 손가락질을 하는 거 아이가. 참말로 창피해서 못 살겠다.”

한 방 얻어맞은 전말순의 입에서 또 다시 예의 신세한탄이 쏟아져 나왔다.

“결혼비용도 마련하지 못하는 주제에 툭하면 사람을 때리고….”

그러다가 전말순은 아차 싶었다. 식도 올리지 않은 처가에 얹혀 살면서 열등감에 젖어 있는 남편이 딱해 보여 되도록 이 말은 삼갔던 터였다. 우범곤은 발작적으로 일어나 그녀의 전신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코피가 터지고 이리 나 뒹굴고, 저리 처박히며 전말순은 악을 바락바락 쓰며 울었다. 며칠 전에 부산에서 올라와 건넌방에 있던 우범곤의 동생 범호가 밖으로 나와 두 사람을 뜯어 말렸다. 그래 니가 와 있었지. 우범곤은 동생을 보면 늘 미안했다. 자신이 어머니의 가녀린 허리에 지탱하여 전문대학에 다니다 군에 입대했을 때 네 살 아래인 동생은 고등학교를 고학으로 겨우 마쳤다. 그러나 그런 동생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일단 열 받아 치솟고 있는 화를 삭이지는 못했다. 우범곤은 동생을 피해가며 또 아내를 차고 밟았다. 고함과 울음소리에 놀라 건넌 채에 사는 전경자 여인이 달려와 전말순을 부축하려한다.

“니는 뭐꼬.”

우범곤은 전경자씨의 뺨을 세차게 올려붙였다. 그녀의 남동생이 누나를 도우려고 달려나왔으나 우범곤의 무차별 폭행은 계속됐다.

“동네사람들아. 여기 큰 싸움 났다. 빨리 나와서 쌈 말리래이.”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들렸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려 나왔다.

“뭐 그 깐 일 갖고 그라노?”

“저런 사람하고 우찌 살끼고.”

마당에 들어선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한 마디씩 내뱉었다.

씨발.

그는 욕설을 중얼거리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울긋불긋 지천으로 깔린 들판과 산자락의 철쭉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아기자기하게 펼쳐진 봄의 정경에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아직 교대를 하려면 몇 시간이 남았으므로 딱히 갈 만한 곳도 없었던 우범곤은 지서 앞 가게에 가서 술판을 벌였다. 혼자서 술을 시작하기 멋쩍어 근무 중인 안승섭(安承燮) 순경에게 합석을 권해봤지만 거절했다. 그러고 보니 술만 한 잔 들어가면 주사를 부리는 우범곤의 술상대가 되어줄 만한 사람이 이 마을에는 한 명도 없는 것 같았다. 이래저래 속이 상한 그는 소주 한 병을 금방 비워버렸다.

그래 꼭두리 말 마따나 난 여자를 거느릴 자격도 없는 놈이야.

조금씩 가라앉고 있던 울화가 울컥하고 다시 치밀어 올랐다. 사람들은 아내인 전말순을 꼭두리라고 불렀다. 우범곤은 비틀거리며 근무 중인 방위병 박상찬(朴相贊)을 데려와서 또 한 병의 소주를 비웠다.

“결혼식 올릴 주제도 못 되는 놈이 동거생활부터 한다고 동네 사람들이 나한테 손가락질을 한 대. 지서 순경이란 작자한테 말이다.”

좌천에 좌천을 거듭하여 이 궁벽한 산골동네로 흘러온 말단 순경이 결혼할 비용도 마련하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처지가 새삼 서럽고 억울했다. 그러고 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정말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았다.

이 지지리도 못난 인간. 쯧쯧쯧.

사람들의 혀 차는 소리가 귓가에 점점 크게 맴돌고 있었다. 그는 더욱 감정이 격해지고 있었다.

죽여 버릴끼다. 죄다.

그는 대상이 특정되지 않은 분노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쩌면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이 궁류면 사람들 모두에 대한 분노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우범곤은 정신을 곧추 세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까짓 술쯤은…. 주위에는 어느새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지서에는 여전히 이승섭 혼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이 순경. 들어가라.”

우범곤은 자신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괜찮겠나?”

이승섭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우범곤을 쳐다보며 물었다. 함께 있자니 주사를 견디기가 성가실 것이고, 그렇다고 이렇게 술 취한 사람에게 지서를 맡기기도 성큼 내키지 않는 일일 터였다.

“내 반상회 참석하고 금방 올끼다. 우 순경. 거기서 한 숨 자래이.”

이승섭은 못내 불안한 표정으로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지서를 나갔다.

“휴우.”

우범곤은 소파로 가서 벌렁 드러누우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갑자기 찾아온 정적은 숨이 막힐 듯 그의 전신을 눌렀고 가슴은 더욱 답답했다. 홧김에 먹은 술 때문인지 좀체 감정을 걷잡기가 어려웠다. 그때였다. 문이 왈칵 열리며 사내 하나가 뛰어 들었다.

“씨발. 경찰이면 다가. 와 사람을 때리노. 또 때리봐라.”

가만히 보니 아까 싸움 말리던 전경자씨의 동생이었다. 그는 머리를 우범곤의 가슴에다 디밀며 대들었다. 그 역시 주기가 있었다. 그러잖아도 울컥거리던 울화통이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것 같았다.

“그래. 아예 죽여줄게.”

우범곤은 그를 확 떼밀어놓고 지서 안 무기함으로 가서 칼빈소총 두 자루를 집어 들고 탄창을 꽂았다. 그리고 집히는 대로 실탄박스를 호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이 기세에 놀라 청년은 혼비백산하며 달아나 버렸다. 우범곤은 비틀거리며 예비군 무기고로 다가갔다. 방위병 김해군(金海群)과 성석현(成石鉉)이 앞을 가로막았다.

“와그랍니꺼. 우 순경님예. 참으이소.”

“너거들은 직이고 싶지 않대이. 존 말할 때 비키라. 오늘 내한테 욕한 년 놈들 모조리 직이뿔끼다.”

그러면서 우범곤은 방위병들을 향해 실탄 2발을 발사했다. 그들은 깜짝 놀라 몸을 움츠리고 밖으로 몸을 피했다. 그는 가지고 있던 열쇠로 무기고를 열어 수류탄 8발을 꺼내 호주머니에 넣었다. 지서로 돌아온 우범곤은 천장을 향해 공포 2발을 쏜 뒤 경비전화와 일반전화의 선을 모두 끊어 버렸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자신을 비웃는 마을사람들의 조소가 가득했으므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지서 밖으로 나오면서 우범곤은 사무실을 향해 수류탄 한발을 내던졌다. 지난 5개월 여, 수모와 한숨 속에서 보낸 직장을 향한 분풀이였다. 그러나 불발이었다. 다시 수류탄 한발을 더 꺼내 안전핀을 뽑은 뒤 저녁 내도록 술을 마시던 건너편 임정수씨 가게를 향해 내던졌다. 수류탄은 그 집 지붕에 맞고 때그르르 굴러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역시 불발이었다. 그때 마침 마을회관에서 반상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손진태(孫鎭泰 26세)씨가 지서 앞을 지나갔다. 우범곤은 아무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 칼빈의 방아쇠를 당겼다. 첫 번째 희생자인 그는 대구에서 표구사를 경영하는 사람으로 그 날 예비군 훈련 때문에 고향에 들렸다가 변을 당했다.

해병대에 근무할 때 우범곤은 특등사수였다. 현실이 아무리 불공평하고 불만스러워도 그는 사격할 때만은 정신을 집중할 수 있었고 과녁의 한 복판을 뚫은 탄착점을 보며 희열을 느꼈다. 이곳에 와서도 그는 매일 공기총으로 사격연습을 하고 있었다. 무슨 총이든 손에 쥐면 세상을 다 손에 넣은 듯 기분이 고조되곤 하던 그는 몇 십 미터 떨어진 나무 위 참새도 쉽게 맞춰 떨어뜨렸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주사에도 불구하고 동료들은 그에게 「사격 하나는 끝내주는 경찰관」이란 별칭을 붙여주었다.

명중.

첫 번째 희생자가 쓰러지자 그는 대장정의 초입에서, 사선에서와 꼭 같은 희열을 맛보았다. 그래 총이나 실컷 쏴보자. 그렇게 작정한 우범곤은 지서에서 20여 미터 떨어진 궁류우체국으로 걸음을 옮겼다.

우체국 본관은 이미 문이 닫혔지만 별채로 된 교환실에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거칠게 유리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교환양인 전은숙(田銀淑 23세)양과 박경숙(朴璟淑 19세)양이 야간근무를 하고 있었다. 경비전화나 행정전화를 제외한 일반전화의 모든 선은 이 교환기에 연결되어 24시간 가동되고 있었던 것이다. 우범곤은 반자동으로 놓고 그녀들에게 드르륵 드르륵 총을 갈겼다. 전은숙양은 출입구 쪽 바닥에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박경숙양은 교환대 의자에 앉은 채 벽에다 상체를 기대며 숨을 거뒀다. 우범곤은 교환대를 향해 실탄 여남은 발을 또 퍼부었다. 이때 본관 숙직실에 있던 집배원 전진석(田鎭碩 36세)씨가 총소리에 놀라 달려오다가 역시 명치에 총을 맞고 우체국 바닥에 쓰러졌다.

하루종일 후텁지근하더니 하늘은 마침내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우범곤은 칠흑같은 어둠에 몸을 내맡기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 후련하다. 아직도 귓속을 간질이며 사람들의 쑤군댐은 계속됐지만 네 사람을 향해 총질을 해댄 뒷맛은 개운함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불꺼진 면사무소 앞을 지나 처가가 있는 매곡부락을 향해 걸었다. 그 부락은 한 가구를 빼면 모두 처가의 일가붙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곳이었다. 그 때문에 그에 대한 비아냥과 질책이 제일 심한 곳이었다. 그래서 처가와 뒷간은 멀수록 좋다고 하던가?

그는 처가로 들어가서 우선 아내를 찾아보려고 했다. 그런데 집 입구에서 어떤 여자가 살금살금 도둑고양이 형상을 하고 다가왔다. 아마 개울건너에서 났던 총소리 때문에 무슨 일이 났는가 확인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우범곤은 물체를 향해 총구를 들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여자가 쓰러졌다. 처가 입구의 전인배(田仁培)씨 부인인 강판임(姜判任 51세)씨였다. 총소리가 나도 전인배씨의 집에는 불이 켜지지 않았고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아내는 집에 없었다. 아내뿐만 아니라 집에는 입구에 매어놓은 누렁이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집을 나와 이장댁인 전용덕(田溶德)씨 집으로 갔다. 방안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지만 그 집에는 그 집 막내딸인 미숙(美淑 8세)양만 자고 있었다. 그는 그 아이에게도 총격을 가했다. 그러나 미숙인 다리에 총상을 입었을 뿐 목숨을 잃지 않았다. 이장댁을 나온 우범곤은 마을을 가로지르고 있는 한길을 따라 걷다보니 전용줄(田溶茁)씨 집이 보였다. 그곳에는 막 반상회를 끝낸 10여명의 부인들이 낮에 파리 한 마리 때문에 일어났던 그 사건을 화제로 하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우범곤은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느린 동작으로 전용줄씨 집으로 들어갔다.

“전양! 여기 전양있나?”

그는 마루로 올라서며 자신의 아내를 그렇게 불렀다. 문이 열리고 전용줄의 모친 최분이(崔粉伊 71세)씨 얼굴이 나타났다.

“씨발년들 모두 죽어봐라.”

자신에 대한 모든 소문은 이곳에서 만들어져 온 동네로 퍼진다고 생각하니 저녁 내내 끓어오르던 적개심이 뭉클뭉클 피어올랐다. 그는 총부리를 방안으로 향해놓고 무차별 난사를 했다. 비명소리, 고함소리, 총소리에 뒤엉켜 방안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그곳에서 전용줄씨의 모친 최분이씨, 사촌형수인 유순례(柳順禮 55세)씨, 우체국에서 사살 당한 집배원 전진석씨의 부인 백점악(白點岳 36세)씨, 이웃집 친척인 손정희(孫貞姬 50세)씨, 유백암(劉白岩 59세)씨가 숨졌다. 이때 함께 방안에 있었던 우범곤의 아내 전말순은 동맥이 끊어지는 중상을 입었으나 목숨을 건졌다. 우범곤은 이 집 마당에 또 한발의 수류탄을 까서 던졌지만 역시 불발이었다.

다시 한길로 나온 우범곤의 눈에 왼쪽 편으로 불빛이 들어왔다. 이 마을의 유일한 타성받이 이춘수(李春洙 50세)씨 집이었다. 마당으로 들어서니 TV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려왔다. 우범곤은 목청을 돋우며 소리쳤다.

“아무도 없소?”

문이 열리고 중늙은이 한 명이 목을 빼며 밖을 내다봤다. 우범곤은 방안을 향해 실탄 4발을 쏟아 부었다. 중늙은이 이춘수씨가 쓰러지고 부인과 딸 상남(相南)양도 맞았으나 이 집은 가장만 목숨을 잃었다. 열대섯 쯤 됐나. 우범곤은 자신의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의 숫자를 대충 세어보면서 그 집을 나왔다.

“나를 욕한 년 놈들. 날 똑 바로 쳐다보지 않던 것들은 하나도 남기지 않겠다. 모조리 죽여버리겠어.”

우범곤은 새삼 전의를 불태웠다. 아직 멀었어. 그는 이번에는 동네유지들을 향해 적개심을 불태웠다. 오늘 낮에 지서장 허창순(許唱淳)과 차석 김진우(金鎭宇)을 부곡온천에 데리고 간 미성건설 현장감독인 김성남이나 장한수, 신태현 같은 마을 유지들도 모두 그랬다. 엄연히 담당 직원이 있음에도 동네유지라는 인간들은 지서에 들어와서도 눈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모조리 거드름을 피우며 지서장과 차석의 자리로 몰려가 일을 해결하려고 했다. 법적으로나 행정절차상 허용해서는 안될 일도 지서장은 쉽게 일을 풀어주었다. 그들의 눈에 순사는 개똥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우범곤은 가래침을 캭하고 내뱉은 뒤 담배를 뽑아 물었다. 빗줄기가 제법 굵어졌지만 손아귀 속의 담배는 구수한 연기를 흩날리며 조금씩 타들어 가고 있었다.

시계는 10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매곡리를 싹쓸이한 우범곤은 어깨에 맨 칼빈총의 멜빵을 고쳐 매고 운계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곳은 면사무소와 지서가 있는 토곡리보다 상가(商街)가 많고 장도 크게 서기 때문에 인가도 많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가장 번화가인 삼거리 동네는 적막강산처럼 조용했다. 불과 몇 분전에 지서의 방위병들이 달려 뛰며 불을 끄도록 독려한 사실을 우범곤은 알 턱이 없었다. 시장통의 시멘트 길을 따라가면서 불빛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운계리의 첫 타깃은 시장통 입구에서 살고 있는 택시운전사 전용길(田溶吉 37세)씨였다. 그는 매곡리 전용줄씨의 친동생이었는데 우범곤이 나타나기 조금 전에 전용줄씨가 달려와 다짜고짜 아이 둘과 잠을 자고 있던 동생의 손목을 잡고 밖으로 끌어냈다. 잠결에 형의 손에 끌려 도망가면서 비로소 매곡리의 사고소식을 전해들은 전용길씨는 집안에 남아있는 아이들 생각 때문에 더 이상 달아나지 못하고 돌아오던 중에 바로 자신의 가게 앞에서 우범곤과 맞닥뜨린 것이다. 우범곤은 이 사람에게 실탄 세 발을 퍼부어 쓰러뜨렸다. 한 발은 허리를, 두 발은 가슴을 관통하여 그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전용길씨가 쓰러진 뒤 가게 안을 기웃거리다가 우범곤은 불이 환하게 켜진 건너편 미장원으로 몸을 돌렸다. 그때 미장원의 문을 드르륵 열면서 청년 한 명이 나왔다. 사람만 보면 즉각 발사하던 우범곤은 잠시 뜸을 들이며 그 청년이 가까이 오도록 지켜보고 있었다.

“우 순경님 아입니꺼?”

청년은 운계리에 사는 21살짜리 허해도 군이었다. 우범곤은 그의 정강이를 구둣발로 걷어찼다. 그런 뒤 쓰러지는 그에게 두 발을 쐈다. 그런데 실탄은 모두 그의 엉덩이에 맞아 즉사를 면했다. 허해도 군은 마을 이장 장장수(張長壽)씨와 함께 한달 반전에 백혈병으로 죽어 상심해 있는 이 미장원집 주인인 박명연(朴命蓮 32세)씨를 위로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앞집에서 유리창 깨어지는 소리가 나서 나왔다가 우범곤을 만난 것이었다.

총소리가 나자 방안에 있던 10여명의 위문객들은 깜짝 놀라 모두 창이나 현관을 통해 도망을 쳤는데 자리에 누워있던 박명연씨는 우범곤을 피하지 못하고 발과 복부, 팔 등 세 군데에 총상을 입고 죽었다. 그녀의 딸 넷 중 첫째인 영희는 정강이에, 둘째 현정인 엉덩이에 총을 맞았다. 셋째 정아와 막내 미아는 다행히 다치지 않았다.

미장원을 나온 우범곤은 역시 불이 켜져 있는 철물점으로 다가갔다. 그는 그곳에서 철물점 안주인 박갑조(朴甲祚 43세)씨에게 총질을 해서 그의 14번째 희생자로 만들었다. 우범곤은 계속 불켜진 집만 찾아들었다. 바로 윗집은 철물점 주인 유동순씨의 동생인 유동근씨 집이었는데 문이 잠겨져 있었다.

“문열어. 경찰이다.”

우범곤은 대문을 흔들며 소리쳤다. TV를 보고 있었던 듯 이 집의 딸 유점순(柳點順 19세)양이 경찰이라는 말에 반가워하며 대문을 열었다. 그는 유 양의 가슴에다 총 한 방을 쏘았다. 유 양은 「아이구 엄마야」하며 쓰러져 버렸다. 역시 처녀는 죽는 모습도 예쁘다고 생각하며 우범곤은 안쪽을 살폈다. 그때 유 양 곁에서 잠을 자고 있던 어머니 이경연(李慶連 42세)씨가 딸의 비명소리에 놀라 잠이 깨어 밖으로 나왔다. 우범곤은 아직 잠에 취한 채 딸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그녀에게도 총알세례를 주었다. 자식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것도 지나치면 죄인 기라. 그냥 잠이나 자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우범곤의 귀에 어디선가 불을 끄라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불을 꺼? 그래 불을 꺼라. 영원히 잠을 자게 해주겠다. 그는 싸늘하게 웃으며 탄창에 다시 실탄을 채워 넣었다.

몇 걸음 걷지 않아서 창을 통해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집을 발견한 우범곤은 합판으로 만들어 단 부엌문을 두드리며 다시 소리쳤다.

“문열어. 경찰이다.”

집주인 진필리(陳畢利 58세)씨가 문을 열었다. 어리석은 중생들. 경찰이라면 껌뻑 죽어. 우범곤은 그녀의 왼쪽 배에다 총을 쏘았다. 그녀는 총을 맞은 부위를 손으로 틀어막았다. 그는 그 틀어막은 손위에다 또 한 발의 실탄을 쏘았다. 이때 방안에 있던 진씨의 딸이 뛰어 나와 어머니를 부축하려고 했다. 요것 봐라. 아까는 엄마가 딸을 거들더니 이젠 정 반대로네. 우범곤은 딸의 배와 손에 두 발을 쏘았다. 딸은 요행히 살았지만 진씨는 오래잖아 숨을 거두었다.

우범곤은 다시 불이 켜져있는 옆집, 궁류약방을 향해 걸어가서 약방 안에 있던 전달배(田達培 18세)군을 쏴 죽인 뒤 바깥의 소란을 확인하러 나온 그 건너편집 진일임(陳日任 48세)씨에게도 총알을 날렸다. 배에 두 발의 총을 맞은 진일임씨는 숨이 붙어있을 때까지 「사람 살려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그러나 아무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우범곤은 잠시 진저리를 치고 있는 진씨의 마지막 안간힘을 지켜보다가 몸을 돌려 막 걸음을 옮기려하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누군가를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그 방향을 향해 두 발을 발사했다. 면사무소에서 숙직을 하고 있는 손태열(孫泰烈)씨의 부인인 김월순(金月順 28세)씨였다. 그녀는 귀에 익은 진씨의 신음소리를 들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문을 열었다가 머리와 가슴에 실탄을 맞고 죽임을 당했다.

“아 참, 이 부근에 경숙의 집이 있었지.”

우범곤은 자신의 총에 세 번째 제물이 된 우체국 교환양 박경숙을 생각해냈다. 그가 전말순의 결혼독촉에 전전긍긍하고 있을 무렵인 지난 식목일 연휴 때 벚꽃이 만발한 콧대더미라는 바위 부근에서 비로소 그녀의 존재를 발견하곤 아쉬움 속에서 새삼 욕심을 냈던 처녀였었다. 아직 19살 어린 나이이긴 했지만 이 동네에서 6대째 살고 있다는 그녀의 집안은 궁류면 전체에서도 가장 안정된 듯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범곤은 애증어린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왕 그녀가 가버린 마당에 이 기회에 그 집도 박살을 내어버리고 싶었다. 그녀의 집은 시장통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었다. 우범곤은 그 집 대문을 탕탕탕 두들겼다.

외진 곳에 위치하여 시장통의 광란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던 듯 그녀의 어머니 최정녀(崔貞女 40세)씨가 문을 열었다. 기다리고 있던 우범곤은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최씨가 쓰러지자 안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의 남편 박인길(朴仁吉 42세)씨가 곡괭이를 집어들고 달려나왔다. 우범곤은 침착하게 그의 동작을 지켜보고 있다가 총을 발사했다. 실탄은 겨냥한대로 정확히 그의 손에 가서 맞았다. 박씨는 쥐고 있던 곡괭이를 떨어뜨리고 멈칫했다. 그는 천천히 총을 들고 다시 그의 머리를 향해 두 발 째 실탄을 날렸다. 박씨는 머리에 정통으로 맞고 맥없이 쓰러져 버렸다. 그러자 공부를 하고 있다가 총소리에 놀란 이 집의 막내인 박현숙(朴鉉淑 8세)양이 사랑채 방문을 열었다. 우범곤은 싱긋 웃으며 현숙양을 향해 또 한 발을, 놀라서 바깥쪽 문을 열고 달아나는 그의 언니 미해(美海 14세)양에게도 한 발을 날렸다. 자매는 맥없이 푹 꼬꾸라졌다. 우범곤은 신을 신은 채 방안을 뒤져 잠을 자고 있던 재철(在喆 12세)군 마저 목숨을 끊어 일가족을 몰살시킨 후 유유히 그 집을 빠져나왔다.

-건방지게 너희들만 좋은 집에서 오순도순 잘먹고 잘살모 돼나? 나같이 돈이 없어 결혼식도 몬 올리고 있는 불행한 청년도 있는데 말이다.

그는 실성한 듯 히죽히죽 웃으며 다시 삼거리로 돌아 나왔다. 목이 말랐다. 술이 깨고 있었다. 시계는 어느덧 11시가 지나고 있었다. 평촌으로 가려던 우범곤은 발길을 돌려 이리저리 상가를 기웃거리다가 불이 꺼진 신외도(申外道)씨 가게의 옆 창문을 두들겼다. 순찰 돌면서 가끔 술 한 잔씩 하며 제법 친하게 얼굴을 익혀놓은 집이었다. 조금 있으니 방안에서 신씨 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밖에 누고?”

“궁류지서 우 순경임니더.”

“이 야밤에 우 순경이 우짠 일이고?”

“간첩이 나타났다고 해서 나왔는데 예. 목이 말라서 그랍니더. 사이다 한 병만 주이소.”

신씨 부인 손원점(孫元點 51세)씨는 경찰관이라는 말에 밀려오는 잠을 쫓으며 문을 열었다. 손씨는 사이다를 찾다가 없어서 냉장고에서 콜라를 한 병 꺼내 뚜껑을 따 가지고 컵에다 가득 따라 우범곤에게 내밀었다. 목이 갈라질 것 같았던 그는 숨도 쉬지 않고 반잔을 마셨다. 그때 가게의 이웃집에 사는 김주동(金柱東 18세)군이 우범곤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가게로 왔다.

“참말로 우 순경 아저씨네.”

김 군은 의령종고 2학년 학생으로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한데도 공부를 잘했다. 1학년을 마치면서 학교장상과 함께 장학금 95,340원을 타서 난생 처음으로 새 교련복을 구입했다. 김 군은 어쩌면 열심히 공부해서 우 순경과 같은 멋진 경찰관이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랬기에 그 늦은 밤에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달려나온 것이리라. 그러나 우범곤은 그 아이에게도 예외 없이 총질을 했다. 목을 관통 당한 김 군은 총을 맞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달아나다가 시멘트길에 쓰러져 숨을 거뒀다. 난생 처음 입어보는 새 교련복이 그의 수의가 된 셈이었다.

“이기 무슨 짓꼬?”

김 군이 총을 맞고 쓰러지는 광경을 목격한 손원점씨는 격렬하게 우범곤을 나무랐다.

“무슨 짓 좋아하네.”

우범곤은 손원점씨의 가슴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손씨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문을 열어놓고 방안에 앉아 가게에서 일어난 일을 세세히 지켜보고 있던 손씨의 남편 신외도씨는 재빨리 전깃불을 껐지만 우범곤은 동작 빠르게 그를 향해 총을 쏘았다. 그는 세 발을 맞았지만 죽지 않았다. 그러나 총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난 그의 두 딸 창순(昌順 13세)양과 수정(守貞 10세)양은 겨드랑이를 관통 당해 목숨을 잃었다.

몇 명이나 죽였나?

세기를 단념하고 뭐라고 중얼중얼 거리기도 하고 낄낄낄 음산하게 웃기도 하며 우범곤은 봉황교를 건넜다. 다리 아래에는 평촌리에서 흘러온 유곡천이 흐르면서 제법 쏴아쏴아 소리를 내고 있었다. 11시 30분. 평촌리 쪽으로 막 방향을 틀었는데 그는 왼편에서 불빛 하나를 발견했다. 유동숙(柳東淑)씨 집이었다. 불빛은 건너 채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주인 있소?”

우범곤은 건너 채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역시 방에서 TV를 보고 있던 안주인 설순점(薛淳點 49세)씨가 바깥의 기척에 놀라 문을 열고 나왔다. 그는 습관처럼 방아쇠를 당겼다. 설씨는 맥없이 마당에 쓰러져 버렸다. 이어서 이 집의 딸 유순자(柳順子 20세)양도 총을 맞고 마루 쪽으로 처박혔다. 그는 막내딸 성희 양에게도 한방을 날렸지만 성희 양은 이웃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술기운이 거의 빠져나갔음인지 우범곤은 자신이 점차 지쳐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래서 더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광란이 어디까지 가서 멎을 것인지 자신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조금씩 일렁이기 시작한 불안감을 짓누르기 위해서라도 빨리 다른 목표물을 찾아내야 했다. 어둠 속에서 두리번거리던 우범곤은 외딴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찾아내면서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었다. 그는 거침없이 마루로 올라서서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이곳은 평촌 이발소 주인인 곽기달(郭基達 43세)씨의 집이었다. 방안에는 모두 5명의 식구가 있었는데 곽씨와 아들 주일(周一 14세)군이 머리를 맞대고 뭔가를 하고 있었고 부인과 다른 자녀 둘은 이미 잠에 취해 있었다. 우범곤은 그들을 향해 칼빈총을 난사했다. 곽씨는 아들 주일 군을 끌어안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지만 부인 박순득씨는 오른쪽 귀밑과 턱밑에 중상을, 딸 도희 양은 오른쪽 어깨에, 막내아들 정일 군은 오른쪽 턱에 총상을 입었다.

일가족을 향해 총을 난사하면서 다시 힘을 얻은 우범곤은 비가 쏟아져 점점 거세게 흐르고 있는 유곡천의 물소리를 벗삼아 저벅저벅 자갈길을 힘차게 걸었다. 그러나 그는 금방 자신의 신체에서 뭔가가 쉴새없이 빠져나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그것은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알코올 부족.

소심한 그는 술의 힘을 빌어 평소 주저하던 일을 많이 해결하는 편이었다. 아직은 할 일이 많이 남았으나 우선 이 알코올부터 채우는 게 시급한 일이었다. 아까 신외도씨 가게에서 술이나 몇 병 가지고 오는 건데 참 잘못한 것 같았다. 그러다가 그는 평촌리에 상가(喪家)가 있음을 퍼뜩 깨달았다. 어제 교대 무렵 평촌리 이장이 허 지서장에게 부고장을 갖다주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문두출씨가 결국 죽었구만.”

부고장을 펼치며 담담하게 말하던 지서장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래 문씨 상가야. 어쨌든 그 동네에 가면 상가는 먼저 눈에 띄겠지. 마음이 조급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중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예동부락을 지나쳐 버렸다.

11시 50분. 우범곤은 마침내 평촌리로 들어섰다. 그는 오른손에 움켜쥐고 있던 칼빈총을 어깨에 걸어 매고 상가로 들어섰다. 그곳은 늦은 시간임에도 내일 발인준비에 상주들의 움직임이 바빴다.

“우 순경이 우짠 일이고?”

어디선가 굵직한 목소리가 그를 반겼다.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니 평소 동네유지라고 행세깨나 하던 한명규(韓明圭 53세)씨였다.

“비상이 걸려서예.”

우범곤은 무뚝뚝하게 대꾸를 한 뒤 안채로 갔다. 마루 끝에 소총을 세워놓고 상주를 찾았다. 날 때부터 벙어리인 상주 문천웅(文天雄)씨 대신에 큰사위인 이정오(李正五)씨가 그를 맞았다. 우범곤은 호주머니에서 돈 2천 원을 꺼내 조위금으로 내밀었다.

“빗 길에 멀리 걸어서 왔더니 발이 말이 아입니더. 이래 갖고 절은 우째 하겠심니꺼. 술이나 한 잔 얻어 묵고 갈랍니더.”

그러면서 그는 안채에서 물러나와 사랑채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박종덕(朴鍾德 34세)씨와 한명규씨가 그에게 술을 권했다. 우범곤은 단숨에 두 사람이 권한 술잔을 들이켠 뒤 <좀 있으면 다 죽을 낀데 이 세상 마지막 고별주나 한 잔씩 하고 가거라.>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주위의 사람에게 일일이 잔을 권했다.

“그라고 본께네 총이 두 자루네.”

별채와 안채로 바쁘게 들락거리던 서진규(徐鎭圭)씨가 어느 틈에 사랑채를 기웃거리며 말을 붙였다.

“한 자루는 안 순경 낀데 어디 좀 둘렀다 온다 캐서 내가 가지고 왔심니더.”

우범곤은 별것을 다 간섭한다싶어 서진규씨를 흘낏 쳐다보며 대답했다.

“치아라. 야. 한 자루모 어떻고 두 자루모 어떤노. 실탄도 없는 총 어디다 써먹을라꼬 가지고 댕기나.”

한명규씨가 끼어 들며 핀잔을 줬다. 우범곤은 피씩 웃었다. 이 치가 정말 경찰을 우습게 보네. 그는 연거푸 몇 잔을 들이켠 뒤 슬며시 일어서서 총을 잡고 자물쇠를 풀어 합석을 했던 한명규씨와 박종덕씨에게 한 발씩 쏘았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우범곤은 신속한 몸짓으로 안채와 바깥채를 오가며 상주와 문상객을 향해 난사를 시작했다. 부엌 앞에서 고인의 부인인 조을순(趙乙順 56세)씨가, 안방과 윗방에서는 그녀의 언니인 조맹률(趙盟律 59세)씨와 조귀남(趙貴男)씨, 친척인 조용덕(趙容德 46세)씨, 큰 사위 이정오씨의 딸 유량(柳良 1세)양이, 마루에서는 사위 이판준(李判浚 50세)씨, 딸 문순이(文順伊 44세)씨가, 뜰에서는 서진규씨의 부인 박봉순(朴鳳順 41세), 그리고 허이중(許二仲 24세)씨가 각각 목숨을 잃었다. 고인의 손자나 문상객의 손녀인 아이들 4명도 이때 함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상가에서 모두 12명의 목숨을 빼앗은 우범곤은 재빨리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이때 상가에서 나는 총소리에 놀라 동네사람들이 달려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이 사람들을 향해서 다시 난사를 시작했다. 서형수(徐亨洙 28세), 성소남(成小南 51세), 최경조(崔敬祚 43세), 이타순(李他順 46세)씨가 영문도 모르고 총에 맞아 유명을 달리했다.

1시 30분.

다시 술로 의식을 다독거린 우범곤은 얼근한 기분이 되어 마을 안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희부염하게 누군가가 마주 걸어오고 있었다. 우범곤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그 사람이 다가올 때까지 노려보고 있었다.

“우 순경님.”

반갑게 소리치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방위병 서정수(徐正洙 23세)였다.

“혼자 오셨십니꺼? 어디서 무장공비가 나왔심니꺼? 몇 명이나 된답니꺼?”

그는 우범곤이 대답할 여유도 주지 않고 계속 물어댔다.

“이리로 오이소.”

그는 서정수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서정수의 큰댁이었다. 그 집에는 그의 큰아버지 서인수(徐仁洙)씨, 큰어머니 전복순(田福順 63세)씨, 서재갑(徐在甲)씨, 서점도(徐點道)씨, 서점도씨의 부인 이순두(李順斗 46세)씨, 박금수(朴金洙)씨, 서종수(徐鍾洙)씨 등 7명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무장공비가 출현했다는 말을 듣고 한결같이 불안한 표정들이었다.

“이렇게 무장을 하고 나왔응께네 인자 아무 걱정 하지 마이소.”

우범곤은 7명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좁은 방으로 들어가 그들을 안심시키며 한쪽 공간을 차지하고 앉았다. 후텁지근한 방안공기 때문인지 금방 졸음이 몰려왔다. 우범곤은 방안과 바깥을 드나들며 깜박깜박 졸기도 하고 담배를 피워 물고 잠을 쫓기도 하면서 버틸 수 있는 시간까지 버티고 있었다.



한편, 우범곤이 밤 9시 30분부터 새벽 1시 30분까지 장장 4시간 동안 마을 주민 52명을 차례로 살해하고 있을 때 우리의 <민중의 지팡이>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밤 10시. 우범곤이 우체국 교환양을 살해하고 매곡부락을 향해 가고 있을 그 시점에 토곡리 마을회관에서 군청 민방위과장이 주고간 5천 원으로 주민들과 술을 마시고 있던 이출수(李出洙)씨는 부인 김정화씨로부터 사고소식을 들었다. 그는 곧 토곡리 이장 신태영(申泰榮)씨 집으로 달려가 자석식 전화기를 돌렸다. 그런데 교환양들이 사망할 당시 통화를 위해 꽂아놓았던 잭을 통해 이 전화가 의령전화국 교환으로 연결이 되었다. 이씨는 곧 의령경찰서를 불러 상황실에 이 사건을 신고했다. 10시 34분이었다.

밤 10시 50분 경.

시장통에 사는 청년 한 명이 오토바이를 타고 이웃 면인 봉수(鳳樹)지서에 이 사실을 신고하기 위하여 봉수재 고개를 넘다가 온천장에서 목욕을 마친 뒤 쇼 관람을 하면서 얼근하게 한 잔씩 걸치고 돌아오는 지서장 허창순 경사 일행을 만났다. 장황하게 사건설명을 하는 청년에게 허 지서장은 전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청년은 하는 수없이 허 경사와 함께 궁류면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지서로 돌아온 허 경사는 이승섭 순경으로부터 상황설명을 들은 후 「내가 여기 있었으면 우 순경은 나를 제일 먼저 쐈을 것」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사태를 진압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으며 범행현장과는 전혀 엉뚱한 곳으로 피해 다니고 있었다.

밤 11시.

다음 날 오전 10시에 열릴 경상남도 경찰서장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으로 간 의령경찰서장 최재윤(崔在潤)은 자택에서 의령경찰서 상황실로부터 이 사건의 보고를 받았다. 그는 전화를 받는 즉시 택시를 대절하여 사건현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최 서장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인 12시경, 의령경찰서 경무과장 신현기(申鉉基)는 시내에서 근무하던 전경대원 9명을 거느리고 현장에 출동했다. 그리고 40분 뒤인 12시 40분에 보안과장 김영석(金永錫)은 21명의 대원을 이끌고 현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들은 사태를 진압할 생각은 하지 않고 대원들을 평촌으로 이어지는 운계리 신계부락 입구 다리 밑에 잠복을 시켜놓고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최재윤 서장이 현장에 도착한 1시 30분이 지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주민들이 빨리 병력을 평촌으로 투입시킬 것을 강권하다시피 했다. 새벽 2시쯤, 평촌리에서 우범곤이 닥치는 대로 주민들을 사살하는 장면을 목격했던 김진환, 오수환씨가 도로는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비가 내려 진창인 산을 넘어 지서로 달려와서 평촌리의 상황을 신고했다. 그리고 이 동네 기관의 간부들은 최 서장에게 현장으로 출동하자고 사정을 했지만 그는,

“밤이 어두워서 움직일 수도 없고 이런 상황에서 현장에 도착해봐야 모두 개죽음만 할 뿐이다.”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만일 상황이 그토록 불투명하고 위험부담이 있었다면 경찰로서는 따로 해야할 일이 있었다. 각 마을로 연결된 비상사이렌을 울리든지, 마을 단위 연락수단인 스피커를 작동시킬 수도 있었고, 끊어진 전화선을 복구하여 위험에 노출된 마을 주민들을 대피시킬 수도 있었다. 적어도 경무과장과 보안과장이 도착한 12시와 12시 40분 경에 그렇게만 했더라도 평촌리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절반쯤은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범곤이 평촌리 문 상가(文喪家)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무렵이었으므로 더욱 그랬다. 그런데 이들의 비상관리 능력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도대체 그들이 정말 국민생활의 안위와 평온을 위해서 존재하는 집단인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이 지형에 어두워서 작전을 펴기 어려웠다면 이 지역 지리에 밝은 예비군을 비상소집하여 신속한 진압작전을 펼 수도 있었다는 점과 함께 신속한 피해현황 파악이 늦어짐으로써 우범곤의 총에 맞아 사경을 헤매고 있었을 부상자 구난에 만전을 기하지 못한 결과는 피해확산을 수수방관한 것과 다름없었다는 아쉬움으로 남는 것이다.

아무튼 사태는 경남도경국장 유구환(柳九桓)이 새벽 2시 10분 현장에 도착하여 「투항하지 않으면 사살하라」는 지시가 있은 지 한 시간 후 마산경찰서 제1기동대, 진주경찰서 제2기동대가 도착하면서 비로소 피해현장에 경찰이 투입되기 시작했다. 우범곤이 코를 골며 자고 있을 무렵이었다.


새벽 3시 40분.

평촌리 문두출씨 상가 뒷 쪽인 서인수씨 집 안방에서 집단으로 엉켜 불안한 잠을 자고 있던 서점도씨와 서종수씨는 소변이 마려워서 엉금엉금 기어 화장실로 향하다가 자동차의 엔진소리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자동차다.”

하도 구석진 곳이어서 하루에 몇 차례 나다니는 버스 외에는 전혀 교통편이 없었던 평촌리 주민에게 자동차는 비행기만큼 귀하고 새로운 문명의 이기였다. 방안에서 이들의 외침을 들은 방위병 서정수는 마루에서 잠에 곯아떨어진 우범곤을 흔들어 깨웠다.

“우 순경님. 경찰이 왔십니더. 빨리 일어나이소.”

이 말에 벌떡 일어선 우범곤은 자지러지게 놀랐다. 서정수는 그가 심하게 떨고 있는 것을 알았다.

“와 그라십니꺼. 우 순경님.”

그러나 서정수의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우범곤은 잽싸게 방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어서 꽈광하고 천지가 진동하는 폭음소리를 들으며 서정수는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깊은 수면 에 빠져들었다. 계속 불발만 되던 우범곤의 수류탄이 마침내 그 위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이 마을의 마지막 사망자는 전복순씨, 이순두씨, 방위병 서정수씨, 그리고 우범곤이었다.


(註: 사건 당시 중상을 입고 치료를 받던 39명의 부상자 중에서 6명이 추가로 사망함으로써 이 사건으로 사망한 사람은 총 62명이 되었다.)





[출처: http://blog.naver.com/mj0426?Redirect=Log&logNo=12763490  ]



◎한적한 시골마을서 광란의 참극/한밤중 수류탄 던지며 미친듯이 총질/8시간동안 4개 마을 공포의 도가니/젖먹이­노인 등 56명 사망 34명 다쳐...

평화로운 농촌마을에서 광란의 참극을 빚은 禹範坤(우범곤) 순경의 총기난동사건은 허술한 무기관리와 진압체계의 취약 등 경찰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드러낸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1982년 4월 26일 오후 9시 30분쯤 경남 의령군 궁유면 지서에 근무하던 禹순경(당시 27세)이 술에 만취해 지서와 예비군무기고에서 수류탄 7발과 카빈소총 2정,실탄 1백80발을 들고 나와 주민들에게 무차별 난사했다.
禹순경은 우체국에서 일하던 전화교환원부터 살해해 외부와 통신을 두절시킨 뒤 미친듯이 전기불이 켜진 집을 찾아다니며 총을 쏘고 수류탄을 터뜨려 자그마치 56명이 숨졌고 3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성을 완전히 잃은 禹순경은 생후 1주일된 영아부터 70세가 넘은 할머니에게도 총질을 하며 무려 8시간 동안 토곡리 등 4개 마을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주민 신고로 1시간 20분 뒤 사건을 접수한 의령경찰서는 뒤늦게 사살명령을 내리고 기동대를 출동시켰지만 禹순경은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끔찍한 살상을 저지른 禹순경은 자정이 지나자 정신이 드는듯 총기난사를 멈추고 27일 오전5시 30분쯤 평촌리 서인수씨의 외딴 농가에 몰래 들어가 서씨 일가족 5명을 깨운 뒤 수류탄 2발를 터뜨려 자폭했다.
경찰은 평소 술버릇이 고약했던 禹순경이 내연의 처 전말순씨(당시 25세)와 말다툼을 벌인 뒤 술취한 흥분상태에서 좌천에 대한 인사불만과 애정문제가 폭발하면서 일어난 우발적인 사건으로 결론지었다.

경찰관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데 쓰라고 맡긴 총을 무고한 주민에게 마구 쐈다는 점에서 국민들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사태수습에 나선 정부는 비상출동태세와 치안체계의 허점을 무마하기 위해 사건 당일 온천에 놀러가 자리를 비운 궁유지서장 등 4명을 구속시켰고 내무부장관도 사임했지만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경찰은 경찰관 임용자격기준 강화와 무기관리 개선 등 각종 대책을 내놓으며 봉사하는 경찰이 될 것을 다짐했다.
이 사건은 경찰의 총기사고­늑장출동 등 당시 지적된 문제점이 16년이 지난 오늘 얼마나 달라졌는지 경찰의 거듭된 자기성찰을 일깨우는 사건이었다<尹翔煥 기자〉



◎현장 목격 金東基 궁유 면장/“눈앞에 총알 난무 죽기살기로 탈출”

『평화롭던 마을에 갑자기 총알과 수류탄이 난무하고 주민들이 비명 속에 죽어가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82년 4월26일 밤 발생한 경남 의령군 궁유면 禹範坤(우범곤) 순경의 총기난사 사건을 목격했던 金東基(김동기·60·5급) 궁유면장은 그때 일은 두번 다시 생각하기 싫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당시 궁유면 총무계장이던 金면장은 반상회를 마친 뒤 직원들과 궁유파출소 앞 구멍가게에서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느닷없이 禹순경이 총을 들고 다가와 「형님을 쏴죽이겠다」고 말해 장난으로 받아들였지요』
禹순경이 갑자기 수류탄을 가게지붕에 던지면서 행인에게 총을 난사하는 등 난동을 부리자 그제서야 장난이 아닌줄 알아채고 죽기살기로 탈출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禹순경은 면청사 주변 토곡­석정­매곡­당동부락을 돌며 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터뜨려 이들 마을은 일거에 온통 초상집으로 변해 매년 4월 26∼27일이면 집집마다 제사를 지내느라 향냄새가 진동한다는 게 金면장의 설명이다.
金면장은 『주민들이 말조차 꺼내기 싫어하지만 사건 이후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경찰관의 어깨를 감싸안고 제사 음식을 파출소에 나눠주는 순박한 농촌 인심은 여전하다』고 소개했다.〈昌原=安元俊 기자〉















네티즌 philoz님의 리뷰[펌]


우선 불행하게 자살한 황태자에게 애도를 표하면서

이 영화는 두연놈의 사랑놀음에 불쌍하게 살다간

제국의 황태자를 위한 트리뷰트 무비이다.

정말로 마법처럼 굉장한 기술을 보이나 결국엔 오렌지트리의

설계도를 보여주면서 끝내 밝혀지지 않은 영혼트리까지

싸잡아서 거짓으로 만들어 버리고 막이 내린다.

그리고 평원으로 화면은 옮겨지고 말털빗던 소피와

주인공과의 행복한 결말.

그러나... 너희 두연놈들의 사랑놀음에 희생당한 황태자의

목숨은 어떻게 보상할껀지....

이 ㅅㅂ연놈들아....

황당해서 말이안나온다~ 다른사람 죽여놓고

참 둘이 행복하겠다 퉷!

아쥬그냥

반란을 획책한 황태자가 그렇게 밉더냐?

갑자기 나타나서 연인까지 뺏어가고 그랬음 됐지

자살까지 하게 만들어?

에이 ㅅㅂ넘아~ ㅋ ㅋ


그래도 재미는 있네














미녀가 괴로울까






                           이 짧은 순간의 제목은  바로 '행복'이다




말해도 상대방이 믿지 않을것 같으면 어떻하죠?

말해봐야죠 믿을지도 모르잖아요